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터닝포인트 / Chapter 161 - Chapter 170

All Chapters of 터닝포인트: Chapter 161 - Chapter 170

475 Chapters

제161화

여도준은 짜증 섞인 얼굴로 말했다.“내 여자친구가 누군데? 나 지금 싱글이야. 우리 벌써 끝났다고.”그 한마디는 강효은의 가슴을 세차게 후려쳤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여도준의 옷깃을 움켜쥐더니 버럭했다.“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제발 좀 그만해라.”여도준은 그녀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며 미친 사람 보듯 차갑게 노려보았다.“효은아, 너 왜 이렇게 변했냐. 하루 종일 의심만 하잖아. 내가 누구랑 통화했는지, 누구랑 있었는지를 따지고 연락 조금만 늦어도 전화 수십 통씩 걸어오고. 숨이 막혀 죽겠다, 진짜.”강효은은 눈가가 벌겋게 물들며 목소리를 떨었다.“이게 다 네 탓이잖아. 네가 나한테 확신만 줬어도 난 이렇게까지 안 했어. 예전에 나도 안 그랬잖아.”“어쨌든 우린 이미 끝났어. 앞으로 내 일에 끼어들 자격 없으니까 내가 누구한테 전화를 걸든, 누구를 만나든 이제는 상관하지 마.”그 말에 강효은은 몸을 휘청였다.차가운 여도준의 얼굴을 보면서 눈물이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그럼 내가 너 때문에 아이까지 지운 건 뭐가 되는데? 그때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아이만 없애면 우리 평생 같이 있을 거라며. 헤어지지 않는다며. 그 말, 다 나를 속이려고 한 거였어? 여도준, 넌 인간도 아니야. 내가 당한 거 다 폭로해 버릴 거야!”하지만 지금의 여도준은 임신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아이를 이미 없앴으니 그만큼 부담도 가벼워졌다.“잘 생각해. 네 나이에 남자 때문에 유산까지 했다는 얘기가 퍼지면 웃음거리가 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너 앞으로 학교에서 어떻게 얼굴 들고 다닐 건데? 동기들이 널 뭐라고 보겠어.”강효은의 입술 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바래졌다.그의 말이 먹혀든 걸 본 여도준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효은아, 우리 둘 다 입 다물면 아무 일도 없는 거야. 그냥 조용히 정리하자. 너 예쁘잖아. 학교에 널 좋아할 사람 얼마든지 있어. 며칠만 지나면 새로운 남자친구 금방 생길 거야.”
Read more

제162화

송지유와 전화를 끊은 신예린은 서둘러 학교 게시판을 열어봤다.이대로 주시우와의 관계가 드러날 줄 알았지만 막상 게시판의 글을 보자 의외의 내용이 가득했다.[당연히 친척이겠지. 아니면 어떻게 밤늦게까지 공부를 봐 주겠어.][그러니까. 아니면 둘이 무슨 사이겠냐고.][그런데 주 교수님이 학교에 친척 있다는 말 못 들었는데.][친척 있다고 사람들한테 말하고 다니겠어?][그 학생 완전 조용히 있었네. 나 같으면 주 교수님이 부임한 날에 바로 떠들고 다녔을 텐데.]사람들은 거의 기정사실처럼 주시우와 신예린을 친척으로 몰아가고 있었다.심지어 성적 좋은 것도 집안 유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그 내용들을 본 신예린은 할 말을 잃었다.그러다가 또 다른 글이 눈에 들어왔다.[주 교수님 결혼반지 끼고 다니시잖아. 혹시 두 사람...]순간, 신예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댓글이 수십 개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막상 댓글을 확인해 보니 전부 똑같은 내용이었다.[그걸 믿으라고?][말도 안 돼.][웃기고 있네.]“...”분명 진실을 얘기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다.이어서 또 다른 글이 눈에 들어왔다.[성이 다르니 사촌은 아닐 테고. 설마 외삼촌? 아니면 먼 친척?]이쯤 되자 신예린은 웃음을 터뜨렸다.마침 주시우가 다 먹은 배달 음식 정리를 끝냈다.웃음을 터뜨린 신예린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왔다.“뭐가 그렇게 웃겨?”신예린은 곧바로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주시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글을 훑었다.대수롭지 않은 내용이라 넘어갈 만했지만 그는 신예린의 반응이 더 신경 쓰였다.주시우는 신예린을 흘긋 보다가 말했다.“다른 사람들이 네 남편이 늙어 보인다고 하잖아. 그게 그렇게 웃겨?”신예린은 웃음을 거두고 일부러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안 웃었는데요?”주시우는 눈썹을 치켜들더니 손으로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다 봤다고.”장난스러운 그 손길에 신예린의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녀는 금세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잘못했어요.”말소
Read more

제163화

그의 시선이 의자에 걸쳐 둔 자신의 외투로 향했다.사실 신예린이 그 옷을 걸쳤을 때부터 주시우는 이미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올랐다.부드럽고 가녀린 그녀의 몸이 자신의 외투 속에 감싸여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마다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신예린 앞에서만큼은 몸도 마음도 컨트롤되지 않았다.주시우는 이마를 짚으며 숨을 고르려 했다.아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도망치듯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떠올라 주시우는 혹시 자신이 지나쳤나 싶었다. 겁을 준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다.하지만 그건 계산된 행동이 아니었다.그저 본능이었다....교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모든 시선이 신예린을 향했다.궁금증에 가득 찬 눈빛들이 노골적으로 따라붙자 그녀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송지유 쪽으로 걸어갔다.송지유는 벌써부터 눈짓과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며 그녀를 맞았다.막 자리에 앉은 참인데 못 참겠다는 듯 한 학생이 몸을 기울여 물었다.“야, 너 진짜 주 교수님이랑 친척 맞아?”그 말을 듣더니 송지유가 긴장한 눈길로 신예린을 바라봤다.그런데 대답 대신 신예린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어 보였다.순간 상대는 무언가 알아챘다는 듯 흥분하면서 손으로 입을 막더니 입꼬리를 씩 올리고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송지유는 황당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아니, 예린이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저 애는 대체 뭘 알았다고 씩 웃는 거지?’수업이 끝난 뒤에도 비슷한 질문이 쏟아졌다.신예린은 그럴 때마다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결국 참다못한 송지유가 사람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야, 너 그 웃음은 뭐야? 왜 다들 뭘 알았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거야?”신예린은 입가를 살짝 올리며 웃음을 흘렸다.“시우 씨가 알려주신 거야. 굳이 답하기 싫으면 그냥 웃으래. 내가 웃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자기가 듣고 싶은 쪽으로 해석한다더라. 생각보다 잘 먹히네.”방금 사무실을 떠나기 전 주시우가 귀띔해 준 방법이었는데 이렇게 효과가 있을
Read more

제164화

신예린은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말했다.“감사해요, 담당자님.”한영빈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다른 직원들이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목소리를 낮췄다.“걱정 말아요. 주 교수님과의 관계에 대해 끝까지 비밀을 지키고 있어요. 게시판이 저 난리인데도 나는 딱 입 다물고 있었다니까요.”그 모습이 어딘가 엉뚱하면서도 웃겨서 신예린은 입가를 꾹 눌러 웃음을 참다가 결국 한마디를 던졌다.“잘 부탁드리겠습니다.”“진실을 알아도 말 못 하는 게 사실 좀 답답하긴 하죠. 그래도 안심해요. 나는 비밀을 지킨다고 하면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에요.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이 없거든요.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첩자 같달까? 고문을 당해도 절대 안 불죠. 강철 같은 사나이니까.”신예린은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웠다.신예린이 떠난 뒤, 학생처 직원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내밀었다.“영빈 씨, 방금 그 애가 주 교수님 친척 맞죠?”‘그럼, 어디 친척뿐이겠어. 그보다 더 가까운 사이인데.’한영빈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겉으로는 고개만 끄덕였다.“네, 맞아요.”‘아내도 친척이라고 할 수 있지. 가장 가까운 가족이니까.’“의외네요. 듣자 하니 성적도 꽤 괜찮다면서요?”그러자 한영빈은 어깨를 쫙 펴고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그럼요. 누가 키워낸 제자인데.”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슬쩍 휴대폰을 꺼내 학교 게시판을 열었다.이미 ‘주시우와 신예린은 친척 관계’라는 말이 정설처럼 굳어진 상태였다. 그러다가 주시우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는 유일한 게시글을 찾아 열어봤다.밑에는 온통 이런 댓글뿐이었다.[그걸 믿느니 여포가 효도하는 걸 믿고 말지.]한영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진실을 알게 되면 다들 깜짝 놀라겠지? 여기서 조롱하고 있는 애들은 그때 가서 얼마나 창피할까?’한영빈은 몰래 그 댓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이 정도면 비밀 누설도 아니잖아.’
Read more

제165화

신예린은 미소를 짓더니 그 사진을 저장했다.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마침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뀔 때 주시우는 고개를 돌렸다.그래서 사진을 저장하고 있던 신예린을 발견했다.신예린은 괜히 쑥스러워 변명하기 시작했다.“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이 얼마 없잖아요.”주시우가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갑자기 카카오톡 영상통화 알림이 울렸다.발신자는 고원숙이었다.신예린은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그러자 화면 속에 인자한 미소를 지닌 얼굴이 나타났다.“예린아, 할머니야.”“할머님!”신예린이 반가운 목소리로 불렀다.“그래.”고원숙은 금세 대답했다.“갑자기 전화했는데 할머니가 귀찮게 군 건 아니지?”“아니에요.”고원숙 쪽의 카메라가 이리저리 흔들렸다.“뭐 하고 있었어? 밥은 먹었어?”“방금 학교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 아직이에요.”“어휴, 시우 그놈은 이 시간까지 아내 밥도 못 챙겨주고 뭐 하는 거야.”신예린은 뜨끔해 눈길을 주시우 쪽으로 흘렸다.그러자 주시우가 낮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바로 옆에서 다 듣고 있어요.”하지만 고원숙은 당당하게 맞받아쳤다.“들으면 어때! 내가 틀린 말 했어? 멀쩡한 대학교수란 사람이 아내 밥도 굶기고. 이게 말이 돼?”꽤 무거운 ‘누명’이 씌워졌다.신예린은 다급하게 설명을 시작했다.“아, 아니에요! 할머님, 그런 거 전혀 아니에요. 지금 집에 가는 길이고 곧 밥도 먹을 거예요.”“그래?”고원숙은 신예린을 보더니 다시 환한 미소를 지었다.“예린아, 배고프면 꼭 시우한테 말해. 너 너무 말랐어. 많이 먹어야지.”“저 안 말랐어요.”신예린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새해에 무슨 계획 있어? 본가에 올 거야?”어린애를 달래는 듯 따뜻한 목소리였다.신예린은 운전 중인 주시우를 슬쩍 바라보며 의견을 물었다.주시우는 한 손으로 핸들을 쥔 채 태연하게 말했다.“너 하고 싶은 대로 해.”새해에 가족이 모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에 신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갈게요.”“잘됐다!”고
Read more

제166화

신예린은 어안이 벙벙했다.주시우의 행동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결혼하자더니 곧장 결혼해 버렸던 그때도 느꼈지만 말이다.신예린은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그런데 화면에 비친 자기 모습에 깜짝 놀라 기겁하듯 카메라를 끄고는 서둘러 필터가 달린 앱을 켰다.‘이거야말로 내 원래의 모습이지. 그래.’신예린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휴대폰을 들어 올렸다.바로 뒤에서 주시우가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여 다가왔다.귀 옆으로 스치는 그의 숨결에 신예린은 온몸이 화끈거렸다.손이 덜덜 떨렸지만 사진이 흔들릴까 봐 애써 침착한 척하며 셔터를 눌렀다.사진을 확인한 순간, 신예린의 표정이 구겨졌다.주시우의 얼굴은 날렵했는데 그 옆의 자기 얼굴은 괜히 더 크게 찍힌 것 같았다.신예린은 투정 부리듯 휴대폰을 떠맡기고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앞에 좀 있어 줘요.”주시우는 묵묵히 휴대폰을 들더니 방금 신예린이 했던 것처럼 팔을 쭉 뻗어 앞에 들어 올렸다.“좀 더 높이요.”신예린이 당부했다.주시우가 그대로 따르자 신예린이 다시 말했다.“너무 높아요.”주시우는 팔을 다시 낮췄다.그 순간, 신예린은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그 까다로운 주 교수님이 자기 말대로 다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신예린은 입가가 달콤하게 휘어지며 카메라 앞에서 브이를 그려 보였다. 주시우도 따라서 손가락으로 브이 포즈를 취했다.하지만 한참 동안 기다려도 셔터가 눌리지 않았다.“찍어야죠!”신예린이 재촉했다. 웃느라 얼굴이 굳어버릴 지경이었다.주시우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사진 속 우리의 모습이 현실이랑 좀 다른 것 같아.”짧은 정적이 흘렀다.신예린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주시우가 물었다.“왜 그래?”무슨 말실수라도 했나?“이, 이건 앱인데요. 사람 얼굴을 더 예뻐 보이게 해주죠.”신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설명했다.그러고는 혹시 주시우가 또 뭔가를 물을까 봐 황급히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얼른 찍어요.”신예린은
Read more

제167화

신예린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손을 내밀었다.“좋아요. 한 장에 2,000원이에요.”예전 같았으면 감히 주시우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주시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그래.”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신예린의 손을 꼭 잡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따스한 큰 손에 손가락 끝까지 감싸지자 신예린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그제야 신예린은 알게 되었다. 송지유가 연애할 때 왜 하루 종일 웃고 다녔는지.이런 연애라면 그 누구라도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다.그날 밤, 주시우는 정말로 신예린에게 돈을 이체했다.신예린은 서재에서 주시우가 가져다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고 주시우는 여유롭게 테이블에 기대어 서 있었다.그는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때, 신예린의 휴대폰이 울렸다.알림을 확인해 보니 주시우가 10,040원을 보내왔다.진짜 돈을 보낼 줄 몰랐던 신예린은 고개를 들어 주시우를 바라봤다.주시우도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는 말했다.“사진 여섯 장이니까 12,000원인데 부부니까 할인 좀 해줘.”“왜 하필 10,040원이에요?”신예린은 알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주시우는 미소를 머금고 낮게 물었다.“왜일 것 같아?”감미로운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그의 말이 한층 더 달콤하게 느껴왔다.신예린은 애써 들뜬 기분을 감추며 일부러 퉁명스레 말했다.“그럴 거면 차라리 1004의 백배를 보내지 그랬어요.”“그럼 네가 받았을까?”신예린은 말문이 턱 막혔다.그렇다.주시우가 100,400원, 1,004,000원을 보내왔다면 신예린은 절대 받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10,040원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부담스럽지 않은 금액이라 신예린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그냥 장난 한번 친 거야.”주시우의 목소리에는 다정함이 묻어났다.애초에 신예린이 사진 한 장에 2,000원이라고 한 것도 그저 농담이었다. 그런데 주시우는 그 장난을 끝까지 맞춰 주고 있었다. 마치 아이를 달래듯이 말이다.신예린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돈
Read more

제168화

주말을 하루 앞둔 날, 주시우는 갑작스럽게 교감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다른 의과대학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통보였다.그 소식을 들은 신예린의 표정이 단번에 무너졌다.그녀는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내일 쇼핑은 저랑 어머님 둘만 가야 하는 거예요?”“마침 그 얘기를 하려고 했어.”주시우는 휴대폰을 들더니 말했다.“엄마한테 말씀드려서 날짜를 바꾸면 돼.”주시우가 전화를 걸려는 순간, 신예린이 재빨리 그의 휴대폰을 낚아챘다.주시우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갑자기 약속을 깨는 건 예의가 아니에요.”신예린은 결심한 듯 단호하게 말했다.“그냥 갈게요.”주시우는 원래 그녀를 말릴 생각이었다.하지만 신예린은 주시우의 부모와 사이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이번 기회에 정을 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앞으로는 한 가족이 될 사이니까 말이다.게다가 김수희는 절대 신예린을 모질게 굴 사람이 아니었다.“좋아.”주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신예린을 안심시켰다.“걱정하지 마. 우리 엄마 호랑이 아니니까 괜히 겁먹지 마.”신예린은 그를 흘깃 보더니 물었다.“그럼 시우 씨랑 우리 엄마랑 단둘이 있어야 한다면요? 긴장 안 할 자신 있어요?”주시우는 태연히 웃으며 대답했다.“긴장해야 할 사람은 어머님일걸?”신예린은 믿지 않는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많이 편해졌나 보네. 이렇게 까부는 걸 보니까.’...주말 아침.김수희는 신예린을 직접 데리러 오려 했지만 마침 주시우가 회의 때문에 학교로 가는 길이라 조금 돌아가면서 신예린을 백화점 앞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백화점 앞에 도착했을 때, 신예린이 긴장한 기색을 보이자 주시우가 웃으며 말했다.“너무 긴장하지 마. 혹시 진짜 못 버티겠다 싶으면 구조 요청을 보내.”신예린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주시우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봤다.주시우는 인내심을 가지며 설명했다.“나한테 바로 전화하라고.”“전화하면요?”“내가 할머니 핑계를 대서 엄마를 불러내면
Read more

제169화

김수희는 신예린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불렀다.“예린아.”신예린은 살짝 긴장한 채 다가가 공손하게 인사했다.“어머님, 안녕하세요.”김수희는 따뜻한 눈빛으로 신예린의 손을 자연스럽게 잡았다.“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오는 길에 차가 좀 막히더라. 주말이라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아서.”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신예린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이내 부끄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그래?”김수희는 신예린의 머리를 유심히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머, 이 똥머리 어떻게 한 거야? 너무 예쁘다. 다음에 나한테도 좀 가르쳐줄래?”“네, 그럴게요!”신예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칭찬 덕분에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가자. 예쁜 옷 있나 한 번 봐야지.”김수희는 신예린의 손을 잡은 채 곧장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사실 신예린은 아직도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전날 밤 인터넷에서 김수희와 주혁재 부부의 사진을 몰래 찾아봤을 정도였다.사진 속 두 사람은 늘 정장 차림에 근엄한 표정, 가까이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직접 만나 보면 전혀 다른 사람들이었다.게다가 김수희가 향한 곳은 유명 명품 매장이 아니라 가격대가 합리적인 캐주얼 브랜드였다. 옷 한 벌이 몇만 원 선이어서 신예린은 오히려 가슴을 쓸어내렸다.뒤늦게서야 신예린은 깨달았다.주씨 집안도 주시우와 마찬가지였다. 불쑥 다가온 이방인 같은 존재인 그녀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끝없이 품어주었다는 걸.“예린아, 어떤 옷 스타일이 좋아?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골라봐.”김수희가 다정하게 말했다.이미 몇 벌은 살 생각으로 왔기 때문에 신예린은 괜히 유난을 떨기 싫어 더 사양하지도 않았다.“어머님은 어떤 게 마음에 드세요?”“나도 보고 있어.”김수희는 옆에 걸린 옷 하나를 집어 들어 자기 몸에 대보며 물었다.“이건 어때? 나한테 잘 어울리니?”알록달록한 패턴이 들어간 옷이라 김수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신예린은 웃음을
Read more

제170화

주시우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일부러 휴대폰을 가까이에 꺼내 놓았다.그래서 김수희가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회의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주시우는 잠시 고민하다 휴대폰을 열었다.사진 속 신예린은 부드럽고 앙증맞게 보였다. 카메라를 향한 눈빛은 마치 주시우를 직접 바라보는 듯했다.옅은 보랏빛 코트 덕분에 피부가 한층 더 하얗게 빛났다.주시우는 사진을 저장하고는 곧이어 김수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예쁘네요. 사도 될 것 같은데요?][우리 예린이가 입으면 뭔들 안 예쁘겠어?][다른 옷 사진도 있어요?][네 와이프 사진이 그렇게 보고 싶어?][네.]주시우가 그렇게 태연하게 받아치자 김수희는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사실 주시우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침착했다. 다른 아이들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닐 때도 주시우는 묵직하고 차분히 있었다. 조숙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김수희가 한 번은 공원에서 미끄럼틀을 가리키며 주시우에게 말했었다.“시우야, 저거 타고 싶지 않아?”그때 고작 다섯 살 남짓했던 주시우는 슬쩍 고개만 돌리더니 담담하게 대답했다.“그건 어린애들이나 타는 거예요.”그 말을 들은 김수희는 제자리에서 얼어붙었다.‘너도 고작 다섯 살이면서 어른 흉내를 내려고 하네.’그 뒤로 김수희는 혹시 아들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 병원까지 데려갔었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오히려 뜻밖의 결과가 기다려졌다.주시우의 지능이 또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진단이었다.그 소식에 온 집안이 떠들썩해졌다.당시 살아 계셨던 할아버지도 손주를 끌어안고 몇 번이나 뽀뽀를 했다.그러자 주시우는 태연한 얼굴로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침 묻었어요.”그 뒤로 주시우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를 좋아하는 여자아이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원래 주시우 가족들은 지금처럼 호화로운 별장이 아니라 일반 주택에서 살았었다.하지만 주시우를 좋아하는 여학생들이 직접 집까지 찾아오는 일이
Read more
PREV
1
...
1516171819
...
4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