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나를 버린 그들에게 / Chapter 141 - Chapter 150

All Chapters of 나를 버린 그들에게: Chapter 141 - Chapter 150

168 Chapters

제141화

“응.”강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에는 순간 망설임이 비쳤다.성규연이 강제로 자신을 덮치려 했을 때도, 심소연과 몸싸움을 벌였을 때도 이 작은 생명은 버텨 냈다. 그렇게 악착같이 세상에 나오려 하는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조금 더 생각해 볼게.”“네가 어떤 결정을 해도 난 네 편이야.”정도희는 두 손으로 강아연의 어깨를 잡고 눈을 맞추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한마디만 할게. 아이는 네 아이야. 결정도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해. 성규연 그 개자식 때문에 휩쓸려서 쉽게 포기하지는 마.”친구로서 정도희는 강아연이 너무 외롭게 남는 게 싫었다. 그래서 신중히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 것뿐이었다. 물론 강아연이 확고하게 결정한다면 더는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강아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 도희야.”자신을 위해 일부러 와 준 것, 가장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 끝없이 위로하고 지지해 준 것, 모든 게 고마웠다.“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고마워해.”정도희는 그녀를 안아 주고 물 한 잔을 따라 주고는 속이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린 뒤 말했다.“아주머니도 한번 보자.”“응.”강아연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문을 나서자마자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아이 하나가 서 있는 게 보였다.“준서?”강아연은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빛으로 바라봤다.‘성준서가 왜 여기에 있지? 설마 외할머니를 보러 일부러 온 건가?’하지만 주정애가 오늘 수술한다는 사실을 성준서에게 말한 적은 없었다.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성준서가 갑자기 달려와 두 손으로 그녀를 세게 밀었다.“흥! 나쁜 여자!”아무리 성준서가 아이라고 해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강아연은 휘청이며 뒤로 밀려나, 하마터면 딱딱한 벽에 등을 부딪칠 뻔했다.“아연아!”다행히 정도희가 재빨리 그녀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성준서를 향해 화를 냈다.“성준서! 네 엄마야! 어떻게 엄마를 이렇게 밀어? 너 지금 엄마가...”하지만 뒤의 말은 강아연이 정도희의
Read more

제142화

“아악!”성준서는 아파서 바로 울음을 터뜨렸다.“이모도 엄마처럼 나쁜 여자예요! 감히 저를 때려요? 아빠한테 사람 보내서 이모를 때리라고 할 거예요!”“날 때린다고? 웃기고 있네. 불러 봐!”정도희는 엉덩이를 때리던 손으로 이번에는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네 아빠가 먼저 나 때리러 오나, 내가 먼저 이 꼬맹이를 납작하게 만들어 놓나 한번 보자!”“아! 아파!”성준서는 결국 목 놓아 울었다.“흐아앙...”맑고 앳된 목소리가 울다가 쉬어 버리는 걸 들은 강아연은 두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게다가 성준서가 이렇게 크게 울어 대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좋지 않았다.“도희야...”강아연은 얼른 말리려 했다.하지만 ‘너무 심하게 하지는 마’라는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걱정이 가득 담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준서야!”심소연이 휠체어를 급하게 밀며 다가와 정도희의 손을 붙잡았다.“아이를 어떻게 그렇게 때려?”정도희는 심소연이 갑자기 끼어들 줄 몰라 잠시 멈칫했지만 곧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넌 또 뭔데? 꺼져.”“연이 이모한테 그렇게 말하지 마!”성준서는 즉시 심소연 앞으로 가 그녀를 감싸듯 막아섰다.그 모습을 본 심소연은 곧바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성준서를 달랬다.“준서야, 걱정하지 마. 이모 괜찮아...”“어떻게 괜찮아요! 엄마가 감히 이모를 다치게 했잖아요. 전 절대로 엄마 용서 안 할 거예요!”성준서는 작은 체구로 심소연의 앞을 막아서더니 턱을 들고 강아연을 바라보며 소리쳤다.“전 연이 이모가 좋아요! 엄마는 싫어요! 전 연이 이모랑 같이 살 거예요! 엄마가 또 연이 이모한테 손대면 전 엄마 필요 없어요! 연이 이모 아들 할 거예요! 아빠한테 연이 이모랑 결혼하라고 해서 엄마는 쫓아낼 거예요!”어린 성준서의 입에서 나온 말 하나하나가 순식간에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강아연의 심장을 사정없이 찔렀다.주변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어머, 친엄마를 싫어하고
Read more

제143화

방금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강한 압박감이 덮쳐 숨조차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게다가 그 기세는 하나가 아니었다.박경준은 성규연의 옆에 서서 정도희에게 손을 대려던 사람들을 차갑게 훑어본 뒤 손가락을 가볍게 들었다.곧 정장을 입은 건장한 경호원 여러 명이 다가와 위압적인 인간 장벽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려 연신 뒤로 물러났다.“방금 내 사람을 쫓아내겠다고 한 게 누구지?”박경준의 목소리는 성규연만큼 차갑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 눈치를 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특히 덩치 큰 경호원들을 보자 다리까지 저절로 떨렸다.“꺼져.”박경준이 한마디 하자 사람들은 사면이라도 받은 듯 뿔뿔이 흩어졌다.자신을 위해 나선 박경준을 본 정도희의 눈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 하지만 오래 바라보지 않고 곧바로 강아연부터 살폈다.“아연아, 괜찮아?”강아연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성규연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그와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괜찮아. 걱정하지 마.”“저는 안 괜찮아요!”성준서가 울먹이며 성규연에게 달려가 일렀다.“아빠! 저 아줌마가 저를 때렸어요! 아빠가 꼭 혼내 줘요!”하지만 성규연은 불쾌한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여기 오라고 했어?”성준서는 아버지의 굳은 얼굴에 겁을 먹어 입술을 삐죽이며 눈물을 글썽였다.“준서가 날 걱정하길래 내가 무심코 말해 버렸어. 그래서 찾아온 거야.”심소연이 적당한 때에 끼어들어 성준서를 감쌌다.“규연아, 그래도 준서는 네 아들이잖아. 너무 무섭게 말하지 마.”“맞아요!”성준서는 얼른 심소연의 품으로 숨으며 목을 빳빳이 세웠다.“전 그냥 연이 이모 다친 게 걱정돼서 온 거예요! 엄마라는 저 못된 여자가 이모를 이렇게 만들어 놨는데 제가 연이 이모 편 좀 들면 안 돼요?”아이가 계속 ‘못된 여자’라고 자신을 부르는 말을 듣자 강아연의 눈가가 쓰라렸다. 복잡한 감정은 얼음 조각이 뒤섞인 북극의 거센 파도처럼 온몸을 연달
Read more

제144화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강아연은 말을 마친 뒤 누구에게도 더 시선을 주지 않고 지친 몸을 이끌고 떠났다.“아연아...”정도희가 얼른 뒤따라갔다. 박경준도 성규연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녀들을 따라갔다.한바탕 소동은 강아연이 떠나면서 끝났다.심소연의 눈에는 웃음기가 더 짙어졌다.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성준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다정하게 말했다.“준서야, 이모 걱정해 줘서 고마워. 정말 착한 아이네.”그런데 이번에는 성준서가 이상하리만큼 맞장구치지 않았다. 그는 점점 멀어지는 강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무언가가 손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 같았고, 잡으려 해도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준서야?”심소연은 아이가 대답이 없자 다시 불렀다.그제야 성준서는 정신을 차리고 심소연을 바라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연이 이모, 얼굴 아직 아파요? 제가 호 해 줄까요?”“괜찮아. 많이 좋아졌어.”심소연은 웃었다.“의사 선생님이 내일이면 퇴원해도 된대.”성준서가 말했다.“그럼 오늘 밤은 제가 여기서 이모랑 같이 있을게요.”“성준서, 너 내일 학교 가야 해.”성규연의 차가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아무런 높낮이도 없는 말투에 성준서는 본능적으로 목을 움츠렸다.아빠가 이런 말투를 쓸 때는 늘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심소연이 성준서 편을 들어주려 했지만 성규연이 먼저 말을 잘랐다. 그는 단호하게 명령했다.“지금 당장 집에 가.”“네... 알았어요.”성준서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인 채 기사를 따라 성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갔다.성준서가 떠나자 심소연의 마음은 은근히 들떴다. 이제 자신과 성규연 둘만 남았기 때문이다.둘만의 시간은 그녀가 늘 바라던 것이었다.심소연은 애정이 가득한 눈으로 성규연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불렀다.“규연아...”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성규연은 메시지 하나를 받더니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심소연은 그대로 굳은 채 눈에 차올랐던 기대가 순식간에 꺼졌다. 휠체어 팔걸이를 꽉 움켜쥐었
Read more

제145화

서영란은 차갑게 비웃었다.“인제 보니 정말 그 여자를 감싸고 있구나! 그 여자가 예전에 너한테 무슨 더러운 수를 썼는지 잊었니? 그런데도 인제 와서 불쌍한 마음이 들어? 상처가 아물었다고 아팠던 것도 잊은 거야?”“난 그저 사실대로 판단하는 거예요.”성규연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목소리는 점점 차가워졌다.“진료실 CCTV, 어머니가 가져간 거죠?”서영란은 흠칫하더니 순간 눈빛이 흔들렸다.“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그래요?”성규연은 그 표정만 보고도 답을 알았다. 하지만 굳이 폭로하지 않았다.서영란이 CCTV를 가져갔다는 건 영상 내용이 그녀들에게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강아연이 먼저 심소연의 얼굴을 긁으려 한 게 아니며, 정당방위로 인정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뜻이었다.그러니 서영란은 증거가 부족할 때 강아연을 서둘러 경찰서에 집어넣고 죄를 인정하게 만들려 했다.하지만 성규연은 이런 사실을 전부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다. 대신 차갑게 한마디 경고했다.“앞으로 제 집안일에는 관여하지 마세요. 어머니.”“네가 아직도 내가 네 엄마라는 걸 알긴 하니?”서영란이 불쾌하게 말했다.“그렇다면 내 말을 듣고 강아연과 이혼한 뒤 소연이랑 결혼해야지...”“꼭 제 어머니일 필요는 없어요. 성 여사님.”성규연이 곧바로 말을 끊었다. 어두운 표정과 의미심장한 목소리는 위험할 만큼 차가웠다.“지금 그 자리를 계속 지키고 싶다면 저와 완전히 척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호화로운 롤스로이스 뒷좌석 안에서, 두 모자는 재벌가가 지켜 온 체면을 발아래 짓밟고 있었다.특히 서영란은 성규연의 말을 듣는 순간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두 눈에는 찔림과 원망이 가득했다.지금의 성규연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예전에는 절대로 이렇지 않았다.성규연 역시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 깊은 눈동자에서 서늘하고 위험한 기운이 흘러나왔다.차 안에는 얼어붙은 듯한 침묵이 내려앉았다.한참
Read more

제146화

“됐어.”성규연은 얼마 전 강아연이 자신에게는 원수라도 본 듯 굴면서 다른 남자 앞에서는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라 눈썹이 절로 찌푸려졌다.강아연이 그렇게 자존심을 세우며 자기 뜻을 따르지 않겠다면, 그가 굳이 먼저 나서서 도와줄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인가?그는 그저 강아연이 먼저 자신을 찾아와 매달리길 바랐다.성규연은 손을 들어 올렸다. 손바닥에는 아직도 강아연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쌌을 때의 감촉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던 그 허리를 느껴 본지도 오래였다.그래서 그는 강아연이 다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자신을 찾아오길 바랐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몸을 다시 품에 안을 수 있을 테니까.게다가 자신이 강아연의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면 그녀는 차마 떠나지 못하고 얌전히 곁에 남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실컷 화를 내고 나면 결국 예전처럼 다정하게 옷을 다려 주고, 밥을 차려 주며, 다시 온순하고 현숙한 아내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성규연은 진심으로 강아연이 쉽게 자신을 떠나지 못할 거라고 믿었다.사랑받는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랑을 믿고 제멋대로 굴기 마련이었다.하지만 늘 모든 일을 정확히 내다보던 성규연은 이번만큼은 완전히 틀렸다.강아연은 정말로 성준서도, 성규연도 더는 원하지 않았다.아무리 애써도 마음을 열지 않는 남편도, 아무리 키워도 엄마를 따르지 않는 아들도 이제는 모두 필요 없었다. 그녀는 엄마를 데리고 경성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들이 있는 이곳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했다.강아연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도와 무사히 의식을 되찾은 엄마를 특별관리 병실에서 일반 VIP 병실로 옮겼다.“조심하세요...”강아연은 혹시라도 엄마가 부딪힐까 봐 긴장한 얼굴로 병상을 밀었다.“뭘 그렇게 긴장해. 내가 종이로 만든 사람도 아니고.”주정애가 웃었다. 몸에는 아직 몇몇 호스 관이 연결돼 있었지만 안색과 기운은 제법 좋아 보였다.“아연이가 이모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요.”정도희
Read more

제147화

정도희도 이번 요구가 지나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강아연이 연성에서 편안하게 지낼 곳을 마련해 주고 싶었다.사실 지금 받는 출연료만으로도 연성 외곽에 괜찮은 집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도심 한복판의 집을 원했다. 환경과 보안이 최고 수준인 데다, 박경준이 준 집이어야 했다. 박경준의 힘을 빌려 강아연과 주정애를 지켜 주려는 생각이었다.그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정도희가 아는 사람 중 성규연과 맞설 수 있을 만한 인물은 박경준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목소리를 한층 부드럽게 낮추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그의 가슴에 얹었다. 봄물처럼 나긋한 목소리가 사람을 홀리는 것 같았다.“200억이 평범한 사람한테는 평생 만져 보기도 힘든 돈이지만 박 대표님한테는 별거 아니잖아. 설마 이렇게 인색하진 않겠지?”박경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눈빛이 짙게 가라앉앉다.정도희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고개를 들어 그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하지만 박경준은 그녀의 턱을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속을 꿰뚫어 보는 듯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정도희, 내가 모를 줄 알아? 내 힘을 빌려 네 친구를 도와주려는 거잖아.”그 한마디에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야릇한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맞아. 그럴 생각이야.”속내를 들킨 이상 정도희도 더 돌려 말하지 않았다. 먼저 박경준의 손을 잡고 간절하게 말했다.“경준 씨, 나 좀 도와줘. 응?”진심 어린 부탁에도 박경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다음 프로젝트가 성규연과 하는 건 알고 있어?”성규연과 손을 잡고 사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굳이 그를 적으로 돌릴 이유는 없었다.“알아.”정도희가 진지하게 말했다.“난 그냥 아연이랑 정애 이모가 연성에서 자리 잡게 도와 달라는 거야. 성규연이랑 싸워 달라는 것도 아니잖아. 그 정도로 그 사람한테 밉보일 일은 없어.”“게다가 아연이랑 성규연은 이미 이혼 합의서도 쓰고 절차를 밟고 있어. 숙려기간도 끝났고 지금은 더는 부부도 아니야. 아연이가 어디로 가든
Read more

제148화

그날 정도희는 너무 기뻐 강아연을 끌어안고 한참 울었다. 강아연은 내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 줬다.강아연은 정도희의 가난한 형편을 한 번도 깔보지 않고, 진심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로 대해 줬다. 악의적인 아이들이 정도희가 많이 먹고 검고 길쭉한 장작개비처럼 생겼다며 놀릴 때도, 작고 마른 강아연이 늘 제일 먼저 뛰쳐나와 대신 맞서 줬다.그 모든 일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정도희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그래서 강아연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을 수 있었다.박경준은 그녀의 단호한 말을 듣고 턱을 잡고 있던 손을 옮겨 뺨을 쓸었다.정도희는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이었다. 길고 매혹적인 눈매는 시선이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혼을 빼놓을 듯했고, 살짝 올라간 눈꼬리에서는 짙은 유혹과 분위기가 흘렀다.높은 콧대와 또렷한 얼굴선에는 동양적인 부드러움과 서구적인 입체감이 함께 있어, 화려하고 요염하면서도 당당한 인상을 줬다.말 그대로 큰 스크린을 위해 태어난 얼굴이었다.정도희가 얼굴 하나만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흠잡으려던 사람들조차 변함없는 미모 앞에서 팬으로 돌아선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박경준의 시선이 그녀의 붉은 입술에 머물렀다.탐스럽고 매혹적인 입술은 활짝 핀 꽃잎 같았다. 한 번 맛보면 쉽게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이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는 그 화려한 얼굴을 오래 감상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그런데 너, 나한테 더 줄 게 남아 있긴 해?”그 한마디가 찬물을 한 양동이 뒤집어쓴 것처럼 정도희는 그만 얼어붙었다.맞았다. 첫 경험도, 몸도, 자신이 내줄 수 있는 건 이미 전부 그에게 줬다.박경준이 가진 건 자신에게 없었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건 박경준이 원하지 않았다.정도희의 눈빛이 서서히 어두워졌다. 그녀도 바보는 아니었다. 박경준이 이 정도까지 말한 건 도와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빌어도 소용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든든한 후원자마저 잃고 싶지 않다면 여기서 멈춰야 했다.“알겠
Read more

제149화

“강아연,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정도희는 발끈해 그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튕겼다.“나 세금 꼬박꼬박 내는 모범 시민이거든?”“그런데 어떻게 이런 집을 샀어?”강아연도 연성의 이 지역 집값이 최소 수십억에서 백억 단위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정도희는 몇 년 동안 전국과 해외를 돌아다니며 촬영하느라 집에 머무는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이 굳이 이런 비싼 집을 사는 건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마음에 들어서 샀지.”정도희는 눈에 비친 뜨거움을 감추며 어깨를 으쓱했다.“내 일이 돈 버는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고, 쓰면 또 벌면 돼. 그리고 난 그냥 너랑 이모가 좋은 데서 지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도 마음이 놓이잖아.”강아연은 완전히 믿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진심으로 말했다.“도희야, 넌 이미 나한테 너무 많이 해 줬어. 나 때문에 네가 이렇게까지 희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마음 아파.”정도희가 연예계에서 버텨 오며 얼마나 힘들었는지 강아연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야 영화 한 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자신 때문에 그 앞길을 막고 싶지 않았다.정도희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조부모와 팀원들까지 책임지고 있었고, 거기에 또 부양해야 할 사람이...바로 그때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으아앙...”“우리 은아 착하지. 주사 한 번만 맞으면 돼. 무서워하지 마. 괜찮아...”아이 엄마가 계속 달랬지만 아이는 목이 쉴 정도로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보기만 해도 안쓰러울 지경이었다.엄마 역시 무척 젊어 보였다. 처음 아이를 키우는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 했다.그 모습을 본 정도희가 아이 앞으로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환하게 웃으며 일부러 아이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우리 공주님 이름이 은아야? 이렇게 예쁜 얼굴에 눈물이 가득하면 아깝잖아. 이모한테 치즈 간식 있는데, 먹고 싶어?”울던 아이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모가 부탁 하나만 할게. 치즈 먹고 나서는 안 울기. 할
Read more

제150화

사례비라도 챙겨 주고 싶었지만 간호사는 거절했다. 여자끼리 서로 돕는 일인데 그런 걸 따질 필요 없다고 했다.그 순간 강아연의 눈가가 뜨거워졌다.“아연아! 출발한다!”조수석에 앉은 정도희가 손을 흔들었다.강아연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힘찬 걸음으로 차를 향했다.바로 그 순간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짙은 남색이던 하늘은 점점 옅어지더니 따뜻한 주황빛으로 물들었다.세상 전체가 황금빛에 잠겼다. 나무와 잔디, 꽃들이 햇빛을 받아 한층 더 생기 넘쳐 보였다.강아연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자신도 따뜻한 햇볕에 금빛으로 둘러싸인 듯했다. 상처투성이였던 마음조차 조금씩 아물어 가는 기분이었다.일출이 가져오는 것은 빛뿐만이 아니었다. 희망이었고, 새로운 시작이었다.강아연은 자신을 짓누르던 어둠에서 벗어나 찬란한 아침노을을 향해 걸었다. 새로운 삶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이틀 뒤, 성규연은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요즘 그는 연간 업무 보고 때문에 회사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손에 잡힌 일을 겨우 끝내고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참이었다.넓은 저택에는 고용인들이 있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휑했다. 뭔가 하나 빠진 듯 허전했다.성규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텅 빈 듯 불편했지만 곧 그 감정을 억눌렀다.“대표님 오셨어요.”장미진이 다가와 맞으며 덧붙였다.“정말 오랜만에 오셨네요. 어제도 준서 도련님이 전화해서 아빠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하지만 성규연은 성준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성준서는 아직 심소연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는 그저 무심한 듯 한마디 물었다.“아연이는요?”“사모님이요?”장미진은 사실대로 대답했다.“집에 안 계세요. 짐 챙겨서 나가셨어요.”성규연은 전에 비서가 강아연의 여행 가방이 없어졌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언제 나갔어요?”“일주일 전쯤이요.”장미진이 기억을 더듬었다.“밤에 짐을 챙겨 나가셨어요. 어머니 간호하러 가신다고 했는데, 무슨 문제
Read more
PREV
1
...
12131415161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