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821 - Chapter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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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1화

모두 남자들이었다.별일 아닌 사소한 부분까지 그냥 털어놓았다.진우가 말했다.“자네 말대로라면 일리 있어. 혹시… 그 여자가 정말 이아령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세 사람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잠시 후, 진우가 입을 열었다.“혜아가 사라졌다고 했잖소? 왜일까? 혹시 그녀가 뭔가 비밀을 알고 있어서… 아니면 대역이라도 되어서 입막음을 당한 건 아닐까?”그 말에 위진규가 번뜩이며 임세안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맞아. 자네가 말했지. 그 아이 손에 굳은살이 좀 있다고. 돌아가서 그 손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살펴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르네.”세 사람은 갈피를 잡은 듯했다.임세안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마지막 술잔을 비웠다.“지금 당장 가보겠네.”“잠깐!”위진규가 급히 막아섰다.“자네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하잖아. 이러다 또 그 교활한 여자에게 당할 수도 있네. 술을 좀 깨고, 취한 척하면서 방법을 생각해보게.”“그렇지.”진우는 벌써 문을 열며 외쳤다.“여봐라! 해장국 좀 가져와라!”임세안은 충동적이긴 했지만, 친구들의 조언을 귀담아들었다.그를 바라보던 경안향의 순진하고 청초한 눈빛. 그 눈빛이, 지금 생각해보면 단지 의도적인 유혹의 수단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해장국을 다 먹고 나서, 임세안은 진우에게 조용히 말했다.“폐하께 전해주게. 나는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며, 감정에 휘둘려 편만 드는 자도 아니라고.”그는 편들기는커녕, 지금 가장 미워하는 대상은 바로 자신이었다.사람에게 철저히 속았다는 그 사실이, 가슴을 후벼팠다.진우와 진규도 예전에 당했다 했지… 여자는 정말 교활했다!……표기장군부.경안향은 방금 한청에게 지시를 내렸다.“장군께서 오시면, 밥상을 바로 차려 드리거라.”고개를 돌리자, 임세안이 막 돌아온 참이었다.그의 몸에서 은근한 술 냄새가 풍겼다.“서방님, 밖에서 식사하셨나요?”그녀의 맑고 순진한 얼굴을 바라보며, 임세안은 쓴웃음을 지었다.예전에는 미인계라면 절세의 미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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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2화

“서방님?”경안향이 부드러운 손끝으로 임세안의 어깨를 조심스레 두드렸다.임세안은 몽롱한 얼굴로 대답했다.“아직 처리할 공무가 남아 있소. 아마 오늘 밤은 서재에서 보낼 것 같으니, 부인은 먼저 쉬시오.”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말을 마친 임세안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와 서재로 향했다.‘또 서재에서?’경안향은 숟가락을 들고 한참을 멈췄다.‘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 남자.’그녀는 밥을 몇 숟가락 뜨다 결국 수저를 내려놨다. 식욕이 뚝 떨어졌다.이 어두운 밤이 길게만 느껴졌다. 이미 이틀이나 참았다. 조철을 매번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만약 누가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모든 계획이 무너지고 말 텐데…이 몸뚱이는 임씨가 어머니를 해치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청루에서 그 약을 먹으며 자랄 일도, 매일같이 남자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잠시 후, 한청이 사람을 시켜 식기를 치우러 왔다.경안향은 나직이 말했다.“서방님께 해장국 한 그릇 더 준비해 주거라. 내가 직접 가져다 드릴 테니 그리 알거라.”“예, 마님.”한청은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복 두사람이 해장국을 들고 서재 앞에 도착했다.경안향이 직접 문을 두드렸다.서재 안은 이미 촛불이 꺼진 상태였다.임세안은 분노를 억누르며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문 너머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는 눈을 감고 침묵을 지켰다.‘그냥 돌아가겠지…’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곧 문이 조심스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그리고 여인의 발걸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가왔다.“서방님?”경안향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귓가를 스쳤다.임세안은 눈을 감은 채 숨을 고르며 계속 자는 척을 했다.‘뻔뻔하기 짝이 없군. 이런 상황에서도 들어올 줄이야…’황제와 황후의 계획을 망칠까 두려워서 그렇지, 마음 같아선 그녀의 가면을 벗겨내어 그 얼굴이 과연 이아령인지, 아니면 진짜 경안향인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경안향이 가까이 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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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3화

경안향은 입술을 달싹이며 눈썹을 찌푸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대가 일부러 그랬던 건 아니니까. 억지로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임세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소?” “저는 괜찮습니다만…” ‘괜찮다고?’ 그의 발길질이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면 하룻밤쯤 앓아눕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를 원망할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 어떤 실수로도, 그 어떤 감정에 휘둘려서도 안 되는 때였다. 그녀가 진짜 누구인지, 어떤 연기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배후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 임세안은 지켜봐야 했다. 지금 그가 넘어가면, 경안향이 무슨 수로 경성을 흔들어 놓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경안향은 배를 감싸쥐고, 입술을 꼭 깨물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몸은 힘없이 임세안에게 기대어 문밖으로 나섰다. ‘이렇게 말없이 나간다고?’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나를 침상에 눕혀줄 생각도 없는 건가?’ 임세안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하오, 부인. 나는 지금껏 자는 순간에도 긴장을 놓지 않아왔소.” “조금이라도 바람이 불고 풀이 흔들리면, 적이 침입한 줄 알고 바로 대응하지.” “오늘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아마 부인을 더 다치게 했을 지도 모르겠소.” 그는 말을 잠시 멈췄다가, 낮은 음성으로 덧붙였다. “앞으로는 날 부를 때 조금 떨어져 있는 게 좋겠소.”“내가 자는 중에 부인을 흉노족으로 착각해, 자칫 목숨이라도 해치게 된다면 어쩌겠소?” 그 말에 경안향의 눈빛이 흔들렸다.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부인을 얻었소. 부인은… 내게 아주 소중한 사람이란 말이오.” 그 말에, 경안향의 가슴이 살짝 저릿했다. 순간, 진심인가 싶어 마음이 뭉클해졌다. 의심하고 있던 것들, 불안하게 요동치던 감정들이 잠시나마 가라앉았다. ‘그래, 임세안도 결국 남자잖아. 여자 경험이 없는 순진한 남자. 이런 남자는 오히려 더 속이기 쉬워.’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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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4화

어린 공주는 입술을 삐죽이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마치 아버지와 어머니는 진정한 사랑으로 이어진 운명이고, 자신은 그저 그들 곁에 덧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서럽고 억울해져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당안과 함향은 서로를 바라보며 속수무책으로 서 있었다.폐하께서 직접 공주님을 훈육하시니, 하인인 그들은 감히 나설 수는 없었다.간석 총관이라 해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상황이었다.이육진은 묵묵히 의복을 정돈한 후 침상에 앉아 바둑판 위의 돌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갔다.흑돌과 백돌이 제 자리에 담길 때마다 방 안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잠시 후,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충분히 울었으면, 이제 짐이 너에게 말해주겠다.”이영은 여전히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투덜거렸다.‘어마마마한테는 다정하게 하시면서, 왜 저한테는 이렇게 엄하게 하세요…”정말 아버지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걸까?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듯 공주라는 이유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걸까?오빠만 그리워하고, 오빠의 소식만 아껴두는 부모님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그 기억에 마음이 더 시려웠다.아이는 말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울먹였다.그 모습을 본 이육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작은 몸을 가볍게 안아 올리며 물었다.“이제 좀 진정이 되었느냐?”이영은 고개를 돌린 채 고집을 부렸다.그러자 이육진은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모든 승부에는 승패가 있기 마련이다. 졌다면, 더 배우고 더 연습하면 된다. 울음으로 동정을 구하려 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그의 말투는 단호했지만, 딸을 향한 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울음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너의 약함을 드러내어, 사람들로 하여금 널 가볍게 여기게 만들 뿐이다.”이영은 침을 삼키고 아버지를 가만히 바라봤다.“오늘 너는 네 어머니와 바둑을 두고 졌다 하여 울고, 무승부에도 불만을 표했고, 결국 이긴 뒤에야 웃었다 들었다. 그게 옳은 태도일까?”“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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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5화

이 태의를 마주하자, 소우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앞으로 여의서에서 날 마주치면, 그냥 가볍게 고개만 숙이면 된다. 복잡한 예법은 생략하거라.”이 태의는 말없이 잠시 생각했다.예를 올리는 사람들은 정작 부담을 느끼지 않는데, 황후 마마께서 번거로워하실 줄이야…“이곳에 온 사람들은 무언가를 배우러 온 이들이다. 내가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귀중한 시간을 예법에 쓰라고 하는 건, 오히려 낭비이지 않겠느냐.”“하지만, 마마… 이는 예법에 어긋나는 건 아닐지요?”소우연은 조용히 웃으며 되물었다.“예법이라… 누가 정한 예법이지?”이 태의가 망설이며 대답했다.“예, 역대 왕조를 보면 군주 앞에선 모두 예를 올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폐하께선 군주시고, 나 역시 이 여의서 안에서는 그에 준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예를 생략하라’고 명한다면, 그게 곧 새로운 규칙이 되는 게 아니겠느냐?”이 태의는 머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황후 마마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신, 명심하여 모두에게 정확히 전달하겠습니다.”소우연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네 명의 여의가 보이지 않자 물었다.“춘화, 추실, 하온, 동심은 어디에 있느냐?”이 태의가 공손히 답했다.“마마, 네 분은 이미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기본 약재 식별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다. 약재 식별, 경혈, 조제법, 침술까지… 모두 동시에 익혀야 한다. 빠를수록 좋아.”“걱정 마십시오, 마마. 태의원은 폐하와 황후 마마의 뜻을 받들어 여의서 운영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그래.”소우연은 문득 품 안의 의서를 만지작거렸다.지금 펼쳐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책은 용강한 스승의 소중한 의서였다.‘내가 함부로 베껴 나눌 순 없어. 그분의 허락이 필요해… 하지만 괜히 찾아가 곤란하게 해드리는 건 아닐까?’혼잣말처럼 이어지는 고민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잠시 후, 이 태의가 말했다.“오늘은 주 부인과 임 부인도 여의서에 다녀가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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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6화

소우연이 서 있는 자리는 여제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덕분에 정연이 수업 중에 밖으로 나와도 큰 소란은 일지 않았다.“마마…”정연이 조심스레 다가와 무릎을 굽히며 인사를 올렸다.소우연은 그녀를 일으키며 물었다.“신혼인데 벌써 여길 나왔느냐?”“저택 일은 다 정리해뒀습니다. 진우 나으리의 사업도, 제 사업도 그리 많지 않아서… 시간은 넉넉합니다.”“그래? 그럼 다행이고.”소우연은 시선을 안쪽으로 돌렸다.이 별채는 거의 서당처럼 개조되어 있었다. 밝고 널찍하고, 학문을 배우기에 더없이 알맞은 환경이었다.“이 태의, 바쁠 테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거라.”이 태의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예, 마마.”그가 물러나자, 소우연은 정연의 손을 이끌고 근처 정자로 향했다.“정말 여의서에 오고 싶었던 거니?”“네. 다만… 지금 배우는 약초 지식은…”정연이 난처한 듯 웃었다.“마마께서 이미 대부분 가르쳐주신 내용이라 딱히 배울 게 느껴지지 않아서요.”소우연이 웃으며 말했다.“그 의서들은 이미 다 보지 않았느냐?”“예, 다 읽었지요.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진료해본 적은 없어서…”정연이 살짝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당안 나으리나 간석 태감의 맥을 짚어본 것 정도? 감기, 복통, 변비 같은 데 쓰는 약을 지어본 게 전부예요.”“그러니까 기초는 있는 셈이지.”“근데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우는 네가 궁에 오는 걸 탐탁잖게 여기겠구나?”장군의 부인이 집안일을 다 내팽개치고 궁에 와서 여의가 되겠다니, 말이야 황후의 뜻을 따른다 해도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마마께서 도우려 하시는 마음, 저도 알고 있습니다.”소우연은 그녀를 바라보다 하온이 수업 중인 편전 쪽을 향해 눈을 돌렸다.“경안향도 이 안에 있더구나.”정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칠 전 진우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쳤다.아직 자신이 마마 곁을 완전히 떠나 안주인 노릇에 익숙해지지 못한 탓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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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7화

이 원사는 곧장 사람을 시켜 주연 몇 항아리를 가져오게 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항아리를 내밀며 말했다.“황후 마마, 이 물건은 독성이 있으니 꼭 조심하셔야 합니다.”소우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정도는 알고 있다.”의술에 밝은 황후께서 이런 독물의 본질을 모를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원사는 불안한 듯 다시 당부했다.“마마, 정말 조심하셔야 합니다.”“걱정 말거라.”소우연은 항아리를 품에 안고 곧장 발걸음을 돌렸다.정연은 그 뒤를 따르며 조심스레 물었다.“마마,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는 겁니까?”“잠시 후면 알게 될 거다.”“예.”황후가 향한 곳은 곧장 태자부였다.공주와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정연을 데리고 배나무 별채로 향했다.곧장 함향을 불러 명했다.“내 연지와 분을 전부 이리로 가져오너라.”얼마 지나지 않아 함향이 연지와 분을 들고왔다.소우연은 주연과 연지, 분을 섞어 새로운 제형을 만들기 시작했다.그 손놀림은 마치 약재를 조제하듯 섬세했고, 곧 화려하고 매끄러운 색감이 눈앞에 펼쳐졌다.정연은 눈이 동그래져 물었다.“마마, 이건…?”소우연은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바라보며 말했다.“화장을 할 거다.너한테 마술을 하나 보여주지.”정연은 문득 불안해졌다.“마마, 주연은… 독이 있잖아요. 제 얼굴에 먼저 시험해보시지요.”소우연은 웃었다.“너는 내 몸에 해가 될까 봐 그러는 거냐?”정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그럼, 너는 네 얼굴이 상할까 봐는 걱정하지 않느냐?”정연은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저는 피부가 거칠고 튼튼하니까, 마마보다는…”“다 거기서 거기다. 그저 내가 조금 운이 좋았던 것뿐이지.”조금이라는 말은 겸양이었다.소우연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스승 용강한의 편애 덕이었고, 그 덕에 이육진이라는 인연도 맺을 수 있었다.그녀는 거울 앞에서 붓을 들어, 얼굴에 주연과 연지를 섞은 분을 천천히 덧발랐다.“마마…” 정연이 불안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걱정 마라. 이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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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8화

“경안향이 이아령인 걸… 알아볼 수 있겠느냐?”정연이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못 알아봐요. 절대 못 알아보겠어요.”하지만 바로 한 가지 궁금한 사실이 떠올랐다.어째서 황후는 경안향이 이아령이라 단정 지으시는 걸까?정연은 말은 못 하고 마음속으로만 의아함을 품었다.그 눈빛을 읽은 듯, 소우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람이 제 목소릴 숨긴다는 건, 결국 누군가를 속이고 진실을 감추고 있다는 뜻이지. 목소리까지 감춘다? 그건 정체를 감춰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그게 아니라면 누가, 무엇 때문에 굳이 그렇게까지 하겠느냐.”정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그때, 콸콸… 세숫대야에 물 붓는 소리가 들려왔다.소우연은 맑은 물에 얼굴을 담갔다가 고개를 들더니, 수건을 건네주며 말했다.“닦아보거라.”“예.”정연은 조심스레 복을 올리고, 익숙한 손길로 소우연의 얼굴을 닦기 시작했다.지금은 위 장군의 부인이자 귀한 안주인이 되었지만, 그녀에겐 여전히 황후는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였다.그건 습관이었고, 몸에 밴 충심이었고, 조건반사와도 같은 행동이었다.소우연 역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정연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자신의 자리에 익숙해질 터였다.정연은 소우연이 그린 눈썹 언저리를 조심스레 닦아보았다.하지만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좀 더 세게 해보거라.”소우연의 말에 정연이 힘을 더해 문질러서야, 겨우 아주 미세한 흔적이 지워졌다.그러나 화장은 여전히 멀쩡했다.소우연은 수건을 받아 들고 직접 동경 앞에 앉아 얼굴을 닦았다.붉은 입술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물감처럼 묻어났지만, 그 외의 화장은 요지부동이었다.“주연을 아주 조금만 썼을 뿐인데도 이 정도구나. 살짝만 닦아선 티도 안 나지. 이아령이라면 분명, 나보다 훨씬 정교하게 연지와 분을 조제했을 게다.”정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신 대로, 겉은 번지르르해도… 속은 이미 엉망일지도 모르겠네요.”“그렇지.”정연은 이내 분한 듯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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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9화

정연은 소우연 곁으로 돌아오며, 다시 시중을 들어야 하나 싶어 어색하게 웃었다.그 모습을 본 소우연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앞으론 ‘정연’이라 부르지 않고, ‘주 부인’이라 부르겠다.”정연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마마…”“주 부인, 수고를 끼쳐서 미안하구나.”“마마께서 무슨 말씀을요. 전혀 번거롭지 않습니다.”잠시 후, 머리 단장이 끝나고 함향이 새 옷을 들고 들어왔다.갈아입고 나오자, 거울 속 인물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함향이 넋을 잃고 중얼거렸다.“세상에…”소우연은 단정히 정돈한 옷자락을 매만지며 말했다.“혹시 누가 물으면, 난 여기서 볼일 있다고 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해두거라.”“마마께서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소우연은 정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다녀올 테니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거라. 먼저 나가서 사람들을 물리고, 그다음 진우에게 가서, 부인을 잘 지키라 전하거라.”“예, 마마. 명 받들겠습니다.”함향이 조용히 물러나자, 정연이 물었다.“마마, 저도 화장을 하면 어떨까요? 그럼 밖에 나가도 덜 눈에 띌 것 같습니다.”소우연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좋지. 그럼 앉거라.”“제가… 어떻게 감히…”황후가 손수 자신의 얼굴에 화장을 해주신다니,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우연은 그녀를 의자에 앉혔다.동경 속, 황후가 진지한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본 정연은 가슴이 두근거렸다.황후는 언제나 그랬다.한 번도 위엄을 내세우지 않고, 진심으로 자매처럼 대해주었다.그때,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황후 마마, 진우가 뵙기를 청합니다.”소우연이 밖을 향해 말했다.“잠깐 기다려라.”“예.”한 식경이 지나고,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소우연은 동경 앞에 앉아 있던 정연을 바라보았다.정연은 눈을 크게 뜨고 놀란 얼굴로 말했다.“이, 이게… 누구죠…?”소우연이 빙긋 웃었다.“바로 너다, 주 부인.”정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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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0화

표기장군부 문 앞.호위무사들은 낯선 마차가 문 앞에 멈춰서는 것을 보자 즉시 검에 손을 얹고 한걸음 다가섰다.“누구냐?”그러자 마차에서 먼저 내린 화려한 옷차림의 여인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임 장군께 고하거라. 고인이 찾아왔다 전해라.”“고인이라 하셨소?”무사들은 순간 얼굴을 찡그렸다.장난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차림의 여인이 고인이라니.그러나 그 차림새는 장난이라 보기엔 너무 단정하고, 위풍당당했다.결국 호위 하나가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전하기로 했다.그 시각, 막 황궁에서 돌아온 임세안은 서재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고 있었다.경안향이 집에 없다는 건 확인했지만, 여의서에 있다는 말은 믿기 어려웠다.‘혹시 황후를 해칠 생각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동시에 진우가 이미 황후와 황제에게 사정을 아뢰었을 것이니, 설마 쉽게 손댈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그때 하인이 들어와 보고했다.“장군, 낯선 여인 두 명이 뵙기를 청합니다. 스스로를 ‘고인’이라 부르며 찾아왔습니다.”‘고인이라니…?’임세안은 잠시 눈살을 찌푸렸으나, 요즘 시국이 시국인지라 혹시 경안향과 관계된 자가 아닐까 싶어 결국 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그가 발을 들이자,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건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절세의 여인이었다.심장이 본능적으로 쿵쾅대기 시작했다.‘세상에… 황후 마마보다도 더 아름답다니…?’아니, 달랐다. 황후는 고귀하고 단정한 인상이 강했다면, 눈앞의 여인은 따뜻하고 풍성한 곡선이 인상적이었다.그러나 그 눈썹의 각, 눈가의 표정, 목소리의 떨림까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당, 당신은 누구시오? 나는 임세안이오. 두 낭자께서 날 찾아온 이유를… 내겐 낭자와 같은 고인을 기억할 만한 일이 없소만…”그 순간, 두 여인이 눈빛을 교환했다.“임 장군.”앞의 여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저택의 하인들을 모두 물러가게 하거라. 여기서 이야기하기엔 부적절하니.”“무슨 일인데… 또 하인을 물러가게 하라고 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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