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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1화

“왕야께서 경성으로 돌아오신 뒤 그분께서 친히 이 아이가 자신의 핏줄임을 인정하신다면 신첩은 아이를 상왕부로 맞아들여 정성껏 돌보겠습니다.”태황태후는 이 말을 듣자 얼굴빛이 변했다.“그 말이 무슨 뜻이냐? 설마 가영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거짓을 말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이냐? 이 시점에 상왕은 막 야랑국에 도착했는데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 하면 가영은 이 몇 달을 어떻게 사람들 앞에 나서란 말이냐?”서인경이 차분히 답했다.“거짓인지 아닌지 신첩은 모릅니다. 태황태후께서는 아십니까? 그들이 잠자리를 가질 때, 저희가 곁에서 구경이라도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유가영 역시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의 얼굴은 단번에 붉게 달아올랐다.“왕비 마마, 이 아이는 분명 왕야의 아이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제게 모욕입니다. 이런 말이 밖으로 퍼지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란 말입니까?”서인경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천 리를 따라가 왕야를 유혹할 때는 소문이 퍼질까 두렵지 않았는가? 그때는 살아갈 수 없을까 걱정되지 않았단 말인 겐가?”“방자하다.”태황태후가 탁자를 세차게 내리쳤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가 역력했다.“상왕비, 상왕의 자식을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가문의 안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도량이 아니다. 가영의 뱃속 아이를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애가가 인정하겠다.”태황태후는 줄곧 말없이 지켜보고 있던 황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당장 조서를 내려 가영을 상왕비로 책봉하거라. 지금의 상왕비와 나란히 평처로 두어란 말이다.”서인경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유가영의 입가도 순간적으로 떨렸다.황제는 관자놀이를 눌렀다.“황조모, 이 일은 아홉 째 아우가 돌아온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섣불리 가영에게 명분을 주면 일이 온 천하에 알려질 것입니다. 만약 아홉 째 아우가 돌아와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유 아가씨는 오히려 더 살 길이 없어집니다. 그러니 유 아가씨는 당분간 상왕부에 머무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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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2화

태황태후는 분노에 차 서인경을 가리켰다.“가관이로다. 가관이야. 당장 사람을 불러라. 상왕비는 칠거 중 질투를 범했으니 더는 우리 황실의 며느리가 될 자격이 없다. 이 애가가 지금 당장 그녀의 상왕비 자리를 폐하겠다. 그래도 감히 이처럼 오만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황조모!”호위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황제가 급히 말을 막아섰다.“황조모, 부디 재고해 주십시오. 아홉 째 아우는 지금 야랑국으로 사행 중입니다. 이 시점에 상왕비를 처분하신다면 상왕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흔들려 두 나라의 대사를 제쳐두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곧 양국의 화친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결국 우리 진국 백성들의 안위를 위협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유 아가씨를 궁으로 모셔 황조모께서 직접 보살피시는 편이 오히려 더 안심이 될 테지요.”태황태후는 분을 참지 못했지만 황제의 말을 떠올리며 결국 이를 악물고 참았다.그녀는 서인경을 향해 날카롭게 눈을 흘겼다.“두고 보거라. 네가 지금은 잘난 체하고 있지만 이 애가가 진국의 백성을 위해 한발 물러나는 것이다. 상왕이 돌아오면 다시는 상왕부를 혼자 차지할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서인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태황태후의 분노 섞인 고함을 상대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 곧이어 태황태후는 시선을 돌려 유가영을 바라보았다.“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애가와 함께 궁으로 돌아가고 싶으냐? 지금 상왕부는 흉흉한 기운이 가득하다. 상왕이 돌아올 때까지는 궁에 있는 편이 낫다. 그때 가서 내가 직접 너를 다시 데려다주마.”유가영은 곧장 무릎을 꿇었다.“저는 모든 것을 태황태후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유 가로 돌아가지 않기만 한다면 그녀는 어디든 상관없었다. 게다가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상왕부는 본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오늘 서인경이 정말로 그녀를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다. 계 유모가 어떤 식으로 죽었는지 그녀는 누구보다도 똑똑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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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3화

“저라면 벌써 미쳐서 그 개 같은 사내를 찾아가 따졌을 겁니다. 왕비 마마께서는 감정 기복이 거의 없으시네요. 역시 저는 사내와 살 팔자는 아닌가 봅니다.”서인경은 웃으며 말했다.“평범한 사람을 만나면 그대의 인생은 분명 평안하고 순탄할 것이네.”그녀의 삶은 이미 파도처럼 요동치며 단 한 순간도 고요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소중한 벗만큼은 스스로가 바랐던 그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랐다.유가영은 태황태후의 손에 이끌려 입궁했고 그녀의 편전 한편에 머물게 되었다. 태의들은 매일같이 찾아와 그녀의 맥을 짚어보았다.어느 날, 반쯤 자란 아이 하나가 약상자를 메고 밖에서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서인경은 그 아이를 알아보았다. 호청이 막 거둬들인 어린 제자, 콩이었다.호청은 연기준을 따라 야랑국으로 떠나며 콩이를 태의원에 남겨 두었다. 친분 있는 태의들 곁에서 잔심부름을 하게 하며 약초와 기본적인 진맥을 익히게 한 것이다.콩이는 또 평이와도 같은 고향 출신이었다. 예전에 또래 아이들과 함께 경성에 올라와 구걸하던 시절, 몇 차례 서인경의 전갈을 대신 전해 주기도 했다.이후 서인경은 그 아이들을 모두 서가군 군영으로 보냈다. 다른 아이들은 제법 자리를 잡았지만 콩이만큼은 싸움과 살육에 전혀 흥미가 없었다. 대신 매일같이 호청을 따라다니며 병사들의 상처를 돌보는 데 열중했다. 호청은 그 재주를 알아보고 결국 그를 문하에 들였던 것이다.콩이는 숨이 가쁠 정도로 달려왔고 평이는 그를 보자마자 물 한 잔을 따라 주었다.“급해하지 말고 먼저 물부터 마시거라. 할 말은 천천히 해도 된다.”콩이는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말을 이었다.“오늘 태의원에서 태의들이 잡담하는 걸 들었습니다. 후궁에 회임한 분이 한 분 계시는데 맥으로 보면 회임인 건 확실한데 시기를 짚어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분께서 한 달쯤 됐다고 하시니 태의들도 그냥 맞장구를 쳤지만 계속 이상하다고 느껴진답니다. 태황태후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본인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낙인찍혀 어렵게 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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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4화

태황태후는 불전에 엎드려 진국의 강산이 대대로 번성하여 영원히 기울지 않기를 기원했다.이날 밤, 침전에서 시중들던 궁녀와 내시들 모두가 불당으로 따라가 태황태후를 모셨다. 침전에는 유가영 한 사람과, 그녀를 돌보기 위해 남겨진 두 명의 궁녀만이 남았다.세면을 마치자 궁녀들마저 물러났고 방 안은 고요 속에 잠겼다. 유가영은 침상에 누워 평평한 배를 쓰다듬으며 마음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그 사람이 말했었다. 가짜 회임을 가장하는 약은 오래 속일 수 없다고. 석 달 안에 반드시 스스로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군주를 속인 죄가 들춰질 때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하지만 이 후궁에서 그녀가 마주하는 것은 온통 내시뿐이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궁 밖으로 나가야 했지만 지금 태황태후의 감시는 느슨하지 않았다. 설령 출궁이 허락된다 해도 분명 수많은 눈이 붙을 터였다.그렇다면 무슨 이유를 대서 혼자 움직여야 한단 말인가?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순간, 침상 휘장 앞에서 그림자가 스쳤다.유가영이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입을 덮었다.“소리 내지 말거라. 짐이다.”갑자기 나타난 황제를 보고 유가영은 혼이 빠진 듯 굳어 버렸다.“폐, 폐하…”황제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눈길로 그녀를 천천히 훑었다. 살결은 응결된 기름처럼 고왔고 혈색은 은은한 윤기를 띠고 있었다. 상왕비만큼의 압도적인 미색은 아니었으나 분명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이런 여인을 앞에 두고도 아홉 째 아우는 끝내 그녀를 품에 들이지 않았다니.황제의 시선을 받은 유가영은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이 밤에 폐하께서 어찌하여 오신 겁니까?”황제는 낮의 군왕다운 위엄을 내려놓은 듯, 말투와 몸짓이 유순했다.“오늘 밤 네가 혼자 남아 있다 하여 외롭지 않도록 짐이 들렀다.”의미를 숨긴 말이었다.유가영은 얼굴이 붉어진 채 몸을 웅크리고 감히 대답하지 못했다. 그 가엾은 태도가 오히려 황제의 마음을 자극했다.황제는 그녀의 손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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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5화

유가영은 황제의 말을 들으며 그 모든 선택이 마치 자신을 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감히 저항하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폐하,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황제의 입가에 음침한 미소가 스쳤다.“말해 주어도 무방하겠지. 너는 장차 짐의 아이를 낳을 여인이다. 상왕의 아들과 상왕부의 모든 것은 짐의 손안에 있어야 비로소 안심할 수 있다.”유가영은 그 순간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혔다.“만일 왕야께서 경성으로 돌아와 저와 아무 일도 없었다고 밝히면 저와 아이는 어떻게 됩니까?”황제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듯, 차갑게 웃었다.“그 또한 상왕이 돌아올 수 있어야 토론할 여지가 있는 이야기겠지.”유가영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충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황제와 상왕은 형제였지만 그 사이에는 음모와 계산이 얽혀 있었다. 그러나 이 결과는 유가영에게 있어 오히려 가장 나은 길이었다.설령 서인경이 끝까지 막아 그녀를 상왕부에 들이지 않더라도 황제는 그녀에게 남은 가장 확실한 퇴로였다.유가영은 속으로 계산을 하며 생각을 굴렸다. 그 사이, 어느새 그녀의 옷은 침상 아래로 흩어져 있었고 드러난 몸은 그대로 황제의 시선 아래 놓여 있었다.이윽고 휘장이 흔들렸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유가영은 그 서투름으로 오히려 황제의 만족을 자아냈다.황제는 차근차근 그녀를 이끌었고 유가영은 익숙지 않은 몸으로 최선을 다해 그에게 맞춰주었다.그녀의 젊고 신선한 기운은 황제로 하여금 오래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리게 했다. 마치 다시 젊어졌다는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황제는 땀에 젖은 유가영을 끌어안고 고르지 못한 숨을 내쉬었다.“짐의 아이를 상왕부로 데려가기만 한다면 이 천하의 부귀영화 중 무엇이든 네가 마음껏 고를 수 있게 하겠다.”유가영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약속은 그녀에게 꿈처럼 느껴졌다.요즘 그녀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세심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는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한 번도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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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6화

궁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혼비백산해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태황태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유 아가씨께서 말씀하시길, 지난밤 꿈에서 상왕을 뵈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아이가 아비를 몹시 그리워해서 그런 거겠지요. 굳이 태의를 번거롭게 부르실 필요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처지가 미묘한데다 자주 태의를 부르면 공연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까 염려된다고 하셨어요. 아직 아무런 명분도 없는데 벌써부터 주인 행세를 한다는 말을 듣게 될까 두려우신 듯합니다. 또한 그렇게 소란을 피우다 보면 뱃속 아이의 수명을 깎아먹는 것은 아닐까 염려된다더군요.”태황태후의 얼굴이 단번에 어두워졌다.“대체 또 누가 뒤에서 그런 헛소리를 퍼뜨리고 있는 것이냐? 이 아이는 상왕의 혈육이다. 자식을 가졌으니 그 자체로 이미 귀한 몸이지. 설령 천하의 모든 좋은 것을 눈앞에 쌓아 두어도 그 아이의 어미라면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곁에 있던 유모가 급히 나서서 부드럽게 분위기를 달랬다.“태황태후,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회임한 여인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은 흔한 것이라 태아에게 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유 아가씨께서 정 원하지 않으신다면 우선은 뜻을 따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이를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분이니 정말로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반드시 스스로 태의를 부를 것입니다.”태황태후는 한숨처럼 숨을 고르며 분을 가라앉힌 뒤 다시 유모에게 당부했다.“사람을 붙여 잘 지켜보게 하거라. 태의원에도 늘 대비하도록 일러 두고. 이 아이만큼은 단 한 치의 탈도 있어서는 안 된다.”유모가 응답하며 물러나려는 순간, 밖에서 황후가 도착했다는 전갈이 들려왔다.태황태후는 잠시 의아해졌다.황후는 겉으로는 병환을 핑계 삼아 한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고 태황태후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대황자를 걱정하고 있으나 황제가 사람을 풀어주지 않자 일부러 손을 놓고 후궁의 일을 설귀비에게 맡긴 채 방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궁에 문제가 생기기를 기다렸다가 그제야 황제가 자신의 존재를 떠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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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7화

그러니 황후의 궁으로 옮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다.서인경이 대황자를 대옥에 보내버린 일로 황후는 이미 그녀를 깊이 원망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서인경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가장 알맞은 존재였고 장차는 그 둘 모자를 무너뜨릴 실마리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황후라면 설령 자신의 아들을 위해서라도 유가영과 그녀 뱃속의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그렇게 판단한 태황태후는 마침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날로 유가영은 태황태후의 궁을 떠나 황후의 궁으로 거처를 옮겼다.이 소식이 신비의 궁에 전해졌을 때, 그녀는 막 열다섯 째 황자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우리 황후는 그렇게 자비로운 인물이 아니지. 저런 선택을 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열다섯 째 황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아마도 누님을 견제하려는 뜻일 겁니다. 그 아이로 누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겼겠지요.”신비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나라면 사람을 괴롭히는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죽여야만 속이 풀릴 테지. 사람을 붙여 지켜보게 하렴. 뭔가 드러날지도 모른다.”곁에 있던 유모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때 소주방의 운 유모가 떡 한 접시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열다섯 째 황자는 익숙한 기척을 느끼자마자 얼굴이 굳어졌고 시선은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신비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찻잔을 내려놓았다.“열일곱 째 황자는 곧 국자감에서 돌아올 시간이겠구나. 본궁은 열여덟 째 공주를 데리고 마중을 나가겠다. 너희들은 동편전 밖의 빈터를 말끔히 정리해 두거라. 며칠 뒤 폐하께서 본궁에게 귀한 난초 한 그루를 하사하실 터이니 그곳에 심으면 딱 좋겠다.”“예.”궁녀와 태감들이 일제히 물러났다. 신비가 떠나자 침전 안에는 운 유모와 열다섯 째 황자, 둘만 남게 되었다.이 순간, 운 유모의 떡을 받쳐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가 막 접시를 내밀려는 순간, 한 손이 불현듯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소년의 쉰 목소리에는 떨림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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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8화

“황후, 어서 말해 보거라.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황후는 황제가 꽉 붙잡고 있는 자신의 손목에 시선을 잠시 두었다가 표정을 거두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신첩이 이미 가영을 제 침전으로 들였습니다. 신첩의 거처와는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곳이니 폐하께서 다녀가신다 해도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입니다.”황제의 얼굴에는 기쁨이 숨김없이 떠올랐다.“황후, 이번 일은 참으로 잘 처리하였다. 과인의 뜻에 꼭 맞는구나. 오늘로 우리 황아를 대황자부로 돌려보내겠다.”황후가 그토록 기다려 온 순간이었다. 오늘에서야 마침내 아들이 무사히 감옥을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지만 그녀의 마음에는 조금의 기쁨도 차오르지 않았다.눈앞의 사내는 천자이자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녀는 이 세월 동안 자신의 남편이 궁 안으로 점점 더 많은 여인을 데려오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그녀는 지금 남편의 여인들을 돌보아야 했고 또 그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까지 살펴야 했다.그녀는 질투해서도, 분노해서도, 단 한 올의 불만조차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그녀는 진국의 황후였고 모두가 그녀에게 단정함과 관용, 황후다운 품격을 요구했으니까.그런데 이제는 남편의 총애를 숨기는 일마저 자신의 손으로 도와야 했다. 그 여인을, 하필이면 자신의 침전 바로 옆에 감춰 두면서까지 말이다. 이렇게 해야만 아들의 목숨에 남은 단 한 가닥의 희망을 붙잡을 수 있었으니까.다시 생각해 보면, 이 황후라는 자리는 참으로 비틀린 것이었다.그러나 외가인 하 씨 가문이 다시 일어서고 아들이 대통을 잇게 하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반드시 참아야 한다고.궁 안에서 벌어진 일은 곧바로 상왕부로 전해졌다. 연풍이 보고를 마치자 서인경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바깥에서 성급히 들이닥치는 발소리를 들었다.문을 박차고 들어온 이는 맹은영이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을 참지 못한 기색이 역력했다.“도대체 무슨 꼴입니까! 배 속에 든 게 사람인지 귀신인지도 모를 판에 황후께서 먼저 나서서 알랑대며 사람을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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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9화

맹은영은 초청장을 받아 한 번 훑어본 뒤, 서인경에게 건넸다.“저희 집에도 왔습니다. 서왕부에서 아버지와 세 오라버니를 모두 불렀더라고요. 왕비 마마, 걱정하지 마세요. 그날은 저희가 다 거기 있을 테니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이제는 서인경과 꼬막이가 상왕부의 문턱을 한 발짝이라도 넘기만 하면 주변에서 사방으로 보호가 붙었다. 특히 대황자와 예정임이 풀려난 뒤로는 그 두 사람이 그녀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서인경 자신도 몹시 조심하고 있었고 요즘은 꼭 필요하지 않으면 외출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서왕부의 초대만큼은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하나는 그동안 서왕과 서왕비가 여러 차례 도움을 준 데 대한 감사였고, 또 다른 하나는 연기준이 경성에 없는 상황에서 유가영의 일이 터진 뒤 많은 이들이 서인경의 처지를 두고 구경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계속 집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면 맹은영의 말마따나 밖에서는 서인경이 상심한 나머지 꼬막이를 데리고 호수에 몸을 던졌다고 떠들지도 몰랐다.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서인경은 한 번쯤은 밖으로 나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연기준이 언제 돌아올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평생 상왕부 안에만 숨어 지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대황자부.대황자가 풀려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단여월은 망부석처럼 대문 앞에 서서 두 시진 가량 꼼짝하지 않고 서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궁에서 돌아오는 마차가 보이자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갔다.“대황자, 신첩이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아십니까?”마차의 휘장이 들리자 지독한 악취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단여월은 사람 얼굴도 제대로 보기 전에 숨이 막힐 뻔했다. 부스스한 몰골로 내려선 대황자는 그녀의 노골적인 표정을 보고 즉시 분노했다.“네가 감히 본황자를 업신여기느냐?”단여월은 화들짝 놀라 서둘러 무릎을 꿇었다.“신첩이 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미 뜰 안에 모든 준비를 해 두고 전하께서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대황자는 텅 빈 대문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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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0화

예정임은 출궁한 그날 밤, 바로 진가이를 만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고 한참이 지났지만 돌아온 것은 수하 한 명뿐이었다.“진측비께서 전하셨습니다. 오늘은 대황자께서 막 귀부하신 날이고 마침 몸에도 아이를 품고 계셔서 외출이 곤란하다고 하십니다. 팔황자께서는 우선 몸을 쉬시며 조금만 마음을 가라앉혀 달라고 하셨습니다.”말만 놓고 보면 제법 그럴듯한 이유였다. 대황자의 귀부는 큰일이었고 그런 날에 얼굴을 보이지 않으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을 테니까.예정임은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으나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예전의 진가이라면 그를 만나는 데 이렇게 소극적이지 않았을 테니.혹시 아이를 가지니 사람이 달라진 걸까?몸에 밴 악취를 씻어내고 편안한 침상에 몸을 누이자 예정임은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진국의 천뢰는 사람이 버틸 곳이 아니었다.“가서 여인들을 좀 데려오거라.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더니 숨이 막힐 지경이다.”수하의 표정이 난처하게 굳었다.“주인님, 아직 위험이 완전히 가신 게 아닙니다. 사방에 눈이 붙어 있으니 조금만 더 참으시면…”그 순간, 베개 하나가 침상에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예정임의 얼굴은 욕망이 풀리지 않은 채 뒤틀려 있었다.“진국의 황제가 나를 이렇게 오래 가둬 두고도 무사할 줄 알았느냐? 내가 그를 두려워할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궁 안에서는 삼궁육원의 여인들을 거느리고 마음대로 지내면서 어찌 본황자에게는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이냐? 어째서!”수하는 더 큰 화를 막기 위해 급히 맞장구를 쳤다.“예, 예.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곧 준비하겠습니다.”“하나로 되겠느냐? 열이든 여덟이든 데려오거라. 그동안 못 누린 걸 전부 채워야겠다.”수하는 이 일에 있어 예정임이 한 번 말하면 물러서지 않는 성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수하는 실제로 기루에서 열 명의 여인이 불려왔다.예정임은 방탕에 빠진 얼굴로 쾌감과 광기가 뒤섞인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을 천뢰로 밀어 넣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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