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수암의 약왕곡, 도팔천.동굴 속,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그 그림.혈적자 펜던트.지하흑시에 존재하는 그 신비로운 대장로.과거의 모든 장면이 마치 주마등처럼 서인경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알고 보니 그녀가 이 세상으로 넘어온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어쩐지...혈적자 펜던트가 그녀를 주인으로 인정한 것도,약왕곡이 그녀의 공간이 된 것도,지하흑시가 갑자기 그 아이들을 받아들인 것도,모든 게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막효연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치 오래된 인연처럼 마음이 통했던 것도,봉한설이 목숨 걸고 그녀를 따랐던 것도,처음으로 어머니의 출생을 물었을 때 할아버지께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도,이제 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게 다 맞물려 있었다.그녀는 일불락의 수장 일족 후손이었다. 백여 년 전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던, 의술, 독술, 수어와 점성술에 능하다던 그 신비한 부족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었다.이제 생각해 보면 아마 연기준도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름이 서인경의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수많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그는 언제 그녀의 출신을 알게 된 걸까? 혼인하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혼인한 후였을까? 그녀가 화리를 요구하기 전이었을까, 아니면 그 이후였을까?혹시…그가 끝까지 화리를 허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녀가 일불락의 수장 일족 후손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그 신분이라면 누구든 세상을 손에 쥘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연기준은 정말로 한 번도 그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일까?꼬막이를 회임한 뒤부터 서인경은 자신이 왜 이 세상으로 넘어왔는지를 거의 잊고 살았다. 그녀는 연기준이 자신에게 한없이 세심하고 다정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지금...그녀는 어쩔 수 없이 연기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그 다정함 속에 과연 얼마만큼의 진심이 담겨있었던 걸까? 혹시 그 모든 것은 그녀의 신분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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