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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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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육승과 그의 부하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충성을 표했다.“목숨을 구해주신 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는 죽을 때까지 마마께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서인경은 어색한 표정으로 코끝을 매만졌다.‘연기준, 내가 당신 부하 꼬신 거 아니야. 이게 내 매력이라고.’“그런 말 말거라. 너희가 이곳에 온 것도 모두 나를 위해서였는데… 내가 너희를 위험에 빠뜨렸으니 그리 감사할 일도 아니다.”육승은 정색하며 그녀에게 말했다.“저희는 왕야의 명을 받들어 마마의 안전을 지키기로 하였습니다. 마마는 저희들의 주인이시니, 저희를 두고 갔어도 아무도 마마께 뭐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마께선 저희를 버리지 않고 구해주셨으니, 은혜가 맞습니다.”서인경은 이 대화를 계속해 봐야 저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뼛속 깊이 충성만 있는 녀석들! 그래도… 귀엽네.’“됐어. 그만들 해. 어차피 우린 생사를 함께 한 사이이니 앞으로도 친구야. 은혜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앞으로 도울 일 있으면 서로 돕자고.”서인경은 그들의 관계를 친구로 정리하며 대화를 끝내 버렸다.그들은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겼고 여정 내내 합이 잘 맞았으니 친구라고 해도 무방하다 생각했다.한편, 그 시각 경성은 꽤나 시끄러웠다.이주 지역이 다시 안정을 찾은 이후, 연기준은 서인경을 며칠이나 기다렸지만 전혀 소식이 없어서 기분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그래서 결국 그는 하는 수없이 직접 찾아나서기로 했다.침상을 내리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돌아온 연풍이 굳은 표정으로 달려왔다.“왕야, 아직은 누워계셔야 합니다.”연기준은 똥 씹은 얼굴로 불만을 토로했다.“놀음에 빠진 그 계집을 내 직접 가서 잡아오지 않으면 원통이 풀리지 않아!”연풍이 다급히 그에게 보고했다.“조금 전 육승의 서신을 전달받았습니다. 마마는 무사하신데 며칠 더 놀고 싶다 하시니, 왕야께서 공무가 끝나셨다면 먼저 돌아가도 좋다고 하셨답니다.”연풍의 기분도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서인경이 이 정도로 놀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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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심복의 말은 사실이었다.서가군이 전장에서 승리를 거둔 것 또한 이미 온나라가 아는 사실이고, 서가군은 현재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었다.심복은 영롱탑이 있는 곳이 워낙 편벽해서 소식이 닿지 않았다고 생각했다.지부는 하는 수 없이 그쪽으로 사람을 보냈다.연기준은 풍한이 들어 말을 타기엔 적절하지 않다고 하며 마차를 타고 돌아갔다.단은설이 시중을 들겠다 했지만 연풍은 매몰차게 거절했다.“단 소저, 가문의 마차를 타고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가는 길에 왕야께서 공무를 처리하셔야 하니,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단은설은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연기준은 의식을 회복한 이후로 줄곧 별채에서 두문불출하며 연풍만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했다.그녀는 여러 번 그의 방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매번 문전박대당했다.‘정말 일반 풍한이라면 왜 굳이?’게다가 서인경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바로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도 이상했다.연기준이 발병한 날, 서인경이 방에서 그를 보살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설마 시중을 들다가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그래서 놀러간 게 아니라 도망간 거 아니야?’그녀는 생각할수록 그럴 가능성이 제일 크다고 생각되었다.단은설은 어떻게든 진실을 알아내겠다고 다짐하며 마차 밖에서 고집을 피웠다.“왕야, 이번 구휼 물자 반환 관련해서 꼭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왕야께 직접 확인을 받고 미리 경성으로 사람을 보내 진행하게 할 생각입니다.”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모두가 또 거절당할 거라고 생각한 순간, 연기준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왔다.“타거라.”연풍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그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단은설은 잽싸게 마차에 올랐다.“가서 장부를 가져오거라.”명을 들은 단은설의 시종이 재빨리 뒤편으로 달려갔다.“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바로 가져오겠습니다!”큰 마차 안에는 난로가 있어서 온도가 딱 적당했다.연기준은 차벽에 담요를 덧대고 편하게 기대어 서책을 읽고 있었다.평소처럼 무표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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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단평안은 침상에 엎드려 불만을 토로했다.“아직 성사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큰 죄를 뒤집어썼으니 사람들이 저를 뭐로 보겠습니까? 얼간이로 보겠지요! 이 일이 알려지면 아무도 저와 같이 놀려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단효산은 콧김을 뿜으며 반박했다.“감히 누가 널 얼간이라고 하겠어? 전에는 네가 어려서 네게 뭘 가르칠 생각을 못했다만 이제 부상이 나으면 아비를 따라 점포를 돌며 장사에 대해 배워. 넌 언젠가는 가주가 될 사람이야.”단평안은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아 씩씩거렸다.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호부에 가서 잘못을 싹싹 빌고 돈까지 돌려주어야 한다니 너무 화가 치밀었다.딱히 이득을 취한 것도 없는데 일이 생기니 잘못을 뒤집어쓴 꼴이 되었다.단효산도 아들의 억울함을 이해했다.하지만 이해관계를 따져보니 단은설의 방법이 유일하게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어차피 단평안은 연기준에게 안 좋은 인상만 남겼으니 거기에 사건 하나를 더해도 변하는 게 없을 것이지만, 연기준이 단은설에게 불만을 느끼는 것보다는 나았다.단효산은 한참을 설득해도 단평안은 이런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삼대 독자이니 때릴 수도 없었기에 여간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그래서 결국 서풍교가 나서서 단평안이 가장 좋아하는 매운 닭찜을 해주어서야 겨우 달랠 수 있었다.“의원이 자극적인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으니까 조금만 먹어. 먹다가 불편하면 어미에게 말하고.”단평안은 게걸스럽게 닭다리를 뜯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았다니깐요. 역시 저 생각해 주는 사람은 어머니밖에 없네요.”“그럼 네 큰 누이의 제안 이만 받아줘.”단평안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말했다.“예, 어쩌겠습니까. 누님의 지시를 따라야지요.”연기준은 3일 후에 경성에 도착했다.그렇게 홀로 상왕부에 돌아오자마자 황제가 찾아왔다.대체 어디서 소문이 새어나간 건지, 황제는 태의원 원사까지 대동하고 왔다.그는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모두를 물리고 태의에게 진맥을 명했다.두 사람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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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연기준은 담담히 답했다.“감사합니다, 폐하.”황제는 그에게 누우라고 손짓하고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역병에 거린 사실이 어쩐 일인지 태황태후께 전해졌다. 짐이 출궁할 때도 굳이 오신다는 것을 짐이 겨우 말려서 안심시켰다. 할마마마께서는 네가 의식을 잃었을 때 상왕비가 네 곁에서 널 보살피지 않고 여의주를 보러 놀러 나간 것까지도 알고 계신다. 할마마마께서 화가 많이 나셨단다. 짐에게 상왕비를 당장 폐하라고 노발대발하고 계시니 상왕비가 돌아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 하거라.”팔순이 넘는 태황태후는 지금도 꽤 정정하며 성격이 불 같은 분이었다.근래에는 크게 얼굴을 비출 일이 없으셨는데, 그분이 얼굴을 비출 때면 큰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모두의 존경을 받는 그분께는 성조선제께서 남겨주고 가신 용두 지팡이가 있었다.한번 역정을 내시면 아무리 황제라도 조용히 꾸중을 들어야 했다.연기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그렇다면 태황 태후께 그 일을 알린 사람은 상왕비가 홀로 격리 구역에 보름이나 머물며 중증 환자들을 돌보았다는 사실은 전하지 않았나 보군요.”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짐도 할마마마께 그리 전했었지. 그러나 상왕비의 과거 품행을 아시는 할마마마께선 그 아이가 그런 일을 했다는 말을 전혀 믿지 않으시더구나. 할마마마도 너를 걱정하셔서 노여워하는 게지. 그 아이가 상왕부에 온 이후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역정을 내셨다.”그러나 그런 관심에도 연기준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그럼 돌아가서 태황태후께 제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상왕부의 집안일은 제가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말입니다.”태황태후와 상왕 사이의 갈등에 끼고 싶지 않은 황제는 단호히 그 부탁을 거절했다.“짐이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지만 그런 말들은 네가 다 나은 후에 스스로 할마마마께 가서 고하거라.”연기준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황제는 오래 머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짐은 이만 궁으로 돌아가야 하니,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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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상왕비마마, 서 노장군께서 곧 개선하고 귀경하실 것입니다. 왕야께선 이미 귀경길에 오르셨고 소인에게 마마의 호송을 부탁하셨습니다.”육승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농담 조로 말했다.“왕야께선 참으로 마마를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마마의 안전을 지켜드리지 못할까 봐 관료들까지 동원하셨군요.”서인경은 그런 그를 흘겨보고는 시큰둥하게 말했다.“아마 너희 왕야께서는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사라졌으니 지역을 책임지는 자가 알아서 찾아오라고 하셨을걸? 그분께 진짜로 일이 생겼다면 친히 오셔서 날 잡아갔겠지.”상왕과 상왕비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관료들끼리는 모두가 아는 비밀이었다.지부는 일을 그르쳐서 관직까지 도로 빼앗길까 두려워 조심스레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었다.“마마, 왕야께선 진짜로 마마를 걱정하고 계십니다.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으니 가면서 얘기하실까요?”서인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마차 말고 말 한 필이나 끌고 오거라.”육승도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지만 서인경은 다시 그를 눌러앉혔다.“난 할아버지를 뵈러 돌아가야 하지만 너희는 급하게 만나야 할 사람도 없지 않느냐. 천천히 뒤에서 따라오거라. 상왕께는 내가 잘 얘기할 테니.”육승은 아직 몸상태가 낫지 않는 그들을 배려해서 하는 말인 것을 알았다.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그들은 굳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지금 그들의 몸상태로는 서인경을 지키는데 무리가 있었기에, 사고가 나면 오히려 짐만 될 뿐이었다.서인경은 말을 타고 질주하여 이틀 후에 경성에 도착했다.그녀가 성문을 통과하자 주변에서 몰래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각자의 주인에게로 돌아갔다.서인경이 상왕부 대문에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바깥이 시끄러워졌다.황제 폐하가 이곳에 납신 것이다.그와 황후는 백발의 노인을 부축하며 궁녀와 태감들을 대동하고 안으로 들어왔다.5년동안 두문불출하던 태황태후가 갑자기 상왕부에 등장했으니 연기준은 물론이고 황제도 이 상황이 난감하기 그지없었다.그 역시도 뒤늦게 소식을 듣고 황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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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서인경은 한치 빈틈도 없는 당당한 얼굴로 모든 문제를 상왕에게 돌렸다.그러나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태황태후가 아니었다.“내 듣기로 너가 영롱탑에 여의주를 보러 갔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더냐?”서인경은 당당하게 고했다.“사실이 아니옵니다. 왕야께서 시키신 일은 군중기밀이라 사람들의 눈을 속여해야 해서 그곳을 지나쳐 갔을 뿐이옵니다. 왕야께 확인하십시오.”태황태후는 매섭게 눈을 치켜떴다.“증거가 있느냐?”서인경은 연기준이 증인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태황태후는 그녀의 얕은 술수에 넘어가지 않았다.‘내가 거기까지만 말하면 왕야가 나서서 도와줄 거라 하더니….’그러나 심드렁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전혀 도와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서인경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목숨 걸고 약을 찾으러 갔더니 저런 배은망덕한 자식을 봤나!’서인경은 옷섶에서 뭔가를 꺼냈다.“왕야가 증인이고 이 영패가 증거이옵니다.”이는 돌아오기 전 육승이 건넨 영패였다.그는 상왕부에서 외부 일을 자주 보러 나가는 호위에게는 다 있는 거라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이 영패를 들고 관아로 찾아가면 된다고 했다.서인경이 영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녀가 사적인 일로 외출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연기준은 담담한 얼굴로 영패를 바라보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이주는 북부 변방 인근에 위치해 있지요. 이주로 떠나기 전, 문제가 해결되면 겸사겸사 북부 변방에 순찰을 돌고 오겠다고 폐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역병에 감염되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왕비에게 맡긴 것이지요. 이는 폐하께서도 아시는 일입니다.”재밌게 구경하고 있던 황제가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아, 그렇지! 아우가 떠나기 전 그런 말을 했었는데… 짐이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태황태후는 그들이 입을 맞추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연기준은 서인경을 감싸고 있고 황제는 양측의 언쟁에 끼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기준아, 넌 애초에 상왕비를 마음에 들지 않아했었지. 오늘 내가 황상께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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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부관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답했다.“평이가 마마의 혼수품을 몰래 팔다가 걸려서… 왕야께서 벌을 내리셨습니다.”서인경은 주먹을 꽉 쥐고 또박또박 물었다.“평이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순간 분위기가 갑자기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다른 시종들은 감시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고 부관도 그제야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주인의 혼수품을 몰래 파는 행위는 죽을 죄입니다. 왕야께선 사람을 시켜 그 아이를 창고에 가두고 마마께서 돌아오시면 상의하여 처결한다 하셨습니다.”평이가 무사하다는 얘기를 들은 후에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내가 시킨 일이다. 내가 내 혼수를 판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연기준의 지시에 따라 서인경에게 겁을 좀 주려던 부관은 그녀가 강하게 나오자 금방 꼬리를 내렸다.그 역시 상왕 부부가 이 일로 다투는 건 원하지 않았다.“마마, 급전이 필요하시면 소인에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혼수를 파는 것은 좀… 소문이 알려지면 상왕부가 몰락해서 왕비께서 혼수를 팔아 생활에 보탠다고 오해할 겁니다.”서인경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 상왕 혼자 망상을 한 게지. 내가 그 사람 물건을 판 것도 아닌데 왜 그리 야단법석이야!”상왕의 비정함을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수술해 줄 게 아니라 칼로 찔러버렸어야 했는데!’부관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왕야께서는 마마를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그러나 서인경의 마음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일단 그 아이부터 풀어주거라.”그 말에 부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건….”서인경은 더 이상 그와 입씨름을 하고 싶지 않았다.“어느 창고에 가두었느냐?”부관이 뜸을 들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서인경이 분노가 치밀어 발작하려던 순간, 부관은 짐짓 모르는 척 조용히 어딘가를 가리켰다.그제야 서인경은 콧방귀를 뀌고는 불평을 터뜨리며 그쪽으로 향했다.평이는 꼬박 하루 갇혀 지냈다.처음에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몰라 안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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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얼굴이 좀 창백한 것 이외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였다.‘회복도 참 빨라!’그의 손에는 나무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는데 서인경은 한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내 저금통! 돈이 다 저기 있는데….’안 그래도 비좁은 창고에 그가 강압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으니 숨이 더욱 막혀왔다.겁에 질린 평이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서인경은 평이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혼수를 팔라고 한 것은 제 지시였습니다. 제가 제 혼수를 파는데, 대체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연기준은 뒷짐을 지고 서서 서로를 위하는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서인경은 달라진 이후로 시종이나 호위들에게 아주 친근하게 하면서 유독 그에게만 가시를 세우고 있었다.그래서 연기준은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진국의 율법에 의하면 혼수가 처의 소유이긴 하나, 그걸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부군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네가 상왕비의 자리에 있는 한, 혼수를 쓰러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다.”21세기 비혼주의자인 서인경은 이런 율법을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무슨 이 따위 율법이 다 있답니까! 제가 친정에서 가져온 혼수를 사용하는데 왜 굳이 당신의 허락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요!”연기준도 당당히 말했다.“혼인한 여인은 부군을 하늘로 삼고 모셔야 하기 때문이다.”서인경은 가소롭다는 듯이 눈을 흘겼다.“하! 그 따위 율법으로 저를 옭아매려 하지 마십시오. 제가 꼭 처분해야겠다면 어쩌실 겁니까!”그러나 연기준은 그녀의 생각보다 더욱 야비한 사람이었다.그는 곧바로 화살을 평이에게로 돌렸다.“왕비의 심복으로서 주인이 잘못을 범할 때 일깨우지 않은 것은 시종으로서의 실책이다. 당장 끌고 나가서 곤장 오십 대를 치거라!”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왕부의 호위들이 안으로 들어섰다.평이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서인경의 억눌러왔던 분노는 극에 달했다.“무고한 자에게 칼을 겨누는 게 사내로서 할 짓입니까! 그렇게 잘났으면 사람들을 다 물리고 저와 얘기하십시오!”연기준은 그런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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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하… 피곤해.’“녹봉을 받는 당연한 일마저 왕야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물건을 사고 싶어도 부관의 질문에 이것저것 답해야 합니다. 마치 제가 상왕부의 재산을 거덜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요. 제 손에 돈이 있으면 마음대로 쓸 수 있겠지요. 왕야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연기준은 그 말을 반박할 수 없었다.그는 상자를 그녀에게 돌려주며 담담히 말했다.“네 혼수는 내가 사겠다.”하지만 서인경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이건 원래 내 돈이잖아! 왜 내 돈으로 내 물건을 사?’“제가 그렇게 멍청해 보이십니까?”연기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네가 팔아버린 것들을 되사느라 나도 꽤 많은 돈을 썼어.”서인경은 펄쩍 뛰며 소리쳤다.“제가 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왜 그걸 저에게 따집니까!”연기준은 돈에 목숨이라도 걸 것 같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유유히 말했다.“그것들 중에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품도 있었다. 황가의 하사품을 팔면 목이 날아간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느냐?”서인경은 경악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럴 리는 없습니다. 제가 다 확인하고 일반 물품만 팔았는데요? 할아버지와 고모께서 저를 위해 준비해 주신 거입니다.”연기준은 냉소를 지었다.“그건 네 심부름꾼에게 물어야 할 소리다. 일가족 목이 날아갈 뻔했는데 감히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다니!”서인경은 단번에 기가 죽었다.그녀는 평이가 진짜 물건을 헷갈렸는지 다른 사정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황가의 물건이 외부에 유통되는 상황을 상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그녀가 말이 없자 연기준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여의주는 아름답더냐?”서인경은 멍한 얼굴로 답했다.“아… 예… 참으로 아름다웠지요.”연기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알 수 없는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그래? 내 듣기로 올해는 폭설로 길이 막혀 영롱탑을 개방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넌 어쩌다 보게 되었느냐?”서인경은 정신이 번쩍 들어 머리를 굴렸다.“예. 개방하지 않았더군요. 그리하여 목적지를 바꾸어 령운봉에 올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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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연기준은 그제야 손을 내리며 물었다.“그래서 약재는? 가져왔느냐?”서인경은 남의 친절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물며 그것은 그녀가 목숨을 걸고 구해온 것이었다.‘어쩜 이렇게 걱정하는 기색이 전혀 없지?’“가져오긴 했는데 약재 한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내일 약방에 가서 알아보겠습니다.”연기준은 차갑게 뒤돌아서며 말했다.“그럼 기다리고 있겠다.”서인경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곱지 않게 흘겨보았다.‘내가 전생에 뭔 죄를 지었길래 저런 인간의 왕비로 빙의한 거지?’그녀는 절대 쉽게 치료해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입구까지 다가간 연기준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말했다.“저녁이 오기 전까지 부서진 문부터 수리하거라.”그렇게 그가 나가자마자, 서인경은 은표를 셌다.생각할수록 분했다.분명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연기준 때문에 망친 것이다.한창 씩씩거리고 있는데 평이가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마마, 왕부의 목공이 며칠 전에 집에 일이 있어 고향에 갔다고 왕야께서 저희에게 문을 수리하라 하셨습니다.”‘이 자식… 일부러 저러는 거야!’그녀의 예상은 정확했다. 연기준이 일부러 시간을 끌려고 그녀를 창고에 묶어둔 것이었다.한편 방으로 돌아간 연기준은 연풍을 불렀다.“넌 직접 흑수암으로 가서 도팔천의 생사를 확인하거라.”연풍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왕야,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설마 흑수암의 진법을 깬 자가 있단 말씀입니까?”연기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그 진법은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다. 15년 전에 내가 들어갔듯이 나중에 또 누가 그곳에 발을 들였을지는 알 수 없어.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왕비는 어떻게 그 자의 손에서 약재를 받아왔는지 알아내거라.”연풍은 이 일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급히 뒤돌아섰다.“사람을 시켜 성문을 지키다가 육승이 보이거든 놈들을 모두 잡아 교외에 있는 별원에 데려가거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연풍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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