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를 필요는 없어. 당신에겐 아직 석 달이라는 시간이 있으니까.”고이한은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조용히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엘리베이터 버튼은 아직 눌리지 않은 채였고 소예지의 시선은 허공에 머문 채 멈춰 있었다.마음은 이미 지금 이 순간을 떠나, 2년 전 그 밤으로 되돌아가 있었다.D국의 지하 연구실에서 실험에 몰두하고 있던 그날 밤, 양희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고이한이 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고 차 안에서 다른 여자를 보았다는 이야기였다.그 한 통의 전화는 마치 청천벽력처럼 그녀를 덮쳤고 손에 들고 있던 실험을 멈추게 만들었다.소예지가 하고 있었던 건 바로 전신마비 판정을 받은 원숭이에게 뇌에 이식한 칩을 신경과 연결하여 회복 가능성을 확인하는 실험이었다. 그 원숭이는 야생에서 벼락을 맞은 후 거의 생명을 포기해야 했던 개체였고 소예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그리고 바로 그날 밤, 기적이 일어났다.그 원숭이가 스스로 앉아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이를 지켜본 지도 교수는 인간이 만들어낸 ‘기적’이라며 숨을 죽이고 감탄했다.세상은 그 한밤의 사건을 알지 못했지만 소예지에게 있어 그것은 의학과 과학, 그리고 신념이 교차한 결정적 순간이었다.하지만 그 기적을 만들어냈던 원숭이는 한 달 후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소예지는 실험실을 정리한 뒤 조용히 가정으로 돌아갔다.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연구도 결국 고비용이라는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 끝내 중단되고 말았다.그 일은 어느 의학지에도 실리지 않았고 어떤 회의에서도 논의되지 않았으며 세간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았다.기적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사라졌다.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고이한이 선구안 있게 그 분야의 연구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정신을 차리고 보니,소예지는 엘리베이터 앞에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잊었다고 믿었던 과거의 파문은 조용한 일상에서도 여전히 잔잔한 물결을 남기고 있었다.MD, 고이한의 영향력과 자금력이라면 그가 말한 뇌-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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