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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노출이 그다지 심한 건 아니었다. 짙은 파란색 옷이 여자의 굴곡진 몸매를 감싸고 치맛자락 사이로 드러난 긴 다리는 가늘고 날씬했으며 발목에는 아직도 모래가 묻어 있었다.선글라스를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이쪽으로 걸어오던 여자는 짧은 머리를 휘날리며 정교한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온몸에서 섹시하고 요염한 매력이 흘러나왔다.소지훈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코에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주아윤이 신예린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대부님 코피 나요.”천둥소리 같은 말에 정신을 차린 소지훈이 자기 코를 만져보니 이런, 정말 코피였다.이정현이 눈앞에 다가오자 창피함을 느낀 그는 급히 등을 돌리고 허둥지둥 손등으로 코를 닦았다.신예린은 괜히 이정현이 소지훈의 못난 모습을 보지 않도록 살짝 웃으며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갔다.“이 선생님.” 그녀가 인사를 건네며 주아윤에게 말했다. “아윤아, 정현 이모한테 인사해야지.”주아윤이 작은 얼굴을 들고 앳된 목소리로 불렀다. “이모, 안녕하세요.”“아윤이는 참 착하구나.”이정현은 주아윤 앞에 쪼그려 앉아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아이의 작고 말랑말랑한 볼을 콕 찔렀다.환송회 날 밤에 봤을 때부터 찔러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소원을 이뤘다.주아윤도 화내지 않고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이자 이정현은 녹아내리는 마음을 안고 아이에게 물었다.“아윤아, 어떤 장난감 좋아해?”“네?”그녀의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주아윤이 고개를 갸웃하며 바라보자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이정현은 웃으며 다시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일어나서 주시우를 바라보자 주시우는 이정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온화하고 정중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주 교수님, 요즘 과에서 인기가 대단해요. 다들 교수님과 신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주시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마침내 이정현의 시선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소지훈에게 향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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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모래사장에서 가장 흔한 건 조개껍질이었다. 주아윤은 작은 삽을 들고 계속 파내며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신이 나서 작은 통에 넣었다. 신예린과 이정현은 곁에서 지켜보며 계속해서 아이를 칭찬했다. 나중에 두 사람이 땡볕에 지쳐버리자 이번엔 두 남자가 주아윤의 곁을 지키게 되었다.신예린과 이정현은 해변 의자에 누워 각자 음료를 들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출근 안 하니까 좋네요.” 이정현이 감탄했다.“휴가 내내 혼자 놀았어요?” 신예린이 물었다.“네.”“지루하지 않았어요?”신예린은 본인이 꽤 독립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해외에서 몇 년을 버티지도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혼자 여행 가는 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차라리 혼자 집에 있는 게 나았고 지금은 주시우와 주아윤이 함께 있으니 더더욱 그럴 리 없었다.“아니요. 익숙해요.” 이정현은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혼자 놀면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잖아요. 몇 시에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호텔 밖에 나가기 싫으면 방에 틀어박혀 있어도 돼요.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혼자 사는 게 좋은데 왜 소개팅을 하려고 해요?”한 마디에 이정현은 말문이 막혀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 가끔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 주변이 조용하고, 휴대폰을 켰을 때 업무 외에는 아무도 메시지를 보내지 않으면 누군가 곁에 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특히 오늘 아윤이를 보니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아요.”그녀의 시선이 주아윤 쪽으로 향했을 때 소지훈과 주시우가 각각 주아윤 양옆에 서서 아이의 팔을 들어 올린 채 앞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그들은 주아윤의 팔이 탈골되지 않도록 겨드랑이를 잡고 있었다.아무리 봐도 꼭 화목한 한 가족 같았다.이정현이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러는데 내가 오해를 하는 것도 당연하죠.”신예린이 그쪽을 바라보며 한참 후 말했다.“우린 없어도 되겠네요.”그 말에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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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영특한 녀석, 이런 것도 다 알고 있구나.’소지훈이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차에서 엄마가 말했어요. 대부님이 결혼하길 원하면 정현 이모랑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하라고.”소지훈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제수씨, 최고! 이정현 씨와 결혼하면 제수씨가 상석에 앉으세요.”“대부님, 나한테 맡겨요.”주아윤은 어른스럽게 가슴을 두드렸다.“아윤아, 너도 상석에 앉아.”소지훈은 흐뭇한 얼굴로 주아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오랫동안 예뻐해 준 게 보람이 있는지 이제 주아윤이 나설 때가 된 것 같았다.신예린이 한창 이정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주시우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왜 돌아왔어요?”신예린이 손에 들고 있던 음료를 그에게 건네자 주시우가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쫓겨났어.”“네?”신예린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저쪽에서 주아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이모, 정현 이모!”이정현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아윤아.”주아윤이 멀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연 날릴 줄 알아요? 나랑 같이 연 날려 줘요.”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부탁을 누가 거절하겠나. 이정현은 재빨리 일어섰다. “금방 갈게.”말하며 그녀는 서둘러 걸어갔다.주시우가 신예린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내가 왜 돌아왔는지 알겠지?”신예린이 알겠다는 듯 옆자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누워서 구경이나 해요.”이정현이 걸어갔을 때 연은 이미 소지훈이 들고 있었고 그가 이렇게 물었다.“연 날릴 줄 알아요?”“잘 못해요.” 이정현이 고개를 젓자 주아윤이 재빨리 말했다. “못해도 괜찮아요. 대부님이 연 날리는 거 엄청나게 잘하거든요.”소지훈은 칭찬에 입꼬리가 올라가며 더욱 마음이 들떠서 집에 돌아가면 주아윤에게 큰 닭 다리를 상으로 주기로 마음먹었다.이정현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게 느껴지자 그는 재빨리 입꼬리를 내리고 애써 침착한 척했다. “사실 그다지 잘하는 건 아니고 어릴 때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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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주아윤이 신나서 이정현에게 말했다. “이모, 대부님 정말 대단하죠?”이정현은 침착한 소지훈을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무척 대단하네.”그 말에 소지훈은 더 이상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기 힘들었고 몸이 둥둥 뜨는 기분을 느끼며 이정현에게 말했다.“봐요. 더 높이 날릴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무조건 더 높이 날 거예요.”모래사장에는 그들 외에도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지훈은 릴을 들고 달리기 시작하며 멋지게 달리는 자세를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이미 자신이 이 바닷가에서 가장 멋진 남자라고 상상하고 있었다.“봐요. 날아올랐어요.”이정현의 시선이 연으로 향하자 그는 더 힘껏 달렸다. 그런데 발이 부드러운 모래 위에서 미끄러지며 슬리퍼 밑창이 발목으로 올라가더니 그대로 모래사장에 넘어지고 말았다.“대부님.”멀리서 주아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윤아, 대부님이라고 부르지 마. 이제부터 너에게 대부님은 없어. 오직 체면이 구겨진 남자만 있을 뿐이지.’어수선한 발소리 사이로 주아윤의 외침이 섞여서 들렸다.“대부님, 괜찮아요? 괜찮아요?”그들은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소지훈 앞으로 달려갔다. 그의 얼굴 전체가 모래에 파묻혀 있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괜찮아요?” 이정현이 조심스럽게 그를 밀자 절망에 빠진 소지훈은 대답하지도 못한 채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주아윤은 소지훈이 전혀 반응하지 않자 눈시울이 금방 붉어지며 소리쳤다.“대부님, 죽지 마세요. 대부님, 저 무섭게 이러지 마요.”소지훈은 주아윤이 울려고 하자 급히 고개를 들며 입에 든 모래를 뱉어냈다.“아윤아, 난 괜찮으니까 무서워하지 마. 난 괜찮아.”고개를 들자 그의 얼굴 전체가 모두에게 드러났다. 모래로 범벅이 된 얼굴은 초라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워 보였다.이정현과 주아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거의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소지훈은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한편 신예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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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소지훈은 순간 마음이 설레었다.‘나한테 웃어줬어.’저녁 식사 장소는 호텔 근처 해산물 포장마차였다. 그들은 한 테이블 가득 해산물을 시켰고 주시우는 신예린에게 새우를 까주고 있었으며 주아윤은 계속해서 소지훈에게 이것저것 시켰다.“대부님, 저거 먹고 싶어요.”“대부님, 나 엄마처럼 새우 먹고 싶어요.”“대부님, 이 소스 좀 매워요. 안 먹을래요.”이정현은 먹으면서 네 사람을 관찰했다.신예린과 주시우 사이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이 늘 평화롭고 따뜻했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소지훈과 주아윤이 친 부녀지간 같았다. 아이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새우를 까주고 입도 닦아주며 밥 먹는 내내 바쁘게 움직였다.이정현은 문득 머릿속에 ‘딸바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무엇보다 주시우는 소지훈의 행동이 어이가 없다는 듯 굴었다.“아윤이 혼자 먹게 해. 걔도 손 있어. 너도 좀 먹어.”소지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나 지금 먹고 있어, 씹고 있다고.”자신이 좋아서 자처하는 게 느껴졌고 주아윤도 소지훈과 무척 가까워 보였다.주시우가 신예린에게 속삭였다. “몇 년 동안 나와 얘가 제일 많이 다퉜던 게 뭔지 알아?”신예린은 호기심이 들었다.“뭔데요?”“난 아윤이가 자유롭게 컸으면 좋겠는데 얘는 너무 챙겨준다는 거야. 저러다 화장실도 대신 가겠어.”신예린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내 눈에도 보여요.”“매일 만나지 않아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아윤이 버릇만 나빠지겠어.”신예린이 자연스럽게 거들었다.“내가 얼마나 당신 뜻에 잘 따르는지 봐요. 당신 교육 방식에 완전히 동의하잖아요. 나밖에 없죠?”말하며 남자를 살살 구슬리듯 그를 향해 찡긋 윙크하자 주시우가 웃으며 껍질을 벗긴 새우를 신예린의 입에 넣어주었다.이때 주아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부님, 이 그릇은 뭐예요?”주아윤이 가리키는 작은 그릇 안에는 껍질을 벗긴 새우가 가득했다. 아이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릇을 잡으려 하자 소지훈이 재빨리 가져갔다.소지훈은 주아윤을 향해 말을 더듬으며 이정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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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소지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음식을 먹으며 이정현이 자신이 직접 껍질을 벗긴 새우를 집어 입에 넣는 모습을 흘깃 보았다. 그녀가 입에 넣는 순간 소지훈의 마음속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이렇게 세심하게 신경 써 주면 오늘 오후에 있었던 그 창피한 일을 만회할 수 있겠지.’“이 선생님, 오늘 밤에 우린 해변에서 텐트 치고 밤에는 별을, 아침 일찍 일어난 뒤엔 일출을 볼 생각이에요.”신예린이 입을 열었다.“좋아요.”이정현은 듣자마자 눈이 반짝이더니 곧바로 무언가를 떠올렸다.“근데 전 텐트를 안 가져왔네요. 빌릴 수 있는 가게가 있는지 찾아볼게요.”신예린이 소지훈을 흘끗 쳐다보자 눈치 빠른 그가 재깍 말했다.“내가 준비했어요.”이정현이 돌아보자 남자는 금세 다시 수줍어하며 차마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제가 이 선생님 텐트도 준비했어요.”이정현은 그를 몇 초 바라보더니 거절하지 않았다.“고마워요. 소 선생님.”“아니에요. 고맙긴요.”고개를 든 주아윤은 소지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걸 보았다.9시가 넘어서 그들은 함께 필요한 텐트를 해변으로 옮긴 뒤 텐트 설치에 착수했다.3인용 텐트는 주시우도 처음 사용해 보지만 다행히 미리 사용법을 익혀서 설치하는 건 비교적 순조로웠다.신예린도 옆에서 물건을 건네주고 함께 고정하는 일을 도왔다.이쪽에선 속도가 빨라 금방 큰 텐트 하나가 완성되었다. 신예린은 소지훈과 이정현 쪽에서 아직 시작도 안 한 것 같아 주시우에게 물었다. “우리가 가서 도와줄까요?”“됐어.” 주시우가 무심한 어투로 말했다. “두 사람에게 함께 있을 시간을 줘야 한다며?”“그렇지만 뭔가 저쪽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아요.”주시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함께 어떤 일을 해결하는 게 오히려 두 사람의 감정을 키울 수도 있어.”신예린이 그 말을 듣고 주시우를 흘깃 쳐다보며 말했다. “주 교수님은 참 잘 아시나 봐요.”그는 자연스럽게 여자의 어깨를 감싸고는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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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주시우는 자신이 신예린의 속임수에 걸렸다는 걸 알고 눈가에 미소를 머금었다.옆에 있던 주아윤이 그 모습을 보고 달려들었다. “나도 놀래요. 나도.”세 식구는 모래 위를 함께 뒹굴며 끊임없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따뜻하고 화목한 이쪽에 비해 소지훈 쪽은 다소 수줍어 보였다.그는 텐트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설명서에 이렇게 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잠깐만요. 다시 한번 확인해 볼게요.”소지훈은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판매자가 보낸 설명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이때 이정현도 다가왔다.코끝에서 전해지는 향기에 소지훈이 들고 있던 휴대폰이 살짝 떨렸다.아주 가까이 다가온 이정현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까지 볼 수 있었다.소지훈은 무의식적으로 숨을 죽이고 온전히 이정현에게 집중했다.‘너무 가까워. 이렇게 가까운 건 처음이야. 엄마, 아들 출세했어요. 그녀가 제게 다가왔어요.’1, 2분이 지나고 이정현의 숨결이 멀어지더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는지 알겠어요.”그러고는 텐트를 들고 어설프게 만지작거렸다.조금도 설명서를 보지 못한 소지훈은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야 했고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곧 두 개의 텐트가 쭉 펴져 모래사장에 똑같이 박혔다. 여름의 바닷바람은 시원했지만 소지훈은 살짝 숨을 헐떡이며 기쁜 듯 이정현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성공했어요.”손을 든 뒤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은 그는 이정현이 자신을 바라보며 가만히 있자 어색하게 손을 내리려 했다.짝!손바닥이 살짝 맞닿는 동시에 소지훈의 마음도 쿵 내려앉았다.소지훈이 입꼬리를 올리는 사이 이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텐트 하나 치고 이렇게 숨을 헐떡거리다니, 소 선생님 체력이 좀 안 좋으신가 보네요.”“...”이정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신예린 일행의 텐트 쪽으로 걸어갔다.뒤에서 소지훈이 불만스럽게 외쳤다. “내 체력이 안 좋다고 누가 그래요? 엄청 좋거든요!”이정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그를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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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주아윤이 손발을 동원해 그들 위로 기어오르자 신예린과 주시우는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주아윤의 볼에 입을 맞췄다.일부러 힘을 준 탓에 주아윤의 말랑한 볼이 찌그러지며 입술도 삐죽 내밀었다.“까르르.”주아윤의 은방울 굴러가는 듯한 웃음소리가 텐트 안에 울려 퍼졌다.소지훈은 옆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양반다리를 한 채 텐트 안에서 밤하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옆에 있던 이정현이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자 소지훈은 망설이던 끝에 물었다.“자요?”“아니요.”곧 이정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별 봤어요?”“... 무슨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소지훈 본인도 다소 억지스러운 말이라고 생각했다.잠시 생각하던 소지훈이 다시 물었다. “언제 여기를 떠날 거예요?”“내일 저녁이면 떠나요.”“다음엔 어디로 가요?”“주경이요.”“네?”이정현의 어이없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출근 안 해도 되는 백수인 줄 알아요? 벌써 일주일이나 쉬었어요.”“아, 네.”소지훈은 어쩔 줄 몰라 했다.“저쪽 사람들은 언제 돌아가는데?”“모레, 우리도 사흘밖에 안 쉬었어.”“아.”두 사람 사이에 다시 적막이 흐르고 파도 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멍청아, 빨리 로맨틱한 주제를 생각해 내. 함께 대화할 기회가 드물게 생겼는데.’소지훈은 머리를 쥐어짜다가 문득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이 해변에 가끔 멧돼지가 출몰한다고 들었는데 밤에 뭔가 이상한 게 느껴지면 소리쳐요. 내, 내가 지켜줄게요.”말하고 나니 소지훈 본인도 민망했다.옆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래요.”그 대답에 소지훈은 잔뜩 마음이 들떴고 곧이어 이정현의 하품 소리가 들리자 소지훈이 재빨리 말했다. “졸리면 자요. 내일 일출 볼 때 내가 깨워줄게요.”“좋아요.”이정현은 말하며 텐트 지퍼를 올리고 매트 위에 누웠다.그녀가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옆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잘 자요.”이정현은 몸을 뒤척이며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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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주아윤은 그 말에 신나서 아빠 엄마 쪽으로 달려갔다.6시의 바닷가 바람은 꽤 세게 불었다. 신예린은 어깨에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고 주시우는 그런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두 사람은 모래사장에 서 있다가 주아윤이 달려오자 주시우가 쪼그려 앉아 아이를 안아 올렸다.멀리 바다 수평선 위의 희미한 빛이 점점 더 밝아져 갔다. 하늘과 바다가 이어지는 지평선 위로 주황빛 태양이 떠오르며 해안선을 환히 비췄다. 바다 위로 쏟아지는 빛은 마치 대지를 어루만지는 듯했고 저 멀리 갈매기들이 일출의 찬란한 빛 속에서 날갯짓하며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냈다.“해가 달걀노른자 같아요.”주아윤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모래사장에 나란히 선 그들을 떠오르는 태양이 환하게 비추자 얼굴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었고 눈동자에도 반짝이는 빛이 가득했다.사람은 몇 안 되는 이런 순간을 위해 살아간다.신예린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보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주아윤의 들뜬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울려 퍼지고 곁에 있던 사람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익숙한 향기가 그녀의 마음을 다독였다.이 행복한 감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주시우를 바라보았다.금빛 태양은 남자의 옆모습을 더욱 부드럽게 비추었다. 깊고 짙은 눈동자는 마치 멀리 있는 바다의 반짝이는 물결 같았다. 그녀가 바라보자 그도 고개를 돌려 신예린을 바라보았다.주시우는 신예린의 살짝 붉어진 눈가를 보았다.“왜 그래?”그의 낮은 목소리는 파도 소리와 어우러져 더욱 부드럽게 들렸다.신예린은 주시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입술을 살짝 올리며 속삭였다. “행복해서요.”주시우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해외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당신과 아윤이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정말 행복해요.”“나도 그래.” 주시우는 신예린의 어깨에 얹은 손으로 그녀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행복해.”“아윤이는 어때, 아윤이도 행복해?”신예린이 손을 뻗어 주시우가 품에 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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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소지훈은 말하면서도 다소 흥분한 기색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어젯밤 잠들기 전 상상했던 모든 것이 마침내 실현되어 이정현에게 자신이 얼마나 용맹하고 위엄 있는지 보여줄 생각뿐이었다.소지훈은 주먹을 꽉 쥐고 멧돼지 쪽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멧돼지는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검은 눈동자를 그들에게 고정하고 있었다.“예린아.”주시우가 땅에서 텐트 말뚝을 주워 손에 쥐며 신예린에게 말했다.“너는 아윤이와 이 선생님 데리고 먼저 가서 경찰에 신고해.”신예린은 품에 안긴 주아윤을 바라보며 그들이 이곳에 머물러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이 선생님.”신예린은 한 손으로 주아윤을, 다른 손으로 이정현을 잡아끌며 주시우와 소지훈의 뒤로 물러났다.“조심해요.”소지훈이 맨손으로 무기도 없이 서 있는 것을 본 주시우는 그의 손에 막대기를 쥐여주며 말했다.“정말 네 주먹으로 저것과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해?”소지훈은 자신이 유치한 액션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것 같기는 했다.“저게 어쩌다 갑자기 나타난 거지?” 그는 막대기를 꽉 쥐며 물었다.“먹이를 찾아 나온 모양이야.”주시우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뒤를 힐끔 쳐다봤다. 신예린 일행이 멀리 떨어져 있는 걸 확인한 뒤 그가 소지훈에게 말했다.“조금 있다가 우리는 녀석을 다른 쪽으로 유인할 거야.”소지훈은 바로 알아들었다.“알겠어.”이때 멧돼지의 울부짖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눈빛이 사나워지며 다리를 움직여 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주시우와 소지훈은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한 뒤 신예린 일행과 반대 방향으로 달려갔다.귓가에 바람 소리가 휘몰아치고 뒤에서 들려오는 멧돼지의 울부짖음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주시우는 계속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반드시 수비를 공격으로 전환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소지훈.” 주시우는 곁에서 필사적으로 달리는 소지훈을 부르며 말했다. “우리...”말을 마치기도 전에 멧돼지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가더니 곧장 소지훈을 쫓아갔다.“...”“아니, 왜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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