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1391 - Chapter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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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1화

“오, 태수 대인. 설마 이 밤에 달 구경이라도 나오신 겁니까?” 심초운이 미소를 띠며 가볍게 물었다.상인호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달빛이 좋아 거닐다가, 심풍군과 천왕전하께서 아직 자리에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태수부는 뭐든 좋은데, 너무 철통같이 지키는 게 흠이군요.” 심초운이 여유롭게 덧붙였다.상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심풍군, 천왕전하의 신분이 존귀하시니, 두 분의 안위가 무엇보다 중한 일이지요.”“허허, 그 곧은 말만 하느라 피곤하지 않습니까, 상태수?”“허허.” 상인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심풍군, 천왕전하께선 이미 뜻을 정하셨습니까? 상운국에선 대대로 여인이 나라를 다스린 적이 있었습니까?”“여인이라면 어떤가. 법도에 맞고, 정해진 순서대로 잇는 것일 뿐이지 않습니까.”상인호가 크게 웃었다.“장자가 멀쩡히 있는데 무슨 순위 계승이란 말입니까?”“조상께 고하고, 천지를 제사하며, 황제가 친히 봉하고 선위까지 거친 일입니다. 어찌 정통 계승이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까?”“심풍군은 여전히 스스로 봉군이 되려는 욕심이 가득하시군요. 여존남비라니, 참으로 즐겁겠습니다.”심초운이 미소를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적어도 태수 대인보다 야망에 눈먼 자보단 훨씬 낫지 않습니까.”“이야기가 더 이어질 필요는 없겠습니다. 두 분은 이곳에서 편히 지내십시오. 천하 사내들을 위해 제가 길을 도모할 터이니 말입니다.” 상인호는 말끝을 맺고 몸을 돌렸다.“상태수…”그때 이천이 입을 열자, 상인호가 뒤를 돌아보았다. 높은 지붕 위에 선 이천의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속세와는 동떨어진 듯한 기운, 인간이 아닌 듯한 기품을 품겼다.어릴 적부터 도승과 함께 천지를 유람하며 수양을 쌓았다는 천왕, 과연 중생을 굽어보는 듯한 자태였다. 그러니 황권에는 뜻이 없다는 말이 떠도는 것이리라.“천왕전하.” 상태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불러세웠다. “무슨 일입니까?”“만약 제가 그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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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2화

“천둥을 억지로 끌어내려 남을 해친다면, 이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니, 그 화가 곧 자신에게 되돌아오느니라!”이천이 손에 화뢰부를 펼치자, 눈앞에서 번쩍이던 벼락이 땅속으로 곧장 빨려 들어갔다.“으아아아…!”상인호는 두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으나, 곁의 호위가 부축해 주지 않았다면 이미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심초운은 눈을 가늘게 뜨며 분노를 삼켰다. 감히 이영이 황제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내뱉다니!우르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하늘이 갈라지듯 폭우가 쏟아졌다.사람들은 온몸이 흠뻑 젖는 것도 잊은 채, 그 속에서 깨달았다. 이것이야말로 하늘에 닿는 신통력이라!이천과 심초운은 눈빛을 주고받았다.“함부로 날뛸 수는 없지요.”역습은 결코 장난삼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심초운 역시 그 뜻을 알아차렸다. 상인호 같은 자 하나 때문에 자신의 앞날을 던져버릴 이유는 없었다.두 사람은 내력을 모아내더니, 순식간에 비바람 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남은 것은 천둥과 번개, 그리고 굵은 빗줄기뿐이었다.“사람이… 사라졌다?”“분명 눈앞에서 사라진 게 맞아…”비바람에 시야가 가려, 그들의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다. 상인호는 땅에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어서, 어서 용 장군께 전하거라! 성급히 움직여선 아니 된다고! 함부로 나서선 절대 아니 된다!”이 일은 장기적으로 도모해야 했다.그제야 상인호는 깨달았다. 심초운과 이천이 애초에 호위들을 물린 까닭은, 혹여 짐이 되지 않게 하려 했던 것임을 말이다.“보고 드립니다.”상인호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았다.“책사 몇 명이 이미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뭐라?”“보고 드립니다. 용 장군께서 대군을 이끌고 진문관을 야습 중이십니다. 늦어도 새벽이 오기 전 함락한다 하셨습니다!”상인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어찌, 어찌 이리도 빠를 수 있단 말이냐…”이제는 돌아갈 길이 없었다. 반역을 택하지 않아도, 반역의 길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그는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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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3화

“아버지, 어머니께 문안드립니다.”이육진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소우연의 두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남편과 아들, 그리고 사위까지 이렇게 급히 모인다는 것은 분명 중대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곁에서 지켜볼 뿐이었다.이천이 오늘 태수부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형주 군대가 이미 도착했습니다. 오늘 밤 별자리가 어둡고 흐려 남쪽에서 반드시 전란이 일어날 것이며, 상인호가 반역을 도모할 것이 확실합니다!”심초운이 나서서 말했다.“아까 주익선과 진이를 만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진주에 계신다는 것도 알았는데, 혹시 따로 준비하신 것이 있으십니까?”이육진이 침착하게 답했다.“진호범에게 이미 표국 군대를 접수하라고 명했다. 상인호의 암위가 명령을 전한 시각을 고려하면, 새벽녘에 반드시 전투가 벌어질 것이다. 형주 군대가 이미 움직였다면, 진문관에서는 표국 군대가 그 반역자들을 모조리 제압할 것이다.”이천이 이어서 말했다.“창주에서 진주까지는 거리가 좀 있지만, 상인호가 군사를 이끌고 지원하러 나설 때 마침 창주 군과 맞닥뜨리게 되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그래, 네 말이 옳다.”옆에서 듣고 있던 소우연은 손수건을 꽉 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육진이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내가 있지 않느냐. 걱정하지 마라.”그제야 소우연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장면이 처음은 아니었다. 수년 전 궁궐 변란 때에도 이육진은 똑같이 그녀를 지켜주었으니까.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자, 세 사람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에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그때 이천의 시선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로 향했다.'그래서 이영과 이진이 어린 시절부터 이렇게 다정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 것이구나. 그러니 저 아이들이 좋은 배필을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것이겠지.'“아버지…”문밖에서 이진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육진이 간석을 보자, 간석이 곧바로 나가서 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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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4화

이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다들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그런데 왜 제가 배운 건 삼류 같은 허술한 무공뿐인가요? 심지어 주익선한테도 이기지 못하잖아요!”소우연은 진이가 믿지 못하고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꾸준히 수련하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 수 있을 것이다.”사람마다 천부의 재능이 다른 법이지만, 이진이 무공에 임하는 태도는 확실히 심초운이나 이영만큼 성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찌 용강한이 편애한다고 탓할 수 있을까.“그 경전으로 하늘의 번개를 부른다니, 말도 안 돼요!”이진은 단호히 말했다. “어마마마도 외삼촌만 편드세요. 외삼촌은 저한테 번개 부르는 법은 한 번도 안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도 편애 안 하신다고요?”그녀의 시선이 심초운에게 향했고, 부러움이 가득했다.소우연은 말문이 막혔다. “너희 외삼촌이 나한테도 가르쳐준 게 없단다. 나는 오라버니께 한 수도 못 배웠단다.”“어마마마는 아바마마께서 잘 가르쳐주시잖아요…”이육진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하늘의 천뢰를 부르는 법은 본인 능력이 부족하면 되레 몸을 해치는 위험한 술법이다. 쉽게 가르쳐주지 않는 것은 진실로 너를 위함이야.”그렇다면 어째서 외삼촌은 심초운에게 그 법을 가르쳤을까? 이육진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 이영은 친족과 애정을 구분하지 못하고 외삼촌에게 지나치게 의지했기에, 외삼촌이 그 금단의 법술을 심초운에게 전한 것이리라.심초운이 가슴을 움켜쥐며 말했다. “맞습니다. 외삼촌께서도 경고하셨어요. 함부로 번개를 불러서는 안 된다고요. 이는 천명을 거스르는 일이라, 저조차도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많습니다.”이 말을 들은 이진은 급히 다가갔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오라버니는 아무 일 없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언니가 분명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괜, 괜찮다.”심초운은 두 번 다시 함부로 천뢰를 부르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이진은 더 말하고 싶었지만, 이육진이 입을 열었다. “벌써 날이 늦었다. 오늘은 그만 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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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5화

“그렇습니다, 조급해해서는 안 되지요. 천이가 장공 스님을 따라간 그날부터 이미 속세와의 인연은 끊어진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일에 초연했던 아이가 어떻게 속세의 정을 품겠어요? 설령 영이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중매를 서도 진전이 있었나요?”소우연은 이천의 마음 깊은 곳을 헤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이천이 자신을 '어머니'라 부를 때, 그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스며있는 듯했다.……진주 태수부.상인호는 간신히 정신을 추스른 상태였다. 그의 심복이 병력을 이끌고 진문관으로 향해 형주의 용 장군과 합류하려던 바로 그 순간, 심초운과 이천이 태연하게 태수부로 되돌아온 것이다.“저... 저놈들이 감히 이렇게 뻔뻔하게 돌아온단 말이냐?”상인호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하인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예, 태수 어르신. 그렇습니다.”“그, 그놈들은 지금 어디 있느냐?”“객실에 계십니다.”그들은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나서는 상인호를 완전히 농락하고 있었다. 어젯밤 심초운의 놀라운 능력을 직접 목격한 상인호로서는 더욱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곁에 있던 군수승 이염이 손짓으로 하인을 물러나게 한 후, 상인호에게 차분히 말했다.“태수 어르신, 놀라지 마십시오. 어젯밤 일은 아마 속임수였을 겁니다. 그저 날씨가 변덕을 부린 것뿐이에요. 부디 스스로를 혼란에 빠뜨리지 마시기 바랍니다!”반역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일이다. 지금 이 정도에 겁을 먹는다면 수만의 병사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속임수라니… 아니다! 그 벼락은 내 귀 바로 옆에서, 눈앞에서 터졌다고! 만약 이천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나는 벌써 새까맣게 타죽었을 것이다!”이염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다시 설득했다.“그 분들이 그때조차 감히 어르신을 벼락으로 치지 못했으니, 앞으로도 결코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하지만 상인호는 믿지 않았다. 눈빛 속 야심은 두려움에 짓눌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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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6화

“그래, 그래 그래!”상인호는 마치 임독이 뚫린 듯 목청껏 외쳤다. “과연 그렇다! 그자가 감히 나를 벨 수는 없어. 나를 베면 하늘의 천벌을 그놈 자신도 피하지 못할 테니 말이야!”이염은 상인호가 조금은 이성을 되찾은 것을 보고 다시 말했다.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들이 어찌 어르신을 한 번 살려 두겠습니까? 어르신께서 살아계셔야 반격도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그렇다, 맞는 말이었다! 그가 죽어버리면 여제 정권을 뒤엎을 수 있는 선봉장이 하나 줄어드는 셈이니 말이다.“옳다, 반드시 그렇겠지!” 상인호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진문관만 장악하면, 높은 곳에서 한 번 호령하면 천하의 영웅호걸들이 어찌 여제의 통치를 두고만 보겠느냐!”“여봐라!” 상인호가 고함쳤다. “병력을 더 보내라! 저 두 놈이 뭐라고 한들, 감히 쉽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이염이 서둘러 대답했다.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한들, 안쪽 한 겹, 중간 한 겹, 바깥 세 겹으로 에워싸면 날개가 있어도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이때 이미 새벽이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태수부 부엌에서는 여느 때처럼 심초운과 이천이 머무는 방으로 아침상을 들여왔다.심초운이 물었다. “이 음식, 과연… 먹어도 될까요?”이천이 한참 살펴보더니 말했다. “못 먹을 건 없다.” 그러고는 잠시 멈추더니 “하지만 이 접시는 치워라.”붉게 조린 생선 한 접시를 이천이 옆으로 밀어냈다.심초운은 여전히 망설였다. 어차피 이천은 용강한이 아니지 않은가. 과연 그의 본능과 재주를 믿을 만할까?그의 주저하는 눈빛을 본 이천은 그저 미소만 지으며 태연하게 수저를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심초운은 뭔가 말하려다가 망설였다. 혹시 중독이라도 될까 걱정되었지만 이미 늦었다. 결국 그는 체념하듯 함께 수저를 들었다.하인들은 이런 광경을 보고는 슬그머니 물러나 황급히 상인호에게 알리러 갔다.“아니,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필이면 독을 넣어둔 그 생선을 정확하게 골라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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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7화

상태주는 통증을 꾹 참고 있다가 막 객실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차였다. 경성에서 온 큰 인물을 만나러 가려던 때였다. 그런데 은장이 그를 급히 불러 세웠다.“도련님, 어르신께서 짐을 싸서 길을 떠나라 하십니다.”“뭐라고?”은장이 삐죽 웃으며 말했다. “길을 떠나신다 하십니다. 어르신께서 반역의 깃발을 올리셨어요.”“무슨 소리냐?”“그대로입니다. 이제 곧 진문관으로 가서 형주군과 손을 잡고 거병하실 참입니다. 여왕의 정권을 뒤엎으시겠다 하셨어요.”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우리 대상운국이 어찌 여자 따위가 저 높은 자리에 앉아 명령질을 하게 둘 수 있겠습니까!”상태주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굳어 섰다. 순간 상처가 벌어지려는 듯 몸이 움찔했다. “어째서 나만 이제야 이런 소식을 듣는단 말이냐…”상태주가 하인들을 데리고 가보니, 이미 모든 이들이 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오직 그만이 방금 전해 들은 듯 허둥대고 있었다.“아버지…”하지만 상인호는 아들을 보지도 않고 말에 올라탔다. 금주부의 모든 병력은 이염에게 맡긴 삼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진문관을 향해 진군했다.은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도련님, 우선 마님과 함께 마차에 오르십시오.”상태주는 마음이 복잡해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마차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마차 안에는 어머니와 어린 조카들이 타고 있었다. 그는 울컥한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어머니, 저희 어디로 가는 겁니까?”“나도 모른다. 네 아버지 뜻을 따라야지.”“진문관으로 가는 게 아니었습니까?”“아니다.”태수부인은 이미 남편의 속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번에 자손들을 자신과 함께 데려가는 이상, 진문관으로 갈 리 없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진다면, 푸른 산이 남아 있으면 땔감 걱정은 없을 터.태수부인은 상태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멀쩡하던 아들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모든 것이 가슴을 찢어놓았다.한편 이염은 이미 태수부를 장악한 뒤였다. 그 역시 상인호의 방식이 옳지 않다고 여겼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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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8화

이진이 젓가락을 다시 집어 들며 말했다.“어마마마, 모르시는 게 있어요. 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마음 아픈 건, 같은 여자이면서도 어째서 저렇게 남자들 편만 드는 걸까요?”소우연은 창가에 서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여인의 모습은 드물었다.“사람이 돼지를 키우는 건 고기를 얻기 위해서지. 하지만 돼지는 한 번도 우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이진은 어머니가 하려는 말을 짐작했다. 아마도 돼지가 주인이 던져주는 먹이와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리에 만족해서, 더 이상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그러나 소우연은 말을 이어갔다.“여자는 집에 있을 때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면 남편을 따르지. 평생을 남자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삶이야. 그건 돼지와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본래 돼지도 사나운 이빨을 가진 짐승이었는데, 오랫동안 길들여지면서 순해진 거지. 결국 송곳니까지 뽑히고, 물어뜯을 힘마저 잃어버린 것이다.”“길들여진다... 규율이군요.”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진을 바라보았다.“여자도 마찬가지란다. 수천 년 동안 남성 중심의 질서 속에서 길들여진 존재지. 공평함을 바라는 마음조차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고, 본보기가 아니라 반면교사가 되어버린다.”“그런 세상에서 남자는 글을 읽고 벼슬길에 오르며 장사도 하고, 어떤 길이든 택해 출세할 수 있다. 하지만 여인의 가치는 오직 안채에서의 살림살이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에만 매여 있지.”“그래서 남자들은 권력다툼에 혈안이 되고 세력 키우기에 온 힘을 쏟는 반면, 여인들은 좁은 후궁 안에서 질투하고 다투는 게 전부가 되어버린 거란다.”이진이 입술을 깨물며 아버지를 힐끗 보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다른 첩을 들이지 않았다.이천이 소우연에게 찻잔을 건네주었다. 소우연이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네가 방금 물었지. 왜 여인들이 도문군에게는 가혹하면서, 여왕의 즉위를 두고도 같은 여자인데 어째서 남자 편만 드느냐고. 이제 조금은 알겠느냐?”이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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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9화

“나는 네 오라비가 장공 스님을 따라가며 온갖 집착을 다 내려놓고 돌아와서도 황태자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내가 폐하께 다시 아들을 낳아드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단다.”“어머니…”이진의 가슴 한쪽이 짠해졌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걸까?소우연이 딸의 손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라면 이천도, 이영도, 이진도 모두 소중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녀 역시 무의식중에 '태자 자리는 아들이 이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여인들 마음 깊숙한 곳에 노예근성이 뿌리내린 지 이미 오래다. 몇 대가 흘러야 겨우 뿌리 뽑을 수 있는 법이지. 그건 결코 그들의 탓이 아니란다…”소우연은 이육진을 바라보며 눈가에 온화한 사랑을 가득 담아 말했다. “하지만 네 아버지께서는, 네 오빠도, 언니도, 너도 모두 똑같이 여겨주셨단다. 그분은 일찍부터 너희 언니를 황태자처럼 기르려 하셨거든. 나도 그걸 깨닫고 나서야, 그런 편견을 완전히 버릴 수 있었지.”이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언제나 즐겁게 지내기만 하면 됐고, 언니처럼 무거운 학업에 짓눌려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이육진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손을 들어 이진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그 눈빛에는 따뜻한 사랑이 가득했다.소우연도 웃음을 띠며 말했다. “네 언니는 워낙 뛰어났단다. 하지만 너는 언제나 장난꾸러기였지. 영이가 앞에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줬기에, 네가 아버지의 엄한 가르침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거란다.”“아버지…”이진의 눈에 반짝이는 빛이 어렸다. 뭉클한 감동에 휩싸여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니, 자신이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식 같았다.부모님과 함께 먼 길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형제자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이육진이 말을 이어갔다. “나는 네 어머니만큼 마음이 넉넉하지 못했단다. 네 오라비가 경성으로 돌아온 뒤, 정무를 배울 3년의 시간을 주겠다고 약속했지. 그 후에 언니와 겨루어서,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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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0화

소우연은 이진의 이마 앞머리를 살며시 쓸어 넘기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다만 영아… 그 자들을 탓하지 말거라. 단지 눈이 가려져서, 세상의 때가 마음을 덮어버린 것일 뿐이니 말이야. 하지만…”이진은 고개를 들어 어머니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소우연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잠든 그들을 깨워야 한단다. 설사 그들이 끝내 깨지 못한다 해도, 젊은 여인들은 결국 세월이 흐르며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만약 네 언니가 성공한다면, 여인들이 스스로의 힘을 키워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독립적이고 온전한 생각을 가지며, 세상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이진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소우연은 부드럽게 웃으며 덧붙였다. “여인의 길은 멀고도 험하단다. 다만 세상 모든 여인들이 언제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잃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이는 이육진이 이진에게 늘 가르쳐준 가르침이었다.“네, 꼭 마음에 새기겠습니다.”그때 아래층이 더욱 시끌벅적해졌다.진호범이 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먼 길을 달려온 듯 먼지투성이에 숨이 거칠었다. “나으리! 주익선, 진우가 전해온 소식입니다. 진문관에서 이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창주 원군은 도착했느냐?”“예, 장영소가 직접 이끌고 왔습니다. 그들이 진주 경계를 넘어서면 반드시 창주 군과 합류할 것입니다. 그때는 상인호를 크게 꺾을 수 있을 겁니다!”이육진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눈빛을 가다듬었다. “상인호가 병력이 약하다면 감히 이런 일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결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너는 진우와 함께 가서 돕는 것이 좋겠구나.”“저희가 모두 떠나면 여긴 어찌 되겠습니까?”“무슨 일이라도 생기겠느냐?”이육진이 되물었다.진호범은 주저하며 말했다. “운산군 태수 이염이 삼천 병력을 거느리고 태수부에 있습니다. 저와 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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