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51 - Chapitre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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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너!”예진이 이렇게 눈을 부라리며, 그것도 당당하게 자기한테 할 말을 하는 걸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윤제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그저 예진의 손목을 꽉 잡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예진의 얼굴은 아픔에 질려 새하얘졌지만, 끝까지 이를 악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질 수 없다는 듯이 윤제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버텼다.한참을 그렇게 버티다가, 윤제가 먼저 손을 거칠게 예진의 손을 털며 놨다.“책이나 빨리 챙기고 당장 꺼져.”예진은 손목의 통증을 참고, 묵묵히 몸을 굽혀 책을 정리했다. 겨우 정리를 끝내자 예진은 단 1분도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았다.책이 든 상자를 힘겹게 들고 문 쪽으로 향했다.예진이 문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윤제가 뒤늦게 따라 나왔다.“이혼하자고 먼저 말한 건 당신이야. 그러니까 마치 내가 무슨 나쁜 놈인 양 행동하지 마.”“당신 친구 서은주한테도 선재 건드리지 말라고 해. 아니면, 이 동네에서 서은주 장사 접게 만들 거야.”예진은 그 말에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서 윤제를 바라봤다.“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 이혼이 은주랑 무슨 상관인데?”“그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던가.”그 말만 던지고, 윤제는 화가 난 듯 계단을 올라가버렸다.‘뭔가 이상해... 이게 단순한 협박이 아니야.’예진은 밖으로 나와 곧바로 은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몇 번을 해도 받질 않았다.‘이 시간이면 은주는 새로 연 그 바에서 일하고 있는 중일 텐데?’예진은 더 기다릴 수 없어 바로 택시를 타고 바에 도착했다.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오늘 영업을 안 하는 눈치였다.조금 전까지 새로 단장한 듯 보였던 바는 엉망이었고, 몇 명이 청소하고 있었다.예진은 한 직원에게 다가가 물었다.“오늘 영업 안 해요?”“네, 안 해요. 어제 여기서 싸움이 좀 나서 아직 정리가 안 됐어요. 며칠간은 문 안 열 거예요.”예진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그럼 사장님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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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예영호는 밥 한 공기를 더 시켜놓고, 고개를 들어 예진을 바라봤다.“예진 씨 친구, 어제 남자 넷이랑 싸움 나서 경찰서까지 갔어요. 그중 한 명이... 예진 씨 전 남편이더라고요.”예진은 그제서야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부윤제... 분명히 그 한심한 친구들이랑 은주네 가게에 갔던 거야.’‘은주와 마주쳤겠지. 그리고... 나 때문이었을 거야.’“그런데 왜 저한텐 연락 안 주셨어요? 제가 갔어야 했는데요.”예영호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예진 씨 친구 오빠가 와서 데려갔어요. 변호사더라고요? 법에 관련된 문제들을 잘 아는 것 같던데, 그 네 사람 고소하겠다고 하더라고요.”‘역시 서 변호사님...’예진은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한 끼 식사였지만, 마음이 불안해서 제대로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은주에게 몇 번 더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받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뒤, 식당 앞에 예영호의 차가 도착했다.“예진 씨, 집까지 데려다드릴게요.”‘은주랑 연락이 안 되니, 민혁 오빠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낫겠다.’예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랐다.집에 도착했을 땐 어느새 해가 져 있었다.예진이 곧장 2층으로 올라가 민혁 방 앞에 섰다. 노크를 하려던 찰나, 문이 먼저 열렸다.민혁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막 나가려던 참인 듯했다.예진은 눈이 마주치자 얼떨결에 손을 내렸다.“무슨 일 있어요?”“은주랑 연락이 안 돼서요. 변호사님한테 좀 여쭤보려구요.”민혁은 예진 표정을 보는 순간, 어느 정도 눈치챘다.‘역시, 어제 일 들었구나.’“옷 갈아입고 나와요. 운동 겸 산책 좀 하죠. 저도 예진 씨한테 할 말 있어요.”예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급히 방으로 돌아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왔다.주택단지 한복판엔 조깅트랙과 간단한 운동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천천히 이야기했다.“어제 말이죠. 예진 씨 전남편이 친구 셋과 은주네 가게에 갔어요. 거기서 예진 씨 얘기를 꺼낸 모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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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예진은 민혁의 속도에 맞추어 달리며 조용히 말했다.“뭐가 억울하겠어요. 가치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데요.”“앞으로의 시간은 그런 사람들한테 쓰고 싶지 않아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나 때문에 이런 일에 휘말리는 것도 싫고요.”‘이젠... 나 자신을 좀 아껴주고 싶어.’민혁은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달렸다.예진도 그를 따라가려 했지만, 민혁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변호사님! 그러니까 은주 말 들어줄 거예요, 말 거예요?”뒤에서 외치는 예진의 말에 민혁이 고개만 살짝 돌렸다.“예진 씨, 일단 나 따라잡고 말해요.”예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뭐야, 이 사람...’사실 예진이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다른 집 전업 주부들은 꽃꽂이에 요가에 티 클래스까지 다니면서 우아하게 사는데, 예진은 지난 몇 년간 그냥 ‘부윤제의 아내’로만 살았을 뿐이었다.몇 발짝만 달렸을 뿐인데 숨이 턱 막히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결국 풀썩 잔디밭에 주저앉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민혁은 멀찍이서 그녀를 돌아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다시 예진 곁으로 와 앉았다.“앞으로 제 비서 할 거면 운동량도 저한테 맞춰야 해요. 아침, 저녁으로 조깅 같이 해야 합니다.”예진은 놀란 눈으로 민혁을 쳐다봤다.“비서 업무에... 조깅도 포함돼요?”민혁은 하늘을 보며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제가 대표변호사니까. 제가 정한 규칙이에요. 안 따라오면 월급 깎일 수도 있어요.”‘진짜 얄밉다... 하지만 월급 앞에선 어쩔 수 없지.’예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밤에 바람 맞으며 뛰고 나니, 지쳐있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도 사실이었다.‘이런 시간도 나쁘진 않네...’잠시 후, 민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까 그 얘기는... 알겠어요. 예진 씨 말대로 할게요. 은주한텐 내가 말할게요. 이 일, 거기까지만 하자고. 그리고 예진 씨도... 진심으로, 이제는 과거에서 좀 벗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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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민혁은 연달아 죽을 세 그릇이나 비우고 나자 비로소 수저를 내려놓았다.그렇게 식사를 마친 둘은 각자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들어갔다.예진은 어제 입었던 블랙 수트를 그대로 꺼내 입었다.엘리베이터를 타는 동안, 민혁이 예진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내가 주는 월급 너무 적어요?”예진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아뇨?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그럼 옷 좀 사요. 맨날 그 옷 하나로 출근할 거예요?”예진은 말문이 막혔다.‘나도 안다고요... 매일 똑같은 옷 입는 거 예의 아닌 거.’‘근데 문제는... 월급날이 아직 안 됐잖아.’‘어제 하루 종일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옷 살 시간도 없었고, 무엇보다도...’‘정장 진짜 비싸다고요... 생계는 되는데, 여유까지는 아직...’그래도 지금 민혁은 ‘대표변호사님’이니까, 예진은 꾹 참고 억지 미소를 지었다.“변호사님 말씀 맞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제 이혼소송 꼭 이겨주셔야 해요. 그래야 저도 쇼핑할 돈이 생기죠.”민혁은 예진의 말에 뭔가를 눈치 못 챘는지, 당당하게 턱을 들고 말했다.“그럼 제대로 맡겼네요. 이기면 나도 한 벌 사줘요. 감사의 표시로.”1층에 도착하자, 예진은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나서려다 민혁에게 팔을 잡혔다.“어디 가요?”“버스 타고 출근하려고요.”“비서가 그걸 몰라요? 나랑 같이 출근하는 거예요. 내 차 타요, 돈 안 받을게요.”예진은 당연히 돈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막 입사하자마자 사장 차 타고 출퇴근? 회사 사람들이 보면 말 나올 텐데...’괜히 시선이 신경 쓰였다.그런 예진의 표정을 읽은 듯, 민혁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말했다.“비서는 사장 바로 옆에서 보좌하는 게 기본이에요. 같이 출근하는 게 당연하죠.”그 말에 예진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하... 대표변호사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탈 수도 없고.’결국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민혁과 함께 차에 올랐다.‘첫 출근부터 벌써 피곤하다... 이 회사, 평범하게 다니긴 글렀다.’역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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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예진은 민혁의 설명을 듣자 그제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하나의 엄마는 해외 지사에서 근무 중이고, 아빠가 국내에서 하나를 키우고 있었는데, 결국 외로움을 못 이겨 바람을 피웠다고 했다.지금은 하나 엄마가 이혼을 요구하며 양육권을 두고 아빠와 법적 분쟁 중이라고.“그런데요... 아이가 엄마를 선택하게 하려면, 엄마가 직접 아이랑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예진의 말에 민혁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하나 엄마는 지금 상황상 한국에 들어올 수 없어요. 하지만 우리는 아이에게 ‘엄마는 너를 여전히 아끼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요.”“그게 바로 의뢰인이 원하는 바고, 의뢰인의 전부를 지켜주는 게 우리 회사의 원칙이죠.”‘글쎄... 아직 잘 납득은 안 되지만, 뭐... 일이니까.’예진은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맡기로 했다.그러다 민혁이 보내준 유치원 주소를 본 순간, 예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어...? 이거... 이안이 다니는 유치원이잖아?’하필이면 하나가 다니는 반도 이안과 같은 ‘한별반’이었다.‘진짜... 이런 우연이 있다니.’마음속에서 뭔가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예진은 일단 아침에 따로 챙겨온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원래는 사무실에 보관하려던 옷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입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민혁이 의뢰인과 회의에 들어간 사이, 예진은 조용히 유치원으로 향했다.‘다시 여기에 오게 될 줄은 몰랐네...’...유치원에서는 이미 부모들과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가족 운동회, 이름 그대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뛴다.부모와 아이의 협동이 중요한 경기.예진은 이안을 몇 번 데려온 적이 있었다.아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아무리 힘든 상황이었어도 모든 종목에서 이안이 상을 받을 수 있게 끝까지 함께했다.하지만, 이안은 단 한 번도 그런 엄마에게 고마워한 적이 없었다.‘이안이 엄마 진짜 멋지시다’, ‘운동도 잘하시네요’ 라고 칭찬하면, 이안은 무표정하게, 오히려 냉소적으로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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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엄마, 지금 몇 시인데 이제 와? 다 큰 어른이 시간 개념도 없고, 난 엄마 안 오는 줄 알고 고모한테 연락까지 했다고. 이제 오면 내가 얼마나 곤란한지 알아?”예진은 그런 이안을 조용히 내려다봤다. 표정은 차분했고, 말없이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는 그 눈은 싸늘했다.‘또 시작이네... 사람들 많은 데서 굳이 이래야 속이 시원하니.’뒤에서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시선이 이안과 예진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예진이 아직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이안은 눈살을 찌푸리며 계속 말했다.“아빠한테 말할 거야. 엄마는 이런 사소한 것도 제대로 못 하니까, 아빠가 돈 주는 것도 아깝다고.”“엄마는 고모만도 못하잖아. 툭하면 삐지고, 매번 감정적으로 굴고... 진짜 아빠가 왜 엄마랑 결혼했는지 모르겠어.”‘그래. 지금 이안이는... 내 얼굴에 먹칠해서 자기 체면을 살리고 싶은 거겠지.’‘지난 운동회 때마다 내가 전력으로 뛰어줬는데도, 애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결국 엄마라는 존재에게 이렇게 대하다니.’주변에 있던 몇몇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다.‘저 집 사정... 뭔가 심각한가 봐.’‘애가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엄마가 뭐 잘못했나 보지.’예진은 그 시선을 느끼면서도, 더 이상 아무 감정도 없이 이안을 내려다보았다.‘괜찮아. 이건 일이야. 난 지금 일하러 온 거야.’‘웃기지도 않게, 내 첫 출근 날, 내 아들이 내 발목을 잡네.’조용히 한숨을 내쉰 예진은, 이안을 또박또박 바라보며 말했다.“고모한테 연락 잘했어. 오늘은 네 일로 여기 온 거 아니니까. 앞으로도 안 올 거야. 그러니까, 고모한테 말 잘 해둬. 매번 네 옆에 꼭 같이 있어달라고.”이안은 그 말에 눈이 동그래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예진을 쳐다보았다.“뭐... 뭐라고? 엄마 지금 장난이지? 그럼 여기 왜 온 건데?”하지만 예진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이안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운동장 한쪽 구석에 혼자 앉아 있던 작은 여자아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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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선생님이 난처한 얼굴로 예진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안이 어머님, 지금 이건...”예진은 하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채 천천히 일어섰다.그리고 조용하지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부이안, 엄마는 너한테 화난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가 한 말, 꼭 기억해. 앞으로 엄마는 네 운동회든 뭐든,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아.“오늘은 하나가 엄마 딸이야. 나는 하나랑 함께 운동회에 참석하러 온 거고, 너는 어른이 필요하면, 고모를 미리 부르도록 해.”그 말에 주변 공기가 싸늘해졌다.예진은 이어서 선생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선생님,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저랑 이안이 아빠는 현재 이혼 소송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안이 양육권을 포기할 거예요. 앞으로는 이안이가 원하던 대로, 새로운 엄마가 곁에 있을 거예요.”예진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하나를 데리고 휴게실 쪽으로 걸어갔다.그 순간 운동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이혼 소송 중이래...”“양육권도 포기한대...”“...”어른들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고, 아이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이안을 비웃기 시작했다.“야, 부이안, 너희 엄마 진짜로 너 버렸네?”“이안이는 엄마한테도 필요 없는 애래!”“...”그 말들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이안의 가슴을 후벼팠다.‘왜... 왜 다들 나한테 이래...’‘난 그냥 엄마가 오길 기다린 건데...’자존심 센 이안은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 참았던 울음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운동장 한복판에서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으아아아아아!!”선생님은 급히 달려와 이안을 안고 운동장 반대편의 그늘로 데려갔다.“이안아, 울지 마. 괜찮아. 혹시 집에서 다른 가족이 오시기로 했니?”이안은 눈물로 젖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우리... 우리 고모 곧 와요...”바로 그때, 유치원 입구에 아린과 윤제가 나란히 들어섰다.윤제는 처음엔 올 생각이 없었지만, 요즘 이안의 몸도 안 좋고 기분도 예민하다며 아린이 계속 부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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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예진은 윤제의 손에 끌려 유치원 건물 안 복도로 들어섰다.발걸음을 제대로 멈추기도 전에, 윤제는 거칠게 그녀를 벽에 밀쳤다.“뭐 하는 거야! 이거 놔, 여긴 유치원이야. 정신 나갔어?”당황한 예진은 몸을 벽에서 떼려 했지만, 윤제가 벽으로 누르는 힘이 워낙 강해 도무지 벗어날 수 없었다.“미친 건 당신이잖아. 고예진, 우리 둘이 싸우는 건 백번 양보해서 괜찮아. 근데 애 앞에서, 그것도 유치원에서 그런 짓을 해? 지금 이안이한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기나 해?”‘하, 이제 와서 애 체면 타령? 웃기지도 않아.’예진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올라갔다.‘이안이가 공개적으로 나한테 모욕 주고 말도 안 되는 말 쏟아낼 땐...’‘입 꾹 다물고 지켜만 보던 사람이 이제 와서 뭐? 체면이 어쩌고?’“나 아무것도 안 했어. 그냥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내일 우리 이혼 재판 있는 거 당신 몰랐어? 난 장난 아니야. 이안이도 이미 우리가 헤어지는 걸 바랄 거야.”“당신...!”윤제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며 예진의 손목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손목이 타는 듯 아파오자, 예진은 순간 숨이 턱 막혔다.‘진짜 이해가 안 돼.’‘예전엔 나 혼자 이 사람과 아이 눈치 보며 마음 졸였는데...’‘이젠 내 마음이 떠나니까, 저렇게 쩔쩔매는 건 뭐야.’‘근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다시 주워담을 생각하지 마, 부윤제.’예진은 순간적으로 윤제의 발을 힘껏 밟아버렸다.“악...!”윤제가 통증에 이를 악물며 움찔하는 순간, 예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벽에서 빠져나왔다.“나, 당신들을 매일 챙겨줘야 할 의무 없어.”그렇게 말한 뒤 예진은 돌아서서 복도 끝을 향해 걸었다.하지만 완전히 사라지기 전, 여전히 뒤돌아선 채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내일, 가정법원에서 봐. 제발 빠지지 마. 실망시키지 말고, 부윤제.”그 말만 남기고 예진은 복도 끝을 지나 나가버렸다.예진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윤제의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서 있었고, 미간은 고통과 당혹감으로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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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하나, 둘! 하나, 둘!”예진과 하나는 구령을 맞춰가며 차근차근 속도를 올리고 있었다.주변이 소란스러워도 둘은 이안 쪽을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그저 서로의 호흡과 걸음에만 집중하며, 마치 이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듯 달려갔다.‘하나야, 잘하고 있어. 우리 조금만 더 가자.’어느새 경기는 사실상 두 팀의 대결로 좁혀졌다.하나 팀과 이안 팀이 앞서나가고, 나머지 팀들은 모두 중간에서 넘어지거나 많이 뒤처져버린 상태였다.하지만 곧 이안 쪽에서 문제가 생겼다.점점 조급해진 이안은 자신도 모르게 속도를 더 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모, 빨리! 우리가 꼭 이겨야 해!”하지만 아린은 이안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자, 두 사람의 다리는 엇갈렸고, 중심을 잃었다.“어, 어어어...”결국 둘은 그대로 앞으로 넘어지며 땅바닥에 철퍼덕 쓰러졌다.이안은 황급히 일어나려 했지만, 고개를 들자마자 예진과 하나가 이미 환한 웃음으로 손을 맞잡고 결승선을 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엄마가... 엄마가 다른 애랑 저렇게...’이안은 손에 흙이 묻은 것도, 무릎이 까진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한편 관중석의 윤제는 그 장면을 뚫어져라 보며,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저 여자가 지금... 웃는다고?’‘우리 애는 울고 있는데?’옆에서 이안이 굳은 표정으로 말이 없자, 아린은 상황을 감지하고 아이를 안아 윤제에게 데려갔다.“이안아, 고모가 잘못했어. 우리 다음 경기에서 꼭 이기자, 응?”이안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린에게서 약간 등을 돌린 듯한 느낌이 묻어났다.윤제가 옆에서 아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너무 신경 쓰지 마. 넌 잘했어. 잘못한 건 고예진이지. 남의 애 편들고, 정작 자기 애한테는 그런 식이냐.”이안도 맞장구치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는 나보다 남의 애가 더 중요하대... 그럼 이제 엄마랑은 정말 끝이야.’아린은 그런 부자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조용히 비웃었다.‘둘이 아주 보기 좋게 나란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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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윤제는 바로 이안의 말에 호응하며 말했다.“이안이 말이 맞지.”그 목소리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그래, 고예진. 네가 그리 쉽게 등을 돌리면...’‘우리 아들이 너 없이도 괜찮다는 거, 직접 눈으로 보여줄게.’아린이 살짝 윤제의 소매를 당기며 속삭였다.“오빠... 그건 좀... 예진 씨도 있는데.”하지만 윤제는 고개를 돌려 단호하게 말했다.“뭐가 어때서? 자기가 선택한 거잖아. 이안이가 너를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는데, 그냥 받아줘.”그 말에 아린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으며, 이안을 꼭 안고 주위 아이들에게 말했다.“얘들아, 나는 이안이 새엄마야. 그러니까 괜히 이안이에게 엄마 없다는 말 하지 마. 우리 이안이, 아주 예쁜 엄마가 함께 있잖아?”이안은 고개를 높이 쳐들고, 다시 의기양양한 얼굴로 주변을 내려다봤다.다른 아이들은 못마땅한 듯 입을 삐죽이며 하나둘 자기 부모 곁으로 돌아갔다.멀리서 그 모습을 다 지켜보던 예진은 저 두 부자가 무슨 속셈으로 저러는지 훤했다.‘예전 같았으면 속상했겠지.’‘내 아이가 남 앞에서 날 부정하고,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른다는 게...’‘숨 막혔을지도 몰라.’‘근데 지금은... 그냥 다 지나간 일이야.’‘이젠 정말, 미련이 없나 보다.’예진은 아무 반응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었고, 그걸 눈치챈 윤제와 이안 역시 ‘괜히 민망해지기 싫다'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곧 다음 종목 경기가 시작되었다.이번에는 아빠가 아이를 안고 왕복 달리기 하는 경기였다.누가 더 빨리 완주하느냐를 겨루는 스피드 종목.아이들은 각자의 아버지와 함께 출발선에 섰고, 이안도 윤제 옆에 선 채 코끝을 씰룩이며 하나 쪽을 노려봤다.‘봐라, 이번엔 우리 아빠랑 내가 1등 할 거야. 누가 진짜 가족인지 보여주겠어.’하지만 그 시각, 하나는 조용히 의자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다른 아이들은 다들 부모와 함께 신나게 뛰는데, 자신만 빠져 있는 느낌에 하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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