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맞은편에는 베일을 쓴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여자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유려한 실루엣과 가녀린 손끝만으로도 인간 세상에서 보기 드문 절색임을 알 수 있었다.여자는 가느다란 옥 같은 손으로 검은 바둑알 하나를 집었지만 한참 동안 내려놓지 못했다.“한유야, 돌을 두거라.”노인이 낮고 부드럽게 말하자 여자는 바둑알을 툭 던지며 말했다.“수장님, 이 판은 제가 졌습니다. 더는 두고 싶지 않네요.”군신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 그만두는 거지?”여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군신의 눈빛이 깊어지더니 한유를 곧게 응시했다.“윤태호 때문이냐?”“네.”여자는 자기 생각을 전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군신은 여자의 대답에 잠시 놀란 듯했다.“그건 너답지 않구나. 명왕전에 들어오던 첫날 했던 말을 기억해? ‘누가 여자가 남자보다 못하다고 했습니까? 저는 언젠가 명왕전의 최고 사령관이 되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었지. 그런 네가 한 남자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다니.”한유는 담담히 대답했다.“비록 윤태호 씨와 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그래도 일이 생겼다니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군신은 잠시 한유를 바라보다가 문득 미소를 지었다.“수장님, 왜 웃으시는 겁니까?”한유가 의아한 눈빛으로 묻자 군신이 말했다.“한유야, 솔직히 말해 보아라. 너, 윤태호를 사랑하게 된 거야?”“수장님, 지금 그런 질문을 할 때입니까?”한유는 살짝 화를 내며 입술을 내밀었다.“농담할 여유가 있으시다면 전 바로 해정으로 돌아가겠습니다.”군신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의 수명과 고난은 하늘이 정한 거야. 윤태호가 지금 겪는 건 본인이 겪어야 할 운명일 뿐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안배를 기다리는 것뿐이야.”“보고드립니다!”갑자기 헬기 문밖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와!”군신이 낮고 단단한 음성으로 응하자 문이 열리면서 당영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당영곤은 군신 앞에 서서 두 발을 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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