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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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윤제의 표정이 한층 더 싸늘해졌다.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면서 말했다.“이미 끝난 사이지만, 반드시 알아야겠어. 너, 나랑 이혼하자마자 저 변호사 놈하고 눈 맞은 거 아니야?”“아니, 그 전부터겠지? 요즘 집에도 안 들어오더니, 알고 보니 벌써 같이 살고 있었던 거 아니야?”그 모습을 바라보는 예진은 낯선 느낌이 들었다.‘어떤 사람들은 이혼해도 여전히 가족이자 친지처럼 남을 수 있어.’‘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혼하는 순간 바로 가식의 가면을 벗어버리지.’‘한때 온화하고 성숙해 보였던 모습도, 그 순간 전부 허상으로 사라지는 거야.’‘세상은 원래 깨끗한데... 개 눈에는 똥만 보이는 법이야.’‘이런 사람한테 굳이 설명해 봤자 소용없어.’예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서 변호사하고 아무 관계도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당신은 안 믿을 거잖아. 이 얘기는 하도 많이 해서 이제 지쳤어. 지금 와서 더 말해 봤자 의미 없지.”윤제는 담배꽁초를 땅에 내던지고는 발로 거칠게 짓이겼다.“당신이 얼마나 역겨운 짓을 했는지 몰라? 당신도 흠집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한 번의 실수하고 잘못한 걸, 꼭 이렇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해?”예진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우리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게, 그게 당신 눈엔 아직도 내가‘억지 부리는’걸로 보여?”윤제는 이를 악물었다.예진이 이어서 말했다.“사실 예전엔 우리 사이에 감정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만 끼지 않으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오늘 알았어.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게, 다른 누구 때문도 아니라는 걸 말이야.”윤제의 시선이 차갑게 예진을 꿰뚫었다.“그게 무슨 뜻이야?”“간단해. 바람을 피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우리 사이에 이제 사랑이 없다는 거야.”처음 함께할 때는, 서로 사랑했으니까 결혼까지 했을 것이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든, 혹은 제3자가 끼어들든, 감정에 금이 가도 아직 메울 수 있다.하지만 감정 자체가 사라지면...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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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예진에게 한마디도 못 한 채, 말문이 막힌 윤제는 그저 거칠게 숨만 내쉬고 있었다.예진은 그런 윤제를 담담하게 바라봤다. 오늘의 윤제는, 처음 윤제를 만났던 날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가로등 불빛 사이로 비치는 머리카락 끝에서는 빛마저 감도는 듯했다.하지만 그때의 설렘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부윤제... 사실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네.’‘내가 사랑해서 이 남자가 더 멋져 보였던 거였어.’그 순간 예진은 깨달았다. 이렇게 오랜 세월 쌓아 왔던 마음도 생각보다 쉽게 놓을 수 있다는 것을!윤제는 예진의 눈에서 이런 감정을 처음 보았다.마치 아무것도 아닌 듯이, 무슨 말을 해도 아무런 파문조차 일으키지 않을 것 같은 담담한 눈빛.불안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윤제는 그 불안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다시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예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앞으로 담배 좀 줄여. 몸에 안 좋아.”그 말을 남기고 예진은 돌아서려고 했다.윤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또다시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모든 게 무너져 내리기 직전인 것만 같았다.라이터를 버리고 입에 물었던 담배도 뱉어 버린 뒤, 성큼 다가가서 예진의 팔을 거칠게 끌어당겼다.예진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면서 그대로 윤제의 품에 부딪혔다.멀리서 민혁은 백미러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윤제가 갑자기 움직이자, 민혁은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하지만 다가가 보니 윤제가 예진을 안고 있을 뿐, 다른 과격한 행동은 없었다.예진도 몸부림치지 않았다. 이를 악문 민혁은 그제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차에 기댔다.민혁의 반응이 윤제의 시야에 고스란히 들어왔다.그 순간, 윤제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나도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아. 내가 너무 오만했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당신이 일방적으로 이렇게 나를 버리고, 이렇게 우리 결혼을 버리는 건... 그건 불공평하잖아.”예전에 다투던 중에 윤제가 이런 말을 꺼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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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윤제는 그저 예진의 뒷모습이 점점 멀어져 가는 걸 바라만 보고 있었다.처음이었다.‘이번엔... 정말 돌아오지 않겠구나.’그런 착각 아닌 확신이 뇌리를 스쳤다.매번 싸울 때마다 목소리를 높이고 날카롭게 맞서던 예진의 모습보다, 오늘처럼 고요한 예진의 모습이 훨씬 더 윤제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예진은 민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민혁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묻어 있었다.“가요.”예진의 상태가 크게 나빠 보이지 않자, 민혁은 안도하듯 숨을 내쉬면서 함께 차에 올랐다.차는 그대로 지하 주차장으로 사라졌다.윤제는 그 장면을 눈으로 끝까지 따라갔다. 한때 마음 놓고 ‘내 여자’라고 믿었던 아내가, 이제는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가 버렸다니!말로 표현할 수 없는 씁쓸함이 가슴을 파고들었다.윤제는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리고 뒤에 서 있던 가로등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가로등은 끄떡없었지만, 남자의 손등은 살이 찢어지면서 피가 쏟아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윤제는 비틀거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자, 온 집안이 칠흑같이 어두웠다.처음이었다. 이 어둠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진 건.그제서야 떠올랐다.지난 몇 년 동안,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예진은 늘 불을 켜 두었다는 사실을.그땐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소한 배려가, 지금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억누를 수 없는 불안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윤제는 비틀거리면서 와인 저장고 앞에 섰다.아무 와인이나 한 병을 꺼내 뚜껑을 딴 뒤 단숨에 들이켰다.그러고도 부족했다.연달아 몇 병을 더 비웠다.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지럼증이 몰려왔다.바늘로 찌르는 듯한 위통이 함께 밀려왔다.윤제는 의자에서 일어나려다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통증이 점점 더 심해졌다.굵은 땀방울이 이마에서 흘러내렸다.그저 몸을 웅크린 채,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눈가를 타고 떨어지는 걸 느꼈다....그 시각, 다른 쪽. 예진과 민혁은 집으로 올라왔다.민혁은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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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은주는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오빠 그때 법학 공부에 꽂혀 있었잖아. 이 대학은 법학과가 유명하기도 했고...”“그리고 기억나, 오빠가 이 도시에 좋은 친구가 있다고 그랬어. 그 친구를 만나러 오고 싶다고.”재하가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자, 이제부터가 핵심이야. 좋은 친구는 무슨! 그거 그냥 짝사랑이었어!”은주의 눈이 더 커졌다.“짝사랑? 무슨 소리야? 우리 오빠가 짝사랑을 했다니... 왜 난 몰랐지?”재하가 땅콩 하나를 던져 먹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네가 모르는 게 한두 개겠어!”그렇게 재하는 10분에 걸쳐서 나머지 세 사람에게 민혁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재하와 민혁은 대학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학교 동문이지만, 재하는 그저 졸업장만 건질 생각뿐이었다.머릿속엔 공부는 1도 없고, 오로지 술자리와 놀 궁리만 가득했다. 졸업만 하면 멋지게 집안 사업을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니까.반면 민혁은 달랐다. 소박한 옷차림에, 손에는 늘 책을 들고 다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어느 날 운동장에서 농구를 하던 재하가 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 했다.그때만 해도 젊고 혈기왕성했던 재하는 사과 따위는 절대 안 하겠다고 버텼다.그때 민혁이 나타났다.민혁은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재하에게 ‘사과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법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늘어놓았다.얘기를 듣다가 귀찮아진 재하는 마지못해 사과를 했다.그 일로 둘 사이에 앙금이 생겼다.그 후로 재하는 민혁만 보면 일부러 성가시게 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재하가 아무리 귀찮게 굴어도 민혁은 그때마다 그 상황을 유연하게 넘겼다.그렇게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두 사람은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겉으론 앙숙 같지만, 속으론 서로를 제일 아끼는 친구.그리고 바로 그 때부터였다.재하는 천천히 눈치챌 수 있었다. 민혁이...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다는 걸!처음에는 민혁이 어떤 여자가 호감을 표시해도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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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선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주 옆자리에 앉았다.“은주 씨, 설마... 예진 씨가 이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는 이유로, 오빠가 아깝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영호가 입술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레 말했다.“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고... 중요한 건 예진 씨 자체예요. 예진 씨는 좋은 사람이에요. 은주 씨가 제일 잘 알잖아요. 두 분이 절친이기도 하고.”재하도 급히 거들었다.“그러니까.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결혼한 적이 있고 애가 있다고 그게 무슨 대수야? 솔직히 말해서 예진 씨 외모나 몸매를 보면, 본인이 말을 안 하면 누가 재혼이라고 믿겠어? 은주, 너...”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주가 손을 번쩍 들어 재하의 말을 잘랐다.“다들 지금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설마 내가 예진이가 우리 오빠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선아가 잠시 멈칫했다.“아니... 방금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우리는 당연히...”은주는 손사래를 치면서 단호하게 말했다.“말도 안 돼요! 그런 게 아니에요! 나는 지금... 우리 오빠가 내 절친을 이렇게 오래 짝사랑해 왔는데, 그걸 내가 전혀 몰랐다는 게... 완전 수치스럽고 억울한 거예요!”말을 마치자마자, 은주는 책상을 쿵 내리쳤다.“내가 진작 알았다면 진작에 연결해 줬겠죠. 그럼 우리 오빠는 벌써 소원 성취했을 거고, 예진이는 그 부윤제 같은 개자식한테 몇 년 동안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뜻밖의 반응에 모두가 순간 말을 잃었다.은주는 혼자 진지하게 뭔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그러고 보니까... 예진이가 우리 오빠 집 바로 맞은편에 사는 것도 이상했어요. 그 집도 우리 오빠 소유거든요. 이제 알겠어! 우리 오빠가 선수를 쳐서 일부러 싸게 빌려준 거야!”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섰다.“아! 기억났다. 예진이가 처음에 이혼하면서 변호사를 찾을 때, 원래는 내가 오빠한테 물어보려고 했거든요?”“근데 오빠가 내가 물어보기도 전에 바로 ‘내가 해 줄게’ 이러더라고! 그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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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은주는 허리에 손을 짚고 버티듯이 서서 말했다.“지금 무슨 말이에요? 내가 누군데요. 예진이 최측근이자, 베프 중의 베프잖아요. 내가 나서면 우리 오빠가, 이번엔 확실히 명분을 얻는다니까요.”재하도 흥미가 생긴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고 두 사람 등을 한 번 제대로 밀어보자.”세 사람은 곧바로 진지해졌다.선아는 턱을 괸 채, 뭔가 동경하는 듯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와... 한 사람을 그렇게 오래 좋아하고, 상대가 결혼하고 아이까지 있어도 묵묵히 기다렸다니... 서 변호사님, 점점 더 매력적이네요.”그 말이 끝나자마자, 재하가 번개같이 선아를 끌어안았다.“딴 남자 생각 금지! 특히 민혁이 그 자식은 더더욱 안 돼!”‘인정해. 민혁이 그 놈이 이상하게 끌리는 데가 있지.’‘그래도 우리 선아 눈이 돌아가면 큰일이야!’한참을 더 눈을 굴리던 은주가 눈빛을 빛내더니, 입꼬리를 장난스럽게 올리면서 속삭였다.“방법이 있어요!”은주가 손짓하자 모두가 바로 모였다. 귀를 기울이는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이번엔... 제대로 판을 깔 거예요. 둘이 못 도망가게.”그날 밤 결국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하지만 일출을 보겠다던 다짐은 흐린 하늘 앞에서 그만 힘을 잃었다.이튿날 새벽 여섯 시, 산등성이가 완전히 밝았지만, 해는 고사하고 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아쉬운 마음으로 배낭을 챙긴 뒤, 네 사람은 조용히 산을 내려갔다....다른 한편.아침 7시, 유순자는 평소처럼 정시에 출근했다.문을 여는 순간, 바닥에 쓰러진 윤제가 눈에 들어왔다. 옆에는 빈 술병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윤제의 얼굴에는 핏기가 싹 가신 채, 이마에는 콩알만 한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그리고는 몸을 움츠린 채 배를 감싸 쥐고 있었다.깜짝 놀란 유순자가 달려갔다.“대표님, 정신 좀 차리세요! 대표님!”아무 반응도 없었다.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유순자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한 시간쯤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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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그게 아니라면, 윤제가 이혼한 날 밤부터 위에 구멍이 날 때까지 술을...’건우는 아마 이혼한 후, 윤제가 예진을 찾아갔다가 또 거절당했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런 윤제의 허세 섞인 표정을 생각하면서 건우는 코웃음을 쳤다.“뭐가 우스워? 지금 이 꼴이 그렇게 웃겨?”윤제가 노려보며 침대 옆의 사과를 집어 던졌다.가볍게 받아낸 건우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내 말 좀 들어. 예진 씨 이번엔 장난 아니야. 그래도 지금 막 이혼한 참이니까 쉽게 정리는 못 하겠지만, 잡을 기회는 아직 있어.”윤제의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잡아? 웃기지 마.”예전 같았으면 비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왜냐하면 예진이는 평생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그래서 자신은 굳이 예진을 붙잡지 않아도 된다고,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목 끝까지 차오른 진심은 결국 말이 되지 못한 채 조용히 가라앉았다.건우가 사과를 탁자에 내려놓았다.“야, 사랑 문제에선 고개 숙인다고 쪽팔린 게 아니야! 나한텐 허세 부릴 필요도 없고. 지금 놓치면 진짜 끝이야. 여자는 마음을 달래야지!”윤제도 알고 있었다. 건우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어젯밤 예진의 표정과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했다.‘그 불안한 생각이... 또 들어.’이를 악문 윤제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그래서... 벌써 이혼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내가 뭘 어쩌라고.”슬그머니 몸을 기울이면서 건우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당연히 고육지계를 써야지!”윤제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건우를 쳐다봤다.“그게... 먹히겠냐?”건우는 자신만만했다.“예진 씨가 예전에는 너한테 죽고 못 살았잖아. 너 식사 챙겨 주려고 손에 물 묻히면서 살림까지 배웠다며.”“그게 뭘 뜻해? 더 깊이 사랑했다는 거지. 지금은 화가 나서 이혼한 거지만, 하루아침에 마음이 바뀌진 않아. 남아 있는 그 마음을... 지금 붙잡아야지.”‘붙잡는다고...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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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이 없었다.윤제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들고 예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예진은 막 잠에서 깨어났다.어젯밤 술기운이 꽤나 독했던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래서 부엌으로 나가 속을 달랠 해장국을 올렸다.오늘은 민혁도 아침 러닝을 고집하지 않았다.먼저 뛰고 돌아온 민혁은, 예진의 거실 소파에 앉아서 우유를 마시며 잡지를 보고 있었다.예진이 해장국을 끓이면 함께 아침을 먹을 생각이었다.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윤제였다.예진은 잠깐 망설였지만 전화를 받았다.오래 원수진 사이도 아니고, 이혼했다고 영영 남처럼 살 일도 아니었다.뜻밖에도 전화가 연결되자, 윤제는 잠시 얼어붙었다.“무슨 일이야?”예진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리고 스피커폰을 켜서 도마 옆에 내려놓은 뒤, 국자로 천천히 해장국을 저었다.윤제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옆에서 보고 있던 건우가 안달이 나서 눈짓을 보냈다.‘빨리 말해. 지금이야.’한참을 머뭇거리던 윤제가 겨우 입을 열었다.[나야...]목소리가 잠겨 있었다.예진은 그 쉰 목소리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소파에 앉아 있던 민혁도 단번에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잡지를 탁자 위에 놓고 팔짱을 끼었다. 민혁의 표정은 무심한 듯했지만, 귀는 쫑긋 세운 채 예진을 향해 있었다.예진이 핸드폰을 귓가에 대고 말했다.“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윤제는 이를 꽉 물었다. ‘어차피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도 없어.’[여보, 나... 아파.]그 말에 예진의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꼭 다물었다.건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윤제가 다시 말했다.[위천공이래. 지금 병원에 있어.]윤제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거칠고 거만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어색할 만큼 얌전했다.소파에 앉아 있던 민혁은 그 말투를 듣자마자, 눈을 부라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이혼하고 나서야 고육지계 타령이야? 역겹게 말이야.’예진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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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하지만 민혁은 알고 있었다. 아직 자신에게는 중간에 뛰어들어서 전화를 뺏을 명분이 없다는 걸!그나마 남은 이성이 민혁을 겨우 소파에 붙잡아 두고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잡지를 다시 펼쳤지만, 귀는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잠시 침묵 끝에 예진이 입을 뗐다.“내가 끓인 국을 당신은 좋아하지 않았어. 그냥 익숙했을 뿐이지. 하지만 이젠 못 먹으니까, 지금부터는 다른 맛에 익숙해지는 연습을 해.”민혁의 입꼬리가 다시 미세하게 올라갔다. 방금까지 떨리던 턱선도 만족감에 다시 평온해졌다.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예진의 성격이라면 병원으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결연한 태도로 나올 줄 몰랐어.’전혀 예상밖의 상황에 건우는 잠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당황한 윤제도 말문이 막혀서, 도움을 구하는 눈빛으로 건우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제는 건우도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이를 악문 윤제가 다시 말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예진이 먼저 전화를 끊었다.“앞으로 이런 일로 전화하지 마.”뚝!통화가 종료되었다.부엌의 해장국은 알맞게 우러나 있었다.예진은 국을 두 그릇 떠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식사하세요.”그제서야 태연한 척 소파에 폰을 던진 민혁은 흐뭇한 표정으로 식탁으로 다가왔다.‘아까는 얼굴이 어둡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가벼워 보이지?’예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남자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윤제는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어젯밤 자신을 집어삼킬 듯이 몰아쳤던 불안감이 다시 가슴을 세차게 긁었다.정적이 길어지자, 건우가 한숨을 쉬면서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내가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나도 여자 마음을 알만큼 알지만... 예진 씨가 이번엔 진짜로 끝을 보려는 모양이네.”병실의 하얀 벽에 부딪쳐서 그런지 건우의 말이 더 차갑게 들렸다.원래도 윤제의 마음이 어수선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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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이안 에미는 보기만 해도 성질이 나지만... 그래도 국은 끝내주게 끓였잖아? 네 위 상태가 이럴 땐 그 국을 많이 먹어야 해. 영양 보충도 되고 말이야.”도순희가 예진 얘기를 꺼내자, 윤제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아린의 표정에도 잠시 어색한 기색이 비쳤다.윤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건우가 담배를 비벼 끈 뒤에 성큼 다가왔다.“어머니, 예진 씨하고 윤제가 이혼한 거 모르셨어요?”베개가 건우를 향해 날아왔다.윤제의 눈빛에는 입을 다물라는 경고가 서려 있었다.하지만 윤제가 저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면 곤두세울수록, 건우는 더 장난을 치고 싶었다.이렇게 무너진 윤제를 보는 건 드문 일이기에.그런데도 도순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이혼하면 어때? 이안 애미가 우리 아들한테 죽고 못 살았는데. 이제야 우리 윤제가 정신을 차리고 그 돈만 잡아먹는 애를 떼어낸 거지!”“그래도 우리 윤제가 손짓만 하면, 이안 애미는 발바리처럼 바로 달려와서 윤제를 보살필 걸!”건우는 원래 도순희가 예진을 달가워하지 않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오늘 보니, 이건 며느리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수준이 아닌데!’‘심지어 며느리를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거야.’‘필요하면 부르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그저 부려먹을 대상으로만 여기는 거지!’‘이런 시어머니 밑에서 며느리는 몇 년을 버틴 거야...’건우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윤제도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는지 굳은 표정이었다.“어머니, 그만하세요.”아린이 도순희의 팔을 살짝 잡으면서 앞으로 나섰다.“이모, 우리 오빠 먹을 거 좀 사러 가요.”하지만 도순희는 더 흥이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사 오긴 뭘 사 와? 밖에서 파는 건 죄다 불결해! 윤제가 이렇게 위가 상하게 된 게 맨날 밖에서 끼니를 때워서 그런 거잖아!”“그나마 이안 애미가 몇 년 동안 보양을 해서 이 정도 버틴 거야. 얼른 예진이한테 전화해서, 멍하니 있지 말고 당장 국 끓여서 들고 오라고 해!”도순희가 말을 이어갈수록 윤제의 얼굴은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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