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빈은 허겁지겁 옷자락을 움켜쥐며 형식뿐인 인사를 올린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뒤돌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이도현의 눈빛은 점점 서늘해졌다. 허리를 감싸며 아랫배를 보호하듯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이 그의 눈에는 칼날처럼 거슬렸다.그 무렵, 청하는 아씨가 이미 한 시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가슴이 조마조마 해졌다.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마침내 신수빈이 모습을 드러내자 기쁨에 찬 열굴로 급히 달려와 그녀를 부축했다.“섭정왕께서는...?”청하가 뒤편을 흘깃 바라보자 그녀는 냉랭하게 잘라 말했다.“신경 쓰지 말거라.”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앞선 일에 붙들려 있었기에 뒤에 서 있는 이도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하를 데리고 곧장 그 자리를 벗어났다.신수빈은 청하를 창란원으로 돌려보내고 오직 은보만을 거느리고 하풍원으로 향했다.연회장은 여전히 구경꾼들로 떠들썩했기에 그녀가 이미 한참 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눈치챈 이는 드물었다.다만 주서화만은 그녀 곁에 낯선 시녀가 따르는 것을 발견했다. 평소 그림자처럼 붙어 있던 청하가 보이지 않자 속으로 은근히 쾌재를 불렀다.오늘 그녀는 일부러 연이를 시켜 청하를 연회 옆 뜰로 꾀어내게 했다. 한 번 그곳에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 수가 제 자리를 잡았다.신수빈이 연못가 정자에 앉아 부채를 가볍게 흔들며 태연한 척하는 모습을 보자 주서화의 입가에는 더욱 오만한 미소가 번졌다.바로 그때, 어린 시녀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와 서씨 부인 귀에 속삭였다.곧 그녀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주서화가 가로막고 나섰다.이렇게 공들여 꾸민 대연극을 어찌 어둠 속에 묻히게 하겠는가?서씨 부인이 진상을 가리려 한다면 그 모든 노고가 물거품이 될 것이다.“어머님, 무슨 일이십니까? 방금 저 아이가 간통이니, 몰래 정을 통했다느니 그런 말들을 속삭이던데... 제가 중궁살림을 맡고 있는데 어찌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