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시간을 거슬러: Bab 701 - Bab 710

714 Bab

제701화

단정하게 갖춰 입은 궁중 예복이 몸에 얹혀지자 상왕비라는 위압이 단숨에 살아났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첫 대결을 벌이기엔 이보다 더 알맞은 전투복은 없었다.“얼마나 이 날만을 기다렸겠느냐? 벌어질 일이라면 피해도 소용없다. 가서 맞서주자꾸나.”평이는 입술을 바짝 말아 쥔 채 잔뜩 겁먹은 얼굴이었다.“후궁은 용이 들끓고 호랑이가 노니는 곳이라 하지 않습니까? 왕야께서 계시지 않는 지금, 왕비님 혼자서도 위험한데 세자까지 데리고 들어갔다가 무사히 나오지 못한다면…”서인경은 옷자락을 내려놓고 다가와 평이와 봉한설의 볼을 양손으로 톡 하고 집었다.“안 가면 그게 오히려 항명이다. 목이 날아갈 일이지! 간다면 그래도 한 줄기 숨통이라도 남아 있지 않겠느냐?”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결국 말 한마디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묵묵히 서인경과 꼬막이의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준비를 마치고 전원 앞으로 나서자 궁에서 조서를 가지고 온 환관은 이미 진득하게 화가 올라 있었다. 하필이면 어제 왔던 그 환관이었다. 그는 어제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궁에 들어서자마자 머리끝까지 욕을 먹었던 참이었다.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달랐다.상왕이 부재한 지금, 그녀는 그저 친정마저 없는 한낱 상왕비일 뿐. 궁궐의 주인들은 애초에 그녀를 사람 취급조차 하지 않았다.후궁은 높은 자의 눈치만 보는 곳. 주인조차 하찮게 여긴다면 그 밑의 노비들은 더더욱 마음껏 짓밟아 된다고 여기는 법이었다.서인경이 천천히 걸어 나오자 환관은 콧구멍이 하늘을 찌를 기세로 외쳤다.“상왕비의 위세가 참으로 대단하시군요! 태황태후께서 단지 세자를 보고 싶어 하실 뿐인데 상왕비께서는 번번이 핑계만 대며 회피하시니, 이는 태황태후께 대한 참람한 불경입니다!”쏘아붙이는 말투와는 달리 서인경은 오히려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아이가 어려서 준비에 시간이 좀 들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게나.”그녀가 화내지 않자 환관은 더욱 기고만장해졌다.“애가 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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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서인경은 문 앞에 의자를 가져오라 지시하고는 걸터앉아 한 대, 또 한 대 뺨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파문 하나 없이 잔잔했다.“여긴 상왕부다. 태황태후의 사람이 감히 윗사람을 능멸해? 본왕비가 태황태후를 대신해 훈계하는 것이다. 내가 왕비인데 하인 한 명도 때리지 못한단 말이냐? 누구든 감히 한 마디 더 변명해 준다면 똑같은 꼴 날 줄 알거라.”경고가 칼처럼 뻗자 입 끝까지 치솟던 말들은 모두 꿀 삼키듯 목구멍으로 사라졌다. 암위들의 손엔 힘 조절 따위는 없었다. 손바닥 소리는 서슬 퍼렇고 주먹보다 더 잔인했다.오십을 채 가기도 전에 환관의 얼굴은 부어올라 돼지처럼 뒤틀렸고 입가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나왔다.백 대가 끝났을 때 즈음 그는 거의 죽은 자나 다름없었다.내내 서인경 품에 안겨 있던 꼬막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명도, 살 떨리는 소리도 그에게는 그저 호기심일 뿐이었다숨도 고르지 않고 바라보는 꼬막이에 서인경은 속으로 생각했다.‘이 아이는 과연 누구를 닮아 이렇게 태어난 걸까? 상왕과 내 피를 이어 받았으니 쉽지는 않겠지.’백 대가 끝났을 때는 문 앞에 이미 모여든 구경꾼들로 몇 겹의 벽이 쌓여 있었다.서인경은 꼬막이를 안고 일어섰다.궁으로 향하는 마차에 오르기 전, 그녀는 평이를 불렀다.“내가 발을 떼는 즉시 사람을 풀어라. 예정임이 진국의 유아들을 납치해 죽음의 병사로 길렀다는 사실을 온 경성에 퍼뜨려. 그리고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 상왕은 진국 백성을 위해 야랑국에 간 거라고. 또 나와 세자가 태황태후에게 불려 궁으로 들어간 사실도 퍼트리거라.”평이는 즉시 이해하고 눈을 반짝였다.“명심하겠습니다! 가장 빠르게 온 경성에 퍼지게 하겠습니다.”막북에서 전공을 세운 상왕 부부였는데 돌아오자마자 상왕은 백성을 위해 다시 야랑국으로 향했다.태황태후와 서 가의 오래된 앙금을 모르는 자가 없었다. 지금 이 타이밍에 과부와 어린 세자를 들여 궁에 가둔다면 모두가 알 것이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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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그 상왕비는 장군가에서 자라지 않았나? 그 사나운 기세가 옛 서 노장군과 하나도 다를 게 없네. 보통 무지한 여인처럼 만만히 다룰 상대가 아니네. 이런 식으로 떨어진 자리에 돌 던졌다가는 되레 우리가 먼저 죽을 수도 있다고!”“상왕은 잠시 진국을 떠났을 뿐, 죽은 것도 아닌데! 정말로 우리가 황후와 대황자를 따라 상왕을 탄핵할 셈인 겐가?”한 대신이 가장 먼저 손의 상소문을 활활 타오르는 화로 속에 밀어 넣었다.“나는 위로 부모님에 아래로 처자식까지. 한 집안 목숨을 지켜야 하네. 난 상왕을 건드릴 생각 없네. 누가 탄핵을 하든 말든, 나는 못 하겠네.”누군가의 태도가 흔들리자 곁에서 급하게 소리쳤다.“멍청한 놈! 상왕이 자네 하나뿐이던 아들을 어떻게 죽였는지 벌써 잊었는가!”그러자 그 사람의 눈에 서리던 증오가 눈 녹듯 사라졌다. 텅 빈 시선 끝에 남은 건, 오직 무력감과 두려움뿐이었다.“그래도 나는 또 어린 아들이 있네. 그 애는 책 읽는 걸 좋아해. 장차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을 갈 아이지. 다시는 전장에 나가지 않을 것이고 적 앞에서 등을 보일 일도 없을 것이네. 그러면 상왕도 그 아이를 죽이지는 않겠지. 한데 자네 말대로 했다간 우리 집안이 통째로 죽지 않겠나?”“비겁한 놈!”“그래, 비겁하면 어떻고 기개가 없으면 어떤가! 적어도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것보단 낫지!”결심을 굳힌 그는 더 미련도 남기지 않고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가 움직이자 남은 이들도 모두 상소문을 내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결국 그토록 공들여 꾸린 탄핵 세력은 눈 깜짝할 사이에 국구 하선준 혼자만 남게 되었다. 지금 국구부는 벼슬이 이미 세 단계나 깎여 옛 영광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황후와 대황자가 버티고 있으니 그나마 유지했던 것이지 그들마저 없었다면 진작 쫓겨났을 집안이었다.사람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서 있던 하선준의 얼굴은 먹빛처럼 검게 굳어 있었다.상왕이 올린 죄증만 아니었다면 그가 어찌 이런 몰락을 맛봤겠는가? 상왕비가 대황자와 맞서지만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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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그런데 어떻게 이 시간에 저곳에 있을 수가 있는 거지?잠깐 얼어붙은 서인경은 열다섯 째 황자의 부름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둘 다 내 말 듣거라. 곧장 신비궁으로 돌아가서 얌전히 있거라.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난 이미 대비해 두었으니 태황태후라 한들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맹은영이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서인경이 단호히 막았다.“그대도 마찬가지네. 괜히 따라붙는다면 오히려 맹국공부까지 얽히게 되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손도 못 쓰네.”맹은영은 서인경이 정말 괜찮다는 건지, 아니면 큰소리를 치는 건지 분별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최근 외조모 댁에 다녀오느라 서인경의 곁을 오래 비웠던 탓에 지금 그녀가 어떤 싸움 한가운데 서 있는지 조금도 가늠할 수 없었다.마차 안에서 봉한설이 입을 열었다.“걱정 마십시오. 저는 왕비와 세자 곁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누가 손대려 한다면 목숨 걸고 막아낼게요.”맹은영은 끝내 이를 악물고 손을 거두었다.“태황태후께서 대놓고 해치진 못하겠지만 꼬투리를 잡을 수는 있습니다. 반드시 조심해야 합니다. 해가 져도 나오지 않는다면 저희 아버지와 제가 들어가서라도 구해낼 겁니다!”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네.”엉클어진 열다섯 째 황자의 눈빛에는 쏟아질 듯한 걱정이 서려 있었다.“저는 신비궁에 있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곧장 들이닥칠 겁니다.”서인경은 가만히 손을 들어 열다섯 째 황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말거라. 폐하께서도 이 시점에 날 해치진 않을 것이다. 태황태후께서도 이익과 손해를 따져야 하니까.”한참을 달래고서야 그녀는 겨우 궁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마차는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저 멀리 커다란 수목 뒤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흔들리며 사라졌다.서인경의 심장이 두 번 크게 뛰었다. 익숙한 실루엣이 보이자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그는 분명 수백 리 밖에 있을 텐데...궁 안으로 들어가는 행렬은 상왕부 문 앞의 소동을 보고 나서인지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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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꼬막이는 고개를 길게 뻗어 뒤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그림자가 시야 끝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잠시 후, 아이는 마지못해 몸을 구부리며 서인경 품 속으로 쏙 파고들어 혼자 시무룩해졌다.‘아버지가 안 보인다. 짜증 나.’침전 입구에 다다랐을 때, 봉한설은 궁녀에게 가로막혔다.“예법에 따라 태황태후를 뵐 때는 시녀를 데리고 들어가지 못합니다. 태황태후께서 뵙고자 하는 것은 상왕비와 세자뿐. 그 외의 인원은 바깥에서 기다리십시오.”봉한설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으며 서인경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녀는 한 걸음 물러선 채 차분히 말했다.“그럼 태황태후께 아뢰거라. 평소 꼬막이는 봉한설을 떠나지 않는다. 부디 함께 들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거라.”궁녀의 표정이 굳었다. 뻔뻔하게 태황태후의 침전에서 요구를 하다니. 이 여인이 이렇게까지 눈치 없게 굴 줄은 미처 예상 못 했던 것이다.“태황태후께서는 요즘 심신이 편치 않으십니다. 상왕비와 세자를 부르신 것도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하신 것이지요. 사람이 많아지면 흥이 깨지지 않겠습니까?”서인경의 입꼬리가 은근히 올라갔다.“태황태후의 병세가 위중한가 보구나. 그렇다면 오늘은 방해가 되겠네. 꼬막이가 시끄럽게 군다면 괴로우실 테니 몸이 좀 나아지신 다음에 개별로 인사드리러 오마.”그 말에, 궁녀의 얼굴빛이 스르르 달라졌다. 이렇게 도로 돌아가면 태황태후의 계획이 어그러려 혼쭐이 날 게 뻔했다.한참 눈을 굴리던 그녀는 결국 굴복했다.“태황태후께서는 온전히 세자를 그리워하셨기에 직접 보시면 기운이 번쩍 나실 것입니다. 세자께서 저 시녀와 떨어지기 힘들다면 허락하겠습니다.”서인경은 덤덤히 응수했다.“이젠 예법도 무시하시는 것이냐?”궁녀는 억지로 위엄을 끌어올렸다.“예법은 사람이 정한 것입니다. 태황태후께선 오로지 세자를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서인경은 대답 대신 조용히 웃었다.그리고 봉한설과 함께 침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태황태후는 의자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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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불쑥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의 눈가가 미세하게 가라앉았다.“제가 데리고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왕야께서 막으셨지요. 그렇다는 건 태황태후께서 직접 키우신 왕야께서 설마 그런 기본적인 가르침조차 받지 못하셨단 말입니까?”날려보낸 화살이 되려 자신의 눈앞으로 날아오자 태황태후의 안색은 더욱 굳어졌다.“집 안에서 놀다시피 하는 계집아이 주제에 어디 감히 상왕과 비교를 하는 것이냐? 상왕은 국정에, 군정에, 온 나라의 무거운 짐을 다 짊어지고 있는데 너는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해놓고 뭘 잘했다는 것이냐? 그리고 상왕의 내조도 못 하면서 무엇을 믿고 상왕비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냐?”어느 시대든 똑같게 말한다. 여자는 집안을 책임져야 하고 남편이 못 하는 건 반드시 대신할 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만 남자가 밖에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고 말이다.서인경이 약왕곡에서 가져온 보물만 꺼내도 부유함은 황실에 견줄 만큼 압도적이었으니 황실에 기대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억누르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봉건 권력의 생살대권이었다. 서인경도 그 앞에서는 결국 풍토에 맞춰 고개를 숙여야 했다.침묵한 채 버티고 있는 서인경을 보며 태황태후는 제 말이 정곡을 찔렀다고 생각한 듯 눈빛이 우쭐해졌다.“애초에 네게 교양 따위 있을 리가 없지. 애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다만 상왕의 발목을 잡지만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 상왕이 돌아오거든 애가가 마땅한 여인을 골라줄 것이다. 너는 그때 측비로 물러나고 증손은 정실에게 맡기겠다. 아무렴, 너보다 훨씬 잘 돌보지 않겠느냐?”쏟아낸 말들이 끝나자 대전 안은 순간 숨이 멎은 듯 적막해졌다.그때, 작은 손이 태황태후의 손바닥을 있는 힘껏 긁어내렸다.“악!”태황태후는 얼굴을 험하게 굳히며 손을 홱 하고 뿌리쳤다. 곱고 흰 손바닥에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부풀어 오르더니 피가 새어 나왔다.궁녀들이 다급히 꼬막이를 들어 떼어내자 서인경이 단숨에 다가가 아이를 다시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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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서인경의 눈에 깃든 차분함이 오히려 태황태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후궁에서 가장 존귀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이가 자신인데 어찌 감히 서 씨 따위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맞설 수 있단 말인가?서 씨란 족속은 그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비굴하게 엎드려 있어야 마땅한 존재였다.그 시각, 황제는 신료들과 정사를 논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한 태감이 급히 다가와 귀가에 몇 마디를 속삭이자 황제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황조모께서도 너무 성급하시구나.”황제는 신료들을 물리고 홀로 용상에 앉아 깊게 생각을 이어갔다.잠시 후, 황제는 명을 내렸다.“신비에게 이르거라. 열일곱 째 황자와 열여덟 째 공주를 데리고 황조모께 문안드리라고.”태감이 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마침 황제께 어탕을 들고 오던 설귀비와 마주쳤다.오늘의 단은설은 황제가 좋아하는 붉은 비단 차림 속에 가느다란 몸선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는 계산된 요염함이 피어났다. 하지만 황제의 머릿속은 이미 다른 문제로 뒤엉켜 있었다.황제는 그녀를 힐끗 보기만 할 뿐 곧바로 시선을 돌려버렸다.태감이 황제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이자 설귀비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신첩, 폐하께 문안드리옵니다.”“급히 어디를 가려는 것이냐?”황제가 막지 않자 태감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태황태후께서 상왕비와 세자를 불러 들이셨습니다. 폐하께서는 신비를 모셔가 도와드리라 명하셨지요.”설귀비의 입가에 방긋 미소가 피어올랐다.“고작 이런 일을 가지고 뭘 그리 서두르시나요? 지금 온 경성의 백성들이 난리라 하지 않습니까? 상왕부 부부가 나라에 공을 세웠는데 상왕께서 막 떠나자마자 태황태후께서는 곧장 상왕비와 세자를 불러들이셨다고 말입니다. 백성들은 그저 구경거리가 생겼다며 흥미로워할 뿐입니다. 태황태후께서 상왕비에게 무슨 큰 해라도 끼치겠습니까? 그저 증손이 보고 싶으신 거겠지요.”설귀비의 말이 끝나자 황제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온 경성이 정말 벌써 다 알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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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맹국공은 맹은영의 애교에 결국 마음이 흔들렸다.사람을 보내 황제에게 청했으니 태황태후도 그쯤이면 서인경을 풀어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황제는 이미 온몸이 다른데 사로잡혀 궁 밖의 일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사실을.태황태후의 침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 팽팽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때, 한 유모가 숨을 헐떡이며 안으로 뛰어 들어와 태황태후의 귓가에 바짝 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그러자 태후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꺼칠한 눈빛은 날카롭게 서인경을 향했다.“상왕비, 수완이 참 좋구나!”서인경은 평이가 일을 제대로 해냈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녀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말했다.“아이에게 가장 좋은 곳은 어머니의 품이지요. 길러준 어머니가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낳아준 어머니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어떤 이는 아이를 진심으로 돌보는 것이 아니라 왕실 권세를 쥐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 할 뿐입니다.”태황태후의 화가 일시에 솟구치더니 얼굴빛이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졌다.“네 말인즉, 애가가 상왕을 키운 것도 모두 이용하기 위해서였단 말이냐? 너, 지금 누구 앞에서 감히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냐! 상왕이 지금 이 경성에 없는 이상 애가가 너를 한 손으로 비틀어 꺾는 것쯤은 개미 한 마리 죽이는 일보다 쉽다! 그리고 네가 지난번처럼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그녀는 지난번 독살 미수 사건을 떠올렸다.오늘이라면?하지만 서인경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평이가 밖에서 만들어둔 구도가 든든히 버티고 있는 한 태황태후도 함부로 독을 쓸 수 없을 테니까.“저는 결코 태황태후께 대적하려는 뜻이 없습니다. 그저 태황태후께서 제 남편에게 다른 왕비를 맞으라 하시니 제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기억하십니까? 선제께서 첫 첩을 들이시려 할 때 태황태후께서도 한참을 울고 성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제 마음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그 말에 태황태후의 심중이 복잡하게 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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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일순간 명령이 떨어지자 이미 잠복해 있던 어림군들이 들이닥치며 그들을 빙 둘러 포위했다. 공기가 한순간 팽팽해지더니 긴장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서인경은 품에 안은 꼬막이를 무의식적으로 더 꽉 움켜쥐었다. 자신이 다치는 건 괜찮다. 하지만 아이만은 그 어떤 상처도 허락할 수 없었다.서인경은 꼬막이가 울음을 터뜨릴 줄 알았으나 작은 아이는 서인경의 어깨에 고요히 얼굴을 묻은 채 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또렷한 두 눈으로 눈앞의 어림군 한 명 한 명을 마치 기억이라도 해 두려는 듯 쓱 훑어보았다.“왕비 마마, 세자를 저희에게 넘기십시오. 저희는 세자께 해를 입히고 싶지 않습니다.”앞장 선 이는 철면을 쓴 냉정한 시위였고 서인경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는 국구 하 씨 집안의 장자이자 대황자의 외사촌이었다.그의 손에 꼬막이가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아이의 목숨은 끝일 것이다.서인경은 꼬막이를 안은 채 조심히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높은 자리의 태황태후를 향해 말했다.“지금 이 순간, 온 경성이 저와 세자가 입궁했다는 소문으로 들끓고 있습니다. 저희 둘 중 누구 하나라도 궁에서 나가지 못한다면 밖에서는 곧 황실 암투의 비밀 이야기를 꾸며낼 겁니다. 태황태후께서도 자신의 명성이 더럽혀지는 건 바라지 않으시겠지요? 서 씨 가문은 이미 멸문했습니다. 원하던 복수도 이루지 않으셨습니까? 서로 불문에 부쳐 조용히 가는 게 더 좋을 텐데 굳이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태황태후의 눈빛은 벌레보다도 하찮은 존재를 굽어보듯 냉정하고 잔혹했다.“서 씨 가문의 사람이 하나라도 살아 있다면 애가의 원한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넘겨라. 그러면 네 목숨은 살려 두겠다.”그녀는 애초부터 상왕의 아이를 빼앗을 궁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과거, 상왕을 빼앗아 온 것처럼 말이다.서인경이 아이를 잃는다면 그녀와 상왕을 이어 주는 유일한 끈은 끊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타 달콤한 얼굴의 새 여인을 상왕부에 들이는 건 식은 죽 먹기일 터. 지금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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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웅하는 소리와 함께 서인경의 말이 바닥에 내려꽂히듯 울렸다.그 한 문장에 놀란 것은 태황태후만이 아니었다. 전각 밖에 숨어있던 연기준의 온몸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지워진 게 아니었다.어린 시절, 어머니의 웃음과 목소리, 그리고 따스한 손길이 폭풍처럼 기억 속을 휘몰아쳤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선제가 눈을 감던 그날 밤에 멈춰 섰다.하룻밤만 곁에서 지키면 다음날 아침 함께 식사하자고 약속했던 사람이었는데 결국 그를 반겨준 건 차가운 시신뿐이었다.태황태후는 말했다. 어머니가 지나친 슬픔에 스스로 순장을 택했다고.어머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하나 남겨두고 혼자 떠났다는 말을 그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날, 열셋 째 황숙 연도현 또한 급사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어머니는 황제보다 자신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도현과 비교했을 때 자신이 정말로 더 사랑받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연도현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니까.그래서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그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의심할 이유도,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방금 서인경이 던진 말에 연기준의 다리는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른 채 살아온 걸까? 서인경은 언제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나에게 한 번도 말하지 않은 걸까?’침전 안에서는 서인경 한마디로 인해 태황태후의 살기가 치솟았다.“상왕비! 감히 애가와 상왕 사이를 이간질하다니! 오늘, 절대 그냥 두지 않겠다! 여봐라! 다시 사람을 들이거라! 이 자리에서 상왕비를 죽이는 자에게 애가가 크게 상을 내리겠다!”이어 두 번째 어림군 무리가 침전으로 들이닥쳤다.그러나 문턱을 넘으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하늘에서 내려 꽂혔다. 선두에 선 장수는 그 모습을 확인하자 자리에 굳어 서며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저 자는 이미 출정을 떠난 것이 아니었던가?연기준의 얼굴이 서늘하게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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