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191 - 챕터 200

604 챕터

제191화

남이준이 손에 술잔을 들고 시선을 고정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육민성은 꽤 흥미롭다고 느꼈다.지난번 전화를 거절당하고도 전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를 해 온 것이다.협력에 대한 진정성이 분명히 드러났다.성안 발표회 때 그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거절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태도가 달라졌다.하지만 남이준과 주민혁은 결국 한패, 같은 무리였다.육민성은 그를 바라보다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을 입가에 걸었다.“시간 되면 저희가 연락드리겠습니다.”거절도 동의도 아닌 꽤나 애매한 태도였다.천공은 신소재 수요 문제로 플라잉 테크와 이미 협력 중이었고 지금 필요한 건 생산 업체였다.그는 다만 최수빈을 위해 한 번쯤 나서주고 싶었다.거절당한 남이준은 의외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그럼 육 대표님 전화 기다리겠습니다.”짧은 대화만 나눈 뒤 그는 곧 자리를 떴다. 억지로 늘어붙어 분위기를 깨는 법은 없었다.육민성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비웃듯 중얼거렸다.“괜히 친절한 건, 딴 꿍꿍이가 있는 법이지.”어차피 같은 무리인데 그 안에 좋은 사람이 있겠나 싶었다.그나마 진승우 같은 사람들보다는 최수빈에게 훨씬 예의를 차리긴 했다.발표회장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너무 달라 이상할 정도였다.다만 확실히 남이준은 장사를 할 만한 사람 같았다. 굽힐 때는 굽히고 나설 때는 나서는 법을 아니 말이다.최수빈이 피식 웃었다.“성안은 능력이 괜찮으니 지켜볼 가치는 있죠.”장사라는 건 돈 버는 일인데 사사로운 원한을 굳이 끌어올 필요는 없었다.그랬다가는 오히려 속 좁아 보일 뿐이었다.곧 정부 관계자가 단상에 올라 최근 정책과 전시품을 발표했다.최수빈 일행이 몇 군데를 돌아봤지만 협력 의향을 밝히는 곳은 없었다.정상회담이 끝나갈 무렵,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그렇게 행사를 나서던 길, 술을 든 웨이터와 부딪쳐 최수빈 옷에 술이 쏟아졌다.웨이터가 잇따라 고개 숙이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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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남이준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돈이 된다면 못할 게 뭐가 있어?”그는 철저한 장사꾼, 이익만 좇는 사람이었다.진승우가 남이준을 훑어보며 말했다.“천공의 이번 투자 절대 성공 못 합니다. 생산 라인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는데 그 프로젝트에 돈 넣는 건 곧 손해죠.”“이런 허술한 프로젝트에 육 대표님이 감히 최수빈 씨를 끌어들이다니, 누굴 바보로 안답니까? 여자를 달래주겠다며 같이 장난치는 꼴이잖아요.”“충고하건대 다시 잘 생각해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남이준의 눈빛이 깊어졌고 말없이 잠잠해졌다.그때 박하린이 고개를 기울이며 옅은 미소를 띤 채 주민혁을 바라봤다.“민혁 오빠, 수빈 씨에 대해 잘 알잖아. 수빈 씨가 진짜 실력이 있다고 생각해?”주민혁은 그 말을 들으며 천천히 최수빈을 한번 쳐다봤다. 그러다 곧 시선을 거두고 차 문을 열었다.“가자.”...천공으로 돌아와서 육민성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탁 하고 책상 위에 내던졌다.오늘 하루종일 속이 부글부글 끓는 모욕적인 일뿐이었다.누가 봐도 노골적으로 견제를 당한 것이다.투자 유치도 어려운데 프로젝트 추진도 막히는 꼴이었다.게다가 주민혁은 매번 박하린만 내세우니 그야말로 최수빈을 밟아 누르려는 태도였다.육민성이 코웃음을 쳤다.“주민혁, 박하린을 위해 우리랑 정면으로 맞서려는 거네.”“괜찮아요.”최수빈이 나섰다.“프로젝트가 급하니 제집을 매물로 내서 투자금에 보태죠.”혼자 자금까지 해결한다면 불필요한 귀찮음도 줄일 수 있었다.그녀는 곧장 집을 온라인 매물로 올렸다.신혼집은 이미 명의 이전 절차가 끝나 그녀 앞으로 넘어온 상태였다.하지만 매물을 올리고 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그 지역은 워낙 잘 팔리는 곳인 데다 급매로 시세보다 훨씬 낮게 내놓은 터였다.애초에 중개업자도 24시간 안에 팔린다며 장담했었다.퇴근 무렵, 최수빈은 결국 중개업소에 전화를 걸었다.“집은 아직도 구매자가 없나요?”중개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어색하게 대답했다.“수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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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그날 승마장 사건 이후로, 주시후는 어린이집 친구들을 데리고 주예린을 따돌렸다.모두 다 박하린을 위해서였다.“제가 숙제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먼저 손을 댄 건 그 애였어요.”“그래서 저도 맞받아쳤어요.”주예린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일의 전말을 또렷하게 설명했다.가슴이 철렁한 최수빈은 아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예린아, 아주 잘했어.”그리고 부드럽게 물었다.“그럼... 며칠 동안 어린이집에 오기 싫어했던 게, 시후 때문이었구나.”주예린은 선뜻 고개를 들지 못하고 손을 꼭 쥐었다.“...네. 그 애가 어린이집 애들한테 절대로 나랑 놀지 말라고 했어요. 숙제할 때도, 체육 시간에도 늘 나 혼자였어요.”“점심시간에도 일부러 내 앞줄에 끼어들기 하고 밥 못 먹게 했어요.”최수빈의 심장이 크게 죄어들었다.“왜 진작 엄마한테 말 안 했어?”주예린은 입술을 꼭 다물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곧 졸업인데... 괜히 엄마한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최수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넌 절대 엄마한테 짐이 아니야.”오늘만큼은 반드시 딸의 억울함을 풀어주겠다고 다짐했다....교무실.주시후의 부모 자격으로 박하린과 주민혁이 와 있었다.주시후가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짓자 박하린의 얼굴은 곧 차갑게 굳었다.“민혁 오빠, 우리 시후 괴롭힌 애,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선생님은 주민혁이 오자 태도가 공손해졌다.주시후는 훌쩍거리며 박하린 품에 파고들었다.“다 그 애들이 나 괴롭힌 거예요.”“예린이가 막무가내로 때렸어요.”뒤이어는 억울한 듯 눈물을 터뜨렸다.주민혁은 말없이 아들을 끌어내어 상처가 없는지 살폈다.그의 기세는 차갑고 묵직했다.“아빠... 예린이가 나 괴롭혔어요.”주민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정말 그렇다면 아빠가 네 편이 되어줄게.”박하린이 거들었다.“민혁 오빠, 우리 시후는 언제나 얌전해. 절대로 먼저 시비 걸 애가 아니야.”“그럼 CCTV 확인합시다. 잘못한 쪽이 있으면 규정에 따라 조치하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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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박하린이 주시후를 감싸며 말했다.“민혁 오빠, 아이들 일이라도 옳고 그름은 분명히 가려야 해.”“너, 예린이 때렸니?”주민혁의 시선이 주시후의 얼굴에 내려앉았다.그 눈빛은 묘하게 위압적이었다.주시후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아빠가 자신을 사랑해주는 건 알지만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아니라고 말하려 했다.그러자 주민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예린이 손에 난 상처가, 자기 혼자 낸 거라고 말하지는 않겠지?”주시후가 입술을 깨물었다.“저는... 그냥 반격했을 뿐이에요. 정당방위였어요.”“그럼 때리긴 했구나.”주민혁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하게 떨어졌다.“사람을 때렸으면 사과해야 하지 않겠니?”박하린은 순간 말이 막혔다.이게 곧 교육이라는 걸 알기에 더는 개입하지 않았다.잘잘못이 아직 확실히 가려진 건 아니지만 손찌검 자체가 잘못임은 분명했다.사과 한마디쯤은 분명히 배워야 할 덕목이었다.무엇보다도 주씨 가문의 후계자라면, 어디서든 도량과 품격을 보여야 했다.최수빈은 주민혁의 태도에 의외라는 듯 눈을 좁혔다.주시후는 박하린을 한번 힐끔 보았다.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다.그러나 박하린이 입을 닫고 있자 결국 입술을 삐죽이며 이를 악물었다.마지못해 주예린을 바라보며 아이는 중얼거렸다.“...미안.”주예린은 순간 얼어붙은 듯 멈췄다가 곧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나한테만 말고 우리 엄마한테도 사과해야 해. 엄마를 그렇게 욕하고 오해한 건 잘못이잖아.”이에 얼굴빛이 확 어두워지더니 주시후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외쳤다.“잘난 척하지 마!”“주시후.”주민혁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주시후는 눈가와 코끝이 시큰해졌다.아빠가 왜 자기편을 안 들어주고, 주예린을 두둔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저, 저 안 할래요...!”흐느끼는 목소리였다.한 번 사과했으면 됐지, 왜 계속 이렇게 비굴해야 하는지 억울했다.“좋습니다.”최수빈은 등을 곧게 펴고 냉정하게 주민혁을 노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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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주시후가 이미 사과했는데도 여전히 더 몰아붙이니 결국 CCTV를 확인하자는 말이 나왔다.“끝까지 밝혀보자고.”그때 주시후가 머리를 감싸 쥐며 힘겹게 말했다.“머리가 좀 아파요. 병원에 가고 싶어요.”“왜 그래?”박하린이 급히 얼굴빛을 굳히며 물었다.“아까 주예린이 제 머리를 쳤는데 지금 머리가 너무 아파요.”박하린은 얼굴이 확 변하며 긴장했다.그러자 주예린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저는 머리 때린 적 없어요. CCTV 확인하면 내가 맞는 게 드러나니까 그게 두려운 거지?”주민혁이 담담하게 말했다.“시후는 보건실에 데려가. 나는 CCTV 확인하러 갈 거야.”...CCTV실.주예린은 자신이 괴롭힘을 당한 시간과 날짜를 거의 정확하게 짚어냈다.모니터를 확인하니 모든 게 고스란히 드러났다.주시후가 주예린을 괴롭힌 장면이 선명했다.최수빈은 온몸이 싸늘해졌다.5년 동안 자신이 키운 아이가 불과 두 달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그리고 그동안 주예린이 묵묵히 참아왔던 시간들이 그녀의 가슴을 처절하게 죄어왔다.주민혁은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며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주 대표님, 증거는 분명합니다. 규정대로 처리하시죠.”한참 침묵하던 그는 천천히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넌 이게 아이의 잘못이라고 생각해?”최수빈은 비웃음이 터졌다.“그럼 누구 잘못이겠어요?”“시후의 품행이 바르지 못하다면 누구의 교육이 잘못된 거지?”그의 말은 곧 최수빈을 향한 질책이었다.주시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말투였다.최수빈은 더없이 냉소적이었다.‘내가 잘못 키웠다고?’“적어도 내가 데리고 있던 동안에는 이런 문제 없었어요.”그녀는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이런 상황이라면 주 대표님의 절친한 친구가 시후한테 뭘 가르쳤는지부터 물어보셔야죠.”“증거가 눈앞에 있는데 주 대표님은 시후를 감쌀 생각입니까?”선생님은 곁에서 숨이 막히는 분위기를 느끼며 말했다.“그... 그럼 두 학부모님이 잘 상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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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주민혁이 눈에 두는 건 오직 박하린과 주시후뿐이었다.어린이집 규칙 같은 건 그에게는 우스운 농담에 불과했다.최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무정할 수 있을까 하고.그는 독단적이고 수완이 뛰어나 아예 선택지를 두 개만 남겨둔 셈이었다.보상금을 받고 무마하든가 아니면 보상금을 거부하든가...하지만 결국 결론은 똑같이 이 사건을 무마하는 것이었다.그녀가 바란 건 단 하나, 공정한 해결이었다.그리고 주예린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주민혁은 냉혈하고 무정했다. 하여 애초에 최수빈은 자신을 향한 그의 따뜻한 태도 같은 건 기대한 적도 없었다.그러나 그가 주예린에게까지 그렇게 잔혹할 줄은 몰랐다.그녀가 동의하지 않으면 결국 주예린은 전학을 강요당하는 셈이었다.주민혁은 몸을 기울여 서서 주예린을 바라봤다.“예린아, 오빠 용서해 줄 수 있겠니?”순간, 최수빈의 머릿속이 ‘웅’ 하고 울렸다.그의 차갑고 담담한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박혀 마치 날카로운 선이 살갗을 베어내는 듯했다.그는 가장 큰 피해자인 아이에게 직접 화살을 돌리고 있었다.최수빈이 딸을 향해 말했다.“예린아, 네 마음대로 대답해.”주예린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손을 꼭 움켜쥐었다.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말을 꺼내지 못했다.어린 나이지만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오랜 침묵 끝에야 아이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주시후 오빠가 이미 사과했으니까... 다시는 그런 일만 없으면 돼요.”그리고 엄마를 바라보며 덧붙였다.“엄마, 저는 괜찮아요. 혹시 또 이런 일이 생겨도 전 용기 낼 거예요.”그녀는 엄마를 더 이상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아빠는 이미 전학을 기정사실처럼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전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엄마는 늘 바빴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힘겹게 버텨왔다.주예린은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 순간, 무언가가 온몸을 강하게 파고드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최수빈은 늘 참아내는 데 익숙했다.그렇지 않았다면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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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최수빈은 그가 이런 요구를 꺼낸 걸 전혀 놀라워하지 않았다.그는 철저한 장사꾼이었고 어떤 일이든 반드시 이익이 따르는 쪽으로 움직였다.게다가 원래부터 남에게 공짜로 이득을 내주는 성격도 아니었다.이미 주시후에게 공개 사과를 시키기로 했으니 굳이 퇴학이나 징계를 끝까지 밀어붙일 필요는 없었다.어차피 아직 어린애였고 공개적으로 주예린에게 사과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책임을 묻는 셈이었다.그리고 사실, 사건 직후 주민혁도 제일 먼저 주시후에게 사과하게 했다. 편들지 않고 말이다.결국 기다리고 있던 함정이 여기 있었다.지금 천공은 정말 자금이 절실한 상황이었다.게다가 신혼집은 도무지 팔리지 않고 있었다.“하린이가 프로젝트팀에 들어가면 1000억뿐만 아니라 운상과의 협력까지 얻게 돼.”운상은 신세계 그룹 산하의 제조사로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고 군수 산업을 전담해 정부 주문만 거의 도맡아 왔다.자재든 안정성이든 운상은 국내에서 대체 불가능한 1순위였다.주민혁은 박하린을 위해 끊임없이 덧붙이고 끝없이 힘을 쏟아부었다.게다가 천공의 정부 프로젝트는 막바지 단계라 자금과 제조 공장만 확보하면 되는 상황이었다.이 판국에 박하린이 끼어들면 어부지리로 이득을 얻고 화려한 경력까지 챙겨 가게 되는 것이다.그녀를 향한 주민혁의 편애와 집착은 깊고도 치밀했다.혀를 내두를 만큼이었다.최수빈은 늘어뜨렸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생각해 볼게요.”협력 문제는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이런 중대한 사안은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도 없었다.주민혁은 시선을 거두며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하루 안에 답 줘.”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곧장 돌아서서 떠났다.주예린은 어른들의 대화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분위기는 느낄 수 있었다.엄마와 아빠 사이에 오가는 얘기가 좋지 않다는 걸 아이도 알았다.“엄마...”주예린이 엄마 손을 살며시 잡았다.“아빠가 이미 주시후 오빠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했잖아요. 난 억울하지 않아요.”최수빈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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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주예린의 손을 꼭 잡고 자리를 떠났다.박하린은 난생처음 제대로 당한 기분에 분통이 터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민혁 오빠, 수빈 씨가 그렇게 말발이 센 줄은 몰랐네.”주민혁은 담배를 느긋하게 비벼 끄며 감정 하나 드러내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괜히 건드려서 뭐 해? 오늘 처음 본 사람도 아니잖아.”그러고 보니 그랬다.최수빈은 억지가 섞여도 늘 할 말은 하고 특히 자신이 뭔가라도 된 듯 뻗대곤 했다.육민성이 뒤에서 받쳐주니 천공에서의 발언권도 자신한테 있다고 착각하는 모양이었다.조금 전에도 그 말에 순간적으로 말려들어 제대로 받아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더구나 아직 이혼도 안 한 남편이 박하린을 위해 수많은 돈을 쏟아부어 경력을 쌓아주는데 정작 최수빈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었으니 그 누가 봐도 속이 상할 일이었다.그럴수록 화살은 고스란히 최수빈에게 향했다.그런데 결국 중요한 건, 주민혁은 애초에 최수빈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박하린의 붉은 입술이 살짝 휘어졌다.“행복한 사람이 져주는 게 원칙이잖아. 그냥 넘어가 줘야지.”...집으로 돌아온 최수빈은 육민성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일을 전했다.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육민성이 상황을 간단히 짚었다.“그건 그냥 돈으로 박하린한테 경력을 사주는 거야. 이번 프로젝트는 업계에서도 일부 사람만 아는 건데 그 시점에 굳이 박하린을 끼워 넣는 건... 그 사람 뜻대로 굴러가게 하는 거지.”최수빈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내일까지 답 주라 했는데 운상은 괜찮은 협력처라 생각해요. 게다가 내가 천공에 돌아오기 전에도 선배는 신세계 그룹 계열사랑 꾸준히 협력해 왔잖아요. 사적인 감정 때문에 그걸 끊을 필요는 없죠.”이 부분에서 그녀는 언제나 냉정했다.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우선이었다.주민혁이 박하린을 위해 퍼부은 돈과 특혜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알아.”육민성은 미간을 좁혔다.“하지만 정말로 박하린을 프로젝트팀에 넣을 거야?”이처럼 핵심적인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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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진승우는 입에 담배를 물고 건들건들한 태도로 최수빈을 훑어봤다.말끝마다 마치 그녀가 아직도 주민혁을 놓지 못하고 매달리는 것처럼 비아냥댔다.최수빈은 그들의 속성을 잘 알기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오늘 이 자리가 김재환이 직접 잡은 약속이라는 걸 다 알면서도 일부러 그녀를 난처하게 하려는 수작이 분명했다.박하린이 시선을 들며 말했다.“수빈 씨,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마치 주인집에서 시혜를 베푸는 듯한 태도였다.곧 김재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정장 차림의 그는 한눈에 공직자의 기개가 느껴졌다.최근 정부에서 과학기술 분야 기업을 적극 지원하며 신생 기업과 안정적인 기존 기업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모색하고 있는 터였다.“오셨습니까?”진승우와 박하린이 거의 동시에 말했다.김재환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최수빈을 바라봤다.“왜 서 있습니까? 앉으시죠.”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뜻을 보였다.그는 그녀를 주민혁의 옆자리에 앉게 했다.가까운 듯 먼 거리, 그러나 금세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의 맑은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주민혁은 시선을 주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철저히 무심했다.오늘 은산시는 비가 내려 기온이 쌀쌀했다.김재환이 자리에 앉자 박하린이 따뜻한 차를 건넸다.“민혁 씨, 오랜만이군요. 아버님은 요즘 외지에 나가 계신다던데 언제 돌아오십니까?”“아버지 일정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주민혁은 미소를 머금은 듯 무심히 답했다.돌려 말하되 빈틈은 없었고 태도는 정중했다.“굳이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집처럼 편히 계시지요.”김재환은 웃으며 최수빈을 향했다.“수빈 씨는 차 드시겠습니까, 아니면...”“따뜻한 물이면 됩니다.”그때 박하린이 주전자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민혁 오빠 말씀이, 수빈 씨가 신세계 그룹에 있을 때 다도에 능했다고 하더라고요. 오늘 한 번 보여주시죠? 다들 수빈 씨가 내린 차를 맛보면 좋을 텐데요.”눈웃음을 흘리며 하는 말이었지만 비아냥거림이 뚝뚝 묻어 있었다.최수빈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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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그녀는 깨달았다.방금 그 뜨거운 주전자는 박하린 옆에도 가까웠다는 걸.그 사실을 이해한 최수빈은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최수빈의 다도는 완벽에 가까웠다.김재환이 차를 음미하며 감탄스러운 미소를 지었다.“맛이 아주 좋군요.”박하린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마디 거들었다.“역시 수빈 씨예요. 비서치고는 차를 정말 잘 끓이네요. 그러니 육 대표님이 천공으로 데려온 거겠죠. 이 정도 솜씨면 비서 꽤 실력이 있잖아요.”겉으로는 칭찬이었지만 말끝에는 신분을 비꼬는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그러니까 민혁 오빠가 수빈 씨를 비서로 둔 거군요? 저도 제 곁에 두고 싶을 정도예요.”입가를 비웃듯 당기며 덧붙였다.“천공에서 제가 총설계사로 일하게 되면 그때 제 비서로 와요. 민혁 오빠 체면 봐서 이것저것 가르쳐줄 수도 있잖아요?”최수빈은 담담히 웃음을 지으며 받아쳤다.“인사 배치는 회사가 정하는 일입니다, 박하린 씨.”잠시 후, 김재환이 본격적으로 화제를 전환했다.이번에는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된 논의였다.그는 박하린을 높이 평가했다.“젊지만 대단하군요. 앞으로 잘 성장한다면 새로운 소피아가 될 수도 있겠어요. 그때는 국가 연구팀에 들어가는 것도 문제없을 겁니다.”‘소피아’라는 이름은 이미 과학계에서 극찬을 뜻하는 별명처럼 쓰이고 있었다.“과찬이십니다. 소피아 님은 천재니까요. 저는 그저 열심히 따라갈 뿐이에요.”박하린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정작 그 ‘소피아’ 본인이 옆에 앉아 있었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최수빈은 묵묵히 들으며 마치 자신과는 무관한 이야기인 듯 행동했다.“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에도 나갔다고 들었는데 소피아를 직접 본 적 있습니까?”김재환이 물었다.“아니요.”박하린은 눈을 숙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분은 신분이 특별해서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죠. 그런데 왜 이번에 갑자기 나타나셨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오래전 은퇴한 줄 알았는데.”소피아는 군과 관련된 다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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