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세 번을 연속으로 걸었지만 돌아온 건 같은 안내음뿐이자 시아는 힘없이 손을 내려뜨렸다.강국의 휴대폰은 늘 24시간 켜져 있었지만, 지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시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강국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이 오랜 시간 동안 강국은 많은 사람을 건드렸지만 나름의 방패가 있어 무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미아 뒤에 숨어 있는 비밀은 시아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깊고 그 배후 세력은 권세가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시아의 등골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자신이 너무 성급했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자책이 밀려왔으나 후회해도 소용없었다.지금은 조강국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시아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전화를 걸었다.“지호 씨, 강국이 사고를 당했어요.”시아의 목소리는 힘없이 흔들렸고 지호는 단번에 감지했다. 소파에 느긋이 앉아 있던 남자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어디야?]“코치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대답은 질문과 어긋났지만 지호의 발걸음은 이미 병원을 향하고 있었다....지호가 도착했을 때, 시아는 응급실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공을 응시한 눈빛은 마치 바다에 떠밀린 부평초처럼 의지할 데 없고 무력했다.“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지호는 시아를 조심스레 안아 올리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조강국은 무사해. 다만 의도적으로 연락이 끊긴 것뿐이야.”병원으로 오는 길에 이미 사람을 풀어 확인했고 결과는 확실했다.이에 시아의 굳은 어깨가 조금 떨렸다.“정말 무사해요?”“그래, 무사해. 거짓말 아니야.”지호는 시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시아의 나약함이 그곳에 드러나 있었다.지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시아는 또 물었다.“그러면 지금 어디 있어요?”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서현아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당했듯, 조강국도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지호의 턱
지호가 끝내 대답하지 않은 질문은 결국 해답 없는 수수께끼가 되어버렸다.그리고 해답 없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고 이미아의 병세 역시 마찬가지였다.해외에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희망이 보였는데 귀국한 뒤로는 그마저도 사라진 듯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노 교수님, 지금은 이렇게 기다릴 수밖에 없는 건가요?”시아의 조급한 물음은 절박했다.시아는 미아가 깨어나 자신을 위해 무언가 증명해 주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좋아지기를 다른 사람처럼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랐다.“현 단계에선 어쩔 수 없어요. 특별한 자극이 있지 않은 한 말이죠.”노수한 역시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미아의 회복은 그의 연구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이렇게 답보 상태라면 결국 실패를 뜻했고 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구나 지호와의 협약도 있었다. 진전이 없으면 연구는 종료되고 미아는 자연의 섭리에 맡겨야 했다.이때 시아는 문득 서현아를 떠올렸다. ‘코치님이라면 혹시라도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마침내 마음을 정한 시아는 서현아를 찾아갔다. 서현아는 매주 수요일 밤 요양원에서 남편을 돌보고 갔다. 그리고 그날 서현아가 남편을 챙기고 난 뒤 시아가 다가갔다.“코치님.”서현아의 얼굴엔 감출 수 없는 피곤이 서려 있었다. 서현아는 두 집을 오가며 개인교습을 하고 제자까지 들여 고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시아는 지난번에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서현아의 자존심을 알았다. 함부로 손을 내밀면 오히려 상처가 될 게 뻔했다.“네가 뭘 물어보려는지 알겠지만 아예 입도 떼지 마.”서현아는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듯 단호히 잘라냈다.시아는 더 말할 수 없어 대신 우회했다.“그럼 같이 미아 보러 가주실 수 있을까요? 사부님 목소리를 들으면 분명 좋아할 거예요.”“그 애는 날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거다.”말투는 차가웠는데 이로써 시아는 서현아가 달라졌음을 느꼈다.하지만 그 말속에 뭔가 숨은 뜻이 있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우리
“형하고 함께 있고 싶어?”지호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한마디에 시아는 옅은 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그럼 날 뭐라고 생각하는데?”지호의 말끝에는 묘한 독기가 서려 있었고 시아는 무릎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시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보자 날카로운 선이 한층 더 매서워 보였다.“악의가 없어요. 단지 외할머니 때문에, 난...”“외할머니 때문에 날 따라 결혼했다면 지금은 왜 헤어지자고 하는 거지?”지호는 시아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이에 시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거짓말이 드러났고, 더 이어가면 불편함만 커질 게 분명했다. ‘이제 그만하자.’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만하라는 목소리도 들려왔으나 시아는 그냥 끝내고 싶었다. 마치 지호가 자신의 인생에 없었던 것처럼.“강시아, 사람 속이는 게 그렇게 좋아?”지호가 다시 쏘아붙였다.“무슨 뜻이에요?”“형은 십 년 동안 당신에게 사로잡혀 살았어. 아내가 생겨도 마음은 온통 당신에게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이제 필요 없으니 버린 거고. 지금은 나도 똑같이 취급하는 거야? 아직 다 써먹지도 않았는데 재미없어졌다고 걷어차? 왜 이렇게 못됐어?”지호의 날 선 몰아세움에 시아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금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내가 틀린 말 했어?”지호의 입술 끝엔 냉소가 어려 있었다.시아는 물론 그런 사람이 아니었지만 결과만 보면 지호의 말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지호가 자신을 오해한다면 그냥 그렇게 두면 됐고 어차피 목적은 그와의 결별이었다.시아는 씁쓸하게 입술을 올렸다.“그래요. 내가 못된 사람이라면 더 빨리 손을 터는 게 낫겠죠. 하지호 씨, 지금이라도 끊어내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엔 더 못되게 굴지 모르니까요.”“그래? 난 보고 싶군. 당신이 얼마나 더 못돼질 수 있는지.”지호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쳤다.“지호 씨...”“헤어지자고? 그건 네 착각일 뿐이야. 날 뭐로 보고 당신이 멋대로 흔들 수 있다고
사실 가느다란 창호지는 이미 훤히 비쳐 있었는데 차라리 직접 찢어내는 게 나았다.지호의 손가락이 핸들 위를 두드렸다.“난 당신이 평생 말하지 않을 줄 알았어.”“모두 불편해질까 봐 말하지 않은 거죠.”시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그동안 가슴을 짓눌렀던 답답함이 조금은 풀리는 걸 느꼈다.“게다가 이미 알면서 굳이 밝히진 않았잖아요?”그 말에 지호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그게 다 내 탓이야?”시아는 그런 뜻이 아니었지만 그가 자유를 대하던 태도, 그리고 한낱 트위타에서 비롯된 이 모든 소동을 떠올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지호 씨, 오늘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묻고 싶어요. 당신 내 트위타 계정을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혹시 당신 오빠랑 관련 있는 거예요?”지호의 두 손이 갑자기 핸들을 틀더니 차는 도로 옆에 멈춰 섰다. 남자는 시동은 끄지 않고 비상등만 켰다.“정말 기억 못 해?”“전혀요.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시아는 사실대로 답했다.지호는 헐렁하게 풀린 셔츠 깃을 또다시 잡아당겼고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번졌다.“그럼 당신은 어떻게 형이랑 친구가 된 거지?”“그게 그렇게 중요해요?”시아가 되물었다.“중요하지.”그러나 돌아온 지호의 대답은 단호했다.이에 시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때 내가 빚을 졌거든요.”그 말에 지호의 눈빛이 순간 날카롭게 일그러졌다.“빚?”“학교 다닐 때 한번 크게 다쳐서 친구가 병원에 날 데려갔어요. 그런데 우리 모두 돈이 없었죠. 마침 지나가던 선배가 대신 약값을 내줬고요. 당연히 갚아야 했으니까 연락처를 받아둔 거예요. 그래서 트위타...”시아는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빠져들자 지호의 입술 끝에 비웃음이 스쳤다.“그게 형이 대신 내준 돈이었단 말이지?”“선배 아이디가 ‘열두 살 그해’였어요.”시아는 그것밖에 몰랐다.만약 세도나에서의 그 사건이 없었다면 시아는 아마도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진짜 정체를 평생 몰랐을 것이다.시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봤다.“이제 내 계정
‘하자유의 그 인터넷 친구? 그게 혹시 나를 두고 하는 말인가?’시아의 가슴이 순간 움츠러들었다.그때 등 뒤로 커다란 손이 닿아 천천히 숨을 고르게 도와주었다. 나른하고 낮은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이렇게 음식이 많은데도 형수 입은 멈추질 않네요?”“내가 틀린 말 했어요?”은산은 대꾸하면서도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았다.도도하고 세련된 외모와 달리, 먹는 모습은 거리낌 없고 아주 솔직했다.“동서, 혹시 트위타가 어땠는지 기억나요?”갑자기 은산이 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동서의 남편 형, 그러니까 내 남편은 트위타에만 십 년 넘게 매달렸어요. 거기 있는 어떤 여자애한테 마음을 다 쏟았거든.”시아의 얼굴은 잔뜩 붉어졌다. 테이블 위의 손가락이 움찔움찔 떨렸고, 특히 등 뒤에서 여전히 숨을 달래주던 지호의 손길이 오히려 머리끝까지 전율을 밀어 올렸다.시아는 늘 이 사실이 둘만의 비밀이라고 믿었으나 지금은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다른 여자랑 질투 싸움하는 게 제일 싫어요.”은산은 담담히 웃으며 시아를 바라봤다.“이 점 하나만 봐도 우리 둘은 형님 동서로 지낼 운명이죠.”시아는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쓸데없는 얘기 그만해요. 제 아내까지 끌어들이지 마시고요.”지호의 목소리는 싸늘했고 곧 그의 손길도 시아의 등에서 물러났다.그러나 지호가 건드렸던 감각은 여전히 시아의 몸에 남아 저녁이 끝난 뒤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시아는 애써 모른 체하고 입을 다물었다. 굳이 말 꺼내봤자 괜히 더 어색하고 불편해질 뿐이었다. 차라리 훗날 지호와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되었을 때 차근차근 해명하는 게 나았다.시아는 고개를 숙이며 대화가 빨리 끝나길 바랐지만 은산은 멈추지 않았다.“도련님, 우리 둘이 얘기하는데 끼어들지 마세요.”그러고는 다시 시아를 겨냥했다.“동서가 만약 나라면 정말 신경 안 쓰일 것 같아요?”시아는 답할 수 없었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심지어 옆자리의 지호마저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한 채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허연 허리를 드러낸 여자가 창가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보라색 작업 바지가 골반과 다리 라인을 완벽하게 살리고, 짧게 자른 머리에 붉은 입술은 당당하고 시원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여자는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했다.지호는 그 여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특별히 다정한 동작도, 가까이 붙은 것도 아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조화로움과 편안함이 흘렀다.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여자의 웃음소리는 맑고 경쾌했다.그제야 시아는 자신이 문을 너무 성급히 연 것을 깨달았다. 원래는 노크해야 했지만 지난 며칠간 병실 문을 자연스레 열고 들어오곤 했던 습관이 문제였다.‘그래서, 지금은 들어가야 할까 물러나야 할까?’시아가 망설이는 사이, 창가에 있던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시아를 보았을 때도 당황하거나 불편한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여자가 먼저 미소 지으며 말을 건넸다.“또 보네요.”상대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자, 시아도 담담하게 받아쳤다.“안녕하세요.”“난 잘 지내고 있어요. 당신은요?”여자의 눈빛은 장난기 어린 농담을 담고 있었다.시아는 뜻을 알아차렸지만, 대꾸할 새도 없이 여자가 지호를 불렀다.“지호야, 어서 소개 좀 해. 괜한 오해 만들지 말고.”지호의 깊은 시선은 줄곧 시아에게 머물러 있었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여자의 눈동자 속에서 미세한 파문이 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지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스스로 소개하지?”지호가 말을 하며 시아 쪽으로 걸어왔으나, 시아는 은근히 몸을 옆으로 옮겨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 작은 동작은 여자의 눈에 다 들어왔고, 이내 웃음을 터뜨리며 농담처럼 말했다.“이게 진짜 부부의 애정 표현 아닐까?”“다 너 때문이지.”지호는 여자를 흘겨보았다.“정은산이라고 해요.”여자가 손을 내밀자 그제야 정체를 알았는데, 바로 지호의 큰형수이자 재벌가의 딸이었다.이내 시아도 손을 내밀었다.“강시아예요.”손을 맞잡은 은산은 살짝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혹시 내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