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2층 방.확실히 민채영의 말대로 방은 넓고 밝고 조용했다. 아늑하고 편안하게 꾸며져 있는 것이 필요한 물건도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통유리창은 열려 있었다. 살랑이며 안으로 스며드는 바람에는 은은한 꽃향기가 섞여 있었다.강지안은 창가로 걸어가 바깥 정원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 멍했다.장성훈은 그녀의 뒤에 서서 가녀린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가슴 안쪽에 저릿저릿한 통증이 번졌다.이곳은 한때 그가 강지안을 가둔 감옥이었다.그녀를 절망 끝까지 몰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죽음만 바라보게 만들었던 곳이자 누군가 그녀에게 독을 먹여 하마터면 영영 떠나보낼 뻔했던 곳이었다.장성훈은 다시는 그녀를 이 아픈 장소로 데려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강지안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마음에 안 들면 다른 방으로 옮겨도 돼요.”장성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머물기 싫으면 다른 곳으로 가도 되고요. 말만 하세요.”강지안은 고개를 돌려 장성훈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여기 좋네요.”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의 모든 것이 마음 한구석을 텅 비게 만들 뿐이었다.장성훈은 강지안의 맑고 순한 눈을 바라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한 걸음 다가섰다.하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갈 용기는 나지 않았기에 강지안에게 부담이 되지 않을 거리에서 멈춰 섰다.“아가씨, 전에...”그 잔인했던 과거 얘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장성훈은 말을 멈췄다.그러나 결국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전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아가씨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줬잖아요.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게요. 뭘 하고 싶어 하든 다 괜찮고 어디를 가고 싶다 하든 막지 않을 거예요. 절 보기 싫다고 하면 아가씨 앞에 나타나지도 않을게요. 전 그저 아가씨가 무사히, 몸을 잘 회복하기만 바라요.”강지안은 그를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이 남자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늘
최수빈은 눈을 감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한 시간 뒤, 차량 행렬이 천천히 장씨 가문 별장으로 들어섰다.차가 부드럽게 멈춰 서자 장성훈이 먼저 내려 반대쪽으로 돌아가 강지안이 내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부축했다. 그 손길은 마치 그녀가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유리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천천히. 서두를 필요 없어요.”그가 낮은 목소리로 당부했다.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강지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강지안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하고 화려한 별장을 올려다보았다.환경은 좋았다.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웠고 정원은 넓었으며 공기도 맑았다. 모든 것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에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답답함이 다시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이곳은 한때 네 악몽이었다고, 마치 본능이 강지안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민채영은 이미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연한 색감의 롱 원피스 차림에 긴 머리는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렸고 얼굴에는 딱 알맞은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겉으로 보기에는 우아하고 품위 있었으며 흠잡을 데 없이 현명한 안주인의 모습이었다.장성훈이 강지안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들어오는 것을 본 순간, 민채영의 눈가에 어두운 기색과 불쾌감이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그 순간은 누구도 알아차리기 힘들 만큼 짧았으나 민채영의 속은 이미 뒤집히고 있었다.‘왜? 도대체 왜? 강지안이 기억을 잃었는데도, 왜 성훈 씨는 강지안을 이 집으로 데려오는 거지? 이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폐인이나 다름없는데도, 왜 여전히 성훈 씨의 시선은 전부 강지안에게만 향해 있는 거냐고. 명색이 정식 약혼자인 난 왜, 마치 남처럼 서서 자기 약혼자가 다른 여자를 조심스럽게 떠받들고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데?’분한 마음에 민채영은 이를 악물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조금도 티를 낼 수 없었다.이럴 때
주민혁은 최수빈의 손목을 가볍게 잡아 일단 진정하라는 듯 눈짓했다.그러고는 한쪽에서 말없이 서 있는 장성훈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날카롭고도 차분했다.“지안이가 지금 어떤 자극도 견디기 힘든 상태라는 건 성훈 씨도 잘 알 텐데... 정말 성훈 씨가 있는 곳이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해요?”장성훈은 침대 옆에 서서 조심스럽게 강지안의 소매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손길은 믿기 어려울 만큼 다정했다.그 말을 들은 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주민혁과 최수빈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한껏 가라앉은 눈빛을 한 채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확신합니다. 지금 이 도시에서, 제 집보다 안전한 곳은 없어요.”최수빈이 곧장 반박했다.“안전하다고요? 지난번에 지안 씨가 바로 그 집에서 약물에 당하고 성훈 씨의 눈앞에서 죽을 뻔했어요. 그런데 지금 안전을 말하는 거예요? 장성훈 씨, 전에 성훈 씨가 지안 씨를 어떻게 가둬 놨는지 잊었어요?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몰아붙여서, 거의 죽어 가게 만든 사람이 성훈 씨였잖아요.”그 한마디가 가장 아픈 곳을 찔러 장성훈의 목울대가 거칠게 움직였다. 얼굴빛도 조금 창백해졌으나 그는 화를 내지 않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예전 일은 제 잘못입니다. 인정해요. 하지만 지금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는 아가씨를 가두지 않을 거예요. 몰아붙이지도, 자유를 제한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저 제가 볼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곳에 두려는 것뿐이에요.”그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강지안의 멍한 얼굴 위로 시선을 옮겼다.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에는 간절하면서도 단호한 기색이 섞여 있었다.“지금 아가씨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가장 위험한 시기는 아직 지나지 않았죠. 심종연은 아직 어둠 속에 숨어 있고 언제든 아가씨를 노릴 수 있습니다. 민채영 쪽도 제가 이미 철저히 감시하고 있어요. 이런 때에, 두 분 다 저라는 사람을 믿지 못하는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인정해야 해요.”그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예
이 순간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최수빈은 자기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남자를 내려다보았다.지금 주민혁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긴장과 기대, 그리고 불안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자신의 모든 자존심도, 강압적인 태도도, 숨겨 두었던 패도 전부 내려놓은 채 말이다.그 모든 것을 최수빈을 앞에 펼쳐 보이고는 단 하나만 묻고 있었다.‘나와 결혼해 줄래?’더는 버틸 수 없었는지라 최수빈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것도, 체면도, 자존심도, 그 어떠한 망설임도 전부 상관없었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두 팔을 뻗어 주민혁을 세게 끌어안더니 자신의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묻었다. 그러자 따뜻한 눈물이 주민혁의 옷깃을 흠뻑 적셨다.“할게요.”주민혁의 몸이 굳었다.다음 순간, 그는 최수빈을 힘껏 끌어안았다. 마치 제 몸속에 새겨 넣으려는 듯, 팔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오랫동안 허공에 매달려 있던 마음이 이 순간 비로소 완전히 내려앉았다.긴장도, 불안도, 망설임도...그 모든 것이 최수빈의 ‘할게요’ 한마디에 눈 녹듯 사라졌다.주민혁은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어깨에 묻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잃어버렸던 사람을 다시 품에 안아 안도와 다정한 기색이 가득했다.“고마워, 최수빈. 나와 결혼해 주겠다고 해 줘서. 앞으로는, 다시는 널 울리지 않을게. 절대.”최수빈은 주민혁을 끌어안은 채 더 서럽게 울었다.하지만 슬퍼서가 아니었다. 너무 오랫동안 눌러 왔던 감정이 이 순간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뿐이었다.그녀는 한때 엇갈렸던 두 사람의 시간을 위해 울었다.함께 지나온 모진 시간들을 위해 울었다.마침내 여기까지 오게 된 지금을 위해 울었다.그리고 주민혁이, 너무 오래 늦어 버린 ‘나와 결혼해 줘’라는 말을 결국 꺼내 준 것이 너무 벅차서 울었다.그렇게 얼마나 오래 끌어안고 있었을까, 최수빈의 감정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다만 눈가는 여전히 붉어 마치 억울한 일을 겪은 뒤 제대로 안겨 달래진 토끼 같았다
단 한마디, 주민혁은 최수빈의 이름을 아주 천천히 불렀다. 살짝 잠긴 목소리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으며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심장이 세차게 뛰어 최수빈은 숨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사실 이런 말은 지금 하고 싶지 않았어.”주민혁의 목소리는 낮았다.“지안이는 이제 막 깨어났고 아직 위험 속에 있잖아. 심종연은 어둠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 이런 때에 우리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쩌면 때에 맞지 않는 일일지도 몰라. 심지어 조금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나 더 기다릴 수 있어. 지안이가 완전히 안전해질 때까지, 심종연이 붙잡힐 때까지, 모든 소란이 가라앉고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하늘이 맑아지고 모든 것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어.”그가 잠시 멈칫하더니 가볍게 목울대를 움직였다.“그런데 더는 기다리고 싶지 않아. 예전에 나는 놓쳤어. 걱정이 많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이니 신분이니 하는 것들에 묶여서 널 기다리게 했고, 불안하게 했고, 많은 일을 혼자 버티게 했어. 그 잘못은 평생 기억할 거고 평생 후회할 거야. 다시는 후회할 선택을 하고 싶지 않아. 지금 상황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위험한 건 맞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분명히 알겠어. 내가 가장 원하는 게 무엇인지.”최수빈을 바라보는 주민혁의 눈빛에는 회피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이 오직 뜨겁고도 진지한 마음만 가득했다.“나는 널 원해. 언제나 너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너뿐이었어. 예전에는 너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주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안정감을 너에게 주고 싶어.”주민혁은 깊은 눈빛으로 최수빈을 바라보았다.“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우리가 함께 해결하면 돼. 위험한 일은 내가 네 앞에 서서 막을 거야. 거센 비바람은 내가 대신 맞을게. 이제 더 이상 가장 알맞은 때를 기다리고 싶지 않아. 내게는 너라면, 언제든 그때가 가장 알맞은 순간이야.”의자에 앉아 있
그저 최수빈 그녀 자신으로 있어도 됐다.지칠 줄도 알고, 피곤해할 줄도 알고, 주민혁의 곁에 마음 놓고 기대어 쉴 수 있는 여자여도 됐다.“포럼은 잘 끝났어?”주민혁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럭저럭 잘 끝났어요.”최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다만 계속 지안 씨가 마음에 걸려서 온전히 집중하긴 힘들었어요.”강지안의 이름이 나오자 주민혁의 표정이 아주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는 이 순간의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그래서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다 안정시켜 뒀어. 이제 넌 좀 쉬면 돼.”“성훈 씨 쪽은...”최수빈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약속한 건 지켰어.”주민혁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지안이가 보기 싫다고 하면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지키기만 해. 억지로 몰아붙이지도 않고, 소란 피우지도 않고, 다시 가두려 들지도 않아. 지금 그 사람의 신경은 절반은 지안이를 지키는데, 절반은 나와 함께 심종연을 찾는 데 가 있어.”최수빈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그나마 아직 사리를 분별할 줄은 아네요.”최수빈은 정말 두려웠다.장성훈이 강지안이 깨어난 모습을 보자마자 또 그 지독한 집착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를 다시 제 곁에 가둬 버릴까 봐 말이다.그저 지금처럼만 있으면 됐다.강지안은 무사했고,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고, 보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일단은 음모와 상처에서 떨어져 있었다.과거의 그 사랑과 미움은, 그녀의 몸이 조금 더 회복되고 위험이 지나간 뒤 천천히 이야기해도 늦지 않았다.“나 전에 성훈 씨한테 너무 실망했었어요.”최수빈이 낮게 말했다.“지안 씨를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게 원망스럽고 한때는 미웠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조용히 누워 있는 지안 씨를 보면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어쩌면 이것도 하나의 해방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주민혁은 최수빈의 말을 끊지 않고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기억을 잃었다는 건 듣기만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