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Kapitel 951 – Kapitel 960

1010 Kapitel

제951화

주민혁의 손이 펜을 쥔 채로 갑자기 멈췄다. 펜촉이 서류 위를 긁으며 기다란 자국을 남겼다.그러다 그가 고개를 들었다.“지금 뭐라고 했어? 수빈이가 심종연이랑 협력을 한다고?”“네.”려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서를 내밀었다.“이 프로젝트는 윗선에서 직접 밀고 있는 건이고 수빈 씨가 핵심 기술 인력이라 심 대표님과 반드시 협력해야 합니다. 게다가 지난번 원시림 테스트 데이터가 전부 성공적으로 나와서 위에서도 이 사업을 굉장히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주민혁은 보고서를 받아 빠르게 넘겨보았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 갔다.“려운. 지금 당장 이 프로젝트 전반을 다 조사해. 방법이 있으면 어떻게든 수빈이를 이 일에서 빠지게 만들어.”려운은 초조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짧게 한숨을 쉬었다.“대표님, 이건 윗선 주도 사업이고 수빈 씨가 핵심 인력입니다. 쉽게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주민혁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어렵든 말든 일단 해봐야지.”단호함이 서린 목소리였다.“그리고 심종연의 움직임도 계속 주시해. 특히 수빈이랑 만날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보고하고.”“알겠습니다, 대표님.”려운은 고개를 숙인 뒤, 사무실을 나섰다.이윽고 주민혁은 휴대폰을 꺼내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려다 멈췄다. 번호를 누르려던 손가락이 한참을 허공에서 망설이다가 결국 내려왔다.어젯밤, 등을 돌리고 돌아서던 그녀의 단호한 뒷모습이 떠오른 것이다.그리고 주씨 가문의 일에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고 했던 자신의 말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런데 이제 와서 주민혁이 최수빈의 일에 간섭할 자격이 있을까? 그녀와 더 멀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어떻게 해야 최수빈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심종연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최수빈은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항공우주 연구원 팀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다음 단계 업무를 정리했다.일에 온전히 몰두하며 머릿속을 가득 채워 불안과 걱정을 밀어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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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2화

차가운 휴대폰 표면을 손끝으로 문지르며 그는 최수빈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되는 걸 느꼈다. 가슴 한가운데가 막힌 것처럼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혔다.한편, 최수빈은 전화를 끊자마자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살짝 눌렀다.그녀 역시 주민혁의 걱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간섭은 늘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주민혁은 그녀를 자신의 세계로 들이지 않으면서도, 정작 그녀의 선택에는 관여하려 했다.그리고 그 모순된 태도가 최수빈을 지치게 한 것이다.해 질 무렵, 휴대폰 화면이 다시 켜졌다.주예린이라는 이름이 뜨는 순간, 최수빈의 차갑던 눈빛이 서서히 풀렸다.통화 버튼을 누르자 화면 속에 동그란 얼굴의 딸아이가 나타났다. 이내 콧소리가 섞인 울먹이는 목소리도 들려왔다.“엄마, 언제 와요? 예린이 엄마 보고 싶어요!”“곧 갈게, 우리 아가.”최수빈은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낮추며 딸 뒤편에 보이는 도우미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이가 잘 케어 받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말을 이어갔다.“엄마 일 조금만 더 하고 바로 가서 놀아줄게. 그동안 이모 말 잘 듣고 있어, 알겠지?”“네!”주예린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화면 앞으로 바짝 다가오더니 소곤거렸다.“엄마, 거기서 아빠랑 잘 지내요? 아빠가 엄마 괴롭히진 않아요?”최수빈의 마음이 순간 흔들렸다.낮에 주민혁과 다퉜던 일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엄마랑 아빠 괜찮아. 걱정하지 마.”아이를 불안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두 사람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영상 통화를 끊고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지만, 화면 속 프로젝트 자료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래서 결국 컴퓨터를 꺼 버리고 의자에 몸을 기댄 채, 창밖 어둠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아마도 그녀와 주민혁 사이에는 정말 시간이 더 필요할지도 몰랐다....한편, 주민혁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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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3화

려운은 사무실에 가득 찬 술 냄새를 맡으며 주민혁의 붉게 충혈된 눈을 바라보았다.늘 단정함을 중시하던 주민혁은 지금 완전히 힘이 빠진 사람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대표님, 이렇게 스스로를 망가뜨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없어요.”려운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며 그가 쥔 술잔을 빼앗으려 했다.“수빈 씨 쪽도 어쩌면 오해일 뿐일 수 있습니다. 두 분이 제대로 이야기해 보면...”“말했잖아. 혼자 냅두라고.”더 말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느낀 려운이 조용히 뒤로 물러나 사무실을 나섰다.복도를 나오자마자 그는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더니 목소리를 낮춰 조심스럽게 말했다.“수빈 씨,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려 비서님? 무슨 일이에요?”최수빈의 목소리에는 의아해하는 기색이 묻어 있었다.려운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했다.“대표님이... 술을 너무 많이 드셨습니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두 분 사이에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표님 마음속에는 여전히 수빈 씨가 있습니다. 다만 표현을 못 할 뿐이에요. 이런 말씀 드리는 게 공평하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혹시 아직 대표님을 사랑하신다면, 한 번만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대표님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수빈 씨뿐입니다.”려운은 주민혁이 그동안 최수빈에게 얼마나 상처를 줬는지 잘 알고 있었다.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또다시 이해를 요구하는 게 얼마나 잔인한지도 잘 알고 있었다.상대는 오래도록 조용했다. 그 침묵이 너무 길어 려운조차 답을 듣지 못할 거라 생각할 만큼 말이다.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순간, 최수빈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알겠습니다. 말해 줘서 고마워요.”이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려운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주민혁은 책상에 엎드린 채 깊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미 잠든 듯 보였다.려운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그런 다음 외투를 벗어 그의 어깨에 덮어 주고 흩어진 빈 술병을 정리한 뒤, 조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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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4화

“우리 딸, 엄마도 많이 보고 싶었어.”최수빈은 딸을 꼭 안고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췄다.“이틀 동안 은산시에서 엄마랑 실컷 놀자, 응?”“좋아요! 좋아요!”주예린은 신이 나서 손뼉을 치다가 문득 뭔가 떠올린 듯 최수빈의 손을 잡아끌었다.“엄마, 아빠도 은산시에 있잖아요. 우리 아빠 보러 가서 같이 놀면 안 돼요?”최수빈의 심장이 순간 펄쩍하고 뛰었다.기대에 찬 딸의 눈빛을 마주 보다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오늘 하루 놀고 내일 아빠 보러 가자.”그 말에 주예린은 더 신이 나서 길 내내 재잘거렸다.아빠가 자기를 보고 싶어 했는지, 놀이공원에 데려가 줄 건지 끊임없이 물어댔다.최수빈은 웃으며 하나하나 대답해 주었지만 마음 한편은 긴장으로 가득했다.주민혁이 주예린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세 사람이 다시 마주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호텔에 도착한 뒤, 최수빈은 딸과 함께 근처 공원으로 나갔다.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웃는 주예린을 바라보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도 오랜만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잠시 망설이던 끝에 휴대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예린이 은산시에 왔어요. 내일 시간 되면 같이 밥 먹어요.]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지만 마음은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계속 두근거렸다.그가 답을 할지, 만나자고 할지 알 수 없었다.한편 주상 그룹 사무실.숙취에서 막 벗어난 주민혁은 밀린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다.그때 휴대폰 화면에 뜬 최수빈의 메시지를 보는 순간, 그대로 손이 멈췄다.최수빈이 먼저 연락을 했고 주예린도 은산시에 와 있다는 사실에 그는 몇 번이고 다시 문자 내용을 확인해 보았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그가 곧 답장을 보냈다.[좋아. 내일 점심에 내가 데리러 갈게. 뭐 먹을지는 예린이가 고르게 하자.]...다음 날 점심, 주민혁은 일찍 호텔 앞에 도착해 차를 세워 두고 기다리고 있었다.이윽고 최수빈이 주예린의 손을 잡고 나오는 모습을 보자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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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5화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최수빈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익숙하고도 세심한 손놀림, 이 남자는 늘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사소한 행동 속에 숨겼다.딸의 취향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으면서도, 지난날의 냉담했던 태도 때문에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럽게 꺼내는 사람이었다.어쩌면 주예린이야말로 두 사람 사이를 풀 수 있는 가장 좋은 열쇠인지도 몰랐다.레스토랑은 주민혁이 미리 예약해 둔 가족 전용 테마룸이었다.벽에는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아이용 식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메뉴판이 나오자마자 주예린이 이내 한 그림을 가리켰다.“아빠, 나 이거 먹을래요! 공룡 모양 밥!”주민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최수빈을 바라봤다.“예전에 그 집에서 먹었던 갈치조림 또 먹고 싶어? 하나 더 시켜줄까?”최수빈은 잠시 멈칫했다.무심코 했던 말이었는데 주민혁이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네.”그녀는 작게 대답하며 주민혁이 능숙하게 생선 가시를 발라 주고, 껍질을 벗긴 새우를 딸아이의 그릇에 올려 주는 모습을 바라봤다. 눈빛은 한없이 따뜻했다.식사가 한창일 때, 주예린이 갑자기 숟가락을 내려놓고 냅킨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빠... 다음 주에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이 있는데 아빠가 와 줄 수 있어요?”목소리는 점점 작아졌지만 눈빛에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지금까지는 항상 엄마나 이모만 왔거든요. 친구들이 아빠는 어디 있냐고 자꾸 물어봐요...”주민혁은 그대로 손을 멈칫했다.조심스러운 딸의 표정을 보는 순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래서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뒤, 그가 낮게 말했다“아빠가 꼭 갈게.”“진짜요?”주예린의 눈이 환하게 빛났다.“와! 그럼 나 선생님한테 아빠도 온다고 말할 거예요!”딸의 환한 웃음을 보자 주민혁의 마음은 따뜻하게 녹아내렸다. 마치 미지근한 물에 잠긴 것처럼 부드러워졌다.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최수빈을 바라보며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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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6화

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그는 급히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무슨 일이야? 무슨 문제 생겼어?”최수빈이 고개를 들었다.“방금 법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박하린 씨가 새 증거를 제출했대요. 내가 국가 기밀을 유출해서 기술 자료를 하린 씨한테 넘겼다고 주장하면서 지금 당장 출석해서 조사에 협조하래요.”주민혁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더니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잖아.”주예린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는지 최수빈의 옷자락을 붙잡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엄마, 무슨 일이에요? 우리 놀이공원 안 가는 거예요?”최수빈은 몸을 낮춰 애써 미소를 짓고는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예린아, 엄마랑 아빠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어. 놀이공원은 다음에 가자, 응?”조금 아쉬운 얼굴이었지만 주예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네. 엄마 걱정하지 마요. 저 착하게 있을게요.”주민혁은 곧바로 려운에게 전화해 주예린을 데리러 오라고 하고, 먼저 호텔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잠시 후 려운이 도착해 주예린을 데려갔고 주민혁은 최수빈과 함께 법원으로 향했다.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준 채, 주민혁의 눈빛에는 싸늘한 기운이 깔려 있었다.박하린이 갑자기 새 증거를 들고나온 데에는 분명 배후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배후는 심종연이거나 주기훈일 가능성이 컸다....얼마 후, 검은 세단이 법원 앞에 멈췄다. 최수빈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입구 근무자들의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예전 주민혁과 올 때에는 늘 공손한 태도와 함께 ‘주 대표님’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하던 사람들이었다.하지만 오늘은 그의 차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거두었고 표정도 비즈니스적인 태도에 가까웠다.최수빈은 주먹을 꼭 쥐며 이 냉정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였다.주선웅은 구속됐고 주기훈은 힘을 잃었기에 주씨 가문은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들을 압도하던 존재가 아니었다.때문에 주민혁 역시, 이제는 뒤에 버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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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7화

카페의 통유리창 너머로 차들이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최수빈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차가운 컵 벽에 손끝을 댄 채,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법원 직원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박하린이 제출했다는 새 증거, 국가 기밀 유출이라는 혐의, 그 한마디 한마디가 돌처럼 가슴을 짓눌렀다.옆에 앉은 주민혁은 그녀의 이러한 변화를 다 보고 있었다.그래서 커피 스푼을 내려놓고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별일 아니야. 나 믿어.”최수빈이 그를 올려다봤다.남자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깊고 고요한 시선은 잔잔한 호수처럼 그녀의 모든 불안함을 받아주고 있었다.여태 그는 늘 차갑고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이제서야 분명히 보이는 것 같았다.그 냉정한 모습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겉모습일 뿐, 속은 누구보다도 다정했다.그 한마디가 따뜻한 바람처럼 가슴을 스치자 긴장으로 굳어 있던 마음 어딘가가 툭 하고 풀리며 부드럽게 젖어 들었다.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컵 손잡이를 꽉 쥐고 있던 손에도 그제야 힘이 조금 풀렸다.주민혁은 그 모습을 보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최수빈의 손등을 덮어주었다. 얇은 옷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체온에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편하게 있어. 내가 있잖아.”가벼운 동작이었으나 확신이 담겨 있었다.최수빈은 순간, 섬에서 그가 온몸으로 자신을 지켜내며 모든 위험을 혼자 막아섰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때였다.카페 유리문이 열리며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최수빈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가 선글라스를 낀 채, 강렬한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당당하게 들어오는 조윤미를 발견했다.지난번 항공우주 연구원 앞에서 보였던 초췌한 모습과는 달리, 지금의 그녀는 한껏 윤기가 돌고 있었다.다만 눈빛 깊숙한 곳에는 여전히 날 선 기운이 서려 있었다.최수빈은 속으로 의아해했다.박하린이 문제를 일으킨 뒤, 조윤미의 지창 그룹은 핵심 기술을 잃고 이미 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때문에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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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8화

그 과정에서 자존심도 체면도 모조리 바닥에 떨어졌다.최수빈은 조윤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모든 일에는 증거가 필요한 법이에요. 거짓 증언을 하면 그 자체로 범죄입니다.”“증거?”조윤미가 피식 비웃으며 가방에서 서류 한 묶음을 꺼내 탁자 위에 내리쳤다.“이게 바로 증거니까 잘 봐요! 하린이가 새로 제출한 자료인데 국가 기밀을 유출한 게 바로 최수빈 씨라는 걸 증명해 주죠. 기술 자료를 하린이에게 넘긴 사람도 최수빈 씨고요! 주민혁, 네가 아무리 감싸도 소용없어. 최수빈 씨도 곧 우리 하린이처럼 인생이 망가질 거야. 아니, 하린이보다 더 처참해질지도 모르지!”최수빈은 서류를 내려다보며 차분히 말했다.“여사님, 제가 기밀을 유출했는지 아닌지는 법원이 판단할 일이지, 여사님이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어요.”“소문?”조윤미는 오히려 더 기세등등해졌다.“두고 봐요. 재판이 열리면 모든 증거가 다 공개될 테니까. 그때 가서 누가 진짜 범죄자인지 똑똑히 알게 될 거라고요! 주민혁, 최수빈 씨, 둘 다 절대 못 빠져나가요!”곧 주민혁이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큰 체구가 자연스럽게 최수빈의 앞을 가리더니 시선을 막았다.그는 조윤미를 보며 짧게 웃었다.“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죠.”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한마디에 조윤미는 반사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차갑게 가라앉은 주민혁의 눈빛을 마주하자 순간 덜컥 겁이 났지만 뒤에 버팀목이 있다는 생각에 다시 이를 악물었다.“좋아! 법정에서 보자고! 네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녀는 서류를 움켜쥔 채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어색하게 몸을 돌려 카페를 빠져나갔다.조윤미의 모습이 문밖으로 사라지자 최수빈은 그제야 긴장이 풀린 듯 의자에 기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주민혁은 다시 자리에 앉아 따뜻한 물을 그녀에게 건넸다.“물 좀 마셔. 저 사람 말에 흔들릴 필요 없어.”최수빈은 컵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사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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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9화

그의 말투는 유난히 살가웠고 관료 특유의 딱딱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민혁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임이 분명해 보였다.주민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나누며 여유롭게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원장님. 그저 제 할 일을 했을 뿐이죠.”그는 옆으로 몸을 틀어 최수빈을 자연스럽게 이끌며 정중하게 소개했다.“이쪽은 최수빈이라고 합니다. 항공우주 연구원의 핵심 기술 엔지니어이자 이번 사건의 당사자입니다.”이정욱은 최수빈을 보자마자 눈빛이 밝아지며 감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윽고는 손을 내밀었다.“민혁 씨가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수빈 씨가 주도한 무인기 항법 시스템 프로젝트, 우리나라 항공우주 기술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죠. 기술 강국은 바로 수빈 씨 같은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만들어 가는 겁니다.”예상치 못한 칭찬에 최수빈은 잠시 놀랐지만 이내 공손히 손을 잡으며 말했다.“과찬이십니다, 원장님. 국가 기술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영광이고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책임이라니, 참 멋진 말이군요!”이정욱은 호탕하게 웃으며 의자를 끌어 앉았다.“오늘 제가 직접 온 이유는 박하린 씨 측에서 제출한 새 증거에 대해 이미 법원이 본격적으로 검토에 들어갔다는 걸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수빈 씨, 걱정 마세요. 모든 자료를 철저히 검증할 겁니다.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은 절대 없도록 하겠습니다.”그 말을 들으며 최수빈은 비로소 깨달았다.조금 전 주민혁이 보였던 침착한 모습은, 근거 없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이미 모든 수를 준비해 둬 여유로웠기 때문이라는 것을.그때 권성우가 서류 가방을 열고 자료들을 하나씩 테이블 위에 펼쳐 놓았다.“민혁 씨, 수빈 씨, 이건 저희가 확보한 반박 자료들입니다. 프로젝트 참여 당시의 모든 서명 기록, 기술 파라미터 원본 파일, 그리고 박하린 씨가 해당 자료에 접근했던 시간대 정리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수빈 씨가 기밀을 유출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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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0화

이 하나의 모습만 봐도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지 알 수 있었다. 돈이 많다고 다가 아니었다. 진짜 힘은 결국 권력이었다.이정욱은 그런 아첨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정문 열어 주세요. 3층 조정실로 올라가겠습니다.”“아, 네! 바로 열겠습니다!”근무자는 황급히 열쇠를 꺼내 뛰어가 문을 열어젖히며 허리를 굽혔다.“원장님, 주 회장님, 최수빈 씨 조심히 가세요! 필요하신 거 있으면 언제든 부르시고요!”...네 사람이 법원 안으로 들어가자 근무자는 문 앞에 그대로 서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아까 주민혁과 이정욱의 관계를 알았더라면, 아무리 배짱이 있어도 그렇게 함부로 굴지는 못했을 것이었다.‘주씨 가문이 망했다는 소문만 믿고 함부로 굴었다가 큰일 날 뻔했네.’법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이정욱은 걸어가며 주민혁과 이야기를 나눴다.사법 정책에서 시작해 경제 흐름까지 화제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두 사람은 막힘없이 대화를 주고받았다.최수빈은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겉보기에는 늘 침착하고 단호해 보였지만, 안은 언제나 한 치 앞을 내다보듯 치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만큼 머리를 혹사해야 했을 것이다.주민혁의 적은 눈에 보이는 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너무 많았다.그 순간 최수빈은 그가 왜 약을 쉽게 먹지 않으려 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우울증 약을 계속 복용하면 사고가 둔해지고 반응 속도도 떨어질 수 있다.이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는 전쟁터와 같아서 순간 판단이 느려지는 건 곧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게다가 그의 마음에는 늘 자신과 딸의 미래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얹혀져 있었다.이 모든 생각들에 마음이 무거워진 최수빈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그들이 3층 조정실에 도착해보니 조사팀 사람들은 이미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이정욱이 주민혁과 최수빈을 소개하자 곧바로 사건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권성우는 준비해 온 자료를 차례대로 펼쳐 보이며 논리적으로 반박 근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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