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준이 가까이 오자 황제는 서둘러 손짓했다.“아, 아홉 째 아우 왔는가? 어서 오너라. 이것은 어제 서왕이 두다 만 바둑이다. 아직 끝내지 못했으니 나와 함께 마저 두는 것이 어떻겠느냐?”연기준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암류가 요동치고 살기가 감도는 자리. 두 사람은 바둑에 집중했고 곁에 서 있는 환관도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숨을 죽였다.한 판이 끝나자 황제는 두 알을 이겼다. 시원한 웃음소리가 정자 안을 가득 메웠다.황제는 알고 있었다. 조정 안에서 서왕을 제외하고 자신과 정면으로 승부를 벌이는 이는 연기준뿐임을. 이번 판은 그가 진짜로 이긴 것이다.기분이 좋아진 황제의 목소리는 더욱 들떠 있었다.“이번에 아홉 째 아우가 멀리 야랑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부디 이 바둑판처럼 흉함을 길함으로 바꾸고 개가를 울리며 돌아오기를 바란다.”“신, 반드시 전력을 다하겠사옵니다.”황제의 표정이 수그러들더니 어딘가 부자연스러워졌다.“근래 군무 정리에 바쁘다 들었다. 원래는 이 길을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지. 상왕비와 작은 세자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내게 하고 싶었으나 황조모께서 너를 한 번 궁으로 부르라고 거듭 강조하시니 나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더구나.”연기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시각 그를 궁에 부르는 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황제를 이렇게까지 곤란하게 만들었던 이유는 연기준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었다.“폐하, 부디 말씀하십시오.”황제는 난처한 표정을 그대로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다 너의 후원 문제 때문이다. 들으니, 상왕비는 막북에서 작은 세자를 낳고 난 뒤로 몸이 손상되어 다시 회임하기 어려워졌다고 하더구나. 황조모께서는 너는 상왕이며 또한 우리 황실의 자손이니 무손으로 둘 수 없다 하셨다. 그래서 황조모께서 특별히 너를 위해 한 명의 규수를 골라두셨지.”연기준은 거의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바로 호부상서 유운상의 딸, 유가영이다. 그 여인은 짐이 직접 본 적 있다. 어려서부터 예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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