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준의 눈빛에 어림군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태황태후가 다시 부르기도 전에 시위들은 소리 없이 뒤로 물러났다.위험이 사라졌음을 확인한 연기준은 마지막으로 침전의 정문을 한번 바라보고 어둠 속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침전 안.서왕비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히 예를 올렸다.“태황태후 마마께 문안드립니다.”작은 아이도 뒤따라 깨끗한 목소리로 인사했다.“태황태후 마마, 평안하시고 길하십시오!”서왕의 체면이 있으니 태황태후도 더 날을 세울 수 없었다.“일어나거라. 이 시간에 어쩐 일이냐? 애가가 너를 부른 기억은 없는데?”서왕비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자리잡으며 말했다.“지난번 태황태후께서 주문하신 경문을 모두 필사해 두었습니다. 급히 필요하실까 싶어 곧장 가져왔지요.”그 말과 함께 뒤쪽에서 궁녀가 정갈히 다듬은 경문을 내밀었다.서왕비의 시선이 전각을 훑었다. 바닥에 쓰러져 널브러진 태감과 궁녀, 그리고 시위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물 한 방울 흔들리지 않는 호수처럼 고요했다.“아, 상왕비도 계셨군요? 참 오랜만입니다. 상왕께서 출정 중이라 혼자 아이를 기르시려니 얼마나 심심하겠습니까? 저희 궁에도 자주 오세요. 세자를 한참이나 못 봤더니 너무 보고 싶더군요.”서인경은 품을 낮춰 예를 갖췄다.“서왕비 마마께 문안 올립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작은 아이는 눈망울을 반짝이며 호기심 가득 꼬막이를 바라봤다.“할머니, 상왕비 마마, 동생을 가까이서 봐도 되겠습니까?”서인경은 아이를 조금 더 아래로 내리며 보여주었다.“그럼, 그리해도 괜찮지.”작은 아이는 서왕비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자연스레 태황태후를 향해 말했다.“상왕비께서 아이 둘을 데리고 어화원에 산책이라도 다녀오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오랜만에 태황태후께 여쭙고 싶은 바가 있습니다. 경문 중에 이해가 어려운 내용이 있어 조언을 얻고자 합니다.”태황태후의 표정이 듣기 싫다는 듯 일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