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261 - Chapter 270

334 Chapters

제261화

윤하준의 집에 도착한 소예지가 초인종을 눌렀다.직접 문을 열어준 윤하준은 가방을 들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소예지를 보자, 눈빛 속에 얕은 연민이 스쳤다.“밥은 먹었어요?”소예지는 식당에서 허겁지겁 몇 숟갈 때운 오후를 떠올리며 살짝 웃어 보였다.“괜찮아요. 배 안 고파요.”“저녁 남겨뒀어요. 어서 들어와요.”윤하준이 부드럽게 말했다.순간 멈칫한 소예지는 그의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흔들렸다“고마워요, 매번 번거롭게 해드려서 죄송하네요.”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엄마!”그때, 고하슬이 방긋 웃으며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껴안았다.“나 아직 이안이랑 더 놀고 싶은데, 우리 조금만 더 있다 집에 가요!”소예지는 아이의 성격을 잘 알았다. 한 번 놀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 딸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조금만 더 놀다 가자.”아이 둘은 장난감방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고 윤하준은 소예지를 거실로 안내한 뒤 주방으로 향했다.소예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이 집의 가사 도우미는 이미 퇴근했을 텐데, 설마 윤하준 씨가 직접 뭔가를 해주려는 걸까?’“저기 윤하준 씨, 정말 괜찮아요. 돌아가서 이모님께 간단하게 국수 삶아달라고 하면 돼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을 때, 이미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윤하준이 고개를 들어 환하게 웃었다.“국수 먹고 싶으면 내가 끓여줄게요.”소예지는 눈을 깜빡이며 순간 거절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15분쯤 지났을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국수 한 그릇이 식탁 위에 놓였다.윤하준이 젓가락을 건네며 말했다.“맛 좀 봐요.”소예지는 조심스레 젓가락을 받아들었다.“고마워요.”면을 후후 불어 한입 먹더니 그녀의 눈빛이 순간 환해졌다.“진짜 맛있어요.”윤하준은 은근히 긴장했던 표정을 풀고는 안도한 듯 미소 지었다.“그럼 천천히 먹어요. 난 애들 좀 보고 올게요.”잠시 후, 그는 소매를 걷어 올려 단단한 팔뚝을 드러낸 채 소파에 앉아 태블릿으로 메일을
Read more

제262화

윤하준이 쓴 게시물은 곧 삭제되었지만 그의 지인들은 이미 그 글을 다 봤을 터였다.그중에는 심유빈과 고수경도 있었고 특히 고수경은 그 짧은 글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누구에게 국수를 끓여준다는 건가? 하준 오빠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밤 8시 반에 올린 글이니 그 여자는 오늘 밤 하준 오빠 집에 머무는 걸까? 두 사람이 함께 달콤한 밤을 보내고 있다는 건가?’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혼란스러운 생각에 빠져 있던 그때, 고수경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건 사람은 심유빈이었다.심호흡을 한 뒤 전화를 받은 그녀는 힘없이 말했다.“유빈 언니...”“윤하준 씨 올린 걸 너도 봤지?”“봤어. 나도 하준 오빠를 팔로우하고 있거든.”“그럼 그 여자 누군지 알아?”“잘 모르겠어.”윤하준은 워낙 뛰어난 남자였고 그 주위엔 늘 여자가 넘쳐났으니 고수경은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그 여자, 소예지야.”심유빈의 단호한 한마디가 그녀의 마지막 희망을 산산이 부숴버렸다.고수경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소예지라고? 그럴 리 없어! 다른 여자 아닐까?”“종호 씨가 윤하준 씨한테 직접 물어봤대.”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 고수경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하준 오빠가 그 여자를 위해 직접 요리를 했다고?”손톱은 어느새 그녀의 살을 파고들었다.“괜찮아?”심유빈이 걱정스레 물었고 고수경은 붉게 물든 입술을 깨물며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유빈 언니,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어떻게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걸까?”“남자란 때론 겉모습에 쉽게 속는 법이야.”심유빈이 자조적으로 말했다.“예전에도 그랬잖아. 네 오빠도 그 여자 수단에 감동해 결국 결혼까지 했잖니. 소예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남자를 다루는 기술만큼은 정말 능수능란해.”“그 여자가 대체 뭔데!”고수경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진정해, 수경아.”“유빈 언니, 나 잠깐 혼자 있고 싶어.”심유빈이 달래보려 했지만
Read more

제263화

그녀는 문득 윤하준을 떠올렸다.조금 전까지 실험 준비로 분주했던 소예지는 문득 더 정밀한 분석을 위해 고성능 현미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주저 없이 윤하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한참 뒤에나 답이 올 줄 알았지만 그는 거의 실시간으로 모델명과 상세 사양을 보내왔다.[언제든지 와서 사용해도 돼요.][좋아요. 두 시에 샘플 들고 갈게요.점심 무렵, 소예지는 구내식당에서 강준석을 우연히 마주쳤다.요즘 MD에서 상주하며 일하고 있는 그는 예전보다 소예지와 마주칠 기회가 줄었기에 강준석은 자연스럽게 그녀와 자리를 함께했다.두 사람은 최근 연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소예지도 그에게 궁금했던 점들을 묻기 시작했다.강준석과의 대화는 언제나 편안했다. 상대방을 전혀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정확하게 핵심을 짚는 그의 조언은 늘 그녀에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줬고 소예지의 직관적인 통찰은 때때로 강준석에게도 색다른 영감을 안겨주곤 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배울 점이 많은, 그야말로 친구이자 동료, 때로는 스승과 제자 같은 존재였다.다만, 강준석의 눈길이 소예지에게 머물 때면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럽고 깊은 감정이 숨어 있었다.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데 서툰 사람이었고 지금처럼 그녀와 쌓아온 관계가 무너지게 되는 걸 두려워했다.그래서인지, 고백 같은 건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다.그때, 강준석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네, 1시 반 회의는 제시간에 참석할게요.”전화를 끊은 강준석은 손목시계를 슬쩍 보며 미소 지었다.“요즘은 회의가 끊이질 않네. 먼저 가볼게.”“선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엄쉬엄해.”소예지의 말에 강준석은 눈을 가늘게 뜨며 웃어 보였다.“너도.”강준석은 빠르게 주차장으로 향했다.사실 그는 연구소에 볼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그저, 소예지와 점심을 먹고 잠깐 이야기하고 싶어서 일부러 이곳까지 달려온 것뿐이었다.물론, 이 사실을 소예지가 알 리는 없었다.오후 1시 30분, 소예지는 차를 몰고 윤하준이 인수한 지유선 연구소
Read more

제264화

윤하준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실험 스태프를 불러 소예지의 작업을 돕게 했고 두 사람은 꼬박 두 시간 동안 실험에 몰두했다.마침내 원하던 실험 결과가 나오고 소예지는 긴장을 풀며 시큰거리는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다 보니 눈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듯한 상태로 붉게 부어 있었다.실험실 문을 나서자마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윤하준이 그녀의 눈가를 보고 안쓰럽게 물었다.“눈 아프죠? 너무 무리한 것 같아요...”“괜찮아요, 조금 쉬면 나아질 거예요.”소예지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사무실에서 차 한 잔 마시고 가요.”“괜찮아요.”“몇 분 안 걸려요.”윤하준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가 마음에 걸린 것은 이렇게 지친 상태로 소예지가 직접 운전해 연구소로 돌아가는 것이었다.소예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잠깐 실례할게요.”윤하준의 사무실에 들어서자 소예지는 조금 어색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가 차를 준비하는 사이, 그녀는 책장 앞에 가서 책들을 훑어보다가 오랫동안 찾고 있던 고서 한 권을 발견했다.놀란 얼굴로 그녀가 물었다.“이 책... 혹시 잠깐 빌려 가도 될까요?”윤하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책장 통째로 가져가도 돼요.”볼이 살짝 붉어진 채 그녀는 책 한 권을 조심스레 꺼내며 말했다.“이거 하나면 충분해요.”“좋아요. 가져가요. 대신, 일단 차부터 마시죠.”윤하준이 손짓하며 그녀를 소파로 이끌었다.소예지는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차향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긴장도 함께 풀리는 듯했다.그 순간, 윤하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어젯밤 일 때문에... 혹시 부담이 됐을까 걱정했어요.”소예지는 섬세한 사람이라 그가 일부러 이 말을 꺼낸 걸 눈치챘다.“아뇨, 전혀요.”소예지가 짧게 대답하고는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찻잔에 입을 댔다.자신의 감정을 숨기려는 듯한 모습에 윤하준은 문득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윤하준은 어젯밤 SNS
Read more

제265화

고이한은 몇 초간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너, 윤 대표 좋아하니?”마음속에 숨겨둔 비밀이 드러나자, 고수경의 얼굴이 급작스럽게 당황으로 물들었다.“난 그 사람을 좋아하면 안 돼?”그녀는 결국 짜증 섞인 목소리로 시인했다.“너 그만 퇴사해.”단호한 고이한의 태도에 고수경은 억울함이 터져 나왔다.“오빠,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윤하준은 너랑 어울리지 않아.”고이한은 더 이상 말할 여지를 주지 않고 잘라 말했다.그의 말에 고수경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래도 난 하준 오빠가 좋아. 오빠 보려고 일부러 그 회사에 들어간 거야. 소예지 그 여자는 오빠랑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하준 오빠한테 들이대? 진짜 뻔뻔한 여자야.”고이한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변했다.“나랑 소예지는 이미 이혼했고 지금 소예지가 누구와 만나든 그건 그 사람 자유야.”“오빠 지금 그 여자 편드는 거야?”고수경은 당황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로 외쳤다.“나는 사실을 말하는 거야. 너 그 회사 나올 준비해.”그는 짧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고수경은 멍하니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곧 울려 퍼지는 삐소리에 더욱 서러움이 복받쳤다.6년 전, 뻔뻔하게 오빠와 결혼하더니 이제는 윤하준까지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에 치가 떨렸다.한편, 엘리베이터 안에서 윤하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고 대표.”“하준아, 부탁 하나만 할게.”“말해.”“내 동생, 퇴사 처리 부탁해.”윤하준은 조금 놀란 듯 물었다.“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해?”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이한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평온했다.“그 애는 네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윤하준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변해가는 층수 표시를 바라보며 상황을 대충 짐작했다.“수경이도 알고 있어?”“방금 얘기했어. 귀찮게 해서 미안.”고이한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사무실에 도착한 윤하준은 내선 전화를 눌렀고 곧 고수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Read more

제266화

고수경은 윤하준의 단호한 기세에 움찔했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 끓어오르던 억울함은 결국 그대로 터져 나왔다.“소예지는 우리 오빠랑 막 이혼하자마자 하준 오빠를 유혹했어. 그렇게 남자 밝히는 여자는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거야!”말을 쏟아낸 고수경의 목소리는 떨렸고 그 안에는 분노와 질투, 그리고 서러운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그러나 윤하준은 단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수경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소예지 씨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혼자서 좋아하는 것뿐이야.”그 말에 고수경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 걸음 뒷걸음질쳤고 눈가가 순식간에 눈물로 흐려졌다.그리고는 그대로 돌아서 사무실을 뛰쳐나갔다.복도에 있던 몇몇 동료들이 그녀가 비틀거리며 달려 나가는 모습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감히 다가가 묻지 못했다.고수경은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 앞에 멈춰 섰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은 처참했다. 아침에 공들여 손질한 머리는 다 흐트러졌고 정성스럽게 한 눈 화장은 눈물에 엉망으로 번져 내렸다.10분 후, 인사팀은 고수경의 이름이 적힌 퇴사 서류를 출력했고 그렇게 그녀는 정식으로 해고되었다.상자 하나를 끌어안은 채 실험동 건물을 나선 그녀에게 차가운 바람이 스쳐 갔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은 얼음장처럼 식어 있었기에 몸은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공허함이 따뜻한 감정까지 모두 밀어내 버린 듯했다.“이 모든 건 전부 소예지 때문이야.”그 순간,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고, 화면엔 ‘유빈 언니’라는 이름이 떴다. 고수경은 쉰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수경아? 무슨 일 있어?”심유빈은 단번에 이상함을 감지했고 고수경의 흐느낌이 곧장 이어졌다.“나 해고당했어. 하준 오빠가 나를 잘랐어...”“네가 왜 해고를 당해?”심유빈의 질문에 고수경은 조금 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쏟아냈다.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과 충격이 뒤섞인 말들이 흘러나왔고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던 심유빈은 숨을 고른 뒤 부드럽고 낮은 목
Read more

제267화

“좋아요, 금요일에 참석할게요.”소예지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걱정 마세요, 그날 저와 윤 대표님도 함께 참석할 예정이에요. 필요한 자리에 저희가 나서 드릴게요.”그녀는 한 박자 멈칫하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네.”실험실로 들어간 소예지는 그날 하루 종일 연구에 몰두했다. 전화도 받지 않았고 식사도 거른 채 오롯이 일에만 집중했다.그렇게 금요일이 되었고 소예지는 딸에게 오늘 밤 중요한 연회에 다녀와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이제 겨우 유치원생뿐인데 아이의 눈빛엔 어느새 또렷한 성숙함이 비쳤다.“네! 엄마, 다녀오세요. 나 집에서 얌전히 있을게요.”고하슬은 또박또박 그리고 자신감 넘치게 고개를 끄덕였다.딸의 낯선 어른스러움에 소예지는 가슴이 뭉클해졌다.이혼 이후, 혹시 너무 이르게 아이를 철들게 만든 건 아닌지 마음 한쪽이 씁쓸했다. 어머니로서 딸이 자라나는 모습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아이가 일찍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그만큼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걸 소예지는 알고 있었다.그녀는 무릎을 꿇고 조심스레 아이를 안아주었고, 양희순에게 간단한 당부를 남긴 채 조용히 현관을 나섰다.오늘처럼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 평소 옷차림으로는 어울리지 않았다.소예지는 예약해 둔 고급 맞춤 드레스숍을 찾아가기로 했다.이제 그녀는 단지 연구원이나 과학자가 아닌, 사회적으로도 주목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이혼 소송이 화제가 되며 그녀의 이름과 과거, 그리고 학문적 성과까지 세간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소 대표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숍의 점장이 직접 나와 그녀를 맞았다.2층 휴게실에 올라서자 조명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드레스들이 소예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마음에 드는 디자인 있으신가요?”소예지는 조용히 드레스들을 훑어보다가 은은한 광택의 아이보리 실크 드레스를 골랐다.어깨가 드러나는 디자인에 허리선을 부드럽게 감싸는 절제된 실루엣은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그 느낌이 그녀의 감성과 꼭 들어맞았다.점장은 처음엔 살짝 아쉬웠
Read more

제268화

소예지와 임재석이 연회장에 들어선 지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입구의 레드카펫 위로 단연 눈길을 끄는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가장 앞엔 우아하게 차려입은 심유빈과 고수경, 그 뒤를 따라 고이한, 윤하준, 하종호 세 명의 훤칠한 남성들이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다.그 세 남자는 A 시 재계 권력의 상징이라 불릴 만큼 막강한 존재들이었다. 순식간에 연회장 안의 시선이 일제히 그들 쪽으로 쏠렸고 여기저기서 낮은 목소리의 수군거림이 흘러나왔다.특히 사회 명문가 출신의 아가씨들은 그들에게 매혹된 듯 반짝이는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저마다 다가갈 틈을 노리고 있었다.소예지는 샴페인 잔을 가볍게 들고 조용히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임재석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바깥 테라스로 잠깐 바람 쐬러 가실래요?”“괜찮아요.”샴페인을 한 모금 머금은 채, 담담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그녀는 거절했다.그 순간, 윤하준의 시선이 정확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 눈빛 속엔 분명한 감탄이 담겨 있었다. 크리스탈 샹들리에 아래 서 있는 그녀는 조명에 감싸인 듯 더욱 돋보였고 그 자태는 몹시도 매혹적이었다.연회장 곳곳에선 웃음소리와 건배 소리가 울려 퍼졌고 부와 권력을 지닌 이들이 어울려 담소를 나누며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잠시 후, 이 회장이 직접 고이한 일행을 맞이하러 나섰고 이내 그 주위로 손님들이 몰려들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자연스럽게 소예지의 시선은 심유빈에게 향했고 그녀는 고이한의 곁에서 단아하고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반면 고수경은 티 나게 윤하준 옆에 붙어 그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쓰고 있었고 잦은 고갯짓과 가벼운 웃음으로 관심을 유도했지만 윤하준의 눈길은 끝내 그녀를 향하지 않았다.그때 다시 임재석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우리도 가서 이 회장님께 인사드릴까요?”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이 시점에 함께 인사를 드리면 고이한의 후광을 조금이나마 함께 입을 수 있고 동시에 이 회장에게 소예지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도 있었다
Read more

제269화

“소예지 씨,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낮고 깊이 있는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 소예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윤하준이 서 있었다.그녀는 짧게 숨을 고른 뒤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윤하준 씨.”그는 지유선 산하의 연구소를 인수한 뒤, 의료계에서도 손꼽히는 권위자로 자리 잡은 인물이었다. 그 존재 자체가 풍기는 압도적인 아우라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섰고 덕분에 두 사람만의 고요한 공간이 만들어졌다.윤하준은 잠시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다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오늘 밤, 꽤 인기 있으신 것 같네요.”“그저 업계 사람들과의 교류일 뿐이에요.”소예지는 담담히 웃으며 대꾸했다. 주변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윤하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와 지난 실험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던 고수경의 눈빛엔 질투가 짙게 배어 있었고 붉게 물든 그녀의 입술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바짝 다물려 있었다.잠시 후, 심유빈이 인사를 마친 뒤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고수경의 표정을 본 심유빈은 가볍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고 그 순간 고수경의 눈빛에 불현듯 묘한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윤하준의 마음을 막을 수는 없어도 소예지를 자극할 방법쯤은 얼마든지 있었다.“유빈 언니, 우리 가서 인사나 해볼까?”고수경은 능청스럽게 심유빈의 팔을 끼며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이끌고 고이한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이번엔 반대편 팔에 오빠의 팔을 억지로 끼워 안았다.고이한은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리며 동생을 바라봤다.“오빠, 나 좀 아는 사람한테 인사 가야 돼.”고이한은 영문도 모른 채 수경에게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고 곧 자신들이 향하는 곳이 소예지가 있는 자리라는 걸 알아차렸다.소예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세 사람이 함께 다가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고수경은 한 손에 고이한, 다른 한 손에 심유빈의 팔을 끼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한 가족처럼 다정하고
Read more

제270화

소예지가 막 몸을 돌린 순간, 어느새 그녀 뒤에 서 있던 고이한이 눈에 들어왔다. 깊고 그윽한 눈동자 속엔 말로 다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오빠!”고수경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고 심유빈 역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정하게 인사했다.“이한 오빠.”하지만 고이한의 시선은 단 한 순간도 머뭇거림 없이 곧장 소예지를 향했다.“이 회장님이 널 보고 싶어 하셔.”소예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응했다.“알려줘서 고마워.”그렇게 말을 마치고 자리를 뜨려 하자, 고이한이 갑자기 팔을 뻗어 그녀의 길을 막았다.“같이 가줄게.”그 짧은 한마디에 심유빈과 고수경의 얼굴빛이 동시에 굳어졌다. 하지만 소예지는 미련 없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혼자서도 괜찮아.”냉담하게 잘라 말한 그녀는 이 회장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그녀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는 그의 눈빛 속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깊은 고민이 서려 있었다.소예지가 곧 이 회장 곁으로 다가가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인사를 건네자 이 회장은 따뜻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었다.“난 너희 아버지랑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친한 친구였어.”“아버지와 인연이 있으셨다니 반갑습니다. 그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영광입니다.”소예지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고 이 회장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눴다.두 사람의 대화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 이어졌고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웠다. 그러다 그의 비서가 다가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하자, 이 회장은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예지야, 다음에 또 이야기 나누자고. 네 연구 방향이 무척 흥미롭고 기대도 크단다.”“네, 먼저 일 보세요.”소예지도 고개를 숙이며 예의 있게 인사했다.그때 마침 임재석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호텔업계 협력업체 관계자 몇 명을 소개했고 소예지는 정중히 인사를 나눈 뒤에서야 겨우 짧게 한숨을 내쉴
Read more
PREV
1
...
2526272829
...
3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