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931 - Chapter 940

1010 Chapters

제931화

“전 뭐 여기까지 오고 싶어서 온 줄 알아요?”주선웅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다 주씨 가문 때문이잖아요. 주씨 가문의 모두가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거라고요! 저는 모두가 저한테 했던 짓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만들 겁니다!”주기훈은 광기에 휩싸인 주선웅의 모습을 보며 깊은 후회와 무력감을 느꼈다.주선웅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주씨 가문의 비극은 상당 부분, 내부의 다툼과 불공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하지만 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주선웅은 이미 구치소에 갔고 자신 역시 그 일에 휘말려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주기훈이 탄핵됐다는 소식이 은산시에 퍼져 나갔다.친족의 범죄를 묵인했다는 말도, 권한을 남용했다는 말도 뒤섞이면서 그는 순식간에 온갖 비난의 대상이 됐다.텅 빈 사무실에 홀로 앉아 창밖을 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주기훈의 마음은 절망으로 가득 찼다.지금 이 순간 가장 통쾌해하고 있을 사람은 틀림없이 주민혁일 거라고 생각했다....신혼집 별장 거실에서는 이미 강지안이 약을 챙겨 두고 주민혁을 기다리고 있었다.“앉아.”강지안이 맞은편 소파를 가리키며 담담하게 말했다.“수빈 씨 일은 들었어. 무사히 구해 온 거, 정말 쉽지 않았겠네.”주민혁은 소파에 몸을 기대더니 피곤한 듯 미간을 꾹꾹 눌렀다.“그냥... 아무 일 없어서 다행이야.”강지안은 물 한 컵과 알약 몇 개를 그의 앞에 내려놓았다.“새로 처방한 약이야. 예전 것보다 부작용이 훨씬 적으니까 먼저 복용해 봐. 그리고 너, 스스로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고 있어. 늘 혼자 감당하려고만 하지 마. 항상 다른 사람을 지키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은 외면하고 있잖아. 그런데 과도한 보호가, 상대에게는 오히려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안 해봤어? 수빈 씨는 약한 사람이 아니야. 너와 함께 버텨낼 힘이 있는 사람이지. 지금처럼 밀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주민혁은 약을 바라보다가 갑판 위에서 최수빈이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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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주민혁은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섰다가 눈을 감고 밀려오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억눌렀다.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강지안에게 전화를 걸었다.“강지안.”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리 단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제대로 된 치료 스케줄 잡아줘.”휴대폰 너머의 강지안이 잠깐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왜, 이제 머리 굴리지 말고 좀 쉬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그녀는 주민혁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주민혁은 늘 스스로를 끝까지 몰아붙이는 성격인지라 모든 일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끝까지 계산하며 단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않았다.이내 그가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난 건강한 감정이 필요해.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내가 마주해야 할 사람들과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해내야 해.”“알겠어.”강지안의 말투도 진지해졌다.“내일부터 바로 진행할게. 약물치료, 심리 상담, 물리 치료까지 전부 포함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네가 적극적으로 따라오기만 하면 분명 좋아질 수 있어.”“고마워.”주민혁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친 뒤, 그는 곧바로 차를 몰아 주선웅을 만나러 구치소로 향했다.비웃기 위해서도 복수하려는 것도 아닌, 과거에 얽힌 감정을 정리하고 한 가지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접견실에서 주선웅은 수감복을 입은 채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거칠게 살아 있었다.주민혁이 들어오자 그가 비아냥 섞인 웃음을 지었다.“뭐야, 내 추한 꼴 보러 온 거냐?”주민혁은 그의 조롱에 반응하지 않고 맞은편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말했다.“비웃으러 온 거 아니야. 한 가지 말해 줄 게 있어서 왔지.”“그래? 뭔데?”주선웅은 비웃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난 이모 숨긴 적 없어.”주민혁은 주선웅의 눈을 응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형은 계속 내가 이모를 감춰뒀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아니야. 이모는 스스로 주씨 가문을 떠났어. 주씨 가문 사람들의 끝없는 싸움과 위선에 지쳐서.”주선웅은 순식간에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벌떡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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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주민혁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깊고 무거운 시선으로 주선웅을 바라보며 그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이 사람은 이미 집착에 사로잡혀 있었고 무슨 말을 해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라는 걸.여기서 더 시간을 보내 봐야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정보는커녕 시간만 낭비할 뿐이었다.때문에 주민혁은 더 말하지 않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러자 주선웅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눈빛에는 여전히 분노가 남아 있었지만 조금 전처럼 소리를 치지는 않고 그저 주민혁의 뒷모습을 이를 악문 채 노려볼 뿐이었다.하지만 주민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접견실 출구를 향해 곧장 걸어가며 그 원망 가득한 시선을 완전히 뒤로 남겨 두었다.그렇게 접견실을 나와 복도 끝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주 회장님, 오랜만입니다.”주민혁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심종연이 몸에 딱 맞춘 짙은 회색 정장을 입은 채 손을 주머니에 꽂고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입가에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심종연은 오래전부터 주민혁과 상업 전장에서 맞붙어 온 숙적이었다.겉으로든 물밑에서든 수없이 싸워 왔고 서로의 수법과 야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이였다.‘하필 이런 때에...’“네, 심 대표님.”주민혁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담담하게 말했다.“여기서 뵐 줄은 몰랐네요.”심종연은 벽에서 몸을 떼고 천천히 다가오더니 잠시 그의 얼굴을 훑어보고는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전 주선웅 씨 좀 보러 왔거든요. 예전에는 나름 협력 관계이기도 했는데 국가급 엔지니어를 납치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죠. 참 놀라운 일 아닙니까?”주민혁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주민혁이 파악한 심종연의 성격이라면 절대 이렇게 이유 없이 잡담을 늘어놓는 타입이 아니었다.더군다나 이런 민감한 상황에서 주선웅을 꺼낸 데에는 반드시 다른 의도가 있을 터였다.역시나, 심종연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화제를 돌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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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주 회장님, 정말 다시 한번 생각 안 해보시겠습니까? 그 프로젝트들 잠재력이 엄청납니다. 이번 기회 놓치면 다음에는 이런 조건 다시 오기 힘들 거예요.”“괜찮습니다.”주민혁이 가볍게 웃었다.“관심 있으시면 심 대표님께서 직접 맡으세요. 주상 그룹은 끼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치고 나서 주민혁은 돌아서려 했다.그런데 심종연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시 불렀다.“주 회장님,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주상 그룹은 주선웅 씨의 사건 직후라 내부가 완전히 안정됐다고 보기 어렵죠. 이 기회까지 놓치면 회사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을 텐데요?”주민혁은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는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주상 그룹의 일은 제가 알아서 판단하겠습니다.”이 말을 끝으로 그는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고, 오직 심종연만이 그 자리에 남아 얼굴이 잔뜩 굳은 채 서 있었다....밖으로 나온 주민혁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이 타이밍에 심종연이 협력 얘기를 꺼낸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주상 그룹이 막 안정을 찾는 틈을 타 흔들어 보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컸다.때문에 그는 서둘러 대응해야 했다.려운에게 회사 내부 관리와 보안을 강화시키고 플라잉 테크의 움직임도 철저히 감시해야 했다.주민혁은 휴대폰을 꺼내 려운에게 전화를 걸었다.“려운, 플라잉 테크가 최근 어떤 움직임을 보이는지 바로 조사해. 특히 형과 함께하던 프로젝트들을 위주로 이상 징후가 있는지 전부 확인해. 그리고 회사 내부 보안이랑 관리도 전면 강화하고.”“네, 대표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려운은 간결하고도 힘있게 답한 뒤, 전화를 끊었다.주상 그룹은 이미 주선웅의 사건 이전부터 전부 그에게 맡겨진 상태였다.이 시점에서 주민혁이 다시 회사 쪽을 신경 쓰는 이유를 려운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시가 내려온 이상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주민혁은 휴대폰을 넣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회사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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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그런데 민혁이는 어디 있어? 같이 안 돌아왔니?”주민혁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살짝 흐려지며 최수빈이 조용히 말했다.“아직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바쁘게 갔어요.”섬에서 돌아온 날, 그녀는 부두에서 주민혁을 끝내 만나지 못했다. 그 이후로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아마 아직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 것이리라 여기며 최수빈도 일부러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할 말은 이미 다 했으니 이제 남은 건 그가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뿐이었다.이혜정은 딸의 기분이 가라앉은 걸 알아채고 더 묻지 않았다. 대신 그저 한숨을 살짝 내쉬고는 부엌으로 향했다.“배 많이 고프지? 엄마가 너 제일 좋아하는 갈비찜 해 줄게.”바쁘게 움직이는 이혜정의 뒷모습을 바라보자 최수빈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육강민의 전화였다.전화를 받자마자 미안함이 가득 담긴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빈 씨, 괜찮아요? 수빈 씨가 실종됐다는 얘기 듣고 계속 연락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네, 괜찮아요. 이미 집에 돌아왔어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미안해요. 그날 원시림에서 갑자기 잠들어버려서 수빈 씨를 지켜주지 못했네요. 그때 내가 깨어 있었으면 수빈 씨가 끌려가지는 않았을 텐데...”최수빈은 이 일이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분명히 주선웅네 쪽에서 약을 쓴 것일 터였다.“강민 씨 탓 아니에요. 상대가 미리 함정을 파놓은 거지.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요.”그녀가 위로를 건넸다.“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지워지질 않네요.”육강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지금 어디예요? 직접 사과도 하고 수빈 씨가 정말 괜찮은지도 보고 싶은데...”최수빈은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집이에요. 나 정말 괜찮으니까 굳이 올 필요 없어요.”최수빈은 육강민이 자신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주민혁에게 가 있었기에 괜한 오해도, 쓸데없는 기대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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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육민성과 송미연은 서로 눈을 마주치자마자 바로 알아챘다.육강민이 최수빈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이 만남이 우연일 리 없다는 것도 단번에 눈치챈 것이다.송미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 이런 데서 다 만나네요. 이왕 이렇게 만난 거, 같이 앉으실래요?”그러자 육강민은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끌어와 최수빈의 옆에 앉으며 다정하게 물었다.“수빈 씨, 뭐 먹고 싶어요? 여기 시그니처 메뉴가 트러플 스테이크래요. 맛있다던데, 하나 시켜줄까요?”최수빈은 조금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제가 직접 고를게요.”마음 없는 사람에게 괜한 기대를 품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육민성은 최수빈을 살뜰히 챙기는 육강민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최수빈의 마음속에는 오직 주민혁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육강민의 노력은 결국 헛수고가 될 가능성이 컸다.송미연은 아예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강민 씨, 수빈이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시라도 하는 줄 알겠어요.”육강민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담담하게 답했다.“전 그냥 수빈 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잘 대해줄 가치가 있는 사람이잖아요.”최수빈은 그의 시선을 피한 채 메뉴판만 내려다보며 못 들은 척했다. 곧 육민성이 서둘러 분위기를 정리했다.“자, 그만하고 얼른 주문합시다. 다들 배고프잖아요.”식사 내내 육강민은 고기를 잘라 접시에 올려주고 물이 비면 바로 따라주며 세심하게 챙겨주었다.최수빈이 몇 번이나 괜찮다고 했지만 그가 온갖 이유를 대 계속 챙기는 탓에 결국 받아주는 수밖에 없었다.식사가 끝나자 육강민이 먼저 나섰다.“제가 집까지 데려다줄게요.”최수빈이 거절하려는 순간, 송미연이 먼저 끼어들었다.“괜찮아요, 저희도 같은 방향이거든요. 저희가 데려다줄게요.”그러자 육강민은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그럼 조심히 가요. 집 도착하면 꼭 연락하고요.”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육민성과 송미연을 따라 레스토랑을 나섰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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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송미연은 단호한 최수빈의 눈빛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등을 한 번 토닥여 주고 더는 말을 보태지 않았다.사랑이란 정답도 오답도 없는, 결국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송미연은 최수빈의 결정을 존중했고 언제나 이성적이고 독립적이었던 그녀가 스스로의 해답을 찾아낼 거라 믿고 있었다....차가 최수빈 집 앞에 멈추자 송미연이 웃으며 말했다.“힘들 때는 언제든 연락해. 혼자 버티지 말고.”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여는 순간, 작은 몸이 와락 품으로 뛰어들며 울먹였다.“엄마! 드디어 온 거예요? 예린이가 엄청 보고 싶었다고요!”딸을 꼭 끌어안자 최수빈은 코끝이 시큰해졌다. 옆에서 도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어제 돌아온다는 연락 받고 예린이 데려왔어요. 며칠 내내 엄마를 찾더라고요.”그날 밤, 주예린은 한시도 최수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잠들 때도 팔을 꼭 붙잡은 채 중얼거렸다.“엄마, 또 어디 가지 마요. 예린이 말 잘 들을게요.”최수빈은 아이의 등을 다독이며 이마에 입을 맞췄다.“엄마 이제 안 떠나. 앞으로 계속 예린이랑 같이 있을게.”...다음 날 아침, 아직 잠에서 덜 깬 최수빈의 휴대폰이 울렸다. 항공우주 연구원 원장이었다.“수빈 씨, 다음 주 은산시에 중요한 산업 포럼이 열려. 무인기 기술의 최신 흐름을 다루는 자리인데 우리 연구원을 대표해서 참석해 줘. 다른 기관 전문가들과도 교류하고.”최수빈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네, 원장님. 미리 자료 준비해 두겠습니다.”전화를 끊고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주예린을 바라보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그러다 이번에 은산시에 가면 주민혁과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이후 며칠 동안 최수빈은 연구원 업무를 처리하면서 출장 준비도 함께 했다.출발 전날에는 일부러 마트에 들러 주예린을 위한 간식과 장난감을 잔뜩 사고, 도우미에게 아이를 부탁한 뒤 은산시로 향하는 KTX에 올랐다.은산시 산업 포럼은 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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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최수빈은 잠시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지금 국가급 프로젝트를 맡아서 진행 중이라 솔직히 시간이나 여력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바쁜 거 알아.”육민성이 급히 덧붙였다.“전업으로 참여하라는 게 아니야. 가끔 기술적인 조언만 해주고 막히는 부분 좀 도와주면 충분해. 이 프로젝트는 천공에도 중요하지만 무인기 산업 전체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거야. 한 번만 더 생각해 줘.”최수빈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해볼게요. 대신 여유 시간에만 도울 수 있어요.”“정말?”육민성의 얼굴이 환해졌다.“포럼 끝나면 자료 바로 보내 줄게.”그때, 회장 입구 쪽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최수빈이 무심코 고개를 돌려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주민혁이 곧게 선 자세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그는 나타나자마자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림이 터져 나왔다.“저 사람 주민혁 아니야? 자기 형을 감옥에 보냈다던데, 주씨 가문 거의 망했다면서 여기 올 얼굴이 있나?”“그러게, 가족한테도 그 정도로 냉정한 사람인데 누가 같이 일하고 싶겠어?”“우울증도 있다잖아. 그런 사람이 주상 그룹을 제대로 이끌 수 있겠어? 조만간 망할 거야.”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매 한마디가 또렷이 최수빈의 귀에 들어왔다.최수빈이 그를 바라보는 사이, 주민혁은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마치 아무 말도 듣지 못한 사람처럼 곧장 귀빈석으로 향했다.최수빈은 가슴이 미어졌다. 다가가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그 순간 주민혁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 속에 긴장감이 흐르는 듯했다.그의 눈동자 깊숙한 곳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주민혁은 한 발짝 다가오려다 잠시 멈칫하더니 결국 방향을 틀어 다시 귀빈석으로 걸어갔다.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최수빈은 마음이 가라앉았지만 한편으론 그 선택이 이해되기도 했다.지금의 주민혁은 너무 많은 부담을 짊어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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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주민혁은 기업가들과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가며 얼굴에 단정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최수빈은 그의 눈빛 깊은 곳에 깔린 피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이번 포럼은 주상 그룹의 저력을 보여줄 기회이자 그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쏟아지는 의심과 견제 속에서 다시 중심을 잡고 주상 그룹에 더 많은 기회를 끌어오기 위해 버텨야 하는 자리였던 것이다.중간 휴식 시간, 최수빈이 휴게실에서 물을 따르고 있을 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빈아.”돌아서 보니 주민혁이 바로 뒤에 서서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너... 괜찮아?”연설을 오래 해서인지 그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다.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따뜻한 물 한 컵을 건넸다.“난 괜찮아요. 민혁 씨는요? 아까 아래에서 들리던 말들...”“나도 괜찮아.”주민혁은 말을 끊고 물을 한 모금 마셨다.“이제는 익숙해.”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최수빈을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이 포럼에는 왜 온 거야?”“항공우주 연구원에서 날 대표로 보냈어요. 다른 기관이랑 기술 교류하러.”최수빈이 조용히 말한 뒤, 덧붙였다.“아, 그리고 민성 선배가 천공의 신형 무인기 프로젝트 기술 고문을 맡아 달라고 해서 수락했어요.”주민혁은 잠시 놀란 듯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잘됐네. 네 실력이면 충분하지. 네가 함께하면 프로젝트도 훨씬 수월하게 진행될 거야.”두 사람 사이에 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최수빈은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때 포럼 스태프가 다가와 후반부 일정이 곧 시작된다고 알렸다. 주민혁은 고개를 끄덕인 뒤, 최수빈을 바라봤다.“나 가봐야 해. 포럼 끝나고... 우리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최수빈의 가슴이 살짝 뛰었다. 그녀는 그를 똑바로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기다릴게요.”...기술 토론 세션이 막 끝나고 최수빈이 고개를 숙인 채 메모를 정리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녀의 옆에 멈춰 섰다.고개를 들어보니 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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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심종연은 제안서를 접어 넣으며 한결 가벼운 말투로 바꿨다.“그렇다면 억지로 권하진 않겠습니다. 그래도 친구 사이인데 시간 한 번 내서 같이 밥이라도 먹죠. 일 얘기는 빼고 그냥 오랜만에 얼굴 보는 걸로.”최수빈은 회장 입구 쪽을 한번 바라봤다.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기다리던 익숙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포럼이 끝나고 주민혁과 이야기하기로 한 약속이 떠올라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심 대표님. 오늘은 이미 약속이 있어서요.”심종연의 눈빛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온기마저 사라졌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아쉽군요.”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돌아섰다.그리고 이런 심종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수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심종연의 초대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거절한 게 옳은 선택이었다....포럼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창밖에서 요란한 빗소리가 터져 나왔다.최수빈이 출입구로 나가 보니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고 바람에 실린 빗물이 안쪽까지 들이쳐 살을 에는 듯 차가웠다.초조해진 그녀가 반사적으로 얇은 재킷을 여몄다.우산도 없고 주민혁과 만날 장소도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말이다.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내려 했지만 신호가 불안정해 몇 번을 시도해도 전송되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최수빈은 처마 아래에 서서, 혹시라도 익숙한 차가 나타나길 바라며 주차장 쪽을 계속 바라봤다.비는 점점 거세지고 하늘도 어두워지더니 입구에 있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사라져 결국 그녀만 남았다.비를 맞고 택시를 잡으러 나갈까 고민하던 순간, 익숙한 체온이 느껴지는 검은색 정장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최수빈이 깜짝 놀라 돌아보니 주민혁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머리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고 앞머리는 잔뜩 젖은 채 이마에 붙어 있었다. 평소보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자세만큼은 여전히 곧았다.“왜 여기서 비 맞고 서 있어?”그는 정장 깃을 살며시 여며 주며 찬바람을 막아 주었다.“우산도 없고 메시지도 안 보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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