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2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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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1화

생각이 꼬리를 물수록 경성세의 숨은 점점 가빠졌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멎을 듯 쿵쾅거렸고,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다.그 자리에서 곧장, 이영은 붓을 들어 성지를 내렸다. 경성세에게 한동안 집에서 휴식을 취할 것을 허락하고, 그가 맡고 있던 모든 업무를 우선 이천에게 넘기라는 내용이었다.그야말로 이천으로서는 가만히 앉아 있다가 벼락을 맞은 셈이었다.이영과 심초운은 곧 변복을 갖추고 몰래 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경장명의 서신을 직접 들고 이천을 찾아가 보여주었다.서신을 읽어 내려가던 이천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아무래도, 그때 내가 너무 마음이 약했었나 보구나.”이영이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그때 오라버니께서는 불가와 도가의 가르침을 함께 이은 제자 아니셨습니까. 중생을 구하려는 자비심이 앞섰을 터이니, 어찌 경장명 같은 자에게 선뜻 살수를 내리셨겠습니까.”이천이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지금이라도 그자에게 손을 쓰는 일 따위, 내게는 가당치도 않다.”심연희의 마음속에서 경장명의 자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런 이유로 움직일 만큼 이천은 속이 좁지 않았다. 그러나 서신의 내용은 차원이 달랐다.경성세를 끌어들이고, 도성 안에 세력을 심으려는 속셈.이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이건 분명 반역을 꾀하려는 수작이로구나.”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오라버니께서 보시기에도 그러하십니까.”“그렇지 않고서야, 무엇하러 경성세를 끌어들이려 하겠느냐. 감히 어느 자격으로 연희에게 안부를 묻는단 말이냐. 가당치도 않은 망상이다. 도적놈 같은 심보를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그때였다.“누가 도적놈 같은 심보를 버리지 못했다는 건가요?”문이 열리며 심연희가 찻잔과 찻주전자가 담긴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이영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연희야, 아직도 너를 못 잊고 안달하는 사람이 있나 보구나.”그 말에 심연희의 미간이 바로 찌푸려졌다.“설마… 영남 쪽인가요?”“그래. 너도 그쪽을 신경 쓰고 있었느냐?”신경을 안 쓸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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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2화

심초운과 심연희, 이천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문밖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그때, 문 뒤에 숨어 있던 이윤이 쪼르르 걸어 나왔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정당 안으로 들어와, 이영과 심초운, 그리고 이천과 심연희를 향해 또박또박 예를 올렸다.“폐하와 고모부, 그리고 아바마마와 어마마를 뵙습니다.”심연희가 부드럽게 물었다.“윤아,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폐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나와 보았사온데, 정말 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이영이 손을 흔들며 다정하게 불렀다.“이리 가까이 오너라.”이윤이 냉큼 다가오자, 이영이 흐뭇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요 며칠 정 대인께서 가르쳐 주신 것은 모두 익혔느냐?”“예, 다 익혔습니다.”“오호, 그래? 그럼 무엇을 외울 수 있는지 말해보겠느냐?”“폐하, 소자는 증광현문과 논어를 외울 수 있습니다.”이영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참으로 장하구나! 우리 상운국의 강산을 이을 후계자가 이리도 든든하니, 내 마음이 놓이는구나.”이윤은 이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너무도 진심이었다. 문득, 이영에게 친자가 생기더라도 지금처럼 자신을 변함없이 후계자로 인정해 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감사합니다, 폐하. 더욱 정진하여 결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그래, 우리 윤이야말로 최고로구나.”칭찬이 끝나자, 이천이 엄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제 인사도 드렸으니, 가서 동생들과 놀아주거라. 하루 종일 서재에만 틀어박혀 있지 말고.”“예, 아바마마.”이영은 통통한 볼살이 오른 이윤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특히 반짝이는 눈망울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이윤이 물러가자, 이영의 표정이 다시 진지하게 가라앉았다.“오라버니, 이제 영남은 누군가 반드시 가야 할 곳이 되었습니다. 오라버니께서는 누가 적임자라 생각하십니까?”이천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진이와 익선이가 가야지.”이영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그 아이들이요…?”“진이는 그간 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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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3화

“언니, 안심하세요. 저도 사태의 엄중함을 잘 알고 있답니다.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서 나나 익선이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을 거예요!”이영은 주익선을 바라보며 당부했다.“무슨 일이든 다각도로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결코 진이의 말만 듣고 움직여서는 안 돼.”주익선이 포권을 하며 대답했다.“폐하, 안심하십시오. 신, 반드시 진이를 잘 지키겠습니다!”지난 몇 년간 그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지언정 무예 수련만큼은 단 한 순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게다가 진이의 무예 또한 몰라보게 정교해져, 예전처럼 고작 호위무사 몇 명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시절의 그들이 아니었다.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모든 면에서 각별히 조심하거라.”“명, 받들겠습니다.”“그래. 그리고 한 가지 더, 진아…”이진이 이영의 말을 가로챘다.“언니, 혹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외삼촌께서 영남으로 경장명의 일을 조사하러 가셨을지도 모른다는 그 말씀 하려는 거죠?”“음.”“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가능하다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외삼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란다. 세 분의 지난 삶이 정말 순탄치 않았잖니.”이영은 환상 속에서 보냈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어마마마는 자신과 달랐다. 자신은 소열에게 단 한 번도 진심을 준 적이 없었고, 그저 암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관계였지만 어마마마와 외삼촌은 달랐다.외삼촌은 어마마마를 위해 아바마마가 황제가 되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도왔고, 목숨을 걸고 어마마마와 자신, 그리고 형님과 아바마마를 구했다. 어마마마가 외삼촌께 느끼는 감정이 사랑에 가깝든 정에 가깝든, 외삼촌처럼 훌륭한 분에게 어마마마가 마음을 주지 않았을 리 없었다.그것이 우정이든 연정이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외삼촌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쌓아온 세월은 단순히 이성으로 억누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이진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언니, 저도 이제 예전처럼 철부지 소녀가 아니에요. 밖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저를 보호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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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4화

이진이 입을 열었다.“그자가 정말로 연희 언니를 사랑했다면, 언니의 선택을 축복해 줬어야죠. 이런 수작을 부릴 게 아니라!”정연과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경장명이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감히 경성을 뒤흔들려 하다니. 이건 단순히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조정에 이토록 노골적인 도발을 하는 것인가.정연은 이진의 손을 꼭 잡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진이 네 말이 맞다만, 너희가 침주로 간들 그 험한 뇌경과 계주는 어찌 가려느냐? 그곳은 거머리가 들끓어 영남으로 유배 간 이들은 거의 다 죽어 나가는 곳인데!”“그런데 경장명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지요.”주익선이 무겁게 말을 받았다.진우가 덧붙였다.“폐하와 섭정왕께서 너희를 침주로 보내 영남 일대를 조사하게 하신 걸 보면, 이 일이 결코 간단치 않다는 뜻일 게다.”“맞아요, 보통 일이 아니죠.”이진도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 반드시 몸조심해야 한다.”정연은 신신당부하며 마당에서 유모와 놀고 있는 어린 소유와 소록을 바라보았다.“아이들은 우리가 잘 돌보마.”“고맙습니다, 어머니.”“바보 같은 녀석, 할미가 손주들을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이진과 주익선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놓였다.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은 마당으로 내려가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았다.“소유야, 어미가 잠시 경성을 떠나 있게 됐단다. 할아버지,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상서방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야 한다, 알았지?”주머니를 던지며 엄마와 놀고 싶어 하던 소유는 엄마가 떠난다는 말에 금세 울상이 되어 매달렸다.“어마마마, 어디로 가세요? 소유랑 소록이도 같이 데려가면 안 돼요?”“황제 폐하께서 우리한테 맡기신 일이 있어서 꼭 다녀와야 해.”아빠 품에 안겨 있던 소록이도 고개를 들어 물었다.“무슨 일인데요? 언제 돌아오시는 거예요?”주익선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금방 올 거란다.”금방이라니. 사실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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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5화

이진과 주익선은 아이들을 하나씩 품에 안았다.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고 평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준 뒤, 가벼운 요기까지 시켜주고 나서야 두 사람은 비로소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이진이 정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어머니, 곧 아이들 생일이잖아요. 그때 제 처소 침전으로 가보시면 상자 네 개가 있을 거예요. 아이들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으니 꼭 챙겨서 전해 주세요.”정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라. 내 잊지 않고 꼭 챙기마.”“네.”주익선과 이진, 그리고 진우 세 사람은 정연에게 큰절로 예를 올린 뒤 몸을 돌려 떠나갔다. 정연은 멀어져 가는 이진과 주익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시울을 붉혔다.옆에 있던 진우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나잇값도 못 하고 왜 또 울고 그러느냐.”“나이가 들어도 울 권리는 있는 법이에요. 아이들이 머나먼 침주까지 가는 데다, 험난하기로 소문난 영남 일대의 일을 처리해야 하니 얼마나 위험하겠느냐고요.”“너무 걱정 말거라. 아이들도 이제 다 컸으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약하지 않단다.”정연은 깊은 숨을 내뱉으며 감회에 젖은 듯 읊조렸다.“태후 마마와 태상황 폐하께서 비밀리에 경성에 돌아오셨을 때도 문안 인사 한 번 제대로 못 드렸는데, 벌써 또 경성을 떠나셨으니…”진우 역시 깊은 숨을 몰아쉬며 한쪽 팔로 정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앞으로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게다.”“네. 만약 정말로 그 경장명이란 자가 사람을 풀어 소문을 퍼뜨린 거라면, 그놈은 정말 죽어 마땅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영남으로 유배 보낼 게 아니라 숨통을 끊어 놓았어야 했는데.”진우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세월을 겪으며 얻은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화근이 될 놈은 절대로 살려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그 역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소우연과 이육진, 그리고 용강한 세 사람은 마차를 빌려 영남 방향으로 향했다. 보름 정도 길을 재촉하자 날씨가 제법 풀려 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확실히 남쪽 날씨가 북쪽보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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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6화

가게 직원은 커다란 누렁이를 보며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개 밥은 도대체 어떻게 준비해야 한단 말인가.그때 접선을 손에 든 용강한이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누렁이 밥에는 숭늉에 고기 국물만 좀 섞어주면 된다.”“아, 예! 알겠습니다요.”직원은 용강한에게 식성이나 못 먹는 음식 등을 상세히 물었다. 용강한이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며 음식을 주문하자, 직원은 내용을 가슴속에 새기듯 되뇌며 용강한과 진휘를 위층으로 안내했다.꼬리를 살랑거리며 위풍당당하게 계단을 오르는 누렁이의 모습에 사람들은 넋을 잃고 쳐다봤다. 이 시국에 개를 데리고 주루에 들어와 밥을 먹는 사람이 있다니, 참으로 해괴한 광경이었다.“아니, 개가 주루에서 밥을 다 먹네?”“걱정들 마쇼. 개 밥은 주방에서 남은 찌꺼기에다 안 쓰는 깨진 사발에 담아줄 테니 절대 허튼짓 못 하게 할 거요.”직원의 장담에 사람들은 그제야 수군거림을 멈추었다.위층에 올라가자 직원이 조심스레 물었다.“네 분이 모두 한 방에서 식사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이 개도…”그러자 진휘가 먼저 말을 가로챘다.“내 몫은 방으로 따로 가져다주게.”이육진이 진휘를 힐끗 쳐다보자, 진휘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귀한 분들과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먹었다간 긴장해서 배도 채우지 못할 게 뻔했다.가게 직원 역시 이들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눈치챘으나, 정확히 어떤 신분인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용강한이 덧붙였다.“누렁이 밥은 우리 방으로 넣어주거라.”“예, 손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직원이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소우연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우리 누렁이는 참 착하기도 하지. 오는 내내 행인들을 봐도 짖기는커녕 눈길 한 번 안 주더라고요.”이육진이 무뚝뚝하게 대꾸했다.“그건 악당이나 도둑을 못 만나서 그런 것이니라. 용 대인이 키운 개가 어찌 평범한 개겠느냐.”용강한이 빙그레 웃으며 겸손해했다.“그저 얌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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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7화

이육진은 까던 해바라기 씨를 툭 던져버렸다. 마음속으로는 울화가 치밀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는 못했다. 용강한 역시 기분이 좋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잠시 후, 가게 직원이 몇몇 사람을 데리고 들어와 음식을 차려냈다.“맛있게 드십시오. 저는 곧바로 다른 방 손님께도 음식을 가져다드리겠습니다.”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직원이 웃으며 수하 한 명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들고 온 것은 귀퉁이가 이 나간 사발에 담긴 탕국밥이었다.“이건 어디다 둘까요?”누렁이가 이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직원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소우연이 그것을 건네받았다.“괜찮으니 어서 가서 일들 보거라.”“예이, 그럼 편히 드십시오.”직원이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는 저 방 안의 세 사람이 대체 무슨 관계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어쨌든 방은 네 개를 잡았으니 말이다.소우연이 먹이를 내려놓자마자 누렁이는 정신없이 그릇에 코를 박고 먹기 시작했다. 마차를 타다 달리다 하며 먼 길을 왔으니 배가 몹시 고팠을 터였다. 누렁이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확인한 소우연은 일어나 손을 씻었다. 그리고 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녀의 밥그릇 위에는 이미 반찬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아… 머리 아파.'소우연은 하는 수 없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멍!”갑자기 누렁이가 짖어대더니 귀를 쫑긋 세우고 무언가에 집중하는 기색을 보였다. 소우연과 용강한, 이육진 세 사람의 시선이 일제히 녀석에게 쏠렸다.소우연이 타이르듯 말했다. “누렁아, 객줏집에서는 그렇게 크게 짖으면 안 돼!”“멍! 멍!”이번에는 주인의 말도 듣지 않았다. 누렁이는 곧장 문가로 달려가 앞발로 문을 긁어대며 계속해서 짖어댔다. 용강한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문밖에는 바람을 뚫고 달려온 듯한 이진과 주익선이 서 있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삼촌.”“진이가 아니냐.”소우연과 이육진도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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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8화

이육진이 물었다. “영이가 너희를 보낸 것이냐?”“네, 오라버니와 언니가 저희더러 먼저 침주로 가서 방비를 하고, 영남 일대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라고 했어요.”이진이 모두를 둘러보며 덧붙였다. “여기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뵙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외삼촌과 누렁이도요.”“나 역시 생각지도 못했다. 다만, 앞으로 밖에서는 아바마마니 어마마마니 하는 호칭은 삼가거라. 이미 경성에서는 장례까지 치르지 않았느냐.”이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우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마마마께서 그걸 어떻게 아세요? 설마 다 보신 거예요?”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도 다 보았단다.”“그럼 어마마마께서는 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것도 보셨겠네요. 전 평생 어마마마를 다시는 못 뵙는 줄 알았다고요.”“바보 같은 소리 말거라. 우리는 가짜로 죽은 척을 한 것이지, 정말 죽은 게 아니지 않느냐. 시간이 흘러 소란이 좀 가라앉으면 당연히 너희를 보러 갔을 게다.”이진이 애교 섞인 투로 물었다. “어마마마, 정말이죠?”“당연히 사실이지.”소우연이 대답했다. 그녀가 어찌 자식들을 정말로 저버릴 수 있겠는가.“전 어마마마랑 아바마마가 저를 버리신 줄 알았어요.”“바보야, 그 조그만 머리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게냐. 세상에 자식을 버리는 어미가 어디 있다고.”“헤헤, 역시 우리 어마마마가 제일 좋아요.”소우연은 깊은 숨을 내쉬며 이진을 바라보고는 이영과 이천, 그리고 심초운과 심연희, 손주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진은 하나하나 소상히 대답했다.어느새 용강한이 방을 나가 가게 직원을 불러 음식과 그릇을 추가했고, 곧이어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식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이 곁에 없는 지금, 이진은 부모님 곁에 남은 유일한 자식이 되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아바마마와 어마마마, 그리고 외삼촌이 그릇에 수북이 쌓아주는 반찬을 보며 이진은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을 느꼈다.“익선아, 너도 많이 먹으렴.”소우연이 주익선의 그릇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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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69화

외삼촌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는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을 사람이었다. 그 절절한 심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역시 그를 돌아오게 하기 위해 분명 어떤 약속을 했을 터였다. 그러니 이 세 사람의 인연은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과도 같았다.이진은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나도 알아. 마음 한구석이 조금 아릿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바마마가 너무 가여운걸.”“넌 선황 폐하의 딸이니까 당연히 마음이 쓰이겠지. 하지만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외삼촌이 정말 좋은 분이라는 건 알지만, 그분이 아버지가 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단 말이야.”주익선이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그저 어마마마를 아껴주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었다고 생각하면 좀 낫지 않겠어?”이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이진이 어느 정도 납득한 기색을 보이자 주익선은 안도하면서도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그렇다고 너까지 그러면 안 돼.”“너 말고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러겠어.”“만약 나중에 생기면?”“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나한테 잘해주는 걸 네가 막을 거야? 너 혼자만 나한테 잘해주겠다고?”이진이 눈을 크게 뜨고 주익선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주익선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당연하지. 다른 남자가 우리 진이한테 잘해줄 기회 따위, 절대 주지 않을 거야.”이진은 배시시 웃으며 주익선의 품에 파고들었다.“그럼 우리, 내일은 일찍 출발해서 저분들이랑 따로 갈까?”“난 네 뜻에 따를게.”이진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폐하랑 마마랑 같이 가고 싶어?”“응.”잠시 뜸을 들이던 이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내가 있으면 아바마마, 어마마마, 외삼촌 세 분 다 분명 어색해하실 거야. 게다가 언니랑 천이 오빠도 아바마마 일행을 절대 찾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잖아.”주익선은 이진을 꼭 껴안아 주었다.“네 곁엔 내가 있고, 내 곁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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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0화

“그런데 아바마마, 어째서 어마마마와 방을 따로 쓰시는 거예요?”딸의 맑은 눈망울이 자신을 향하자 이육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진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가련한 표정으로 덧붙였다.“아바마마랑 어마마마가 헤어지는 건 정말 싫단 말이에요.”“……”“아바마마.”이육진이 도통 답답하게 굴자 이진도 마음이 급해졌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이 연세에 이르도록 어찌 함께할 날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시는 걸까. 앞으로 살날이 십 년, 이십 년이 얼마나 더 남았다고 이러시는 것인지. 이진은 참지 못하고 이육진의 팔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향한 곳은 바로 소우연의 객방이었다.똑똑똑…“진아, 대체 어쩌려는 것이냐?”이육진은 겉으로 당황한 척했으나, 내심은 기쁨으로 들끓었다. 이건 자신이 억지로 떼를 써서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어마마마, 문 좀 열어보세요!”이진은 아바마마가 뒤에서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문을 두드렸다. 마침내 소우연이 문을 열었고, 화가 난 듯한 막내딸이 이육진을 붙들고 서 있는 모습을 마주했다.“진아, 무슨 일이니?”이진은 대답 대신 이육진을 방 안으로 쑥 밀어 넣었다.“어마마마, 아바마마께서 화나게 하신 거죠? 제가 사과하시라고 모셔왔어요. 저랑 언니, 오라버니 모두 부모님 사이에 앙금이 생기는 건 원치 않는다고요.”“우리는 그게 아니라…”소우연이 입을 떼기도 전에 이진이 말을 가로챘다.“어마마마, 아바마마랑 정말 헤어지시려는 거예요? 이제 저희는 필요 없으신 건가요?”“그럴 리가 있겠느냐.”“그럼 아바마마를 용서해 주세요. 안 그러면 저는 잠도 제대로 못 잘 것 같아요. 경성으로 돌아가서 언니랑 오라버니한테 뭐라고 하겠어요? 저희는 모두 버림받은 아이가 될 거예요.”이진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쐐기를 박더니, 그대로 방문을 '쾅' 닫고 사라졌다.“……”방 안에 남겨진 소우연은 어안이 벙벙한 채 이육진을 바라보았다.“진이가 갑자기 왜 저러죠?”이육진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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