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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731 - Chapter 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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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1화

서인경은 연기준의 인품을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명성과 지위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가 정말로 다른 여인을 원했다면 진작에 후원은 처첩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수도를 떠나 몰래 누군가를 만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태황태후 역시 그에게 첩을 들이기 위해 굳이 자신을 찾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늘 경계와 계산으로 가득 찬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서인경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21세기에서 온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온 여자였다. 돈도 있었고 외모도 출중했으며 남편과 아이까지 있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와서도 말 그대로 부유하고 권세 있는 귀부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날마다 노동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생계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제혁에서 해마다 들어오는 배당금만으로도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원한다면 산천을 유람하며 아직 오염되지 않은 이 대호강산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그런데 지금 왜 이 좁은 땅에 발이 묶인 채 이런 음모와 암투에서 서로를 속이고 견제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걸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일불락 설산으로 돌아가 호롱이와 늑대들과 함께 지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이번 생에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지금의 많은 일들이 전생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황제가 이 몸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차기 황태자가 누가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계획한 금선탈각이 과연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역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당장의 최우선 과제는 열다섯 째 황자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그녀와 연기준이 더는 뒤탈 없이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서인경은 열다섯 째 황자를 가짜 죽음으로 빼돌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하자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서인경이 봉투를 열자 안에는 힘차고 또렷한 필체의 글이 한 줄 적혀 있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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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2화

그녀는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사신단이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폭우가 앞쪽 다리를 무너뜨렸다.연기준은 즉시 명을 내려 사신단을 그 자리에 이틀간 머물게 했다.그 이틀 사이,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대열을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지하흑시였다. 그는 서인경에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서회윤과 숙귀비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하흑시가 바로 그들의 은신처였다.그러나 서회윤을 직접 만나고서야 숙귀비가 열다섯 째 황자를 걱정해 신분을 바꾸고 다시 궁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서회윤은 대장로의 득월산장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온조와 온난 자매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인경을 생명의 은인처럼 여겼기에 서회윤 역시 친조부를 모시듯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다.서회윤은 이미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으나 섭혼술의 부작용을 겪은 데다 설산에서 한차례 혹독한 동상을 입은 뒤라 몸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다.연기준이 도착했을 때, 서회윤은 막 약을 마신 뒤 처마 아래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서회윤의 귀 옆으로 드러난 흰머리였다. 그는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연기준을 본 서회윤은 비교적 담담했다. 하루 전 이미 연기준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왔습니까? 인경이와 아이들은 무사합니까?”연기준은 우산을 접고 그의 곁에 앉았다.“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인경이는 늘 노장군을 걱정하며 직접 찾아뵙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열다섯 째 황자도 많이 성숙해졌습니다.”서회윤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인경이에게 전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열다섯 째 황자, 그 아이는 참으로 가혹한 길을 걷고 있군요.”“황실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후궁에 황자가 그렇게 많지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요.”그 말에 대해 서회윤은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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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3화

온조는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고 차분히 대답했다.“왕야께 아룁니다. 대장로께서 며칠에 한 번씩 노장군의 맥을 짚고 계십니다. 대장로의 말씀에 따르면, 노장군께서는 연세가 있으신 데다 원래도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섭혼술 이후의 부작용이 후유증으로 남았고 그 뒤 설산에서 오랫동안 얼어붙은 채로 지냈던 탓에 단번에 많이 쇠약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요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한데 노장군께서는 편히 쉬지 못하시고 날마다 경성에 있는 분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연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알겠다. 수고가 많다. 계속 잘 보살펴 드리거라.”온조는 고개를 끄덕였다.“왕야 염려 마십시오. 왕비 마마께서 저희 자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저희는 온 힘을 다해 노장군을 모실 것입니다.”연기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그가 경성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막수한은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마침내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연기준이 모습을 드러내자 막수한은 곧바로 그를 서재로 안내하고는 몇 통의 서신을 꺼내어 공손히 내놓았다.“왕비 마마께서 저에게 보내신 서신입니다. 일불락의 행적이 이미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지하흑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 설산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연기준은 서신을 받아 펼쳐 보았다. 확실히 서인경의 필체였다.그녀는 언제나 영민하니 지하흑시의 정체와 내력을 이미 오래전에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서신이 쓰인 시점을 확인한 순간, 연기준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와 예정연이 서재에서 단둘이 있던 장면을 서인경에게 들킨 바로 그날이었다.그때의 그녀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 서신에 적힌, 철수하라는 말에는 아마도 연기준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이 서신이 타인의 손에 들어갈 경우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냈다는 것은 그 뒤에 자신에게조차 숨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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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4화

“일불락의 야명주에 대해 막 성주께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야명주요?”막수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야명주는 금족의 물건입니다. 예전 금족은 일불락과 인접해 살던 작은 부족으로 야명주 산출로 생계를 이어가던 집단이었습니다. 훗날 금족의 수장이 중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일불락의 수장이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지요. 그 일을 계기로 금족은 일불락에 귀속되었고 부족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던 극상품 야명주를 바쳤습니다. 빛을 밝힐 뿐 아니라 부패를 막는 효능이 있는 물건입니다. 일불락의 역대 수장들은 모두 사후에 야명주의 보호를 받았지요. 한데 왕야께서는 어찌하여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신 겁니까?”연기준은 사실대로 말했다.“제 모후의 관 안에 누군가 야명주를 넣어 두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시신이 변하지 않았어요.”막수한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지금 믿기 어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왕야의 모후라면... 희태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혹시 희태비께서도 일불락의 후손이신 겁니까?”말을 하다 말고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연기준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어째서 불가능하단 겁니까?”막수한의 표정이 단단해졌다.“극상품 야명주는 일반 야명주와 다릅니다. 영성을 지닌 물건이지요. 일불락 수장 일족 가운데서도 오직 수장만이 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불락의 멸망에는 진국의 전대 상왕 연강호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희태비는 진국의 황비였습니다. 야명주는 원한의 기운을 감지하기에 적의 혈통을 보호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막수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이어 말했다.“희태비가 금족 출신일 경우입니다. 그리고 야명주를 관에 넣은 사람 또한 금족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돌아가는 길 내내, 연기준의 머릿속에는 막수한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설산의 후예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에요. 천하가 요동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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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5화

무현은 비웃듯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그가 유가영를 바라보는 눈빛은 마치 곧 죽을 개미를 내려다보는 듯했다.이 정도의 위협은 그가 여태껏 수도 없이 들어온 말이었다. 살을 긁지도 못하는 협박 따위 이제는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유 아가씨께서 아무리 불손하게 굴어도 상관없습니다. 설령 저를 죽이신다 한들 왕야의 명이 없는 한 저는 결코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유가영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나는 태황태후께서 보내신 사람이다.”무현은 냉소했다.“태황태후의 사람이 아니었다면 유 아가씨께서 오늘까지 살아 계셨을 거라 생각하십니까?”유가영은 쟁반을 들고 선 손이 점점 저려 왔다. 속에서는 분노와 초조가 뒤엉켜 치밀어 올랐다.그때, 수행하던 유모 하나가 다가왔다.“왕야께서는 장거리 이동으로 몹시 노고가 많으시니 유 아가씨가 곁에서 직접 모시도록 하라는 태황태후의 분부시다.”그 얼굴을 보는 순간, 무현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예전에도 그는 이 유모와 적잖이 부딪쳐 왔다. 세월이 흘러 늙었을 뿐, 속은 여전히 썩어 있었다.그는 웃으며 인사했다.“계 유모, 오랜만입니다.”그녀는 원래부터 이런 호위무사들을 업신여겼다. 다시 마주한 무현은 제 일에 방해만 놓는 존재처럼 보였기에 그녀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더니 무현 시위 아니더냐? 내가 기억하기로는 다리를 절게 된 뒤 성동에서 막일이나 하던 걸로 아는데. 언제 왕야께 붙어 기어오른 것이냐?”무현은 기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히 웃었다.“왕야께서는 사람을 알아보시니 제가 굳이 아첨할 필요는 없지요.”“허.”계 유모는 콧대를 치켜들며 노골적인 경멸을 드러냈다.“절름발이 주제에 무슨 재주가 있다고. 왕야는 우리 진국의 기둥이시다. 너 따위가 감히 넘볼 분이 아니지.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린다면 어떻게 목숨을 잃는지도 모를 게다.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이 널 지켜 줄 거라 생각하지 말거라. 진짜 실력이 있었다면 열셋 째 왕야께서 돌아가신 뒤 절름발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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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6화

“성조 선제께서 친히 하사하신 어패가 여기 있다. 누구든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즉시 베어서 처결할 것이다!”황금빛이 번쩍이는 어패가 높이 들어 올려졌다. 그 위에는 성조 선제께서 쓰시던 용두 문양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무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즉시 무릎을 꿇었다. 주변의 사람들 또한 줄줄이 엎드리며 일제히 만세를 외쳤다.성조 선제가 세상을 떠난 지도 이미 삼십여 년. 이 어패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 순간, 무현의 마음이 요동쳤다. 이번 일만큼은 태황태후가 정말로 마음을 굳혔다는 뜻이었다. 어찌해서든 유가영을 상왕 곁에 붙여 두겠다는 의지였다.계 유모는 어패를 손에 쥔 채, 마치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것처럼 느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황제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그녀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득의가 떠올랐다.“태황태후의 명이다. 유가영 아가씨는 심성이 곱고 단정한 여인이다. 이 길 내내 왕야께서는 노고가 많으시니 유가영 아가씨를 곁에 두어 시중들게 하거라. 이제 누가 감히 막을 생각이 있느냐?”무현은 이를 악문 채 고개를 숙였다.“감히 거역하지 않겠습니다.”계 유모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힘을 잔뜩 실은 일격이었다.순식간에 무현의 얼굴에는 손가락 자국이 선명히 떠올랐다.“퉤! 네놈은 몇 번이나 태황태후의 계획을 방해했지. 오늘까지 살아 있는 건, 태황태후 마마의 자비 덕분이었다. 오늘은 내가 대신 처리해 주겠다. 쓸데없이 나서는 천한 놈 하나를 본보기로 삼아 다시는 태황태후께 대드는 자가 없게 하겠다!”계 유모는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여봐라! 이 무 씨를 끌어내어 즉시 처형하거라!”호위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현은 상왕 곁의 사람이었고 평소에도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전개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모두가 움직이지 않자 계 유모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초조하게 어패를 흔들며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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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7화

“감히 본왕의 처소에 들이닥치다니. 너희는 정말로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것이냐?”음산한 목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다. 계 유모는 고개를 들어 문을 등진 채 앉아 있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았다. 상왕과 몹시 닮은 뒷모습이었다.그러나 얼굴을 보지 못한 탓에 계 유모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그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저는 태황태후 마마의 명을 받들어 상왕을 모시기 위해 사람을 보냈을 뿐입니다. 부디 태황태후께서 상왕을 진심으로 아끼시는 마음을 헤아리시어 저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그 그림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계 유모의 의심은 오히려 더 깊어졌다. 방금 들은 목소리를 곱씹어 보니 상왕의 것과 완전히 같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 문 역시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열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계 유모는 혼자서 차분히 상황을 따져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이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은 상왕이 아니다. 그는 몰래 행렬을 빠져나가 분명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러 간 것이 틀림없었다.만약 상왕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태황태후 앞에서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터. 생각이 그 지점에 이르자 계 유모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방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섰고 천천히 그 그림자에게 다가갔다.마당에 서 있던 이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오늘은 큰일이 벌어질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사람들은 계 유모가 손을 뻗어 상왕의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때,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구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다만 한 사람의 형체가 번개처럼 휙 하고 방 안에 튕겨 나오듯 날아온 것만 보였을 뿐이었다.계 유모가 조금 전 걸어 들어갔던 그 몇 걸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되돌아왔다. 방 안에 있던 그 그림자는 여전히 홀로 서 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익히 알고 있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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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8화

이 계 유모라는 여인은 태황태후 곁에서 단 한 번도 선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태황태후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고 어떤 때에는 가장 날카로운 발톱이 되어주기도 했다.예전에 희태비가 막 입궁했을 때 벌을 받은 일도 계 유모가 직접 집행했고 희태비와 열셋 째 왕야가 죽던 날에도 그녀는 적잖이 손을 보탰다. 그 뒤로는 어미 없는 상왕과 열다섯 째 황자를 후궁에서 노골적으로 업신여기기도 했다.같은 하인 신분이면서도 태황태후 곁에 붙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를 남들보다 윗자리에 두었다. 기회만 있으면 남을 짓밟고 올라섰다. 무현의 눈에는 이런 인간은 진작에 죽었어야 마땅했다.계 유모가 처리되고 나자 마당에는 연기준과 유가영만 남았다.그는 그녀를 담담히 한 번 훑어보았다.“목숨을 부지하고 싶다면 스스로 경성으로 돌아가거라. 그렇지 않으면 야랑국에 이르렀을 때 네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본왕도 장담하지 못한다.”유가영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왕야, 신첩에게 살 길을 하나만 열어 주십시오. 이대로 돌아가면 아버지께서는 저를 억지로 승상부의 아들에게 시집보낼 것입니다. 그는 화류병에 걸린 사람입니다. 신첩은 왕야 곁에서 노비가 되든, 말이 되든 가리지 않겠습니다. 그저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연기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본왕은 살아 있는 보살이 아니다. 하등 상관없는 사람을 구할 생각이 없다.”그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유가영 혼자 그대로 무릎을 꿇은 채 남았다.이튿날 새벽, 연기준이 뜰문을 열었을 때, 앞에서 흔들거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자를 보았다.무현이 앞으로 나섰다.“어젯밤 내내 이 자리에 꿇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라 말렸으나, 돌아가서 죽을 바엔 차라리 왕야 앞에서 죽겠다고 하더군요.”연기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투 자체가 노골적으로 불쾌했다.“본왕에게 박정하고 무정하다는 죄명을 씌우려는 것이냐? 네가 보기에 본왕이 그런 평판을 신경 쓸 것 같으냐?”유가영은 그제야 멍한 눈으로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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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9화

설령 상왕과 혼인하지 못하더라도 그녀는 본래 관가 부인의 팔자를 타고난 몸이었다. 그런데 어찌 이름 없는 평민에게 아무렇지 않게 시집갈 수 있단 말인가?그것은 그동안 유가에서 그녀에게 쏟아부은 시간과 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었다. 더구나 연기준을 본 그날 이후로 그녀의 눈에는 다른 남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남자를 놓치는 것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무현은 유가영의 표정을 보고 그녀의 속내를 단번에 읽어냈다. 그는 더는 인내할 생각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마지막으로 충고하겠습니다. 헛된 꿈은 꾸지 마세요. 태황태후의 사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분이 상왕이십니다. 지금 아가씨 편은 아무도 없어요. 그럼에도 계속 우리를 따라오겠다면 앞으로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변고가 생길지, 저 역시 장담하지 못하고요. 그때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살아 있는 상태가 아니라 시신일 수도 있습니다.”유가영은 속으로는 분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 더 버텼다가는 계 유모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죽음을 각오한 사람처럼 굳어졌다.“무현 호위, 알고 있다. 내가 남아 있으면 상왕께 누만 될 뿐이겠지. 나를 경성으로 돌려보내 주거라.”이렇게 쉽게 물러난다고?무현은 잠시 의아했다. 그는 열셋 째 왕야를 대신해 수많은 여인들을 처리해 왔다. 그들 중 누구 하나 태황태후를 등에 업고 끝까지 버티지 않은 자가 없었다. 벽에 부딪혀서야 물러나는 것이 보통이었다.그러나 이 여인은 달랐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무현은 오히려 더 경계하게 되었다. 겉으로 물러나는 척하며 속으로는 다른 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이번 사행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역할과 부담을 지고 있었다. 계 유모와 유가영을 제외하면 한가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무현은 그녀를 볼 때마다 거슬렸기에 더는 그녀에게 마음을 쓰고 싶지 않았다.그는 곧장 현지 관원을 찾아가 관아에서 역졸 몇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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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0화

평소 장신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이 시점이면 왕야께서는 벌써 변경 근처에 이르셨겠지요. 그런데도 왕비 마마와 세자를 잊지 않고 계시다니. 왕비 마마는 참으로 복이 많으십니다.”서인경은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봉한설이 점점 자기 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다 둘이 말다툼이라도 벌인다면 봉한설은 연기준 쪽에 서서 그녀에게 대범해지라며 타이르지는 않을까 싶었다.꼬막이는 장명쇄가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는 손에서 내려놓지도 않고 연신 만지작거렸다. 꼬막이는 자신이 들고 있는 그 물건의 전신이 증조부가 증조모에게 남긴 면죄의 금패였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서인경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행동은 솔직했다. 그 자리에서 머리에 꽂고 있던 비녀를 빼고 목란 옥비녀를 대신 꽂았다.동경 앞에 서서 비춰 보니 제법 마음에 들었다. 연기준은 남자치고는 눈썰미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러나 비녀를 충분히 감상하기도 전에, 멀리서 맹은영이 소문을 들고 달려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왕비 마마, 큰일입니다.”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서인경은 처음 몇 번은 덩달아 긴장했지만 이제는 맹은영이 이런 반응을 보이면 오히려 침착해졌다.“이번에는 또 어느 대신이 열여덟 번째 첩을 들이겠다는 것이냐?”맹은영은 물을 두 잔 연거푸 들이킨 뒤에야 급히 입을 열었다.“이번엔 대신이 아니라 상왕입니다.”서인경은 꼬막이의 손을 잡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고개를 돌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맹은영은 더 묻기를 기다리지도 못하고 스스로 말을 쏟아냈다.“태황태후께서 전에 호부상서 유운상의 서녀를 상왕 곁으로 보냈던 일을 기억하십니까?”서인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로 태황태후께서 일부러 그녀를 궁으로 불러 유 씨 집안의 딸을 상왕부에 들이게 허락하라고 압박했었다. 결과는 실패였고 그녀는 하마터면 후궁에서 살아 나오지 못할 뻔했다.“어제 그 유가영이 연기준이 보낸 사람 손에 이끌려 경성으로 돌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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