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고윤택이 곁에 있어도, 하지율의 대답은 단호했다.고지후가 설명했다.“지율아, 나 임채아하고 아무 일도 없었어. 바람도 안 피웠고, 널 배신한 적도 없어. 채아한테 잘해 준 건, 불치병 때문이었어. 윤택이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기회를 줄 수는 없겠니?”하지율은 남자의 잘생기고도 차가운 눈매를 바라보며 담담히 말했다.“지후 씨, 지후 씨가 날 버리고 임채아에게 갔을 때, 난 용서했어. 임채아를 두둔하고, 나더러 사과하라 했을 때도, 난 용서했어. 내가 앓아눕고, 또 납치당했을 때 지후 씨는 임채아와 함께 있었지. 그때도 난 용서했어. 심지어 내 결혼식까지 임채아에게 넘겼을 때도 난 결국 용서했어. 그렇게 많은 기회를 줬지만, 당신은 한 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어. 누구도 제자리에서 영원히 기다려 주지 않아. 지후 씨는 임채아를 위해 내게 물러서라 했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닳아 없어졌어. 지후 씨, 우린... 더는 불가능해.”고지후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윤택이는? 날 생각 안 하더라도, 윤택이 생각은 해야 하지 않겠어?”하지율은 눈길을 내려 고윤택을 보았다.아이는 조용히, 얌전히 그녀 곁에 서 있었다. 예전처럼 제멋대로 굴지 않았고, 훨씬 의젓해져 작은 어른 같았다.하지율이 물었다.“윤택아, 너는 엄마랑 아빠가 다시 결혼하길 바라니?”고윤택은 불현듯 정기석, 그리고 화야 아저씨가 해 준 말을 떠올렸다.“난 엄마랑 아빠가 다시 결혼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또 매일 엄마를 볼 수 있으니까. 근데... 엄마가 우리랑 다시 사는 게 엄마를 힘들게 한다면, 그럼... 엄마는 아빠랑 다시 안 살아도 돼. 엄마, 아빠가 함께 있든 아니든, 엄마는 영원히 내 엄마고, 아빠는 영원히 내 아빠야.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가 원하는 삶을 살았으면 해.”하지율의 눈가가 뜨겁게 시큰거렸다.임채아의 존재가 하지율의 혼인과 가정을 무너뜨린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하지율을 무덤 같은, 고인 물 같은 삶에서 뛰쳐나오게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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