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911 - Chapter 920

1010 Chapters

제911화

...은산시.주민혁이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있는데 려운이 성큼 다가오며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대표님, 선생님께서 수빈 씨를 찾아갔습니다.”순간 눈빛이 얼어붙더니 주민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링거 줄을 뽑고 바로 몸을 일으켰다.려운은 그의 몸 상태가 이렇게 계속 무리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도 알기에 그저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그가 차를 몰고 떠난 뒤였다. 려운은 이를 악물고 다른 차에 올라 곧바로 뒤를 쫓았다.운전석에 앉은 주민혁의 얼굴은 창백했고 팔에는 바늘을 뽑은 자국이 퍼렇게 남아 있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주기훈의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손희경을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게다가 최수빈은 성격이 곧아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생기면 분명 손해를 볼 게 뻔했다.의사의 만류도, 회복되지 않은 몸 상태도 모두 뒤로한 채 주민혁은 그저 하루빨리 해온시로 가서 최수빈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다.차 안의 공기는 답답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주민혁의 가슴은 은근히 조여 오며 숨을 쉬는 것조차 점점 가빠졌다.조수석에 놓인 약을 집어 몇 알을 물과 함께 삼키고 나서야 조금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창밖 풍경이 빠르게 뒤로 흘러갔다.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고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주민혁은 멈출 수 없었다....최수빈은 주기훈과 실랑이를 벌인 뒤, 려운의 전화를 받고 상황을 전해 들었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가만히 있질 못했다.주민혁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그녀는 거실을 오가며 초조하게 서성였다.그때 초인종이 울렸다.현관의 도어뷰를 들여다보니 주민혁이 서 있었다.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했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보였다.최수빈은 급히 문을 열어 그를 붙잡았다.“민혁 씨, 목숨 아까운 줄도 몰라요?”그녀를 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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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2화

최수빈은 데워 둔 죽을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소파에서 깊이 잠든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조용히 그릇을 내려놓은 뒤 다가가 창백하고 수척해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켠이 무언가에 쥐어짜지는 듯 시리고 아려 왔다.주름진 그의 이마를 펴 주고 싶어 손을 뻗었지만 손끝이 닿기 직전에 다시 거두었다.모처럼 편안하게 자는 건데 깨우고 싶지 않았다.최수빈은 침실로 들어가 얇은 담요를 가져오더니 조심스럽게 주민혁의 몸 위에 덮어 주었다.그러고는 소파 옆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릇을 치우려 일어섰다.그 순간, 침실 문이 살짝 열리며 작은 그림자가 고개를 내밀었다.분홍색 곰돌이 잠옷을 입은 주예린이 졸린 눈을 비비며 나온 것이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고 거실의 소리에 잠에서 깬 듯했다.소파에 누운 주민혁을 보자 아이의 눈이 반짝 밝아졌지만 곧 걱정으로 가득 찼다.주예린은 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작은 얼굴을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마치 어른처럼 이마를 잔뜩 찌푸린 채였다.아이의 작은 손이 담요 위로 살짝 그의 팔을 건드렸다가 놀란 듯 곧바로 물러났다. 혹시라도 깨울까 봐서였다.최수빈은 딸을 보자 이내 다가와 몸을 낮추고 조용히 물었다.“예린아, 왜 깼어? 엄마가 시끄러웠어?”주예린은 고개를 저으며 여전히 주민혁에게 시선을 둔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아빠 왜 저러는 거예요?”“좀 피곤해서 잠드신 거야.”아이의 눈이 깜박였다. 창백한 얼굴과 찌푸려진 이마를 보자 잔뜩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아빠 많이 아파 보이는데... 병 난 거 아니에요?”최수빈은 딸의 손을 살며시 잡고 부드럽게 말했다.“먼 길 오느라 너무 피곤해서 그래.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주예린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최수빈이 더 자도 된다고 하자 주예린은 얌전히 들어가며 말했다.“엄마도 빨리 자요.”아이의 방 문이 닫힌 뒤, 거실에는 다시 정적이 흘렀다.주민혁은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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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3화

최수빈은 주민혁을 바라보다가 잠시 말을 멈췄다. 공기가 몇 초간 고요하게 가라앉은 뒤, 그녀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그래요.”짧은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녀의 시선이 그를 단단히 붙잡았다.“하지만 왜 거리를 두자는 건지 말해 줘야 해요. 민혁 씨의 마음속에 뭐가 있는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전에 강지안 씨가 나랑 멀어지라고 했던 것도... 내 존재가 민혁 씨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있어서 그런 거예요?”그 질문들은 가늘고 날카로운 바늘처럼 하나하나 그의 가슴을 찔렀다.주민혁은 옆에 늘어진 손을 살짝 움켜쥐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지금은 내 감정이 정리가 안 됐어. 네 질문에 답할 상태가 아니야.”그는 늘 모든 일을 완벽하게 정리한 뒤에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어떤 말이든, 어떤 선택이든 충분히 고민하고 확신이 설 때만 내놓았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며 주씨 가문의 문제까지 겹쳐 마음이 심란했기에 최수빈의 물음 앞에서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평소의 그는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에서만 움직이고 확신이 없으면 시작하지 않는 성격이었다.그런데 이번에 주기훈이 최수빈을 찾아갔다는 소식에 주민혁은 이성을 잃고 달려와 버렸다.잠시 침묵한 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가 너한테 한 말들... 신경 쓰지 마. 무시해도 돼. 그 사람이 노리는 건 나야. 널 끌어들일 일이 아니었어.”최수빈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말투에는 체념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내가 이미 은산시를 떠났는데도 아버님은 해온시까지 찾아오셨어요. 찾으려는 사람은 내가 어디로 숨든 결국 찾아오게 돼 있다고요.”주기훈의 집요한 성격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녀는 다시 주민혁을 바라보았다.“정말 거리를 두고 싶은 거라면 나도 맞춰줄게요. 민혁 씨의 감정이 가장 중요하니까. 나 때문에 병이 더 심해지는 건 원하지 않거든요.”잠시 숨을 고른 뒤, 그녀는 단호하게 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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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4화

“몸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잖아요. 밖에 아버님이 아직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주민혁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얇은 옷 너머로 최수빈의 체온이 그대로 전해졌고 그 따뜻함이 가슴을 데우는 동시에 더 큰 죄책감을 불러왔다.“신경 쓰지 마.”그는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민혁 씨, 제발 그렇게 고집 좀 부리지 마요.”최수빈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민혁 씨는 지금 혼자가 아니에요. 나도 있고 예린이도 있어요. 우린 다 민혁 씨를 걱정하고 있다고요. 우리 생각도 좀 해 줘요.”주예린의 이름이 나오자 주민혁의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어젯밤, 아빠 아픈 거냐고 조심스럽게 묻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빠가 곁에 있어 주길 내심 기대하던 눈빛도 함께 스쳐 지나갔다.순간,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방어선이 와르르 무너졌다.이윽고 그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 안에는 피로와 체념한 기색이 가득 담겨 있었다.“나...”뭔가 말하려는 찰나, 침실 문이 살짝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분홍색 곰돌이 잠옷을 입은 주예린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엄마, 아빠... 싸우는 거예요?”최수빈은 급히 주민혁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딸에게 다가가서는 몸을 낮추고 부드럽게 말했다.“아니야, 아빠랑 엄마 싸우는 거 아니야. 그냥 이야기하고 있었어. 예린이는 왜 깼어? 우리가 시끄러웠어?”주예린은 고개를 저으며 주민혁을 바라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 가는 거예요? 나랑 좀 같이 있어 주면 안 돼요?”그 눈빛을 보는 순간, 주민혁의 가슴이 바늘에 찔린 듯 아려 왔다.그는 다가가 딸의 앞에 쪼그려 앉아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다.“잠깐 일이 있어서 아빠 먼저 가봐야 해. 다 끝나면 돌아와서 예린이랑 놀아 줄게, 응?”주예린은 금세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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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5화

주민혁은 이번에 돌아서 나온 선택이 또다시 최수빈과 주예린에게 상처를 줬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차가운 복도 벽에 몸을 기대고 서서 가슴을 짓누르던 통증이 서서히 가라앉을 때까지 그대로 버텼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세우고 깊게 숨을 몇 번 들이마시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려운에게 전화를 걸었다.“려운, 형의 움직임을 계속 추적해. 요즘 누구랑 만나는지, 이상한 자금 흐름은 없는지 특히 신경 써서.”주민혁의 목소리는 다시 평소처럼 차갑고 담담했다. 감정의 흔들림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그리고 아버지의 행적도 확인해. 아직 해온시에 있다면 바로 알려 줘.”“알겠습니다, 대표님. 바로 사람 붙이겠습니다.”려운의 또렷한 대답이 휴대폰을 타고 들려왔다.통화를 끊고도 주민혁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마음은 여전히 어지러웠다.조금 전 최수빈에게 보인 태도가 지나치게 냉정했다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다가가면 상처를 줄 것 같고 밀어내자니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다.한편, 최수빈은 현관을 바라보며 잔뜩 걱정하고 있었다.그의 몸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다는 것도, 지금 감정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끝내 뒤쫓아 나가지는 않았다.주민혁도 성인이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 알아야 했다. 그녀가 계속 대신 걱정하며 붙잡아 둘 수는 없지 않은가.최수빈은 거실로 돌아와 태블릿을 켜고 일에 집중하려 했다.항공우주 연구원의 프로젝트는 중요한 단계에 접어들어 곧 원시림으로 현장 조사를 나가야 했다.현지 기후와 온도 데이터를 수집해 무인기 전투 비행 시뮬레이션에 활용할 계획이었다.출장은 최소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릴 예정이라 미리 준비할 것이 많았다.다음 날 아침, 최수빈은 짐을 챙긴 뒤 주예린을 익숙한 도우미에게 맡겨 등교를 부탁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도착하자마자 보니 한 대의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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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6화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휴대폰을 접은 뒤,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에 집중하려 했다.그 시각, 주민혁은 혼자 호텔 침실에 머물러 있었다.어젯밤 그는 해온시를 떠나지 않고 최수빈의 집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 묵었다.가까이에 있고 싶으면서도, 다시 그녀를 찾아가 방해할 용기는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침대 머리에 기대 눈을 감자 어느새 그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꿈속에서, 최수빈이 차갑게 굳은 얼굴로 그에게 서류 두 장을 내밀며 서명하라고 했다.그는 늘 그렇듯 그녀를 믿고 내용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사인했다.그리고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자신을 방해하지 말라고, 주예린과 함께 더는 찾아오지 말라고.서류를 돌려주고 나서는 그대로 돌아섰다.연회장에서는 누군가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다가와 그에게 속삭였다.“대표님, 오늘 사모님과 따님께서 화장되셨습니다. 화장터에 가셔서 유골을 인수하셔야 합니다.”믿을 수 없는 말에 주민혁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곧바로 미친 듯이 차를 몰아 화장터로 향했다.“안 돼!”주민혁은 벌떡 눈을 뜨며 숨을 몰아쉬었다.이마에는 식은땀이 촘촘히 맺혀 있었고 가슴은 터질 듯 요동쳤다.헐떡이며 텅 빈 침실을 둘러보고 나서야 조금 전까지의 일이 꿈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그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시간을 확인하려다 최수빈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게 됐다.출장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오자 가슴 깊숙이에서부터 불안함이 몰려왔다.원시림은 환경도 험하고 통신도 잘되지 않는 곳이다.그런 곳에 그녀 혼자 가 있다니, 혹시 위험한 일이라도 생기진 않을까 싶었다.답장을 보내려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그는 결국 짧게 적었다.[알았어. 조심해.]메시지를 보내고도 주민혁의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그래서 곧바로 려운에게 전화를 걸었다.“려운, 이번에 수빈이가 출장 간 정확한 장소랑 현지 날씨부터 알아봐. 위험 요소가 있는지도 전부 체크해. 그리고 사람 둘 붙여서 조용히 따라붙게 해. 절대 들키지 말고.”“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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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7화

숲속, 이곳은 지질과 기후가 모두 특이한 지역이었다.최수빈은 장비 옆에 쪼그려 앉아 기록판을 들고 무인기가 전송해 오는 온도와 습도 데이터를 하나하나 꼼꼼히 적고 있었다.곁에서는 육강민이 기상 관측 장비를 조정하며 수치를 맞추고 있었고 두 사람은 간간이 수치와 설정값을 확인하며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췄다.“마지막 데이터까지 다 받았어요. 이제 마무리해도 되겠네요.”육강민이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웃었다.“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움직였더니 해도 거의 지고 있어요. 먼저 텐트부터 치죠. 어두워지면 더 힘들어져요.”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록판을 접고 함께 오프로더에서 텐트 장비를 내려놓았다.숲속에는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야생 동물의 울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그 외에는 아무 소리도 없었다.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눴다.육강민은 텐트 골조를 세우고 최수빈은 방습 매트와 침낭을 정리했다. 손놀림이 모두 익숙했다.마지막 텐트까지 완성됐을 즈음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최수빈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고 자신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오후에 수집한 데이터를 정리해야 했고 다음 날 새벽부터 다시 조사가 이어질 예정이라 서둘러 끝내야 했다.텐트 안은 비좁았다.그녀는 노트북을 켜고 수치를 하나씩 입력하며 장비 기록과 계속 대조했다. 작은 오차라도 생길까 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무인기 비행 전투 시뮬레이션은 데이터 정밀도가 무엇보다 중요했다.0.1만 어긋나도 최종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기에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텐트 밖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리더니 육강민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수빈 씨, 다 끝났어요? 따뜻한 국 좀 끓였어요. 비스킷도 있고요. 먼저 나와서 조금이라도 드세요.”최수빈은 화면을 올려다봤다. 아직 마지막 부분이 남아 있었다.“고마워요.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더 하고 나갈게요.”“데이터는 나중에도 할 수 있잖아요. 몸이 먼저죠.”육강민은 물러서지 않았다.“바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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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8화

국을 다 마시자 육강민이 비스킷 한 봉지를 더 내밀었다.“이것도 좀 먹어요. 배라도 채워야죠. 이따 같이 텐트 한 번 더 점검하고 방수포도 단단히 고정해요. 비가 꽤 세게 올 것 같아요.”최수빈은 비스킷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요.”두 사람은 손전등을 들고 설치해 둔 텐트를 하나씩 확인했다.육강민은 방수포를 고정하며 당부했다.“밤에 텐트에서 이상한 소리 나거나 물 새면 바로 불러요. 혼자 버티려고 하지 말고. 산속은 도시랑 달라요. 무슨 일 있으면 서로 바로 대응해야 해요.”“알겠어요. 정말 고마워요.”최수빈의 마음에는 고마움이 가득 찼다.환경이 열악한 출장 내내 육강민은 장비 나르는 것부터 따뜻한 국까지 챙겨 주며 세심하게 신경 써 줬고 덕분에 그녀도 한결 마음이 놓였다.점검을 마칠 즈음, 하늘에서 가는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바람도 점점 거세졌다.두 사람은 서둘러 각자의 텐트로 돌아갔다.최수빈이 막 들어서자마자 밖에서는 빗방울이 방수포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그녀는 입구를 살짝 들어 올려 밖을 바라봤다. 빗물이 방수포를 타고 흘러내리며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육강민의 텐트에서는 불빛이 아직 켜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는 듯했다.최수빈은 천을 내리고 노트북을 다시 켜 데이터 정리를 이어 갔다.얼마쯤 지났을까, 휴대폰이 진동하며 날씨 알림이 떴다.앞으로 두 시간 동안 원시림 지역에 중간에서 강한 비와 함께 순간적인 강풍이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살짝 불안한 기분이 들어 그녀는 손전등을 들고 다시 한번 텐트 고정 상태를 확인했다. 그렇게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모든 데이터를 정리했을 때는 이미 깊은 밤이었다.최수빈은 노트북을 덮고 시큰해진 눈을 비비며 빗소리를 듣다 문득 주민혁을 떠올렸다.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까. 약은 제때 챙겨 먹고 있을까, 주기훈이 또 괴롭히진 않았을까.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신호는 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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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9화

‘이번 출장 장소는 극비로 관리돼 항공우주 연구원의 핵심 인원들만 알고 있는 건데...’주선웅은 입꼬리를 차갑게 끌어올리며 말했다.“나랑 가자, 수빈아. 널 해칠 생각은 없어.”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낮고 부드러웠다.“왜 내가 선웅 씨를 따라가야 하죠?”최수빈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의 뒤에 선 사람들을 경계했다.“강민 씨는요? 그 사람한테 무슨 짓을 한 거죠?”“멀쩡해. 그냥 잠들었을 뿐이야.”주선웅은 담담하게 말했다.“다시 말할게. 나랑 가자. 더는 나를 움직이게 만들지 마.”최수빈이 거절하려는 순간, 머릿속이 갑자기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공기 속의 그 기묘한 향이 점점 짙어졌고 시야가 흐릿해졌다.텐트를 붙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몸에 힘이 풀리듯 축 늘어졌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완전히 어둠에 잠기기 직전, 주선웅이 손짓하자 뒤에 있던 남자들이 다가와 그녀를 들어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다시 눈을 떴을 때, 최수빈은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방 안은 화려했지만 어딘가 차갑게 느껴졌고 공기에는 은은한 바닷물 냄새가 배어 있었다.그녀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전날 밤의 기억이 조각조각 떠올랐다.기묘한 향기, 주선웅의 얼굴, 차갑게 번뜩이던 전기봉...이불을 걷어차고 내려온 그녀는 창가로 달려가 두꺼운 커튼을 확 젖혔다. 눈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거센 바람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위에 부딪히고 있었다.그곳은 섬이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배 한 척 보이지 않았다.최수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방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휴대폰도 신분증도 지갑도 전부 사라지고 없었고 몸에 걸친 옷만 어젯밤 그대로였다.문손잡이를 힘껏 당겨 봤지만 문은 굳게 잠겨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때 문이 조용히 열리며 주선웅이 물 한 컵을 들고 들어왔다. 뒤에는 경호원 두 명이 붙어 있었다.“깼어? 물 좀 마셔. 기운 보충해야지.”그는 컵을 협탁 위에 올려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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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0화

“그래서 뭐 어쩌라고?”주선웅은 부정하지 않았다. 목소리에는 광기에 가까운 기색이 섞여 있었다.“민혁이가 널 그렇게 소중히 여긴다며? 능력도 대단하다며? 좋아, 어디 한번 보자고. 널 찾지 못하면 미친개처럼 날뛰며 물어뜯을지 말지. 가장 소중한 걸 잃는 기분이 어떤 건지 제대로 맛보게 해 줄 거야. 그 인간을 완전히 망가뜨려서 명예도 다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만들 거라고.”최수빈은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노려봤다.“정말 비열하네요. 나 하나로 민혁 씨를 흔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 사람은 절대 선웅 씨한테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그래?”주선웅이 눈빛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담아 피식 웃었다.“그럼 두고 보자고. 곧 주민혁은 뜨거운 냄비 위의 개미처럼 미친 듯이 널 찾아다닐 거야. 그때 가서야 자기가 나한테 상대도 안 된다는 걸 알게 되겠지.”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경호원들에게 명령했다.“잘 지켜봐. 어디 못 도망가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전부 너희 책임이야.”“네, 사장님.”경호원들이 공손히 대답했다.주선웅은 그대로 방을 나갔고 문은 다시 굳게 잠겼다. 최수빈은 텅 빈 문을 바라보며 절망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이 고립된 섬에 그녀는 완전히 갇혀 버렸다. 도움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고 이제 주선웅의 뜻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창가로 다가가 끝없는 바다를 바라봤다. 그러자 주예린의 얼굴이 떠올랐다.떠나기 전, 엄마를 바라보던 아이의 기대 어린 눈빛과 잘 돌보겠다는 보모의 말도 함께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주민혁, 허약해진 그의 몸 상태까지 머릿속에 겹쳐졌다.최수빈은 눈을 감았다.‘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주민혁의 말이 떠올랐다.주선웅은 해외에서 오래 지내며 얼마나 많은 세력을 만들어 두었는지 알 수 없고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역시 대부분 외국인이라는 것.지금 그녀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여기가 국내인지 해외인지부터 알아내는 일이었다.그리고 어떻게든 바깥과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섬에 갇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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