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581 - Chapter 590

832 Chapters

제581화

박지안은 겁에 질려 머리를 감싸 쥔 채 구석에 웅크려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었다.하도원은 끝까지 버텨내며 상대와 맞섰지만 아무리 기량이 뛰어나도 두 손으로 네 손을 막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곧 체력이 달려오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뒤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아 한순간 무너져 내렸다.그는 무릎 한쪽을 땅에 짚은 채 온몸이 떨려왔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혔다.박지안은 그제야 깨달았다. 하도원이 여자를 위해 이토록 목숨 걸듯 싸운다는 사실을.그녀는 치를 떨며 이를 악물었다. 걱정과 동시에 끓어오르는 질투가 얽혀 있었다.임서율, 그 여자가 결국 그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대체 무슨 대단한 업보를 쌓아 이런 대접을 받는지, 왜 이토록 많은 남자가 그녀를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운단 말인가.곧 하도원은 힘에 부쳐 땅바닥에 쓰러졌다. 언제 얻어맞은 건지 머리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렸고 붉은 피가 뺨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박지안은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달려들어 그들을 밀쳐냈다.“그만해요! 더 때리면 정말 죽어요!”놈들은 발길을 멈춘 채 차갑게 노려보았다.“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면 우리도 손댈 생각은 없어. 하지만 기어이 들어가겠다면 우리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이 이상 밀고 들어가면 목숨을 잃는다는 경고였다.그러나 하도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칼날 같은 눈빛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꺾이지 않았다.박지안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임서율 그 여자가 도대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이러는 걸까. 그토록 빛나는 남자가 목숨을 걸 이유가 뭐란 말인가.한편 그녀는 속으로 초조하게 빌었다.제발, 제발 한종서가 조금만 더 서두르길. 안에서 기정사실만 만들면 설령 오빠가 들이닥친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하도원은 임서율의 이혼도, 차주헌과의 관계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눈앞에서 여자가 능욕당하는 꼴만은 어느 남자도 참아낼 수 없을 터였다.“아!”안쪽에서 임서율의 날 선 비명이 다시금 터져 나왔다.하도원의 몸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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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2화

마침 그때, 사방에서 사람들이 한태민도 부축해왔다. 그는 하도원의 몰골을 보자 안색이 단숨에 가라앉았다.한태민은 곁에 있던 비서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 다그쳤다.“아직도 멍하니 서 있나? 당장 병원으로 보내야지!”비서가 서둘러 다가가려는 순간, 하도원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필요 없어요.”곧 창고 문이 열리자 경찰들이 몰려 들어왔고 진승윤이 재빨리 하도원을 부축해 안으로 데려갔다.하도원은 눈썹을 찌푸린 채 매서운 매처럼 사방을 훑었다. 그러다 한종서가 옷 한 점 걸치지 않은 채 드러난 순간, 그는 입술을 꾹 다물었고 매끈한 턱선은 분노에 의해 잔뜩 경직되었는데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기세였다.진승윤은 하도원이 격분한 나머지 한종서를 그대로 죽여버릴까 두려워, 급히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한쪽을 가리켰다.“대표님, 잠깐만요. 저쪽 좀 보세요”그곳에는 임서율이 찢어진 옷차림으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피범벅이 된 칼날이 들려 있었다.한종서는 한태민을 보자 비명을 내질렀다.“할아버지.”한태민의 시선이 한종서의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를 포착하는 순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노기 어린 목소리로 고함쳤다.“뭘 꾸물거려! 어서 병원으로 데려가라!”곧 한종서는 차에 실렸고 끝까지 이를 악물며 임서율을 노려보았다.“임서율, 내가 죽어서도 널 가만두지 않겠어!”하도원은 조심스레 임서율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허했고 끝없는 두려움만이 서려 있었다.그는 무작정 손을 뻗을 수가 없어 자신의 외투를 벗어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걸쳐주었다.혹여 그녀가 더 놀랄까 두려워서 작은 동작 하나에도 신중했다.“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어디 다친 데는 없어?”임서율은 기계처럼 고개를 저었다.하도원은 그녀 손에 들린 칼을 빼앗으려다 멈칫했다. 성급하게 다가가선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경찰도 왔어. 늦게 와서 미안해. 그러니까 칼은 내게 줘. 응? 네가 다칠까 걱정돼.”그가 부드럽게 달래자 그녀는 마침내 손에서 칼을 놓았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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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3화

간호사는 얼어붙은 임서율을 보고 서둘러 달랬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도 의사들 얘기만 들은 거라 확실하진 않아요. 혹시 또 괜한 걱정일 수도 있잖아요.”하지만 임서율은 더는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안 돼요, 제가 직접 가서 봐야겠어요. 링거는 나중에 맞을게요.”간호사의 제지를 뿌리치고 그녀는 곧장 옆 진료실로 달려갔다.의사가 상처를 소독하는 중이었고 하도원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마의 핏줄은 불거져 있었지만 그는 꾹 참으며 한마디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그런 그가 임서율을 보는 순간, 굳어 있던 눈매가 단번에 풀어졌다.“고작 몇 분 못 봤다고 내가 보고 싶은 거야?”억눌린 목소리에 농담을 억지로 섞는 그의 말에 임서율은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지금 농담할 기분이 나와요?”하도원은 그녀의 손가락을 꼭 쥐었다. 온몸에 남은 흉터를 바라보는 순간,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내가 늦어서 네가 이런 꼴을 당할 뻔했어. 오늘 네가 겪은 모든 모욕, 내가 반드시 갚아줄게.”임서율은 그가 자신보다 더한 상처를 입고도 오히려 자신을 다독이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차주헌조차 이런 말을 해주진 못했을 것이다.그녀는 하도원의 머리를 끌어안고 아이 달래듯 그의 등을 토닥였다.“이러면 안 보이니까 무섭지 않을 거예요.”하도원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우습기도 해, 참다못해 웃음을 터뜨렸다.“임서율, 넌 사람 달래는 법이 참 독특하다니까.”임서율은 그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내려다보았다.늘 완벽한 이미지를 고수하던 그였다. 그런데 오늘은 체면 따위 다 버리고 그녀를 구하러 몸을 던진 것이다.피투성이로 망가진 그의 몸을 보는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그 순간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도원을 보자마자, 마치 번지점프하다 밧줄이 잡아당겨져 다시 바닥으로 안착한 듯 안도감이 몰려왔었다.“하도원 씨, 당신 바보예요? 상대가 몇 명인데 무슨 철인이라도 된 줄 알아요?”그 말에 그의 검은 눈동자에 있던 서늘한 살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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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4화

하도원이 불현듯 물었다.“그럼 언제쯤이면 돼요?”그 말에 의사조차 순간 멍해졌다.“언제쯤이라뇨?”임서율은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황급히 하도원의 입을 틀어막았다.“선생님, 신경 쓰지 마세요. 그냥 농담이에요.”의사는 의미심장하게 웃을 뿐, 굳이 뭐라 하지 않았다.상처 처리가 끝났을 때쯤 하도원의 이마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임서율은 재빨리 휴지를 뽑아 그의 손에 내밀었다.하도원은 흘끗 그녀를 보더니 여느 때처럼 도도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손 아프니까 네가 좀 닦아 줘.”임서율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겼다.“엄살 너무 심한 거 아니에요?”“난 지금 환자거든.”하도원이 태연히 되받아쳤다.“나도 지금 환자인데요?”“그럼 나도 네 땀 닦아줄까?”“아까 손 아프다면서요?”“내 땀 닦는 건 아프고 네 땀 닦는 건 안 아파.”“...”결국 임서율이 두손 두발 들었고 그의 이마에 맺힌 땀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그때 옆방 간호사가 부리나케 달려왔다.“서율 씨, 얼른 돌아가세요. 아직 링거 맞으셔야죠.”하도원의 눈빛이 단박에 매서워졌다.“너 링거 맞아야 하면서 여긴 왜 온 거야.”“그냥, 그냥 잠깐 보려고...”임서율은 당황해 귓불을 만지작거렸다.간호사가 괜히 덧붙였다.“무슨 말씀이에요. 아까 서율 씨, 이분이 다리 절단해야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자마자 거의 뛰다시피 달려오셨어요. 저희도 막을 수가 없었어요.”임서율의 얼굴은 금세 불덩이처럼 달아올랐고 딱히 반박할 수도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하도원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우리 서율이가 원래 부끄럼이 좀 많아요.”“얼른 오빠 품에 숨어.”임서율은 주먹을 꼭 쥐었다.‘정말 뻔뻔하기 그지없는 인간이야.’아직 차주헌과 이혼하지 않았다면 지금 하도원을 ‘삼촌’이라 불러야 하는 처지인데, 어디서 감히 오빠 타령이란 말인가.바로 그때 진승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한종서 쪽 소식이 들어왔습니다.”임서율의 가슴이 순간 움찔했다. 그때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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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5화

하도원이 진승윤에게 눈빛을 보내자 진승윤이 곧장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문턱에 다다르자 하도원은 끝내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곁에 있던 간호사에게 당부했다.“죄송합니다. 이 사람 꼭 병실로 돌려보내 주세요. 다시는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게 부탁드립니다.”간호사는 단박에 하도원이 임서율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아차리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네, 알겠습니다.”하도원이 진료실을 나가자, 간호사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임서율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서율 씨, 남자 친구가 정말 다정하시네요. 그렇게 아껴주고 챙겨주는 분이 흔치 않은데 어디서 그런 좋은 남자 친구를 찾으셨어요?”임서율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내 전 남편의 삼촌이에요.’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런데도 눈앞의 간호사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며 기다리니 차마 무뚝뚝하게 넘어가기도 어려웠다.잠시 고민하던 임서율은 결국 둘러대듯 말했다.“음, 예전에 제 어머니 제자였어요. 어려서부터 알던 사이죠.”“아, 소꿉친구였네요!”간호사가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임서율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그런 셈이죠.”간호사는 연신 부럽다는 말들을 중얼거리며 그녀를 병실로 데려다주었다.진승윤은 하도원을 부축해 복도로 나왔다. 그곳엔 한태민이 지팡이를 짚은 채 긴 의자에 앉아 있었다.하도원을 보자마자, 그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뼛속 깊이 배어 있는 오만함 때문인지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하도원 역시 그런 성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도 소용이 없었다.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근처 의자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말 한마디 없이 마주한 채, 두 사람 사이엔 묘하게 날 선 침묵만 흘렀다.진승윤은 곁에서 서 있다 못해 발끝으로 바닥을 긁으며 속으로 탄식했다.‘이 분위기, 진짜 답답해 죽겠네.’몇 분이 지나도록 침묵은 깨질 줄 몰랐고 마침내 진승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회장님, 저희 대표님께서는 곧 다른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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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6화

하도원은 이 자리에서 한태민과 정담을 나눌 마음이 전혀 없었다.어차피 어느 집이든 속사정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니까.그는 단칼에 잘라 말했다.“이 일은 회장님께서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여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한종서는 운성시에서 여자를 찾기 힘듭니까? 그런데 굳이 제 여자에게 달라붙어서 강제로 덮치는 비열한 수단을 썼죠.”“아니면 한씨 집안에서 그렇게 가르친 겁니까?”“허튼소리 마라!”한태민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지팡이로 바닥을 탕탕 내리쳤다. “우리 한씨 집안이 그런 걸 가르칠 리가 없잖니!”“그렇다면 한종서는 친구들한테 배워온 모양이군요. 하지만 강간 미수 사건은 경찰에 이미 정식으로 접수됐습니다. 한씨 집안이라면 그 기록쯤은 얼마든 지워버릴 수 있겠죠.”하도원은 비꼬듯 낮게 웃었다.“다만 누군가 중간에 끼어든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겁니다.”한태민이 이 말 속의 진의를 모를 리 없었다. 단숨에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바짝 긴장으로 조여들었다.한태민은 싸늘한 눈빛으로 물었다.“도원아, 네 말은 결국 개입하겠다는 뜻이냐?”하도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제 여자 일입니다. 회장님이라면 이런 걸 어떻게 모른 척하실 수 있겠습니까? 만약 회장님의 부인이 그런 일을 당할 뻔했다면 가만히 입 다물고 계셨겠어요?”그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그냥 덮고 넘어가면 나중에 소문이라도 나면 겁쟁이라고 손가락질받지 않겠습니까.”한태민은 순간 말문이 막혔고 곧 얼굴빛이 확 변했다. 이렇게 오래 이야기를 나눴건만 정작 하도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분통이 터진 한태민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벌떡 일어나 하도원을 내려다보았다.“이제야 알겠다. 결국 무슨 수를 쓰든 임서율을 지키겠다는 거구나.”하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게 제 뜻입니다.”“도원아, 내가 충고 하나 하마. 그렇게 나서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된다. 네 뒤에 버팀목이 사라진 지금, 우리 한씨 집안이 널 짓눌러버리는 건 개미 한 마리 밟는 것만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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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7화

“아이고, 차 회장. 어쩐 일인가,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주지 그래.”차진만은 손을 내저었다.“말도 말게. 나도 이제야 아이들 일을 들었어. 도원이는 예전부터 말주변이 없지 않나.”한태민이 슬쩍 하도원 쪽을 흘겨보며 중얼거렸다.“젊은이들이야 원래 그렇지. 아직 세상 물정 모를 나이니까. 우리도 다 그때를 겪어왔잖나.”차진만은 곧장 하도원 앞으로 다가서서 얼굴을 굳힌 채 눈을 흘겼다.“여기 서서 뭐 하는 게냐. 어서 병실로 돌아가서 몸 구석구석 다 검사를 받아라.”하도원은 더는 맞서지 않고 시큰둥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연세가 그렇게 되셔도 성격은 여전하시네요. 나중에 집사한테 국화차 좀 부탁드려서 화 좀 가라앉히셔야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진만이 지팡이로 그의 엉덩이를 툭 내리쳤다.“이 녀석, 썩 꺼져라!”진승윤이 황급히 하도원을 부축해 병실 쪽으로 이끌었다.차진만은 한태민 뒤의 긴 의자를 가리켰다.“자, 한 회장. 앉지.”두 사람은 오랜 세월 교류가 있는 사이였다. 하도원처럼 날을 세우지도 않았고 입장 차이는 있어도 서로의 사정을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한태민이 자리에 앉자마자 먼저 입을 열었다.“차 회장, 이번 일은 내가 괜히 도원이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 집엔 아들이라곤 종서 하나 뿐이지 않나. 차 회장네는 그래도 도원이 말고 주헌도 있잖나. 의사 말로는 당장은 괜찮다지만 앞으로 아이를 가질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한다더군.”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내 요구는 간단해. 두 집안이 수십 년 지기인데, 이런 일로 틀어지길 나도 바라진 않지. 그저 임서율을 넘겨주게. 그러면 이 일은 깨끗이 덮을 거야. 그런데...”잠시 전의 하도원 태도가 떠오르자 한태민은 또다시 분노로 얼굴이 달아올랐다.차진만은 그의 어깨를 툭 두드리며 중얼거렸다.“도원이 좀 봐주게. 이 일은 내가 결정하지. 반드시 그 여자를 한 회장 앞에 끌어다 놓을 거네. 다만 도원이에겐 당분간 알리지 않는 게 좋겠어. 그놈 성정은 한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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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8화

임서율은 고개를 돌렸다.“당신이 혼자 감당하겠다니, 그럼 알아서 잘 버텨봐요.”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임서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문을 보았고 차진만이 들어오는 걸 확인하곤 하도원에게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하도원은 못 들은 척, 오히려 능청스럽게 그녀를 놀렸다.“뭘 그렇게 눈짓을 해. 지금 네 남자 친구가 키스 못 해줘서 애타는 거야?”임서율은 어이가 없어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녀는 곧장 차진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어르신...”차진만은 지팡이를 짚고 들어서자마자 하도원을 노려보았다.“꼴이 말이 아니구나! 여자 하나에 정신이 홀라당 빠져서 세상에서 여자를 처음 본 놈처럼 구는 꼴 좀 봐라.”하도원은 반박 한마디 없이 오히려 태연하게 맞장구를 쳤다.“맞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 여자 친구만큼 귀엽고 예쁜 여자는 없었으니까요.”임서율은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 병실 밖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하도원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신나게 떠들어댔다.“회장님은 이런 좋은 사람 못 만나보셨죠? 제 여자 친구는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만들어주고 잠 못 자면 달래주기도 한다니까요. 어르신은 그런 거 해주실 수 있으세요?”“도원 씨, 제발 그만해요...”임서율은 도저히 참지 못해 낮게 외쳤다.지금 링거만 안 맞고 있었다면 진작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녀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저렇게 떠드는지, 괜히 차진만 눈에는 요망한 여우로만 보일 게 뻔했다.역시나 차진만은 콧방귀를 뀌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하도원, 경고하는데 한종서 일은 내가 수습해놨다. 더 사고 치지 않는 게 좋아. 그렇다고 그쪽이 가만히 있진 않을 거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장담 못 해.”“나는 관여 안 할 거다. 전에 말했듯 네가 굳이 저 여자를 택하겠다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예전엔 차씨 가문 덕에 감히 손 못 댔지만...”차진만은 잠시 말을 끊고 하도원을 똑바로 보았다.“지금은 달라. 네 뒤에 차씨 가문이 없으니 누가 무슨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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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9화

“...”임서율은 그저 짧게 내뱉었다.“요구는 되게 높네요.”하도원은 낮게 웃었다.“앞으로 나한테 애정 표현하려면 빙빙 돌리지 말고 그냥 직설적으로 해. 그게 훨씬 좋아.”임서율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마음 한구석은 묘하게 편안해졌다. 한종서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그 집안 어르신이 쉽게 물러설 리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하도원이 곁에 있으면 기묘하게도 그 무거운 짐이 조금은 덜어진 듯했다.하지만 하도원이 다 짊어져 준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안심하고 있을 순 없었다.그녀는 표정을 고쳐 잡았다.“도원 씨, 한종서 일은 내가 저지른 거니까 내가 책임질게요. 당신이 대신 짊어질 필요 없어요.”“당신은 이미 얽혀 있는 게 너무 많아요. 그러니 이런 진흙탕에 같이 발 담궈서는 안 돼요. 게다가 한종서를 다치게 한 건 나예요. 그쪽 집안 사람들이 날 찾는 건 당연한 일이죠.”“그럼 그렇게 따지면 나도 따져야 할 게 많겠는데?”하도원의 목소리는 느긋했다.“한종서가 사람까지 시켜 날 이렇게 만들어놨잖아. 다리도 거의 절단당할 뻔했는데, 그 빚은 꼭 갚아야지. 난 그쪽 집안하고 제대로 계산해 봐야겠어.”임서율은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당신 상처로 협상하려는 거예요?”하도원은 두 손을 벌려 보였다.“안 될 이유 있어?”임서율은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하지만 도원 씨는 그냥 타박상이고 너무 심하게 다치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한종서는 달라요.”그러자 하도원은 지지 않고 억지를 부리듯 말을 이어갔다.“그럼 이렇게 따질까? 한종서가 저지른 건 납치, 상해, 강간 미수야. 법적으로 가면 훨씬 무겁지.”임서율은 앞으로 닥칠 골칫거리를 바로 떠올렸다.그녀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단순히 상해 문제로 끝나지 않아요. 파장이 더 커질 거예요. 난 당신이 이런 일에 말려들지 않았으면 해요.”그 순간, 하도원은 진지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임서율, 네가 날 선택한 순간부터 우린 이미 얽혀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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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0화

경찰은 모호하게 대답했다.“그건 지금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진술과 증거가 모두 정리돼야 하니까요.”임서율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럼 한종서가 처벌받을지조차 확실치 않단 말씀이세요?”형사 중 한 명이 피식 웃음을 삼켰다.“아가씨, 판결이라는 게 말만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증거가 필요하고 증인도 있어야 하죠. 현장에는 당신이나 당사자의 체액도 없었고 목격자도 없었습니다.”그 말에 임서율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른 이름이 있었다.“있어요. 증인! 당시 저랑 함께 납치됐던 박지안도 같은 곳에 감금돼 있었어요. 분명 증언할 수 있을 거예요.”두 형사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박지안 씨는 한종서 씨가 당신을 직접적으로 해친 걸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만 언성이 높아지고 몸싸움이 조금 있었을 뿐이라고 했죠.”“뭐라고요?”임서율의 얼굴이 확 굳었다.다른 형사도 고개를 끄덕였다.“이미 박지안 씨에게서 진술을 받았습니다.”임서율은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그럴 리 없어요! 박지안 역시 피해자였다고요. 그때 한종서 옆에 있던 그 두 놈이 당장이라도 박지안을 해치려 했어요.”하지만 형사는 냉정하게 받아쳤다.“임서율 씨, 저희는 증거로만 판단합니다. 박지안 씨 진술에 이견이 있다면 직접 그분과 이야기하세요.”임서율은 얼어붙은 듯 멍하니 굳어졌다. 설마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박지안이 한종서 쪽을 두둔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혼란스러운 그녀와 달리 하도원은 훨씬 침착했다.그는 형사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문제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시죠. 다만 제 요구는 단 하나입니다. 한종서는 반드시 중형을 받아야 합니다. 증거는 저희가 찾아내서 제출하겠습니다.”형사들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경찰서 전체가 이번 일을 꽤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두 사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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