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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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아쉽네. 솔직히 너처럼 성숙한 스타일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니네. 청순하고 순진한 사람한테 끌리나 봐.”임서율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내가 청순한가?’사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언제까지 앉아 있을 거예요? 다리가 저리네요.”하도원이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임서율은 그제야 급히 하도원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한편으로는 하도원이 방금 자신을 비웃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기분이 언짢았다.“저 안 무거워요.”임서율은 40kg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그래요?”하도원은 매우 느릿하게 말하며 임서율의 몸매를 훑어보는 시선을 보냈다.기분이 상한 임서율은 입을 삐죽이며 그와 더 이상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지난번 별장에서 하도원이 도와주지 않았던 일과 더불어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기에 그와 거리를 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임서율은 고개를 숙여 잔을 들어 술 한 모금을 마셨다. 달콤한 맛이 입안에 퍼지자 저도 모르게 표정이 풀렸고 술맛이 좋은지 참지 못하고 또 몇 모금 더 마셨다.하도원은 소파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 임서율을 바라보았다.“같이 술 마시자고 하더니 왜 혼자 마셔요?”임서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잔을 들고 돌아서서 하도원의 잔과 가볍게 부딪혔다.그러자 하도원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고개를 들어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마셨다.그 후 술병을 잡고 다시 자신과 임서율의 잔에 술을 따랐다.“이렇게 술 마시는 거 차 대표가 보면 큰일 날 것 같은데요? 차씨 가문에서 분명히 서율 씨한테 뭐라고 할 거예요.”임서율은 이 말을 듣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생각보다 차씨 가문에 대해 잘 아시네요?”하도원은 가볍게 말했다.“예전에 같이 일했던 적이 있어서요.”임서율은 오늘 차씨 가문을 나올 때 하도원의 차를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오늘 밤 그가 운전한 차와 똑같았으나 정확히 보지 못해 하도원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임서율은 떠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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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무심하고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는 하도원은 마치 고양이나 강아지에게 입을 맞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그런 모습과 달리 정작 입고 있는 검은색 정장은 단호하고 진지한 느낌을 주었다.임서율은 하도원의 몸속에 여러 인격이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하며 흐릿하고 어두운 조명을 빌어 도무지 마음을 알 수 없는 눈앞의 남자를 살펴보았다.그와 다툼이 생기는 건 제 발로 저승길을 밟는것과 다름없기에 임서율은 어색하게 시선을 돌렸다. “서로에게 빚진 거로 치죠. 앞으로 다시는 언급하지 마세요.”임서율은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고 앞으로 절대 하도원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다짐했다.이를 들은 하도원은 고개를 가볍게 들었다.“생각보다 찌질하네요?”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그 말에 주먹을 불끈 쥔 임서율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하도원을 돌아보았다.“왜요? 저랑 키스하고 싶어요?”하도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좋죠. 어차피 전 상관없어요.”그러자 임서율은 입술을 삐죽였다.“됐거든요? 재미없어.”하도원은 뭐든 다 받아넘길 것 같은 태도였다. 오늘 밤 같이 보내고 싶다고 말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할 것만 같았다.새벽 3시. 두 사람은 술을 다 마셨고 임서율 앞에서 빈 술병이 세 개나 놓여 있었다.비틀거리며 일어선 임서율의 얼굴에는 취기가 도는 게 확실히 보였다.몸도 가눌지 못한 채로 테이블 위의 술을 집으려는 순간 하도원이 막아섰다.“적당히 해요.”임서율은 이제 술기운이 올라와 하도원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은 억눌렸던 감정과 차주헌과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었고 모든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다.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임서율은 갑자기 하도원의 손에서 술을 빼앗아 단숨에 들이켰다.하도원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성가신 듯 미간을 문질렀다. 타이밍상 다음 단계는 술주정을 부리는 게 확실했으니까.‘그러게 왜 계속 참기만 한 거야.’‘차주헌 같은 인간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말이 돼?’‘차주헌이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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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남자는 임서율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더 이상 이런 상황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 따윈 없었던 하도원은 즉시 임서율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남자는 아파하며 얼굴을 움켜쥐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 감히 날 때려?”곧바로 남자도 하도원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다행히 눈빛이 날카로워진 하도원은 재빨리 임서율을 끌어당기며 몸을 피했고 주먹은 허공에 머물렀다.하도원은 그 기회를 틈타 임서율에게 말했다.“얼른 도망가요.”비록 머리는 아직 어지러웠지만 임서율은 이제 술기운이 완전히 깬 상태였다.그녀는 당황한 표정으로 하도원을 바라봤다.“제가 가면 대표님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그러자 하도원은 답답함을 드러냈다.“이제 와서 내가 걱정돼요?”임서율은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할 여유가 있는 하도원을 보며 눈이 뒤집힐뻔했다.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문을 가리켰다.“따라와요.”임서율은 하이힐을 벗어 던지더니 하도원의 손을 꼭 잡고 뒷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렸다.하도원은 그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을 내려다보며 순간 머릿속에 오래된 기억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이렇게 강한 사람이 왜 차주헌한테 쩔쩔매는 거지?’어느새 하도원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뒷문까지 달린 임서율은 주변을 둘러보더니 별안간 쓰레기통을 가리켰다.“여기 숨으세요.”하도원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서율 씨, 미쳤어요?”임서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미친 건 대표님이죠. 저 남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내가 질 거란 확신은 어디서 오는 거죠?”임서율은 자신이 아니라 하도원이 술에 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냥 딱 봐도 알 수 있는 거잖아요.”온몸이 근육에 둘러싸인 남자와 달리 하도원의 체격은 상대적으로 왜소했다.“저 남자 덩치를 봐요. 몸으로 툭 치기만 해도 우린 그냥 죽는 거라고요.”하도원은 그 말에 잠시 충격을 받은듯했으나 다가오는 남자를 보더니 눈빛이 날카롭게 돌변했다. “쓰레기통에 숨느니 차라리 죽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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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그 말을 끝으로 하도원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부러진 막대기를 들고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임서율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지켜보며 주변을 둘러보아 무기로 쓸 만한 것을 찾았다. 그러나 결국 그녀가 찾은 건 쓰레기통 뚜껑뿐이었다.‘이건... 무기로 쓸 수가 없잖아.’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주먹다툼을 시작했고 점점 밀리는 남자를 보며 임서율은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하도원의 싸움 실력이 이렇게 뛰어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모든 주먹을 정확하게 남자의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어느 한방의 주먹이 날아가자 남자는 고통스럽게 바닥에 웅크렸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고 얼굴도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이 모습을 본 임서율은 급히 다가가 하도원의 팔을 잡아당겼다.“빨리 가요.”두 사람이 돌아서려는 순간 뒤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일어났다.남자는 품에서 칼 한 자루를 꺼내더니 임서율과 하도원을 향해 달려들었다.빛에 번뜩이는 무언가를 의식한 하도원은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늦었고 칼날은 임서율을 향해 찌르고 있었다.그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임서율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푹 하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칼날이 하도원의 등에 박혔다.그는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졌고 입에서 고통을 참는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이상한 낌새를 느낀 임서율이 뒤를 돌아봤을 때 마침 남자가 칼을 뽑아내는 장면을 목격했다.하도원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손바닥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균형을 잡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겁에 질린 임서율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소리쳤다.“대표님!”임서율은 남자가 칼을 소지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때마침 경찰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남자는 그 소리를 듣고 황급히 칼을 버린 채 도망치려 했지만 결국 경찰에 체포되었고 하도원은 즉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의사가 하도원의 상처를 처리하고 나오자 임서율이 황급히 달려갔다.“선생님, 환자 상태는 어떤가요?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거죠?”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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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임서율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눈가를 닦았고 손등에는 촉촉한 눈물이 남아 있었다.‘내가 언제 울었지? 전혀 몰랐는데...’자존심이 강한 임서율은 자신이 울었다는 사실을 차마 인정할 수 없었고 설령 솔직하게 인정한들 하도원이 또 비웃으며 놀릴 것 같아 억지로 버티며 부정했다.“아니거든요? 그냥 먼지가 눈에 들어가서...”“눈에 먼지가 들어간 게 아니고요?”“네?”임서율은 자신이 말을 잘못한 건가 싶어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하도원의 말장난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하도원은 불쌍하고 초라한 모습의 임서율을 보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놀라서 정신이 나갔나보네요..”임서율은 당황한 듯 이를 악물었다.“이런 상황이 처음이니까 놀라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정신이 나갈 정도는 아니에요.”하도원은 그저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비서한테 연락하면 집까지 데려다 줄 거예요. 얼른 들어가요. 이 시간이면 차주헌 씨가 안절부절못하고 있겠네요.” 하지만 임서율은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완전히 떠날 때까지 단 이틀만이라도 바깥에 있고 싶었다.임서율을 고개를 저으며 하도원의 제안을 거절했다.“괜찮아요. 전 여기서 대표님을 간호할 거예요. 어쨌든 저 때문에 다치셨으니까 책임져야죠.”하도원은 한눈에 임서율의 속마음을 읽어냈다.“핑곗거리로 삼을 거면 솔직하게 말해요. 나도 요금은 받아야죠.”생각을 드러내지 않아도 단번에 다른 사람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하도원은 정작 너무도 심오하여 쉽게 헤아릴 수 없는 인물이다.이미 진심이 들킨 마당에 임서율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표님도 간병인이 필요하시잖아요. 마침 제가 책임져야 하니 이석이조 아닌가요?”하도원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전 다른 사람한테 이용당하는 걸 굉장히 싫어해요.”임서율은 그 날카롭고 깊은 눈동자를 마주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하도원 같은 사람은 줄곧 남을 이용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이용당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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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임서율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제가 대표님을 책임질 능력은 안 돼요.”하도원의 재산은 둘째라 치고 괴팍하기 그지없는 성격을 생각해서라도 누가 감히 그를 책임지겠는가.하도원을 키우는 건 마치 호랑이를 곁에 두는 것과 다름없으니 언제 그 호랑이가 돌변해 물어뜯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때마침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돌아보니 예전에 하도원의 차를 운전했던 남자가 들어왔고 아마도 그의 매니저인 모양이다.“대표님, 시키신 물건을 다 사 왔습니다.”매니저는 갈아입을 옷 몇 벌을 침대 옆 테이블에 올려놓았고 하도원은 그 위에 있는 하얀 상자를 가리켰다.“서율 씨 거예요.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얼굴도 좀 씻어요. 지금 너무 못생겼어요.”뒷부분을 듣고 눈살을 찌푸린 임서율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지며 중얼거렸다.“못 생겼다니... 말이 너무 심하네요.”“거울부터 봐요.”하도원은 시선을 돌린 채 느릿하게 가방에서 옷을 꺼냈다.투덜거리며 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간 임서율은 그제야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마치 길거리에서 주저앉아 구걸하는 사람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진짜 못생겼네.’다행히 임서율은 유리멘탈이 아니었다.상자에서 속옷을 발견한 그녀는 하도원의 세심함에 잠시 당황했다.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채로 손가락으로 끈을 집어 속옷을 살펴보았다. 레이스 장식이 은은하게 비치지만 완전히 검은색은 아니었고 레이스로 된 부분이 의외로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임서율은 입술을 삐죽였다.‘이런 취향일 줄은 몰랐네.’‘차분하고 단정한 스타일을 좋아할 줄 알았는데...’‘아닌가? 남자들은 오히려 재미없다고 생각하나? 하긴 개인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내가 판단할 수는 없지.’지금 입고 있든 속옷도 괜찮았지만 약간의 결벽증이 있었던 임서율은 곧바로 새것으로 갈아입었다.놀랍게도 하도원은 사이즈를 기억하는 듯 아주 몸에 딱 맞았다.순간 얼굴이 화끈해진 임서율은 귀까지 빨개졌고 자신의 모든 걸 하도원이 알고 있다는 생각에 쥐구멍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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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제가 할게요.”비서는 임서율이 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서율 씨, 부탁드립니다.”오늘 하도원의 옷을 제대로 입히지 못하면 내일 당장 직장을 잃을 것 같았다.임서율은 하도원의 옆으로 가서 손을 내리게 했다.“평소 모습과 달리 왜 이렇게 조급해요.”그녀는 옷의 양쪽 끝을 잡고 아래로 당겼지만 확실히 많이 타이트했다.어쩔 수 없이 임서율은 옆에서 땀을 닦고 있는 비서를 돌아보며 물었다.“사이즈를 작게 사 오신 건 아니죠?”“매장 직원분께서 대표님 사이즈라고 하셨어요. 작을 리가 없죠...”임서율은 다시 옷을 살펴보았다. 아래쪽은 괜찮았지만 목 부분이 확실히 작았기에 일부러 놀리는 듯한 뉘앙스로 하도원에게 말했다.“어릴 때 분유를 많이 먹어서 머리 크기가 남다른 건가? 다른 사람한테는 잘 맞는데 유독 대표님만...”하도원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시 옷을 벗으려 했다.“내 문제라고요? 딱 봐도 옷이 잘못된 거잖아요.”“당장 매장에 전화해. 거긴 내일부터 문 닫아야겠다.”비서의 이마에는 더욱 많은 식은땀이 맺혔다.“알겠습니다.”임서율은 간신히 하도원의 옷을 머리 위로 벗겼다.옷이 조인 탓에 얼굴이 새빨개진 상태로 억울한 눈빛을 하고있으니 비련의 여주인공이 따로 없었다.임서율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웃음을 터뜨렸고 하도원은 들썩이는 그 어깨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서율 씨, 지금 비웃어요?”임서율은 급히 손을 저었다.“아니요. 아니요. 그냥 눈이 간지러워서 기침이 나온 거예요. 제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을...”그때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임서율이 하도원의 옷을 잡아당기더니 비서를 향해 말해다.“가위 좀 구해주세요.”비서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서율 씨, 가위로 무슨 짓을...”임서율은 인내심이 바닥난 듯했다.“그냥 주세요. 대표님 해칠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말고요.”비서는 급히 옆 진료실에서 가위를 빌려와 임서율에게 건넸다.임서율은 가위를 받아 하도원의 옷을 잡고 뒤쪽의 실오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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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하도원은 마치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헛소리 싫어하는 거 알지?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회사에 가서 사직서 제출해.”겁을 먹은 매니저는 간절한 눈빛으로 용서를 빌었다.“대표님. 제발... 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어요.”“겨우 세 살밖에 안 된 아이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월급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대표님, 그동안 함께 일한 정을 생각해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하도원의 태도는 단호했다.“곁에서 오래 일했으니 내가 어떤 성격인지 잘 알 텐데? 한번 결정한 건 절대 번복 안 해.”임서율은 하도원의 회사 일에 간섭할 처지가 아니었다.제3자의 위치에서 본다면 좀 더 유연하게 처리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도원은 함부로 동정을 베푸는 성격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이게 최선일지도 모른다.매니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대표님, 정말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가 죽을지도 모릅니다.”하도원은 얼굴을 돌려 매니저의 변명조차 듣지 않으려 했다.“이 일은 조사하고 책임을 물을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그만둬.”“그동안 얼마나 횡령했는지는 따지지 않을게. 감사히 여겨야 할 거야.”무언의 압박이 담긴 그 말에 임서율도 매니저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음을 알아챘다.계속 버티고 있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 임서율은 상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언젠가 들킬 일이라는 건 알고 계셨잖아요.”“선택을 내렸으면 그 결과도 받아들여야죠. 대표님을 오랫동안 모셨으니 어떤 성격인지 제일 잘 아시잖아요.”임서율은 매니저가 하도원에게 애원하는 게 오히려 그의 화를 돋우는 일이 될까 봐 걱정되었다.매니저는 별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습니다.”매니저가 떠난 후 하도원은 불쾌한 표정으로 몸에 걸친 값싼 옷을 만져보았다.“어쩐지 요즘 따라 몸이 가려웠어요. 이렇게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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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임서율은 급히 말을 고쳤다.“마음대로 하세요. 방금 한 말은 그냥 흘려들으시면 돼요.”하도원은 놀리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서율 씨는 부하직원으로 정말 딱 이네요. 상사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직원이 흔치 않거든요.”임서율은 민망함은 감추지 못했다.“그냥 생각 없이 말한 거예요. 못 들은 거로 하세요.”비록 하도원은 남의 말에 휘둘리는 성격이 아니지만 임서율은 자신이 선을 넘었다는 걸 매우 잘 알았다.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값싼 옷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서율 씨같은 스타일은 대표가 되는 순간 끝이에요. 이 잔인한 비즈니스 업계에서 가장 먼저 내쳐질 사람이거든요.”“충고 한마디만 하자면 타인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것도 안 좋아요.”임서율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지만 하도원의 이 말은 훗날 그녀에게 깊은 교훈이 되었다.저녁이 되자 진승윤이 새로 산 옷을 가지고 왔다.방금 쫓겨난 사람은 비서보다는 평범한 매니저에 불과했으니 하도원의 진짜 비서를 만나게 된 건 오늘이 처음이다.정말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분위기가 매우 비슷했다. 싸늘한 표정과 살벌한 공격성, 주변 사람을 멀리하는 냉담함도 닮아 있었다.진승윤은 하도원에게 다가가 옷 가방을 건넸다.“대표님, 말씀하신 물건 가져왔습니다.”하도원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가짜는 아니지?”진승윤은 입꼬리를 올렸다.“진품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장합니다.”하도원의 시선은 곧바로 임서율에게로 옮겨졌다.“옷 갈아입는 것 좀 도와줘요.”그 말투는 물어보는 게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태어날 때부터 비범한 신분을 가졌으니 남을 명령하는 게 습관일 거란 생각하면서도 임서율은 기분이 언짢아 입술을 삐죽이며 불평하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알겠어요.”임서율은 하도원의 옷을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아까는 몰랐지만 이제 보니 하도원의 등에는 지네처럼 길게 뻗은 흉터가 있었다.새빨간 피나 흉측한 장면을 보면 이상한 기분 때문에 온몸에 소름이 돋는 임서율에게 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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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조사했습니다. 백혈병에 걸린 아이가 있는 게 사실이고 중간에서 약 2억 정도 횡령한 것으로 확인됩니다.”임서율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말문이 막혔다.‘하도원한테서 2억이나 가로챘다고? 진짜 간이 부었네.’일반인에게는 큰 액수로 들리겠지만 백혈병 환자에게 2억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불치병 앞에서는 아무리 많은 돈도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만약 하도원이 진짜로 책임을 묻는다면 매니저는 인생이 완전히 끝장나는 거나 다름없고 2억을 갚지 못하면 감옥에 가야 할 판이다.예상치 못한 금액에 하도원도 놀란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렇게나 많이?”“네. 대표님께서 그동안 눈여겨보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진승윤도 이해가 갔다. 하도원은 대부분의 에너지를 업무에 쏟아부었기에 일상생활의 지출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게다가 최근에는 오아시스 프로젝트에 집중하느라 더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잠시 후 진승윤이 다시 물었다.“대표님,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하도원은 손을 저었다.“됐어.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할 시기니까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돼. 해고 처리하고 얼른 새로 뽑아.”“알겠습니다.”임서율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원칙주의자인 하도원은 직원들에게 어떤 특혜도 주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번 일은 매니저를 용서해 준 것 같았다.사정이 있는 만큼 법보다는 정이 앞선 셈이다.임서율은 하도원이 겉보기만큼 냉정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평소에 상식선을 벗어나는 행동을 자주 했기에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다잡았다.진승윤은 일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임서율은 밤새 하도원의 곁을 지켰고 옆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서 겨우 잠을 청했다.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인지 지칠 대로 지쳐 딱딱한 접이식 의자에서도 금세 잠이 들었다.다음 날 임서율이 눈을 떴을 땐 해는 이미 중천이었다.흐릿한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병원 침대 위에 누워있는 걸 깨닫고 벌떡 일어나 주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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