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비의 울분은 피눈물이 서린 듯 절절했고, 당장이라도 연천능을 바로 죽일 기세였다.설령 그가 한 일이 아니라 해도, 일단 책임이라도 지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가?유여매의 명성이 이렇게 망가졌는데, 앞으로 무슨 낯으로 사람들을 보라는 말인가? 설령 능왕부에 데려가서 손도 대지 않는다 해도, 유여매가 몸과 명예를 잃는 것보단 훨씬 나을 터였다!혜비의 냉혹하고 독한 눈빛을 보며, 백진아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는 혜비가 연천능과 유여매에게 보이는 태도가 너무 이상하게 느껴졌다.반면, 연천능은 여전히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눈빛에도 온기 하나 없었다. 마치 이 모든 상황이 전혀 놀랍지도, 억울하지도 않다는 듯 담담해 보였다.황제가 낮게 물었다.“능왕,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연천능은 혜비와 유여매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차갑게 말했다.“어찌 된 일인지 갑작스레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이곳의 침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으나 욕구를 자극하는 향이 피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누군가가 저를 해치려는 것을 알고 간신히 몸을 일으켜 마당을 벗어났습니다. 호숫가에 가서 중독된 몸을 식히려고 했으나, 저를 찾던 고지행과 백진아를 만나 독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그는 일부러 혜비의 궁에서 다과를 먹고 기절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았다. 혜비까지 연루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진실이 드러나면 누구의 체면도 온전치 않을 테니, 혜비가 이 정도는 눈치채기를 바랐다.하지만 혜비는 고개를 숙이고 울기만 하며, 계속 못 들은 척할 뿐이었다.고지행은 늘 장난스럽던 태도를 거두고 앞으로 나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소신은 연회장에 조금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갔을 땐 자리에 이미 아무도 없었고, 곧이어 어화원에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지요.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먼저 능왕비를 뵈었고, 이어 호수에 뛰어들려던 능왕 전하를 발견했습니다. 저희는 다급히 전하를 막고, 전하의 몸을 살폈지요. 그리고 더러운 수작에 걸려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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