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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돌이킬 수 없는: Chapter 241 - Chapter 250

266 Chapters

제241화

강시연은 잠시 의아해하며 물었다.“뭘 아셨다는 거예요?”허자옥은 다급하게 말했다.“아까 저쪽에서 빨간 조각들이 잔뜩 흩어져 있는 걸 봤어. 처음에는 폭죽 터진 흔적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수혁이가 남겨둔 흔적일 거야.”허자옥은 강시연의 손을 붙잡고 서둘러 동남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아니나 다를까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조각들이 이어져 하나의 길처럼 보였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다.그 길을 따라간 일행은 대나무숲 앞에 닿았다. 바닥에는 뚜렷하게 차 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고 다행히 며칠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흔적이 선명했다.그 순간 강시연은 눈빛이 번쩍였다.“따라가 봅시다.”그들은 바퀴 자국을 따라 계속 걸었고 얼마나 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한참을 간 끝에 인적 없는 산 중턱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낡은 승합차 한 대가 버려져 있었지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차가운 바람이 스쳐 가며 낙엽이 사각거렸고 사방은 숨 막힐 만큼 고요했다.강시연은 온몸을 긴장시키며 주위를 살피다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태오 씨, 지금 바로 경찰에 연락해요. 슬그머니 이 근처를 포위할 수 있도록요. 나머지는 둘씩 짝을 지어 절대 홀로 떨어지지 말고 계속 수색해요.”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강시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단호하고 냉철한 목소리에는 자연스레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강시연의 모습이 진수혁과 겹쳐 보였다.허자옥은 마음이 복잡해졌다.‘아... 이제야 알겠네. 수혁이와 도현이가 왜 시연을 좋아하는지 말이야.’“어머님?”그때 강시연이 고개를 돌리며 재촉했다.“어서 갑시다.”허자옥은 순간 넋이 나가 있다가 무심코 말했다.“그냥 어머니라고 불러도 돼.”“네?”강시연은 눈썹을 찌푸렸고 허자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허자옥은 자신도 뒤늦게 깨닫고는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빨리 가자. 수혁이가 기다리고 있겠어.”해가 저물어가자 일행은 수색 속도를 더 높였고 강시연은 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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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진수혁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정신을 잃은 듯 누워 있었다.평소 단정하던 하얀 셔츠는 먼지에 절어 구겨져 있었고 강시연은 그렇게 초라한 모습의 진수혁을 처음 보았고 가슴 어딘가가 알 수 없이 찌르듯 아려왔다.순간 정신을 차린 강시연은 곧장 밖으로 뛰어나가 유태오를 불렀고 진수혁을 등에 업혀 병원으로 옮겼다.짙은 소독약 냄새가 병실 안을 가득 채웠다.강시연과 허자옥은 침대 양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침대에 누운 진수혁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눈은 감긴 채 미동도 없었다.“선생님, 제 아들의 상태가 어떤가요?”허자옥은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 다급히 묻자 유성민은 침착한 목소리로 답했다.“사모님, 우선 진정하세요. 진 대표님은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몸에 몇 군데 깊은 내상이 있으니 당분간 요양이 필요합니다.”허자옥은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곧 이어진 말에 다시 얼굴이 굳어졌다.“하지만... 뇌 쪽에 심한 충격을 받은 흔적이 있습니다. 특히 전두엽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되어 있는데 정확한 상태는 본인이 깨어나야 알 수 있습니다.”인간의 뇌는 아직도 대부분이 밝혀지지 않은 영역이었고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에 유성민 역시 장담할 수 없었다.허자옥은 눈앞이 아찔해지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 이를 악물고 낮게 내뱉었다.“그놈의 끔찍한 놈들... 그리고 심하은... 제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증오가 가득한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강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납치범들이 진수혁을 데려갔으면서도 몸값 요구조차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은 채 산속 동굴에 버려둔 게 이상했다.‘대체 무슨 의도였던 거야?’그 의문은 진수혁이 깨어나야만 풀릴 터였기에 강시연은 허자옥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걱정하시지 마세요. 수혁 씨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예요.”허자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강시연의 손목을 움켜쥐었다.“미안해.”그 얼굴에는 처음 보는 진심이 어려 있었다.이번 일을 겪고서야 허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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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시연아, 날 당신이라고 불러야 맞는 거 아냐?”진수혁은 어쩐지 진지한 얼굴로 고쳐 말했고 강시연은 눈을 크게 뜨며 가슴이 요동쳤다.‘이상하네.’강시연은 눈앞의 진수혁이 너무 이상했다.만약 그 차갑고 선이 뚜렷한 얼굴과 익숙한 눈매가 아니었다면 정말 다른 사람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시연아,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왜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진수혁은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강시연은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결국 옆에 있던 호출 벨을 눌러 의사를 불렀다.이렇게 변한 진수혁을 혼자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잠시 후, 유성민이 다시 병실에 들어와 진수혁을 꼼꼼히 살폈고 그러다가 이내 이마를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좋은 소식 하나, 나쁜 소식 하나가 있습니다.”“좋은 소식부터 말씀해 주세요.”강시연이 재빨리 묻자 유성민은 숨을 고르더니 설명했다.“진 대표님의 뇌에는 구조적인 문제는 없습니다. 치명적인 손상은 없고 바보가 된 것도 아니에요. 다만...”유성민이 말끝을 흐리며 잠시 머뭇거리자 허자옥과 강시연의 시선이 동시에 그에게 꽂혔다. 그러자 유성민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어떤 자극을 받아 일시적으로 기억의 일부를 잃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격에도 변화가 생긴 건데 기억이 돌아오면 예전으로 회복될 겁니다.”강시연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문득 모든 게 이해됐다.그러니까 지금 진수혁이 강시연을 아내라 부르며 들이대는 건 현재 별거와 이혼 했던 걸 통째로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본 사람이 강시연이었고 마음속 깊은 애정이 겹치면서 두 사람이 여전히 사랑하는 사이로 착각한 것이다.“이건...”강시연은 난처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고 허자옥은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 강시연의 손을 붙잡고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진수혁이 들을 수 없는 거리에 이르자 그제야 멈춰 섰다.“수혁이는 어려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어. 내가 후계자로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늘 엄하게만 대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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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오랜 세월 손목에 차고 있던 그 팔찌를 이제는 다음 주인에게 넘겨줄 때가 온 것이었다.강시연이 병실로 돌아와 침대 앞에 서자 진수혁이 곧장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방금 둘이서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속닥거렸어?”진수혁의 질투가 묻어나는 어투와 강시연을 향한 집착이 숨김없이 드러났다.그동안 꾹꾹 눌러온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듯 진수혁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다행히 강시연은 심리 상담을 업으로 삼는 사람답게 누구보다 인내심이 깊었다.강시연은 진수혁의 손을 다독이며 부드럽게 웃었다.“어머님이 당신을 잘 돌봐달라고 하셨어요. 혹시 배고프지 않아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남자를 다루는 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말이 있듯이 강시연의 한마디는 곧장 효과를 발휘했다.“난 당신이 끓여주는 죽이 먹고 싶어.”진수혁의 얼굴에 금세 기쁨이 번졌고 강시연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병원 아래층에는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조리실이 있었다.강시연은 필요한 재료를 사와 소매를 걷어붙이고 능숙하게 죽을 끓였다.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드러운 고기죽이 완성되었다.그릇을 들고 병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고 곧 마주할 진수혁의 반응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한편, 병실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강시연이 없는 사이 진수혁은 다시 예전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고 묵직한 기운이 주위를 감쌌다.며칠을 지켜보느라 기진맥진했던 허자옥은 피곤함에 찌든 얼굴로 한숨을 돌리며 아들이 무사한 걸 확인하자마자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똑똑.”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진수혁의 눈빛이 번쩍이며 문 쪽으로 향했다.“여보?”반가움이 묻어난 진수혁의 목소리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유태오였다.순간 진수혁의 표정은 와르르 무너졌고, 낮게 중얼거렸다.“괜히 시연을 보내버렸어...”사정을 알 리 없는 유태오는 침대 곁으로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대표님, 몸은 어떠세요? 어디 불편한 데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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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그 순간 강시연과 진수혁의 시선이 마주쳤다.방 안의 공기는 한순간에 묘하게 얼어붙었고 말 없는 정적이 길게 흘렀다.진수혁이 갑자기 코웃음을 내뱉으며 침묵을 깨뜨렸다.강시연은 황급히 정신을 다잡고 침대 곁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고 조심스레 숟가락에 담긴 죽을 식히며 호호 입바람을 불었다.잠시 후, 강시연은 식은 죽을 진수혁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부드럽게 속삭였다.“자, 입 벌려요.”“아...”뜨끈한 죽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비어 있던 속이 금세 따스해졌고 진수혁의 마음까지 달콤해졌다.“역시 우리 마누라 솜씨가 최고야.”진수혁은 거리낌 없는 칭찬을 늘어놓았다.강시연은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죽을 떠 웃음을 띠며 말했다.“입맛에 맞으면 더 먹어요.”옆에서 지켜보던 유태오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지금 꿈꾸고 있는 건 아니겠지?’허벅지를 꼬집자 느껴지는 아픔이 그제야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잠시 후, 진수혁은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냈고 강시연은 혹시 무리할까 싶어 더 주지 않았다.그때부터 유태오는 옆에서 줄곧 망설이다가 말을 꺼내려다 삼키기를 반복했다.강시연이 마침 고개를 돌려 유태오를 바라봤다.“그 서류는 저한테 주세요.”유태오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내밀었다.강시연은 서류를 받고는 다시 진수혁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수혁 씨, 그거 알죠? 저는 일을 열심히 하는 남자가 제일 멋있어요. 이거 확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순간 진수혁의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응. 다 당신 말대로 할게.”비록 기억 일부를 잃어버려 성격이 달라졌지만 판단력만큼은 흐트러지지 않았다.진수혁은 고개를 숙이고 꼼꼼히 문서들을 훑어내렸고 그 모습은 잠시나마 예전의 냉철한 그를 떠올리게 했다.강시연은 그런 진수혁을 바라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예전의 차갑고 완벽한 모습과 지금의 다정하고 의지하는 모습... 과연 어느 쪽이 더 나은 것일까?’곧 진수혁은 문제 있는 부분을 표시하고 나머지에는 이름을 적었다.강시연은 그것을 받아 유태오에게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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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콧물이 치마에 다 묻잖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진도현은 멍하니 진수혁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우리 아빠 맞아요?”강시연도 어리둥절했다. 이내 진수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도현이 몰라요?”진수혁이 대답했다.“알지. 우리 아들, 올해 일곱 살. 용성 유치원에 다니잖아.”비록 일부 기억은 흐릿했지만 본인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잊지 않았다.강시연은 의혹이 가득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그런데 왜 밀어내요?”“여보가 제일 중요하니까.”진수혁은 당당하게 말했다. 마치 아내만 있으면 자식 따위 부차적인 존재라는 듯한 말투였다.“으앙!”진도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아버지가 정작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니.“아빠 나빠요! 할머니랑 놀 거예요.”녀석은 씩씩거리며 허자옥의 손을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강시연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눈앞이 캄캄해졌다.진수혁이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마치 커다란 곰 인형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내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방금 네 아들이 나한테 화냈는데 어떻게 보상해줄 거야?”뜨거운 숨결이 귓가를 스쳤다.나직하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졌다.강시연의 눈썹이 까딱했고,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왜 아들이 두 명인 것 같은 기분이지?결국 체념하고 진수혁의 등을 토닥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도현이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요.”“응.”진수혁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반듯한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강시연은 흠칫 놀랐다. 고개를 들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눈동자를 맞닥뜨렸다.눈빛에 짓궂은 장난기가 언뜻 스쳐 지나갔다.목적을 이룬 진수혁은 강시연을 놓아주고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뒤늦게 정신을 차린 강시연이 이마를 매만졌다. 그 자리에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듯했다.“여보, 얼른 올라와.”문득 위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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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잠시 후 발생할 일을 떠올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어느덧 손바닥마저 땀으로 흥건했다.욕실 안에서 여전히 물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강시연이 오만가지 상상하는 와중에 감미로운 목소리가 문득 울려 퍼졌다.“여보, 나 수건 좀.”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이내 의자에 걸린 수건을 발견하고 얼른 집어 들어 욕실로 걸어갔다.딸깍.문이 빼꼼 열리고 팔이 스윽 나타났다. 근육질 팔뚝은 선명한 핏줄이 울끈불끈 솟아 있다.강시연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심장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곧이어 욕실 문이 다시 닫혔다.다행히 진수혁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잠시 후 안에서 옷을 입는 듯한 인기척이 들려왔다.강시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불을 껐다. 그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누웠다.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채 눈을 감고 잠든 척했다.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생각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이었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문이 다시 열렸다.진수혁이 걸어 나와 깜깜한 방 안을 둘러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여보?”이내 주위를 두리번대다가 침대 위로 불룩 솟은 이불을 발견했다.한편, 옆으로 돌아누운 강시연은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반대로 진수혁이 누울 공간은 넉넉했다.그녀는 눈을 꼭 감고 숨조차 죽였다. 귓가에는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만 또렷하게 들렸다.두근두근.조용한 방 안에서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주위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강시연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다 문득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왜 이렇게 조용하지?그리고 눈을 슬며시 뜨고 주변을 살피려던 찰나 누군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여기 있네!”진수혁이 능청스럽게 옆에 누워 손을 뻗더니 강시연을 품에 끌어안았다.동작은 거침이 없었다.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거렸다.진수혁에게서 나는 냄새였다.강시연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남자의 품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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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강시연은 눈을 뜨려고 애를 썼지만 요즘 너무 피곤한 탓에 곧바로 다시 의식을 잃었다.다음 날 아침, 화사한 햇살이 유리창을 통해 침대 위로 쏟아졌다.천천히 눈을 뜨자 눈부신 햇살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점차 적응해갔다.그제야 자신이 진수혁의 품에 안겨 잠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은은한 향기가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았다.고개를 들자 싸늘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이 든 얼굴은 깨어 있을 때와 전혀 달랐다. 어딘가 쌀쌀맞고 소외감마저 느껴졌다.강시연은 저도 모르게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곧이어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잘생겼어?”뜨거운 시선이 느껴진 듯 진수혁이 눈을 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아니...”강시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마치 잘 익은 사과처럼 귓불까지 빨개졌다.진수혁이 문득 고개를 숙여 앙증맞은 입술에 살포시 키스했다.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강시연은 멍하니 넋을 놓았고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진수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굿모닝 키스야.”“아...”강시연이 엉겁결에 대답했다. 쿵쾅거리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가슴을 뚫고 나올 듯했고, 자칫 망신당하는 일이라도 생길까 봐 재빨리 침대에서 내려왔다.“크흠, 일단 씻으러 갈게요.”잠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화면을 확인하니 이천우의 문자였다.[한동안 저 찾지 마세요. 그 사람의 귀에 이미 들어갔어요.]짧은 한마디였고, 오타까지 섞여 있었다. 당시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강시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마음속에서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그녀는 줄곧 진수혁의 실종이 이지성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해왔다.어쨌거나 그들이 자료를 손에 넣은 뒤로 진수혁에게 일이 생겼으니까.다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왜 이지성은 자신을 붙잡지 않고 굳이 진수혁을 데려간 걸까?‘참!’“이지성의 범죄 증거가 담긴 그 문서는 어디 있죠?”강시연이 진수혁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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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여보, 왜 그래?”방 안으로 들어서자 어질러진 공간 한가운데 앉아 있는 강시연이 눈에 들어왔다.눈시울이 붉어진 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물을 글썽였다.진수혁은 서둘러 다가가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무슨 일이야? 누가 우리 여보 울렸어? 내가 당장 가서 혼쭐내줄게!”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단호함이 묻어났다. 이내 굳은 얼굴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내뿜었다.강시연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진수혁을 바라보며 물었다.“만약 진수혁 씨한테 정말 중요한 무언가가 있고, 그게 저랑 관련된 거라면 어디에 둘 것 같아요?”그녀의 눈빛에 간절한 기대가 담겨 있었다. 기억 상실증에 걸렸을지언정 오랜 시간에 걸쳐 몸에 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하지만 진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했다.“잘 모르겠어. 그게 정말 중요한 거고 너랑 관련이 있다면 분명 꼭꼭 숨겼을 거야. 어쩌면 나 자신도 못 찾을 정도로.”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강시연을 바라보며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어?”“아니요.”강시연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고 휴대폰을 꺼내 이지성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만날까요?”지금까지의 관계로 보면 두 사람은 거의 등을 돌린 상태였다.그래서인지 강시연의 연락을 받은 이지성도 은근히 놀랐다. 하지만 곧 뭔가를 경계하는 듯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시간, 장소.”강시연의 눈빛이 반짝였다. 초조했던 마음이 점차 안정되었다.“오후 두 시, 진한 그룹 앞 카페에서 봐요.”이지성이 모든 걸 알게 된 이상 강시연도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이내 용건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현시점에서 자료가 유실된 사실은 분명하나, 그것이 이지성에게 넘어갔는지는 아직 불확실했다.그래서 오후에 확인하려고 했다.이때, 귓가에 질투 섞인 투정이 울려 퍼졌다.“여보, 방금 누구랑 통화한 거야? 오후에 만나려고?”진수혁은 기억을 잃고 나서 유난히 집착이 심해졌고 통제욕도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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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진수혁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기분이 언짢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나 배고파요.”진도현이 홀쭉한 배를 쓰다듬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시연은 그를 번쩍 안아 들며 입꼬리를 올렸다.“엄마랑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시간이 촉박했던 탓에 요리하는 대신 배달 음식을 시켰다.세 사람은 금방 식사를 마쳤다.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강시연은 진도현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내 몸을 숙이고 신신당부했다.“엄마랑 아빠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 테니까 오늘 오후 집에서 얌전히 기다려, 알았지?”진도현은 입을 삐죽 내밀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저도 같이 가고 싶은데...”하지만 이번만큼은 강시연도 단호했다. 이지성이 갑자기 폭주라도 하면 아들에게 위험이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도현이, 착하지? 이따가 장난감 사 올게.”진수혁은 아까만 해도 진도현에게 관심을 빼앗긴 사실이 못마땅했으나 금세 기분이 풀렸다.그리고 강시연의 뒤를 따라가며 진도현을 슬쩍 바라보았고, 우쭐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곧이어 두 사람은 집을 나섰다.진도현은 양손으로 허리를 짚고 씩씩거리며 제 자리에 서 있었다.‘아빠 진짜 너무 얄미워!’부자의 신경전을 꿈에도 모르는 강시연은 한숨을 내쉬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창밖 풍경이 빠르게 지나갔다.곧 마주하게 될 상황을 생각하자 괜히 긴장되었다. 양옆으로 늘어뜨린 손에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제발, 별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길.’이때, 진수혁이 조용히 팔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따뜻한 손바닥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강시연의 불안도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음을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고마워요.”하지만 돌아온 건 침묵뿐이었다.강시연은 어리둥절했다. 순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진수혁을 발견하고 나서야 게임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조금 전, 절대 말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강시연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뭐, 나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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