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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1화

연기준은 이런 답을 듣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어떤 이들에게 죽음은 그리 무서운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마지막에 홀로 남아 세상을 버티며 외롭게 살아가는 것이었다.연기준은 그런 장면을 떠올린 순간 가슴 어딘가가 갑자기 아릿하게 저렸다.그는 손을 뻗어 서인경을 끌어안았다.“그렇다면 훗날, 우리가 늙게 되면 나는 너를 먼저 떠나보낸 후 따라가겠다.”가장 사랑하는 이가 떠나는 고통쯤은 자신이 감당하면 그만이었다.서인경은 연기준이 갑자기 감성적으로 굴자 조금 의아해졌다.아마 곧 떨어져 지낼 것을 알고 함께 있는 이 시간들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거겠지.그 후의 시간 동안, 황제가 부르지 않으면 연기준은 거의 서인경과 꼬막이와 함께 왕부에만 머물렀다.그는 서인경이 자신을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기묘하게 즐거워했다.서인경은 그에게 많은 은자와 위급할 때 쓸 독약과 해독제를 준비해 주며 매일같이 어떤 약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반복해서 설명해 주었다.하지만 연기준은 듣다가 번번이 그녀를 침상으로 데려가 눕히곤 했다.어느 날, 둘이 함께 맞이한 아침에 평이가 진한 약탕을 들고 들어왔다.연기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몸이 안 좋은 것이냐?”서인경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약을 마신 뒤 평이에게 그릇을 건네고서야 대답했다.“아니요. 피임약입니다.”연기준은 잠시 멈칫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꼬막이는 아직 어린 데다 곧 자신은 야랑궁으로 가게 될 터. 이 시기는 분명 회임에 그다지 좋은 때가 아니었다.연기준의 출사가 정해진 후 예정연은 유별나게 들떠있었다. 수차례 왕부를 찾아왔으나 모두 연기준이 하달한 명으로 문 앞에서 막혀 버렸다.마침 오늘은 연기준이 궁에 들어가고 없는 날이었다.서인경은 꼬막이를 안고 정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고 문 앞에서 또다시 막혀버린 예정연은 멀리서 서인경을 보며 분한 마음과 질투를 한꺼번에 삼켰다.“왕비 마마, 당신은 제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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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서인경은 예정연의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예쁘긴 했다. 하지만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는 우월감, 그리고 뒤집힌 삼각형 같은 눈매에는 신랄하고 독한 기운이 번뜩였다.“그대 따위의 용모가 야랑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면 다른 여인들은 얼마나 흉해야 되는 겁니까?”서인경은 원래 남의 외모를 공격하는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예정연이 먼저 찾아와 시비를 거니 같은 방식으로 되돌려줄 생각이었다.‘야량국의 무고한 여자들만 불쌍하지. 원망할 거라면 너희들 공주나 탓하거라.’자신의 남편을 뺏으러 온 그녀를 문전 박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서인경은 스스로 꽤나 자비롭다고 생각했다.예정연은 모욕이라도 당한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길고 가느다란 채찍을 휙 뽑아 들고 서인경을 향해 겨누었다.“감히 저를 모욕하는 것입니까? 제가 상왕을 대신해서 당신을 제대로 가르쳐 주겠습니다!”예정연이 채찍을 휘두르자 매서운 바람이 서인경을 향해 곧장 날아들었다.봉한설은 꼬막이를 안고 있었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평이가 곧장 서인경 앞으로 몸을 던졌다.“왕비 마마, 조심하십시오!”저 채찍을 그대로 맞으면 평이 같은 체구는 죽지 않아도 크게 다칠 터였다. 서인경은 즉시 평이를 밀쳐내려 했다.그러나 그 순간, 눈앞을 스치는 그림자 하나 덕분에 채찍은 평이에게 닿지 못했다.어느새 나타난 무현이 채찍 끝을 꽉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여긴 상왕부. 누군가 나서서 지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예정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녀 눈에 이런 시위들은 모조리 쓰레기에 불과했으니.비웃음을 머금은 채 예정연은 채찍을 되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어떻게 해도 채찍이 당겨지지 않았던 것이다.반대로 무현은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가 채찍을 홱 뒤로 당기자 예정연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채찍은 무현의 손에 온전히 떨어졌다.“고작 이 정도 주제에 우리 상왕부에서 설치다니요! 죽을 거면 혼자 조용히 죽으세요!”서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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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무현은 골똘히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머리를 쥐어짰으나 어디서 예정연을 봤는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서인경은 무현의 기억이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다고 느꼈지만 조급하게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생각나지 않는다면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지 마세요. 기억날 때 바로 얘기해 주시면 됩니다.”무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의 다리는 아직 성하지 않은 상태였다.“왕비 마마, 왕야께서 그녀를 들이면 안 됩니다. 야랑국 황실 사람은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되거든요!”무현이 예정연 가문에 대해 편견이 있어 보이자 신수빈은 의아해졌다.“제 기억으로 진국과 야랑국은 큰 마찰도 없었고 변방도 늘 평화로웠습니다. 한데 오라버니께서는 왜 야랑국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는 겁니까?”순간, 무현의 표정에는 분노가 비쳤다.“평화롭다고 해서 사이가 좋은 건 아닙니다. 야랑국은 아주 교활하지요. 당년, 열셋째 왕야와 서 노장군께서 야랑국을 유람했을 때, 야랑국 폐하께서는 두 분의 신분을 분명 알고 있었음에도 사람을 시켜 시험했고 저희 진국의 기둥을 꿰어보려 했습니다. 한데 왕야와 노장군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미인계를 썼지요. 그 일로 인해 노장군의 댁 안 살림까지 뒤집힐 뻔했습니다. 다행히 왕야께서 직접 증언해 주신 덕분에 노부인의 분노를 겨우 가라앉을 수 있었지요. 그들의 황제는 항상 저희의 인재와 병력을 노려왔습니다. 실력이 부족해 대놓고 치지 못했을 뿐, 뒤에서 벌이는 작은 술수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지요. 폐하조차 저럴 정도라면 그 자손들이라 해서 다를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의심합니다. 이번에 예정연이 왕야를 찾는 것도 왕야를 유혹한 후 야랑국의 손 안에 넣으려는 속셈일 거라고요. 왕비 마마, 왕야를 단단히 지켜야 합니다.”서인경은 그의 마지막 말에 웃음이 새어 나왔다. 자기 아들의 친부를 지키는 일이라면 당연히 그녀의 몫이다.다만, 야랑국에서 할아버지를 유혹한 사건은 서인경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제야 알았다. 당년 유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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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서인경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만에 하나 정말로 두 사람이 약에 당해 음모로 함께 잠자리를 치렀다 한들 열세 째 왕야가 도리를 저버릴 리 있겠는가?그가 어찌 희태비를 위해 준비해둔 정표를 다른 여인에게, 그것도 야랑국의 총애 받는 귀비에게 넘길 수 있단 말인가?그 일이 발각된다면 두 나라 사이에 전쟁까지 불러올 만한 큰 사건이었다. 총애하는 빈비가 바람을 피우는 걸 용납할 수 있는 황제가 이 세상에 어디 있으랴?그는 늘 진국의 능력을 탐내왔었다. 다른 나라의 대장군과 왕야를 모략할 용기를 낸 그라면 충분히 동침을 빌미로 조건을 내세워 성 하나쯤 뜯어갔을 것이다.게다가 열셋 째 왕야는 그런 황당한 일을 할 인물이 아니었다. 희태비에 대한 그의 진심을 서인경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자신의 할아버지라면 더더욱 믿을 수 있었다. 서회윤은 한때 자신의 부인을 위해 선제의 총애를 받던 황실 공주와의 혼인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로 인해 관직이 세 품계 떨어졌고 할머니 역시 일품 부인의 봉호를 박탈당했다.국경에서 고생한 세월이 십 년. 결국 그 황실 공주가 평생 혼인하지 못한 채 중병으로 세상을 등지고서야 그 부부는 다시 조정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그 후로는 누구도 장군부에 여인을 들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대장군 서회윤을 연모한다면 어떤 결말을 맞는지 모두가 보았으니까. 현량한 공주조차 외롭게 늙어 죽는데 보통의 여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만약 야랑국에서 실수로 몸을 더럽혔다면 그는 진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그 자리에서 자결했을 것이다.비록 서인경이 예정훈 앞에서는 늘 농담처럼 할아버지의 풍류를 들먹였지만 사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 소문을 믿은 적이 없었다. 그저 어딘가 다른 사연이 있다고만 생각할 뿐이었다.무현은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말했으나 결국 예정연을 어디서 봤는지 떠올리지 못했다.서인경은 조급해하지 않았다.“제가 지어준 약을 꼭 제때에 챙겨 먹고 호청 의원에게 안마를 몇 번 더 받으세요. 시간이 지나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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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단여월과 예정연은 주루에서 음모를 꾸미는데 한나절을 보냈다.그러다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석양이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진가이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냉소를 흘렸다.“멍청한 것들! 대황자에게 너 같은 측비가 있으니 마지막에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겠지. 나는 네가 내 좋은 일을 망치게 둘 수는 없어!”그날 밤. 서인경이 막 꼬막이를 재워 놓았을 때, 봉한설이 씩씩거리며 들이닥쳤다.“그 천한 년이 또 왕야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번엔 왕야께서 그녀를 서재에 들여보내기까지 했다고요!”서인경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천한 년이 누구지?”“누구긴요? 야랑국의 그 뻔뻔한 공주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예정연이라고?서인경은 더욱 의아해졌다. 밤에 또 찾아오다니. 이런 빈도라면 뭔가 일을 꾸미려는 게 확실했다.다만 더 이상한 건 연기준이 정말 그녀를 들였다는 사실이었다.서인경은 마음이 편치 않아 꼬막이를 봉한설에게 맡겼다.“잘 지키거라. 금방 다녀오마.”봉한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꼬막이 곁을 철통같이 지켰다.서인경이 서재가 있는 뜰에 들어서자 연풍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서재 안에는 연기준과 예정연 두 사람만이 남아 있었다.연풍은 서인경을 보자 급히 예를 올렸다.“왕비 마마. 이렇게 늦었는데 아직 주무시지 않으셨사옵니까?”“연기준이 뭘 하는지 보러 왔다.”서인경은 말을 마치고 치맛자락을 들어 뜰로 올라가려 하자 연풍이 급히 손을 뻗어 막았다.“왕비 마마, 왕야의 명이옵니다. 어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사옵니다. 부디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서인경의 눈빛이 차갑게 번뜩였다.“나는 그의 왕비다. 한밤중에 다른 여인을 들여놓고 나보고 기다리라고?”연풍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연기준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했을 때 그도 잠시 멍해졌었으니까. 서인경도 포함되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연기준은 그럴 틈도 주지 않고 예정연과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는 속으로 서인경이 제발 이곳으로 오지 말라고 빌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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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서인경은 눈앞의 상황에 깊이 베인 듯 상처를 받았다. 아마도 최근 연기준이 그녀에게 너무도 잘해 주어 그녀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두 사람은 이미 부부가 되었기에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고, 전생의 일은 모두 오해였다고, 자신은 이미 그것을 내려놓았다고 여겨왔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서인경은 비로소 깨달았다.모두 착각이었다.그는 여전히 예전 그대로의 연기준이었다. 그의 눈동자 속 냉담함은 전생의 원래 몸 주인이 죽음 직전에 본 마지막 시선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연기준, 오늘 일에 대해 너는 나에게 설명을 해야 하지 않겠어?”연기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인내심마저 바닥난 듯했다.“본왕이 말했을 텐데. 돌아가라고! 연풍, 데리고 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군장 오십 대를 추가로 맞을 것이다!”연풍은 이 말을 듣자 급히 나서서 서인경 앞을 막아섰다.“왕비 마마, 먼저 돌아가십시오! 이 일은 왕야께서 반드시 설명드릴 것이옵니다!”서인경은 연기준 눈에 박힌 냉정함과 그를 바라보는 예정연의 집요한 눈빛을 보았다.그녀에게는 심리적 결벽이 있었고 이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여인이 연기준을 좋아하는 것은 허락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방적인 사랑이었으니까.하지만 연기준이 스스로 여인을 데려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도 외인 앞에서 이렇게 정실부인을 모욕하다니.더욱이 그 여자는 연기준이 과거 자신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어떤 반박도 없었고 그녀를 위해 한 마디 변호도 하지 않았다.그것만으로도 다른 여인들은 서인경을 공격할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다.그녀는 예전에 부부 사이의 기싸움과 시험 같은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유난히 싸우고 싶어졌다.“연기준, 지금 당장 그녀를 내보내. 그러면 방금 본 것은 없던 일로 해줄게.”연기준은 서인경의 집요함에 거세게 격분한 듯했다. 그의 얼굴은 완전히 한기로 물들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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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서인경 이야기가 나오자 연기준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가 손을 놓자 예정연은 숨을 돌리며 벽을 따라 주저앉았다.“컥, 컥… 태자 오라버니 절 구해주세요!”예정훈은 짜증스럽게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다.“공주를 역참으로 데려가거라. 내 명령 없이는 다시는 밖에 나오지 못하게 하거라.”부하들은 즉시 명을 따르며 예정연을 끌고 갔다.그녀는 가기 싫어 호위의 손을 피하며 연기준을 똑바로 노려보았다.“방금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당신 왕비가 용서하겠습니까? 차라리 저와 함께 가서 야랑국의 부마가 되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 아버지께서도 왕야가 귀순한다면 분명 기뻐… 윽…”“죽고 싶은 것이냐? 그렇다면 본왕이 네 소원을 들어주지.”연기준은 갑자기 손을 뻗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예정훈은 먼저 나서서 앞을 막아서더니 그녀를 대신해 정면으로 빰을 맞았다.연기준이 또 공격하려 하자 예정훈은 예정연을 대문 밖의 호위에게 던지듯 넘겼다.“데리고 가거라!”곧이어 연기준이 뒤쫓으려는 걸 예정훈이 다시 가로막으며 말했다.“상왕, 상왕비께서는 아직도 당신의 해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정연이 정말 죽기라도 한다면 상왕비는 당신이 찔리는 구석이 있어 입막음하려고 죽였다 여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일은 정말로 설명할 길이 없어질 거예요.”연기준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예정훈을 밀쳐냈다.“야랑국의 그 공주는 보통 애가 아니군!”예정훈은 간신히 연기준을 막아내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리며 희미한 통증이 이는 가슴께를 쓸어내렸다.“그녀의 죽음은 저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야랑국에 도착하고 나면 상왕께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십시오.”하지만 진국에서는 절대 안 된다.예정훈도 그런 누이를 별로 달갑지 않아 했다. 예정연이 진국에 따라온 목적이 연기준 때문이었을 줄이야.“지금 더 중요한 건, 상왕비에게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것입니다. 상왕비는 만만히 넘길 상대가 아니지 않습니까?”연기준의 눈동자 속에 짜증이 번뜩였다.“본왕의 일에 태자가 신경 쓸 것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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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싸운 것은 아니란 말이지.연풍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다음 순간 다시 긴장되었다.그렇다는 건 냉전이라는 뜻 아닌가? 차라리 싸우는 게 낫지!그 분위기는 너무 무시무시했다.“왕야께서는 왕비 마마한테 누가 될 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두 분 일에 끼어들지도 말거라. 그냥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연풍이 발길을 돌리려 하자 평이가 그의 팔을 확 잡아당겼다.“왜 끼어들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까? 전 왕비 마마의 눈이 벌게진 걸 봤습니다. 분명 왕야께서 잘못한 것이지요.”연풍도 주군을 지키는 마음에 바로 반박했다.“그런 게 아니다. 허튼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서 지키거라. 난 할 일이 있다.”연풍은 평이가 더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왕부 밖으로 일을 보러 나갔다.한편, 서인경 쪽.그녀는 연기준이 문밖에 서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슴속엔 분노와 원망, 그리고 요 며칠 마음을 내려놓는 동안 스며든 서러운 감정도 뒤섞여 있었다.서재문을 열던 순간 눈에 들어왔던 장면이 서인경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머릿속을 휘저어도 지워지키는커녕 더욱 따라붙을 뿐이었다!서인경은 미칠 만큼 신경 쓰였다! 그녀가 가장 참기 힘들었던 건 연기준의 태도였다.예전에는 마음에 안 들면 장군부로 돌아가기라도 했지만 지금은 장군부도 사라졌고 서 가도 없어졌다.이제 와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상왕부 말고는 그녀가 갈 곳이 없다는 걸.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더 아려왔다.그녀는 약왕곡으로 가서 예전에 모아둔 돈을 확인해 보았다. 전에 제혁이가 보내준 것들은 거의 쓰지 않은 상태였다.그게 과연 경성에서 집 한 채 살 만큼 될지는 그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내일 평이를 시켜 경성에 적당한 집이 있는지 알아보게 할 작정이었다. 일단 대비는 해야 할 테니.정 안 되면 꼬막이를 데리고 할아버지와 고모를 모시고 다시 설산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거기엔 아직 그녀의 친족이 있고 그녀가 몸을 누일 곳도 있으니까.오늘 일은 최근 그녀가 게으르고 느슨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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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본왕은 그녀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그는 한 박자 쉬고 계속 말을 이었다.“예정연의 몸 안에 어머니의 심장이 있다.”서인경의 머릿속이 쾅 하고 터져나갔다. 그녀의 눈에는 믿기지 않는 감정이 가득했다.분명 기억하고 있다. 희태비는 황릉에 묻혀 선황제와 함께 잠들었다는 것을.사람이 황릉에 있는데 심장이 어떻게 예정연의 몸 안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서인경에게, 그리고 현대인에게 장기 기증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하지만 고인에게는 다르다. 자신의 어머니의 심장이 다른 여인의 몸에 있다는 것은 아주 강한 감정적 유대로 마치 자신의 어머니가 아직 살아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방금 연기준이 예정연을 희태비로 착각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서인경의 온몸이 오싹하며 떨렸다.예정연이 그에게 품는 감정은 남녀 간의 애정. 하지만 그가 예정연에게 느끼는 것은 분명 모자 간의 정이었다.이 사실을 예정연이 안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연기준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겉옷을 벗고 이불을 들추어 서인경 곁에 앉았다.그녀는 안쪽으로 살짝 몸을 옮겼다. 그의 행동을 막지 않은 건 그가 이어서 무슨 말을 할지 듣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연기준의 눈동자에는 피로가 가득했고 그는 다시 한번 서인경을 경악하게 할 말을 내뱉었다.“야랑국의 덕비는 어머니의 친언니였다. 당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예정연은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고 혈연이 연결된 친족의 심장이 필요했다. 덕비께서 혼자 진국에 잠입해 황릉에서 어머니의 심장을 도둑질해 갔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이 일은 덕비와 예정연만이 알고 있다.”덕비. 서인경은 이 사람에게 점점 더 호기심이 생겼다.홍복이가 말했던 그 고아, 야랑국 황제가 길에서 주워왔다던 그 여자.그녀는 처음에 야랑국 황궁에서 궁녀 노릇을 했었다.하지만 서인경은 확신했다. 혼자서 밤에 진국 황릉에 잠입할 수 있는 자라면 절대 평범할 리 없다고.그러나 이 모든 게 서인경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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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왕비 마마, 어제 왕야와 화해하셨나요?”서인경은 동경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화해라고 할 수 없지. 그는 나한테 숨기는 게 있거든.”봉한설이 살금살금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아침에 몰래 연풍 귀군한테 가서 물어봤다가 작은 비밀을 하나 들었습니다.”서인경은 손을 멈추고 봉한설을 보며 계속하라는 눈짓을 보냈다.“왕야께서 오늘 아침 일찍 황릉에 가셨습니다. 진국을 떠나 야랑국으로 가기 전에, 선황과 희태비를 참배하고 싶다고 폐하께 아뢰셨대요. 열셋 째 황자깨서는 막 그곳에서 돌아오던 참이었는데 다시 왕야와 동행했다고 합니다. 귀군 말로는 이번에 꽤 위험하다고 하던데요. 저더러 왕비 마마와 왕야의 싸움을 좀 말리라고 했습니다.”위험하다고?서인경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는 곧 연기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뒤탈을 완전히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령 일이 밝혀지더라도 누구도 확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 즉, 희태비의 시신에 다른 심장을 넣는 것이었다.서인경은 비록 현대에서 의사를 했음에도 이런 행동에는 섬뜩할 수밖에 없었다.이 모든 게 예정연과 덕비 때문이었다.이쯤 되니 서인경은 더욱 궁금해졌다. 이 심장 이식 수술은 고대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분명, 아무나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건 덕비 역시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건데... 혹시 그녀도 시간을 건너온 사람인 걸까?잠깐 그런 의심이 스치자 서인경은 결심했다. 덕비란 여자를 직접 마주해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덕비는 앞으로 큰 골칫거리가 될 것 같았다.생각하던 차에 호위가 예정연이 찾아왔다고 전했다.그 말에 서인경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섰다.“가자. 만나 주지.”봉한설은 불끈 힘이 나며 서인경보다 더 전투적인 태세를 취했다.“그 여우 같은 년, 감히 오늘도 오다니! 두들겨 패서 기절시켜 버릴 겁니다!”봉한설은 벽에 걸린 장검을 집어 들며 서인경의 화를 시원하게 풀어줄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장검을 눌러 제자리에 걸어두게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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