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남편도, 아들도 내 발밑에 매달렸다: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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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울면서 과장된 액션으로 벌떡 일어선 도순희는, 휘청거리면서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과도 쪽으로 다가갔다.“나 그냥 죽어버릴 거야! 윤제 아버지, 거기서 보고 있지? 당신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서 데려온 그 며느리가, 지금은 당신 아들을 홀려서 지 엄마도 내팽개치게 만들었어! 내가 더 이상 살아 뭐하겠어! 지금 당장 당신 따라갈래!”명백하게 윤제를 향한 연출이었다.윤제의 얼굴엔 더 이상 더없이 어두워져 있었다.아린이 황급히 앞으로 나서면서 도순희를 막아섰다.“이모, 제발 왜 이러세요! 무슨 말씀이든 천천히 하시고요, 몸 다치면 어떡해요!”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윤제를 바라봤다.“오빠, 가만히 있지 말고 이모 좀 말려봐...”하지만 윤제는 여전히 입도 떼지 않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은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그 모습에 도순희는 더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아린아, 넌 비켜! 봐라, 저게 내가 평생 고생하며 키운 아들놈이야! 여자한테 미쳐서 엄마가 이 꼴을 당해도 그냥 가만히 있잖아! 진짜 이럴 거면 죽는 게 나아!”말을 마치자마자, 도순희는 과도를 들고 자기 목에 들이대려고 했다.“이모, 안 돼요!! 왜 이러세요!!”아린은 양팔로 도순희를 붙잡았고, 거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몸싸움처럼 심각하게 전개되던 그때.쾅!윤제가 갑자기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탁자 위 컵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이 났고, 그 파편이 침묵처럼 공간을 가득 채웠다.도순희와 아린은 동시에 움찔하며 얼어붙었다.“놔!”윤제가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아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뭐라고?”“놓으라고! 아버지 따라가겠다고 하시잖아. 놓고 지켜보자고. 정말 따라갈 용기 있는지...”그 말에 아린은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팔짱을 풀었다.순간 당황한 도순희의 손에서 과도가 툭 하고 떨어졌다.윤제와 아린이 진심으로 자기를 말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깨닫자, 도순희는 그제야 힘이 쭉 빠진 듯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곧바로 다리를 때리면서 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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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도순희가 또 다시 격하게 징징거리자, 아린은 옆에서 말리며 도순희를 부축할 수밖에 없었다.거실 안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점점 더 심해지는 위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억지로 참고 있었지만, 윤제도 결국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팍!티 테이블 위에 있던 과일 접시를 그대로 집어 던졌다.유리 접시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바닥에 떨어졌고, 과일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었다.“그만 좀 해요!!”도순희와 아린은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도순희의 울음소리도 작아지자, 아린은 얼른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빼앗아 테이블 위로 밀었다.억눌린 분노가 고개를 들자, 윤제는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애초에 어머니가 잘못한 거예요. 제가 분명히 이안 엄마하고 이혼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왜 굳이 회사까지 찾아가서 난리를 치셨어요?”도순희는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눈물을 닦았다.‘다 너를 위해서 그런 거잖아...’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감정이 충분히 드러났다.윤제가 차갑게 말을 이었다.“이안 엄마는 그저 자기 권리를 법적으로 지킨 거예요. 어머니가 사람을 때려놓고, 경찰에 신고 당한 게 억울하다고요? 사과하라고 해서 한 거고요. 그게 그렇게 못할 일이에요?”그제야 아린도 상황의 전말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도순희가 무리하게 일을 벌인 것이다.도순희는 여전히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흐느꼈지만, 윤제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아린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도순희를 소파에 앉힌 뒤, 윤제와 도순희 사이에 조심스레 섰다.“오빠, 대충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어. 그래도... 예진 씨가 이모를 경찰서까지 보낸 건 좀 심했던 것 같아. 아무리 이혼했어도, 한때는 가족이었는데... 조금은 봐줄 수 있지 않았을까?”그 말에 윤제는 눈살을 더 깊게 찌푸렸다.바로 그때 이안이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기사의 손에 이끌려 집안에 들어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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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이번 사건은 좀 복잡해요. 남자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에요. 아내와 젊었을 때부터 맨손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창업 초기에 아내가 워낙 무리해서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대요.”“그래서 회사를 키우고 나서는 아내는 집에서 가정을 돌봤고, 몇 년 전부터는 병으로 누워만 지내는 상황이에요. 둘 사이엔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이 하나 있고요.”예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문제는 그 남자가 돈을 벌고 난 뒤에 아내와 딸은 시골 본가에 두고, 내연녀와 내연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서울 집에 데려다가 아예 ‘살림’을 차린 거예요.”“얼마 전에 그 남자가 말기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났는데, 죽기 전에 유언장을 남겼어요. 그 유언장엔 전 재산을 내연녀의 아들에게 남긴다고 적혀 있었고요.”파일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예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아내는 몇 년 동안 병석에 누워 있었고, 딸은 이제 막 성인이 됐는데...’‘전 재산을 내연녀 아들한테 넘긴다고? 이게 말이 돼?’“그래서요...?” 예진이 조용히 물었다.“본처는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투병하는 처지였지만, 이제 성인이 된 딸을 위해서 싸움을 시작했죠. 본인 대신 딸을 위해서라도 재산권을 지켜야 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를 찾아왔어요.”예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모를 감정이 턱밑까지 치밀어 올랐다.“혼외자와 본부인의 자식이 동일한 상속권을 가진다는 법 조항, 이건 진짜... 우습네요.”민혁은 그런 예진의 반응을 지켜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법적 모순들은 앞으로 더 많이 보게 될 거예요. 그때마다 예진 씨가 얼마나 마음을 다잡느냐가 더 중요하죠.”예진은 문득 민혁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근데 유언장이 접수될 때, 그게 정당한지, 최소한 한 번쯤은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 유언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던가요?”민혁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첫째, 법적으로 혼외자도 상속권이 있어요. 둘째, 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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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덮었다. 처음 맡은 사건이 이 정도로 폭발력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민혁과의 대화를 마치고 난 뒤에도 예진은 다시 서류를 꼼꼼히 훑었다.이미 죽은 남자의 외도 상대는 학창 시절 여신처럼 빛나던 첫사랑.그때만 해도 남자는 가진 것 하나 없는 가난한 청년이었고, 첫사랑은 그런 남자를 냉정하게 뿌리쳤다.결국 남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지금의 아내를 선택했다.그 아내는 묵묵히 남편의 곁을 지키면서 함께 힘든 시간을 버텨냈고, 결국 지금의 부를 이룰 수 있었다.하지만 남자는 끝내... 그 아내에게 정식 결혼식조차 올리지 않았다.무리한 노동과 출산으로 몸이 망가진 아내는 병상에 눕게 되었고, 그때 다시 등장한 첫사랑이 눈물을 흘리며 매달리면서 남자의 마음을 흔들었다.‘결국, 다시 그 여자와 함께 살게 된 거야...’남자는 아내와 딸을 시골에 처박아 두고서, 첫사랑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갔다.그 사실을 마주한 예진은, 뭔가 복잡한 감정이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첫사랑... 진짜 무섭네. 류아린도 그렇지.’아린도 처음엔 예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였다.그저 순한 눈망울에 조용한 말투.하지만 어느새 윤제의 곁을 차지한 것도 그 여자였다.‘류아린은 그냥 눈물만 좀 흘리면 됐지만, 나는 뭘 해도 부족했지...’예진은 그게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자신만 이런 일을 겪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어도, 고통받는 여자는 여전히 많았다.그 사실이 더 예진을 허탈하게 만들었다.서류를 덮고 나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던 예진은,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핸드폰을 꺼내서 은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예진은 미리 예약해둔 조용한 바의 룸을 확인하고, 음식과 술을 넉넉하게 준비했다.그리고 로펌 단톡방에 회식 장소와 시간을 공유했다.‘오늘만큼은 다 같이 웃고 싶어.’예진이 오늘 술자리의 주최자이기에 민혁에게 먼저 가 있겠다고 말하자, 민혁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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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사실 여성에게 ‘그 한 걸음’을 내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진짜 어려운 건, 그 길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을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용기였다.‘이미 지나온 길인데... 되돌아갈 수 있을까?’‘아니, 돌아간다고 해도 세상이 날 이해해줄까?’예진은 한참을 말없이 접시만 툭툭 건드렸다. 숟가락은 움직이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멍하니 허공을 향해 있었다.조용히 잔을 든 민혁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말을 꺼냈다.“예진 씨는 지금 그 사건 때문에 사회가 불공평하고 법이 불공정하다고 느꼈어요. 자신이 지금껏 자부심을 가지고 선택했던 길이 정말 맞는 건지 혼란스러운 거죠?”예진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민혁은 예진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물었다.“그럼 만약 예진 씨가 법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비슷한 사건을 보았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 것 같아요?”예진은 한순간 대답을 하지 못했다.‘분명히 억울하다고 느꼈을 거야.’‘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노했겠지.’‘하지만... 그저 SNS에 글을 쓰거나, 잠깐 떠들다가 잊히겠지.’‘결국 사람들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넘겨버렸을 테니까.’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불공정한 일을 마주해도, 그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면 쉽게 외면한다.예진이 말이 없자, 민혁이 다시 말을 이었다.“그럼 이제 진짜 질문! 예진 씨는 법을 전공했고, 지금 우연히 이 사건을 맡게 됐어요. 그럼 어떻게 할 건가요?”예진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당연히... 최선을 다해서 그 모녀가 더 많은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줄 거예요!”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웃었다.“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한다고 해서 그게 항상 정답일 순 없지만, 한 번 선택한 길이라면, 그 선택이 반드시 의미가 있게 만들 수는 있어요!”예진은 민혁의 말을 들으면서, 어지럽던 감정이 조금씩 진정되는 걸 느꼈다.‘그래... 이 사회는 완벽하지 않아.’‘절대적인 공정함이란 없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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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예진은 부드럽게 술을 따르며 잔을 들었다.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따라 잔을 높이 들었다.“우선,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일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사실 입사한 지는 조금 되었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이렇게 함께 자리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에요.”예진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잔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러운 회식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해서, 혹시나 업무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해요.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사과드려요!”잠깐 주변을 둘러본 예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마지막으로, 저를 따뜻하게 받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한 잔을 여러분께 올립니다. 오늘 즐겁게 마음껏 즐기시면 좋겠습니다.”말이 끝나자 예진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이어 다른 직원들도 ‘고 비서 파이팅’을 외치며 술잔을 비웠다.분위기는 한층 더 밝아졌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되었다.민혁이 로펌 대표로 자리하고 있음에도, 직원들의 얼굴엔 부담이나 긴장감은 없었다. 오히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고 유쾌한 분위기였다.‘다들 참... 잘 지내는구나.’‘나는 왜 이렇게 이 분위기가 어색하게 느껴지지...’그 활기찬 웃음소리 사이에 조용히 앉은 예진은, 잔을 손에 든 채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예전엔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런 자리를 참 좋아했었지.’ 어느새 사람들의 웃음과 음악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예진은 혼자 조용히 소파에 기대고 있었다.‘그땐... 내가 결혼하기 전이었지.’그때, 동료들과 술잔을 나누던 민혁이 예진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무슨 생각해요? 아직도 아까 그 생각을 하는 거예요?”예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요. 그냥... 다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요. 보니까 민혁 씨는 좋은 대표네요.”칭찬을 들은 민혁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더니, 장난기 섞인 표정으로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좋은 대표뿐만이 아닌데요?”예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민혁 씨, 자뻑도 수준급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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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예진은 어느새 소파에 앉아서 곡을 고르고 있는 민혁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설마, 그 말이 사실인 걸까?’‘민혁 씨가 정말 은주 때문에 날 뽑은 거라면...’예진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기만 해도 자존심이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혹시 그래서 아무도 그 얘길 안 꺼낸 걸까?’‘혹시 말했다가 내가 상처받을까 봐... 그래서 아예 모른 척하는 건가?’예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다.유명 로펌의 대표 변호사.명문대 출신에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그런 사람이 수많은 경력직과 자격증을 보유한 사람들을 제쳐두고, 굳이 자격증도 없고 졸업 후 몇 년을 백수로 지낸 자신을 채용한 이유라니.‘당시에는 그럴듯했던 말들이... 다시 생각해 보니까 어쩐지 부자연스러웠어.’예진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꽉 쥐었다.하지만 그때 룸 안에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모두의 시선이 음악 소리와 함께 자연스레 무대로 향했고, 그곳엔 마이크를 든 민혁이 서 있었다.민혁이 선택한 곡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오래된 명곡이었다.반주가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하자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리듬을 맞췄고, 그 안에는 어느새 공감과 추억이 녹아 들었다.예진의 눈길도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쥔 민혁에게 고정됐다.‘이 노래...’처음 듣는 노래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예진도 기억하고 있었다.대학 시절, 축제 무대에서 민혁이 이 노래를 불렀던 그 장면을...그땐 서로 얼굴도 몰랐던 사이였지만, ‘서민혁’이라는 이름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법대의 과묵한 수석 냉미남!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다니던 남자.그날 무대 위에서 민혁은 하얀 셔츠에 청바지 차림에 흰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바로 청춘 그 자체였다.그런데 막상 노래가 시작되자, 그 목소리에선 설명하기 힘든 깊은 아쉬움 같은 게 스며 있었다.‘그때... 이상했지. 기분 좋은 노래인데, 왜 그렇게 쓸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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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다른 세 사람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은주 혼자 잔뜩 들떠 있었다.얼마 전에 민혁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다름 아닌 자신의 절친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되자, 은주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사람처럼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그 사람이 진짜 예진이든 아니든, 그 감정이 오래된 오해든 착각이든 상관없었다.재하가 아무리 분석하고 영호가 확신이 안 선다고 해도, 은주의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중요한 건 지금 이 타이밍이야.’‘예진이가 또 상처받는 일은 절대 없어야 돼...’‘오빠도 이제 정말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고...’‘그 둘이 잘 되면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케미 아니냐고!’예진과 민혁.이 둘의 성격, 습관, 연애스타일까지 누구보다 잘 아는 건 다름 아닌 은주였다.‘둘이 사귀기만 하면 진짜... 세기말 대로맨스 그 자체지!’누군가는 사랑꾼 하나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둘 다 사랑꾼이라면?그건 그냥 행복 폭발 아닐까?그 화면을 상상만 해도, 은주는 당장이라도 회식 자리에 뛰어들어 둘을 서로의 품에 밀어 넣고 싶을 정도였다.‘아 오늘 진짜 꼭 성공해야 돼. 내가 짠 이 솔로 탈출 플랜...’‘이 날만을 위해 준비한 거라고!’너무 들뜬 나머지 은주가 칵테일을 섞는 손마저 자꾸 삐끗대자, 바텐더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그녀는 웃으며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은 이미 불타오르는 실행욕으로 가득했다....한편, 예진과 민혁은 은주의 ‘계획’에 대해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회식의 흐름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술잔이 몇 차례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예진도 어느새 얼굴이 붉어지고 눈빛이 살짝 흐려져 있었다.진짜... 술이 용기를 준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예진은 평소라면 상상도 못 할 만큼 직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노래방 기계 앞에서도 박수치며 따라 부르고, 누구와도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았다.‘이렇게 웃은 게 얼마만이지...’시간이 흐르며 분위기가 점점 더 들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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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정우와 나라는 겉으로 보기엔 일부러 서로를 피하는 듯 보였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보면 둘 사이에 흐르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다.더구나 아까 예진이 노래를 부를 때 정우의 핸드폰 화면이 살짝 보였는데, 그 배경화면이... 나라의 폰 배경화면과 똑같은 커플 일러스트였다.‘설마 진짜 사귀는 건가?’예진은 단지 가볍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정말, 그저 장난스럽게 웃고 넘길 수 있는 분위기를 기대했는데...질문이 끝나자마자 룸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말 그대로 정적!누구 하나 말하지 않고,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정우는 웃고 있던 표정 그대로 멍해졌고, 나라의 표정도 서서히 하얗게 질려갔다.예진은 처음엔 그 분위기의 의미를 잘 몰랐다.‘어... 뭐지? 내가 뭘 잘못 말한 건가?’그러다 바로 다음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라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고 비서님, 무슨 그런 농담을 해요? 저랑 정우 씨는 그냥... 같은 팀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좀 친한 사이일 뿐이에요. 진짜 오해하시면 안 돼요!”억지로 웃으면서 말했지만, 나라의 표정은 이미 웃음을 잃은 지 오래였다.다른 직원들도 황급히 박수를 치면서 분위기를 띄우려 했지만, 그 어색함은 도무지 감춰지지 않았다.나라가 조용히 자리에 앉았을 때, 안색은 마치 얼음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예진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순간 숨이 턱 막히는 듯했다.예진은 조용히 옆에 앉아 있는 아름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제가... 말실수를 했어요?”아름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살짝 기울이며 예진의 귀에 속삭였다.“고 비서님... 회사에서 사내연애는 진짜 조심해야 해요. 특히 들키게 되면, 누가 잘못하지 않았어도 한 명은 나가야 하는 분위기가 되거든요.”그 말을 듣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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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예진은 순간 목이 꽉 막히는 듯한 기분에 무심결에 침을 꿀꺽 삼켰다.‘아, 진짜... 내가 그 한마디만 안 했어도...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정우와 나라를 이렇게 곤란하게 만든 건 분명 자기였다.그래서 정우가 혹시라도 화를 내더라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그래, 욕 먹을 각오는 했어. 미안하다고 말하려면 지금 해야...’예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려던 그때, 예상치 못한 정우의 말이 룸 안의 공기를 확 뒤집었다.“고 비서님, 더 이상 말씀 안 하셔도 돼요. 그리고 굳이 저희를 위해 수습하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고 비서님의 잘못이 아니니까요.”순간 모두가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정우는 조용히 나라 쪽으로 걸어갔고, 나라 역시 고개를 숙인 채 얼어붙어 있었다.그리고 정우는 단번에 나라의 손을 잡아 올렸다.나라가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정우는 손을 꼭 잡은 채 민혁을 바라보고 있었다.“대표님, 이쯤 됐으니까 저도 더는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고 비서님이 질문하셨을 때 속으로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하고 나라 씨는... 사귀고 있습니다.”사람들 사이에서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쏟아졌다.놀란 나라가 급히 손을 빼려고 하면서 말했다.“대, 대표님...! 정우 씨가 그냥 장난처럼 말한 거예요. 진짜 그런 건...”하지만 정우는 단호히 말을 끊었다.“이제 그만해, 나라야. 숨기고 사는 것도 너무 지쳤어. 너하고 커플 티도 입고 싶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데이트도 하고 싶어. 회사로 오는 길에 같이 커피도 마시면서 말이야. 이제는 우리도...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나라의 눈가가 붉어지면서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정우는 그런 나라를 자신의 뒤로 감싸면서 민혁을 향해 말했다.“대표님, 오늘 이 자리를 빌려서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나라 씨와 진지한 관계입니다. 양가 부모님께도 인사드릴 예정이고,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혹시 로펌 규정상 사내 연애가 어렵다면, 저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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