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소예지가 서류를 안고 조용히 들어섰다.안채린의 눈빛 깊은 곳엔 질투의 불꽃이 번뜩였다.소예지도 안채린을 보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곧 조용히 입을 열었다.“교수님, 제가 이따가 다시 오겠습니다.”하지만 양정화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괜찮아. 들어와.”그리고는 안채린을 향해 덧붙였다.“채린아, 넌 먼저 나가봐.”그 한마디에 안채린의 심장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짧은 지시였지만 그 안에는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양정화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네, 교수님.”안채린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그녀는 소예지 쪽으로 걸어가며 일부러 마주 보았지만 소예지는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평온한 눈빛으로 그 시선을 받아냈다.안채린이 이렇게 서둘러 실험실로 복귀한 이유가 독립 PI 프로젝트를 차지하기 위함이라는 걸 소예지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무엇보다 그녀는 자신과 고이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그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은 안채린일 수밖에 없었다.소예지가 자리에 앉자 양정화가 조용히 물었다.“아까 고 대표가 다녀갔지? 어땠어, 널 붙잡던가?”소예지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양 교수님, 전 이미 결정했어요.”짧은 대답 속에는 어떤 말로도 되돌릴 수 없는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었다.양정화는 그 말에 깊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억지로 붙잡을 순 없지. 그래도 신약 테스트가 아직 석 달 남았으니까 그동안은 천천히 다시 생각해 봐도 돼.”소예지는 서류를 조용히 책상 위에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마지막까지 책임은 다하겠습니다.”소예지가 사무실로 돌아간 직후, 양정화의 휴대폰이 울렸다.“여보세요? 고 대표.”전화기 너머로 고이한의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양 교수님, 방금 하나 제안이 떠올라서요.”“그래? 무슨 제안인데?”양정화는 흥미가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독립 PI 자격은 그대로 유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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