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931 - Chapter 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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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1화

소예지는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한 줄씩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임현욱다운 솔직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몇 줄을 바라보는 동안 그녀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미묘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녀는 한동안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어느 순간에는 서재 안에 또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했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고이한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소예지가 메시지를 읽는 순간의 표정도, 잠시 후 손가락으로 화면을 빠르게 두드리며 답장을 보내는 모습도 그는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고이한의 턱선은 아주 미묘하게 굳어 갔다.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빛만은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마치 눈앞에서 소예지가 다른 남자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을 고스란히 보고 있는 사람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조용하던 서재 안에 낮은 목소리가 울렸다.“보니까... 무사한 모양이네.”고이한의 말투는 평온했지만 그 안의 감정은 읽기 어려웠다. 분명 무언가가 섞여 있었지만 그것이 안도인지 불쾌함인지 쉽게 구분되지는 않았다.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소예지는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맞은편에 여전히 고이한이 앉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의식한 듯 표정이 약간 굳었다.잠시 후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할 얘기 끝났으면 이제 가도 돼.”말투는 정중했지만 더 머물 필요 없다는 뜻은 분명했다.고이한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의 목울대가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였다.“그래. 방해 안 할게.”그는 조용히 그렇게 말한 뒤, 잠시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그녀를 보았다.“아래 가서 하슬이 좀 보고 가야겠다.”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그대로 문으로 향하지는 않았다. 문 앞에 이르기 직전 다시 한번 소예지를 돌아보며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실험 계획은 방금 말한 걸로 진행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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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소예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잠시 화면을 바라보던 그녀는 곧 임서윤에게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양정화의 수술 이후 상태가 어떤지 묻는 간단한 안부였다.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양 교수님 내일이면 퇴원 가능합니다. 수술 후 회복도 아주 좋습니다.]그 메시지를 읽은 순간 소예지는 그제야 마음을 조금 놓았다. 양정화가 큰 문제 없이 회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다행이었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양정화가 병원에서 돌아오면 직접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고 인사도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결심했다.다음 날 아침, 소예지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연구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스미스 박사의 실험을 함께 진행해야 했기 때문에 전체 연구 일정을 한 번 더 정리하고 조정할 필요가 있었고 그 영향으로 진행 중이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프로젝트의 일부 연구 속도는 잠시 늦출 수밖에 없었다.그렇다고 모든 실험을 멈출 필요까지는 없었다. 몇몇 단계의 연구는 이서연이 충분히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또한 강준석이 담당하고 있던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프로젝트 역시 이미 초기 테스트 단계에 진입해 있었다.연구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소예지는 연구실 내부 통신으로 강준석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간단히 현재 상황을 공유한 뒤 점심시간에 연구소 식당에서 만나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했다.그녀는 잠시 자료를 정리하다가 물을 한 모금 마시려고 컵을 집어 들었다.그때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들어와요.”문이 열리며 이서연이 고개를 내밀었다.“소예지, 찾는 사람이 있어.”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누군데?”이서연은 약간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환자라고 하는데... 이틀 동안 몇 번이나 왔다가 그냥 돌아갔대.”그 말을 듣고 소예지는 조금 놀랐다.“환자?”그때 이서연의 뒤에서 한 쌍의 부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두 사람의 손에는 선물 상자와 과일 봉투가 들려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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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안채린 역시 지금의 상황이 몹시 못마땅했다.심유빈은 그저 조금만 더 노력해 보라는 식으로 위로만 할 뿐, 정작 고이한의 인맥을 이용해 자신의 승진을 도와줄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럴수록 안채린의 속에서는 불만이 점점 더 쌓여 갔다.‘고이한 같은 사람이 뒤에 있는데도... 왜 한 번도 그 관계를 이용하려 하지 않는 거지?’그녀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지금의 현실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연구소 안에서는 이미 그녀를 두고 은근한 비웃음이 돌고 있었고 그녀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억지로 감정을 눌러 담은 채 조용히 제 자리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안채린은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마음을 달랬다.‘괜찮아. 심유빈이 결국 고씨 집안에 시집가게 되면 그때는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기회는 넘치게 생길 거야.’한편 고수경은 병이 확진된 이후 거의 집에서만 지내고 있었다.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기 방에 틀어박혀 보냈고 그러는 동안 혼자 울음을 터뜨리는 날도 많았다. 마치 한순간에 인생의 색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처럼 세상이 흐릿하게 느껴졌다.예전에는 친구들과 만나 쇼핑을 하고 웃고 떠드는 일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지만 지금의 그녀에게 그 모든 것은 멀고 희미한 기억처럼만 남아 있었다.이제 그녀에게 남은 감정은 단 하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뿐이었다.진가영의 몸 상태 역시 좋지 않았다.최근 들어 몸에 원인을 알 수 없는 멍 자국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것 때문에 그녀는 꽤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해외에 다녀온 뒤 다른 특별한 문제는 없었지만 몸이 점점 더 말라 가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아무리 몸을 챙겨도 예전처럼 기력이 돌아오지 않았다.요즘 고씨 집에는 의료진이 자주 드나들고 있었다. 간단한 검사와 상태 확인을 위해서였다. 고수경 역시 어머니와 함께 정기 검사를 받고 있었다.물론 이 병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건 오빠인 고이한과 분명히 약속한 일이었다.하지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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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고수경의 머릿속은 순식간에 복잡해졌다.‘설마 오빠가 말했던 치료 방법이 그 단계에서 막혀 있는 건가?’‘기증자가 실험에 협조하지 않아서 치료 연구가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걸까?’‘그렇다면 어머니의 병은...’그 병은 결코 시간을 두고 천천히 기다릴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상태가 악화되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그녀는 그제야 자신과 어머니의 생명줄이 지금 그 기증자 단 한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 사람은 지금도 오빠와 조건을 두고 협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도대체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원하길래 어머니를 살릴 수 있는 이 실험에 협조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고 어떤 조건을 내걸었기에 오빠조차 아직 그 사람을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았다.고수경은 발코니에서 나와 천천히 중앙 홀로 걸어 들어왔다. 넓고 조용한 연구소 중앙 공간은 여전히 적막했다.바로 그때 입구 쪽에서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노트북 가방을 든 소예지가 차분한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단정한 직장용 정장을 입은 그녀는 화려하게 꾸민 모습은 아니었지만 걸음에는 흔들림 없는 자신감이 담겨 있었고 몸가짐에서도 자연스럽게 사람의 시선을 끄는 기품이 느껴졌다.연구소의 공기마저 그녀를 중심으로 정리되는 것처럼 보일 만큼 그녀에게서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학자 특유의 분위기가 조용히 흘러나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는 순간 고수경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그리고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과 난처함 그리고 도망치고 싶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녀의 머릿속에는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예전에 자신이 소예지에게 했던 말들이었다. 고수경은 여러 번 소예지를 비웃었다. 오빠를 붙잡아 두지도 못하면서 괜히 잘난 척을 한다고 조롱했고 고고한 척한다고 비꼬기도 했다. 심지어 오빠에게 버림받은 여자라는 식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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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소예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고이한이 이런 요구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곱씹어 보자 그 의도가 서서히 짐작되기 시작했다.자신이 심유빈 앞에 나타나는 것이 그녀에게 어떤 심리적 자극이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예 심유빈과 마주칠 가능성 자체를 차단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소예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겨 있자 스미스 박사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소 박사도 아시다시피 심유빈 씨는 현재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증자입니다. 그래서 고 대표도 굉장히 신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혹시라도 소 박사의 존재가 심유빈 씨에게 심리적인 불안감을 줄까 봐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소예지는 상황을 단번에 이해했다.심유빈이 여전히 고이한과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이한의 전처인 자신이 실험에 직접 참여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심유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이다.자칫하면 실험 자체를 거부할 가능성도 있었기에 고이한으로서는 그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이 분명했다.결국 그는 심유빈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그녀가 불편해할 만한 모든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려는 셈이었다.생각해 보면 참으로 치밀하고 철저한 계산이었다.소예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제가 피하겠습니다.”그 말을 듣자 스미스 박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사실 저는 소예지 씨가 실험 전 과정에 함께 참여해 주기를 바랍니다. 다만 연구 진행에 지장이 없는 범위라면 지금은 상황을 조금 고려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잠시 불편하게 하는 점은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충분히 이해합니다.”심유빈이 어떤 성격인지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십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고이한을 자신의 곁에 붙잡아 둘 수 있었던 사람이다. 그만큼 만만한 인물일 리 없었고 고이한이 이렇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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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메시지를 전송한 뒤 고이한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두 번 가볍게 두드리더니 이내 스미스 박사의 전용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평소와 다르지 않은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박사님, 심유빈 씨 쪽에서 실험 협조를 확정했습니다. 이제 예정대로 실험을 시작하셔도 됩니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한 기척이 들렸다. 그리고 곧 안도의 기색이 역력한 스미스 박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정말 다행입니다. 그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연구팀에 준비 작업을 지시하겠습니다.”고이한은 짧게 답했다.“수고 많으십니다.”그는 더 말을 덧붙이지 않고 통화를 마쳤다.전화를 끊은 뒤 고이한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 한쪽에 자리한 통유리 창 앞으로 걸어갔다. 창 앞에 서서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야에는 눈부시게 화려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고층 빌딩 사이로 햇빛이 반사되어 반짝였고 도로 위에서는 차들이 끊임없이 흐르며 도시 특유의 활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하지만 그 눈부신 햇빛은 이상하게도 그의 눈동자 안으로는 스며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깊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어둡고 무거웠고 아무리 밝은 햇빛이 쏟아져도 닿지 않는 깊은 물 속처럼 가라앉아 있었다.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던 그는 다시 연락처 목록에서 소예지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몇 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되었다.“여보세요.”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예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차분했다.고이한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이쪽 실험... 내일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됐어.”소예지는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알겠어.”그리고 곧이어 덧붙였다.“지금 운전 중이야. 혹시 더 할 말 있어?”그 말을 듣자 고이한의 입술이 잠시 굳게 다물렸다.몇 초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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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소예지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맞아요. 요즘 그쪽 관련 사례들을 조금씩 정리하면서 연구하고 있어요.”양정화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눈빛에는 어딘가 모르게 탐색하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오랜 세월 연구와 교육 현장에서 사람을 상대해 온 그녀의 직감으로는 소예지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런 질문을 꺼냈을 것 같지 않았다.그래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그래? 혹시 네 주변에 혈액 질환 환자가 있니?”소예지는 잠깐 멈칫했지만 곧 평소와 다르지 않은 담담한 표정으로 웃었다.“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여쭤본 거예요.”그녀는 더 이상 이야기가 그쪽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선생님은 요즘 식사는 잘하세요? 수술 후에는 식단이 가장 중요하잖아요.”그렇게 두 사람은 식사와 회복 상태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이어 갔다. 대화는 생각보다 길어졌고 어느새 오후 네 시 반이 훌쩍 지나 있었다.소예지는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이제 가 볼게요. 다음에 또 들르겠습니다.”양정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배웅했다.소예지가 떠난 뒤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양정화는 침대에 잠시 기대앉아 있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 아까 소예지가 희귀 혈액 질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그녀는 손을 뻗어 옆에 있던 노트북을 가져온 뒤 전원을 켜고 국내 의료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소예지가 언급한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희귀 혈액 질환 사례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검색 결과에 나타난 것은 대부분 비교적 흔한 혈액 질환 사례들이었다.양정화는 잠시 화면을 바라보며 고민하다가 시간을 보내는 김에 몇 가지 사례라도 정리해 보기로 했다.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양정화는 병원 내부 시스템에 접속한 뒤 백혈병 관련 사례 데이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곧 여러 사례 목록이 화면에 나타났고 그녀는 마우스를 천천히 움직이며 하나씩 내려 보면서 데이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그 과정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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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양정화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문득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소예지의 아버지, 소영욱이었다.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2년 동안 집중했던 연구 주제가 바로 백혈병이었다는 사실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그 순간 양정화의 가슴이 묘하게 먹먹해졌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남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까지도 딸과 손녀를 위해 조용히 길을 닦고 있었던 셈이었다.양정화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자연스럽게 또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바로 고이한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그 이유를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소예지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그래도 결과만큼은 다행이었다.백혈병 연구는 결국 돌파구를 찾았고 신약 개발 역시 성공했다. 그 덕분에 정연수는 완전히 회복해 병원에서 퇴원했고 지금은 정상적인 삶을 되찾아 살아가고 있었다.그 사실은 곧 앞으로 소예지나 고하슬에게 혹시라도 신정숙에게서 비롯된 질환이 유전된다 하더라도 이제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되었다는 뜻이었다.그 생각에 양정화의 마음도 한결 놓였다.그녀는 다시 신정숙의 검사 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화면에 표시된 내용을 차분히 확인해 보자 예상했던 대로 신정숙의 백혈병 유형은 정연수의 사례와 완전히 같은 종류였다. 의학 보고서에는 그 질환에 대한 설명이 명확하게 적혀 있었고, 그중 한 문장이 양정화의 시선을 붙잡았다.‘유전 가능성이 존재하는 백혈병 유형.’즉 일정 확률로 후손에게 이어질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의미였다. 그 문장을 확인하는 순간, 양정화는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했다.아마도 소영욱은 세상을 떠나기 전 고이한에게 이 책임을 맡겼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연구를 추진하려 했던 것이다.결과적으로는 다행이었다. 소예지가 신약 연구를 성공시켰고 정연수 역시 완전히 회복했다. 그 사실은 곧 소씨 집안에 남아 있던 유전 위험이 사실상 해결되었음을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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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예의 있게 대답하고는 더 말을 이어 가지 않은 채 딸이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그녀가 자리를 떠나자 뒤에 서 있던 학부모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와... 저 집은 세 사람이 다 너무 잘생기고 예쁘다.”그러자 옆에 있던 엄마가 주변을 한번 살피며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쉿, 몰랐어요? 저 사람들 이미 한 가족 아니에요. 이혼한 지 벌써 2년쯤 됐을걸요.”그 말을 들은 다른 엄마는 놀란 눈으로 다시 한번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이렇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인데... 정말 아깝네요.”소예지와 고이한의 신분이 워낙 특별한 만큼 주변에서 힐끗거리며 바라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러나 소예지는 그런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딸의 손을 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교실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고하슬의 친구 이안이었다.그런데 오늘 이안을 데리고 온 사람은 윤하준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 주경화였다.주경화는 소예지를 보자마자 반갑게 웃으며 다가왔다.“어머, 예지 씨 오셨네요. 하슬이는 갈수록 더 예뻐지는 것 같아요.”소예지도 부드러운 미소로 인사를 받았다.그때 교실 문 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고이한이 안으로 들어왔다.주경화는 그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이한아, 너도 왔구나.”고이한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윤 대표 아직 귀국 안 했습니까?”그 질문을 듣는 순간 주경화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지만 곧 표정을 정리한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그래. 해외 지사 쪽에 급한 일이 생겨서 말이야. 당분간은 돌아오기 힘들 것 같더라.”고이한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혹시 윤 대표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그 말에 주경화의 눈빛이 잠깐 밝아졌다.“네가 그렇게 말해 주니까 마음이 놓인다.”바로 옆에서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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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고이한은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메시지를 몇 초 동안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곱씹는 듯 미묘하게 미간이 좁혀졌다. 그러나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다.잠시 후 그는 짧게 한 글자를 입력했다.[그래.]답장을 보낸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고이한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옮겨 맞은편에 앉아 있는 딸을 바라보았다. 아무 걱정도 모르는 듯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환하게 웃고 있는 고하슬의 얼굴을 보자 그의 표정도 어느새 부드러워졌다.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지며 그는 손을 뻗어 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이따가 아빠가 하슬이 공부할 때 필요한 것들 좀 사 줄까?”그 말을 듣자마자 고하슬의 눈이 반짝 빛났다.“네!”아이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예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딸에게 말했다.“하슬아, 엄마는 오후에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가. 오늘은 아빠랑 다녀와.”고하슬은 전혀 아쉬워하는 기색 없이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엄마.”식사가 끝나자 고이한은 계산을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소예지를 향해 말을 건넸다.“집까지 데려다줄게.”그러나 소예지는 특별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난 택시 타고 가면 돼.”정중하지만 분명한 거절이었다.그러나 고이한은 그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았다.“하슬이 데리고 당신 집 근처 쇼핑몰에 갈 거야. 어차피 같은 방향이야.”그때 고하슬이 소예지의 팔을 붙잡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엄마, 그냥 아빠 차 타고 가요. 저도 엄마랑 같이 차 타고 싶어요.”딸의 작은 손이 팔을 붙잡는 순간 소예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짧게 한숨을 내쉰 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같이 가자.”차에 올라탄 뒤 고이한은 먼저 딸과 어린이집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늘 어떤 게임을 했는지,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묻자 고하슬은 신이 난 목소리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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