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작업실에서 일을 마친 유하는 프린트한 이혼 합의서를 가지고 별장으로 돌아갔다.이혼합의서는 이솔이 특별히 이혼 소송에 능한 로스쿨 교수님한테 문의해서 도움을 청해, 유하 케이스에 맞게 제작한 것이다. 비록 아직 더 보완해야 할 부분도 있었지만 유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오후에 승현을 포함한 세 사람이 떠난 뒤, 유하는 이솔에게 전화해 아직 채 보완하지 않은 이혼합의서를 받아와 저녁이 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하지만 집에는 도우미밖에 없었다.저녁 10시가 넘었는데 승현과 준서가 동시에 없는 걸 보면 생각하지 않아도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그래도 승현이 저녁에 돌아온다고 했으니 유하는 마지막으로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윤해월이 추위를 가시라며 생강차를 내왔지만 유하는 그걸 거절하고 1층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사모님, 짐은...”유하가 충장이 끝나 돌아온 줄로 알았던 윤해월은 캐리어가 보이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했다.“볼일 있어 잠깐 온 거예요.”대충 설명한 유하는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으로 최근 열린 국제 패션위크 영상을 봤다.이건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세계적인 무대다.유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이렇게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건 모두 국제 유명 브랜드의 최고 디자이너로, 전 세계 패션 트랜드를 이끄는 사람들이다.영상에 너무 빠져 있다 보니 거실에 놓인 시계가 울리고 나서야 유하는 자정이 되도록 남편과 아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알아챘다.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던 유하는 곧바로 승현에게 전화했다.한참이 지나서야 연결된 전화 너머로 귀찮음이 섞인 쌀쌀맞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야?]다음 순간 건너편에서 연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현아, 이 잠옷 어때?]전화는 뚝 끊겼다.유하는 아직 반응하지도 못했다. 통화 시간은 고작 30초 남짓했다.몇 초 뒤에야 전화를 내려놓은 유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낮에 30분도 시간 내주지 않더니, 이제는 말할 시간도 안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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