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들이 나를 버릴 때, 나는 세상을 가졌다: Chapter 711 - Chapter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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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1화

‘내일 승환이가 내가 부탁한 거... 제발 잊지 말아야 할 텐데.’유하는 두 손으로 볼을 가볍게 몇 번 두드리며 정신을 다잡았다.발목에는 은색 잠금쇠가 채워져 있어 침대 아래로 제대로 내려갈 수 없었고, 유하는 어깨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히 움직여 침대 한쪽에 몸을 모으고 잠시 눈을 붙이려 했다.‘일단 잘 쉬는 게 먼저지.’다쳐서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유하는 밤새 깊게 잠들곤 했다. 눈을 뜨자 침대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고, 시계도 없어 시간을 가늠할 길이 없었다.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을 보고서야 낮이라는 것을 겨우 추측할 수 있었다.코시오는 보이지 않았고, 승환 역시 어디로 간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다만 어제 일을 의식했는지, 유하 발목에 걸린 은색 사슬은 상당히 길어져 있었다.이제는 겨우 방 안에서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유하는 창가 쪽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손잡이를 잡아 창을 열고 밖을 내려다본 순간, 몸이 굳었다.이층 높이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크지 않은 집 한 채가 보였다.문제는 그 주변 풍경이었다.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오직 이 집 한 채뿐.그 너머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산림.경계가 어디인지조차 가늠되지 않았다.‘대체... 나를 어느 깊은 산속에 데려다 놓은 거야?’‘그러니... 계산해 보면 붙잡혀 온 지도 하루는 됐는데,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한 것도 이해가 되네.’하지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지명훈이 일찍 들어온 건 그렇다 쳐도, 설령 미리 준비돼 있었다 해도 코시오 정도면 국내에서 숨어 있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하지만 나한테 붙어 있던 시선도 꽤 많았고, 내 동선을 아는 사람도 많아.’‘나 같은 사람을 건드려 놓고 그 눈길을 그렇게 쉽게 따돌릴 수 없었을 텐데...’‘왜 지금까지 아무 움직임이 없지? 코시오는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숨을 수 있는 건가?’끝없이 펼쳐진 숲을 바라보며 유하는 말 없이 숨을 골랐다.그리고 곧 이유를 알았다.유하가 세안까지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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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유하는 듣다 보니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리고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그런데 연우는 스스로 신난 듯 말을 이어갔다.“근데 말이야, 진짜 의외더라. 승환이 너한테 그런 마음을 갖고 있었던 거. 어쨌든 널 살려두겠다며 어떻게든 지켜낸 거 보면, 너희 둘... 운도 참 좋아.”말을 다 끝내고 연우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눈동자 깊은 곳에 감춰진 질투와 증오가 스며들었다.유하만 운 좋은 게 아니었다.연우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연우가 평소 깔보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승환은 승현이 지독하게 싫어하던 동생, 그 승환이 코시오와 그런 관계일 줄 몰랐다.그 배경이 그렇게 대단할 줄은 몰랐다.그걸 알게 된 날, 연우는 이를 갈며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대체 왜 다른 사람들만 저렇게 운이 좋은 거야?’‘알았으면 나도 오승환 무시 안 했어! 전부 다 나한테 숨긴 거잖아!’‘왜 나만 이렇게 죽도록 발버둥 쳐야 하는데!’‘왜 태어난 집안 하나로 다 밀려버리는 거냐고!’‘우리 집도 부유하고 권력도 조금은 있지만... 부족해.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게다가... 게다가...’연우는 눈을 감았다. 끝없이 올라오는 질투와 흉한 감정을 가라앉히려는 듯 호흡을 고르게 만들었다.‘어차피 소유하는 끝이야.’‘소유하는 진짜로 코시오가 봐줄 거라고 착각하나?’‘해외에서 벌어진 일로 코시오가 얼마나 망신을 당했는데...’‘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붙잡혀 온 지 하루 만에 총을 맞았잖아.’그 생각에 연우는 다시 기분이 풀린 듯 미소를 지었다.연우의 헛웃음 섞인 말이 끝나자 유하는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하지만 승환의 감정 따위에 마음을 빼앗기진 않았다.그보다는 연우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는 광기 어린 계산이 더 난감했을 뿐이었다.“너... 진짜 미쳤구나.”유하는 고개를 기울이며 낮게 내뱉었다....유하가 아는 것만 종합해도 상황은 우스꽝스럽고 동시에 위험했다.청산이 예전에 말한 적이 있었다.연우는 승현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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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하연우...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예상치 못한 연우의 발작적인 행동에, 유하는 황당하다 못해 웃음이 날 것 같았다.몇 번이나 터져 나오는 웃음기를 눌러 삼키고, 그저 어이없다는 눈으로 연우를 바라봤다.“너랑 오승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든 제발 내 앞에서 떠들지 좀 마.오승현 같은 인간, 그렇게 좋아 죽겠으면 네가 가져.그렇게 서로 좋아 죽는 사이라면, 제발 좀 신경 써서 오승현 챙겨.하루가 멀다고 병자처럼 나한테 와서 들러붙고 감시하고 염탐하는 꼴 좀 그만 보게 해줘.그러면 너에게 진짜로 고맙겠어.”유하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오승현이 뭐가 좋은데?’‘내가 기억력이 없나, 왜 또 저 인간 때문에 시달려야 하는 건데?’‘다른 사람들 눈에는 금덩어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딴 건 누구 좋은 대로 가져가라고 해. 나는 절대 싫어.’‘더군다나 제정신도 아닌 인간을 누가 감당해?’유하의 진심은 단 하나였다.연우가 차라리 승현을 붙잡고 통제해 주길 바랐다.만약 그런 기적의 존재가 실제로 있다면, 유하는 신당을 차려 매일 향이라도 올릴 기세였다.하지만 연우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연우가 승현을 통제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승현이 살아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연우였다.청산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둘 사이에 어떤 협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정도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의 신뢰는 있다는 뜻이었다.그런데도 승현이 사람을 붙여 유하를 감시하고 스토킹하는 동안,승현이 가장 아낀다는 연우는 입도 떼지 않았다.제지조차 하지 않았다.연우의 눈에는 승현 옆에 다른 여자가 있는 게 그렇게 사소한 일이었을까?유하 입장에서는 지금 연우의 태도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광기였다.유하는 말 그대로 벙쪘다.연우는 유하가 이렇게 반응할 줄 몰랐던 듯, 얼굴에 단 한 순간 일그러짐이 스쳤다.하지만 금방 다시 표정을 정리하고 완벽하게 가공된 미소를 올렸다.단, 테이블 아래로 감춰진 손은 주먹을 불끈 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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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연우가 나가자 유하의 식욕이 아예 사라졌다.아침 먹을 생각도 없이 문을 두드리며 승환을 불러내려 했다.어제 코시오에게 여러 가지를 떠보며 확인한 바로는 연우가 준비했다는 ‘선물’은 거의 확실하게 코시오가 조제한 그 향수일 가능성이 컸다.유하의 추측대로라면, 그 향은 강한 중독성을 지닌 성분이 섞여 있을 공산이 높았고, 어떤 방향의 중독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어도, 그런 잔여 증상이 남을 물건이 좋은 것일 리는 없었다.지금 당장 그 선물을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은 승환뿐이었다.유하가 문을 두드렸지만, 안에서 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마치 집 전체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아무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코시오 스타일이라면,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을 비울 리가 없는데.’분명 어딘가에서 감시하고 있을 것이다.무시하는 걸 보니, 승환은 이 집에 없는 것이 분명했다.유하는 고개를 들어 천장의 네 구석을 살폈다.그러다 왼쪽 어깨를 눌러보며 짧게 숨을 들이켰다.‘일단... 걸어볼까.’...오씨 가문 본가.오늘 의외의 손님이 찾아왔다.“임 대표님,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오광진은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며 놀랐다.하얀 수트를 말끔히 차려입었지만, 눈 아래에는 새벽까지 자지 못하고 버틴 사람 특유의 푸른 눈그늘이 져 있었다.얼핏 보기에도 기품 있는 얼굴이었지만, 피곤이 깊게 스며 있었다.이런 관계에서 청산이 본가를 찾을 일은 없었다.게다가 이렇게 조용하고 단정한 태도로 앉아 있다니, 더더욱 뜻밖이었다.청산은 건네진 뜨거운 차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감정 하나 드러내지 않은 표정으로 책상 위의 서류봉투를 집어 오광진 앞으로 내밀었다.“유하가 그제 학교에 가서 어떤 향수를 조사했고, 그 직후 실종됐습니다.”그날 밤 상황은 청산이 바로 알았다. 손을 놓지 않고 밤새 수소문했지만, 상대는 모든 걸 예상하고 대비한 듯했다.주변 CCTV는 전부 파손돼 있었고, 쫓아가던 인력도 순식간에 따돌렸다.흔적 없이 사라진 것이다.유하는 고리대학교에 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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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청산에게는 코시오와 관련된 확실한 정보가 필요했다.그 정보가 있어야 제대로 된 대응 방식을 찾을 수 있었다.오광진은 손에 든 서류를 꽉 움켜쥐며 표정을 굳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지만, 결국 낮게 말했다.“고맙다. 이 자료랑 향수 관련 내용은 꽤 쓸모가 있겠지. 하지만 아무리 교환이라도, 이런 제안을 할 사람은 유하여야지...”“회장님.”청산의 목소리가 조용히 오광진을 끊었다.올린 눈빛 뒤로 안경테가 살짝 빛났고, 평소와 달리 냉기가 감도는 눈매였다.“소유하 씨는 제 약혼자입니다.”한 음절 한 음절이 또렷했다.그 말 속에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유하를 지켜야 할 사람은 승현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담았다.오광진은 입을 다물었다. 말은 없었지만, 얼굴엔 인정하는 낯빛이 스쳤다.그렇다고 해서 자기 아들이 그렇게 생각할 리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답답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결국 오광진이 먼저 숨을 내쉬며 결론을 냈다.현재 오씨 가문에서 파악한 코시오 관련 정보를 일부 공유하겠다고.상대가 누구든, 코시오를 상대하려면 아는 만큼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박영심의 문제가 얽혀 있는 이상, 허투루 다룰 수 없었다.그리고 향수가 실제로 문제가 있다는 화학 성분표까지 확보했다면, 비록 분석표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참조할 가치가 충분했다.청산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유하가 도와준 만큼, 청산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가문 내부 사정 따위는 고려하지 않을 상황이었다.서류를 건네며 오광진 역시 마음을 정리한 듯했다.‘우리 집안 그 미련한 놈은... 그냥 어쩔 수 없지.’그런 표정이었다.서류가 전달되자마자, 오광진은 예의를 차려 식사라도 하고 가라는 인사를 건넸지만, 청산은 단칼에 사양했다.그리하여 집사는 청산을 직접 안내해 아래층으로 내려보냈다.계단을 내려와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청산의 걸음이 갑자기 멈췄다.거실 대문 쪽에서 여러 명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그 앞장에는 우아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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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방 안에는 유하가 소파 위에 다리를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고통스러운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고, 눈썹을 미세하게 찡그렸다. 어깨의 찢어진 상처를 다시 정성스레 감아준 의사가 나간 뒤에야 맞은편을 바라봤다.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는 승환은 고개를 깊숙이 떨구었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눈을 반쯤 가리고 있었고, 시선은 바닥 한곳을 맴돌 뿐이었다. 넋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하연우가 던지고 간 말들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유하는 계속 불안했다. 방 안에서 일부러 소리를 내거나 움직여봤지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일부러 상처를 다시 터뜨려 외부에서 상황을 감지하게 만들고, 그 흐름을 이용해 승환을 부르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코시오 쪽에서도 당장은 유하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그렇게 하면 누군가 움직일 것이라 계산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예상 밖으로 아주 빨리 승환이 의사를 데리고 들어왔다.‘승환... 계속 근처에 있었던 건가?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야?’‘그런데 왜 아까는 아무리 해도 안 나타난 거지?’유하 머릿속에 어느 가능성이 스치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너... 나 피하고 있어?”승환의 시선이 더 흐트러졌다. 여전히 바닥만 보고 있었고, 유하의 시선이 그 위에서 무겁게 내려앉자 긴 침묵 끝에 아주 약하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가 들렸다.“아닙니다.”‘그걸 누가 믿냐고.’유하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승환의 저 행동을 보기만 해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대체 누가 묶여 있는 쪽이지?’‘나를 가둬놓은 사람이 왜 괴롭힘당하는 사람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머리가 아파진 유하가 다시 물었다.“왜 도망쳐?”“도망친 거 아닙니다.”작은 목소리는 갈수록 더 작아졌다.‘됐어.’유하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리에서 일어나 승환 옆자리에 앉았다. 붉게 물든 희고 가는 발목에 연결된 은색 사슬이 바닥을 스치며 작은 소리를 냈다. 자리를 잡은 유하의 손이 승환의 왼쪽 어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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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유하는 문득 떠올렸다. 예전에도 승환을 볼 때면 늘 그랬다. 얼굴이 창백하긴 했지만, 분명 화장을 얹은 것 같은 인위적인 흰빛이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으나, 지금은 안다. 승환이 스스로 만든 가면이었다.그런데 지금은 그 가면을 벗고도 오히려 더 창백했다. 코시오와 닮은 희디흰 얼굴빛이지만, 코시오의 그 불길한 느낌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사실... 가면을 벗은 승환의 얼굴은 훨씬 생생했다. 살아 있는 그림 같았다.부모가 모두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니 당연했다. 다만 승환이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승환아... 웃으면 정말 예쁘겠지.’유하는 어젯밤 승환의 무너진 표정을 떠올렸다. 지금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은 평온한 척하는 고요였지만, 그 뒤에 감춘 흔들림이 보인다. 유하는 가볍게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더 행복해야 해, 승환아. 웃을 일도 좀 만들고. 물론, 너무 힘들면 울어도 돼. 크게 울어도 괜찮아. 내가 다 듣고 있으니까.”‘네 고통은 내가 들을게.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마. 겁내지 마.’‘오승환, 더 마음껏 흔들려도 돼.’유하는 아주 낮게, 감탄처럼 이어서 말했다.“승환아, 바람처럼 살아야지.”‘세상은 넓고, 높고, 아름다워. 자유로운 바람처럼, 푸른 하늘 아래 날갯짓하는 흰 비둘기처럼, 마음껏 질주하고 날아가야 해.’‘좋지 않은 건 다 뒤에 버려두고. 아직 젊고 한창일 때, 남이 만든 감옥에 스스로 갇혀버리면 안 돼.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꺾지 마.’그때 승환의 목소리가 들렸다.“하지만... 저는 누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승환은 날아오르기보다, 유하 곁에 맴돌고 싶어 했다. 영원히.“누나도 바람이야. 나 먼저 날아갈지도 모른다?”유하는 승환의 부드러운 머리를 두어 번 토닥이며 웃었다.“더 빨리, 더 높이 날아서 누나를 잡아봐. 원하면.”‘누나를... 잡으라고?’유하의 허벅지에 머리를 얹은 상태로, 굳어 있던 승환의 몸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마치 흩어지는 구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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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었다.코시오가 와인잔을 기울이자, 짙은 빛의 와인이 조명 아래에서 흔들렸다. 승환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아버지, 어머니는 언제 돌아오십니까? 그리고 저희는 언제 이곳을 떠납니까?”코시오가 잠시 시선을 승환에게 주었다가, 천천히 붉은 와인을 한 모금 머금었다.“급하냐?”“누나를 빨리 데려가고 싶어서요. 어머니와 같이 지내고 싶습니다.”승환의 얼굴은 변함없이 차분했다.코시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곧이다.”“지난번에 아버지는 한번 실패하셨습니다.”승환은 코시오의 살짝 가라앉은 녹빛 눈동자를 외면한 채 냉정하리만큼 안정된 목소리로 이어갔다.“이번에는 오광진 회장 쪽에서 더 철저하게 대비하겠죠. 아버지, 이번엔 정말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십니까?”애초의 계획대로라면, 유하는 이렇게 일찍 이곳에 데려와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파헤치지 말아야 할 걸 유하가 건드렸기 때문에 원래의 구도가 흐트러졌다. 승환으로서도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네가 알 바 아니다.”코시오가 와인잔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말투는 평소였지만, 서늘함이 번져 있었다.“네 역할이나 제대로 해.”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승환은 고개를 숙이고, 초록빛 눈동자를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식판 위에 떨어뜨렸다. 꽤 긴 침묵이 흐른 뒤, 자리를 떠나려는 코시오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아버지는... 어머니한테 뭘 했습니까.”코시오가 의자에 손을 짚은 채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만 돌려 승환을 보았다.“소유하가 뭐라고 했지.”“제가 봤습니다.”승환이 시선을 들었다. 흐트러진 앞머리 사이에서 또렷한 녹색 눈빛이 코시오를 정면으로 마주했다.“그 자료를 봤어요. 어머니를 그렇게 데려오겠다는 겁니까? 상처를 입히는 방식으로?”“상처?”코시오가 짧게 웃었다. 검은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며 건조한 소리를 냈다.완벽한 윤곽을 가진 얼굴이었지만, 그 탓에 미소조차 어딘가 이질적이고 차갑게 느껴졌다. 피를 묻힌 듯한 붉은 입술이 휘어지며 듣기 좋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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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욕실 안에서는 끊임없이 물 흐르는 소리가 울렸다. 수증기가 가득 차올라 흐릿한 윤곽만 보일 정도였다.그 안에서 유하는 맨발로 욕조 안에 들어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있었다. 욕조만 유일하게 마른 공간이었고, 승환은 욕조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짚으며 유하를 가리는 그림자를 드리웠다.고개를 숙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유하의 표정은 흐릿한 물안개 속에서도 어딘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승환이 몸을 더 기울이며 낮게 물었다.“누나, 제가 말씀드린 거... 전부 기억하시죠?”“응...”뜨거운 습기에 공기가 무겁게 들러붙어, 옷은 젖지 않았는데도 유하는 몸 전체가 불편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유하가 결국 손을 들어, 물에 젖어 몸의 윤곽이 드러난 승환의 셔츠 앞을 눌렀다.“이렇게 가까이에서 말해야 해?”이어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괜히 들리면 어떡해?”승환은 진지하게 답했다.“혹시 모르니까요.”유하는 잠시 그 말을 이해했지만, 곧 어이가 없다는 듯 승환을 다시 밀었다.“여기 욕실이야. 물소리 이렇게 큰데 누가 들어! 작은 목소리면 전혀 안 들려.”승환이 가볍게 웃었다.그 웃는 소리가 가슴에서 울리는 듯, 낮고 진동하는 기척이 전해졌다.승환은 유하가 미는 손을 그대로 받으며 천천히 상체를 내려왔다.욕실의 뜨거운 열기에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빛났다. 그리고 식지 않은 체온이 스치듯, 이마를 유하의 이마에 맞댔다.젖은 앞머리 사이로 보이는 녹색 눈동자는 수증기에 젖어 눈꼬리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유하의 숨이 잠깐 멎었다.멍하니 바라보다가 몸이 더 가까워지려는 기척에 유하는 정신을 번쩍 차리고 승환을 밀어내려 했다.그런데 승환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유하의 목덜미 쪽으로 얼굴을 파묻었다.“누나... 절 안아주실 수 있어요?”물 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졌다.유하는 승환의 어이없는 부탁에 잠시 화가 났다. 가슴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불안과 당혹감이 들었다.그래도 팔을 들어 승환의 목을 천천히 감싸안았다.“조심해야 해. 안 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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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그곳이 바로 승환이 오늘 밤 반드시 가야 하는 목적지였다.그리고 동시에 유하가 확인하고 싶어 한 곳.코시오가 박영심에게 사용한 향수의 조제식, 특성, 혹은 해결책이 이 주변 어딘가에 있을지.승환은 그것을 꼭 손에 넣어야 했다.어머니 박영심을 위해서도, 유하를 위해서도.한 번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꺼놓은 손전등을 주머니에 넣고, 2층 거실의 희미한 조명을 이용해 벽을 짚으며 서재 쪽으로 몸을 붙여 이동했다.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상황, 하지만 서재는 예전에 몇 번 들어온 적이 있어 구조를 좀 알고 있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도 그쪽이었다.서재 문 앞에 도착했다.바로 옆에는 코시오의 안방 문이 굳게 닫혀 있다.승환은 천장을 한번 쓸어보듯 흘깃 보고, 다시 문손잡이 쪽으로 시선을 내렸다.서재 문에는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초록빛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한참 귀를 세우며 기척을 살핀 뒤, 비밀번호 패드를 가볍게 눌러 불을 켰다.주저하지 않고 번호를 눌렀다.철컥-문이 열렸다.승환의 입가에 얇은 웃음이 스쳤다.‘여길 왔다 갔다 한 게 몇 번인데, 문 하나 못 열면 말도 안 되지.’서재는 새까맣게 어둡고, 빛은 전혀 새어 나오지 않았다.승환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암흑에 눈이 익숙해지기를 잠시 기다린 뒤, 손전등을 손으로 감싸 꼭 쥐고, 손가락 틈으로 새는 아주 작은 빛만 흘려보냈다.책장부터 차근히 훑었다.이어서 책상 서랍.그리고 책상 아래 숨겨진 금고까지 도달했다.금고는 그리 크지 않았다.문제는... 이 금고의 비밀번호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었다.승환은 앉아 금고를 살펴보았다.손전등 틈새 불빛을 이용해 구조를 파악하고, 한동안 잠금장치를 더듬었다.그리고 이내 작은 난감이 표정에 스쳤다.이 금고는 기계식이었다.‘지금 시대에... 기계식?’승환은 속으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지문, 안면, 혹은 전자식 잠금장치라면 유하에게 전문 기술을 요청해 원격으로 해제하는 것도 가능했다.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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