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유산은 모른 척, 이혼에 왜 눈물?: Chapter 191 - Chapter 200

388 Chapters

제191화

“살인범도 아닌데 왜 떠나야 하지?”“성하린.”문강찬의 말투가 무거워지며 숨결마저 가라앉아 있었다.“아이가 중요해.”‘아이? 강찬 씨의 마음엔 아이밖에 없는 걸까. 아니면 아이로 나를 단단히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문강찬은 화를 억누르며 그녀를 타일렀다.“할머니가 편히 눈 감으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그리고 건우도 네가 필요해.”‘건우’라는 두 글자에 성하린은 결국 무너졌다.가슴속 가득 차 있던 분노가 그 두 글자에 힘없이 사라졌다.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녀에게는 아직 건우가 있다.그리고 건우는 문강찬의 골수가 필요했다.성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감정이 마비된 사람처럼 문강찬이 어깨를 감싸는 대로 몸을 맡기고 떠나려 했다.막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안경을 쓴 한 남자가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왔다. 그의 옆에는 제복을 입은 직원 두 명이 함께였다.진성국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누구세요?”남자는 박순옥의 영정 앞에 절을 한 번 하고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저는 박순옥 어르신께 의뢰를 받아 오늘 한 영상을 공개하러 왔습니다.”그는 태블릿을 꺼내 박순옥의 사진 옆에 세웠다.영상 속 박순옥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인자한 얼굴에는 미소가 떠 있었지만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분명히 느껴졌다.성하린은 가슴이 저릿해지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박순옥의 영상은 총 5분이었다.앞의 3분 동안 그녀가 말한 건 단 한 가지, 진성국 부부가 둘째 딸 진윤슬을 방치했다는 사실이었다.그로 인해 진윤슬은 어릴 때부터 온갖 상처를 받았고, 놀림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심지어 한 번은 큰일을 당할 뻔하기도 했다.그때마다 박순옥이 진성국에게 전화를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같았다.“대표님은 바쁘십니다.”주아란에게 전화하면 역시나 같은 말뿐이었다.“시간이 없어요.”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부부는 단 한 번도 딸을 보러 오지 않았다.진윤슬에게 아주 작은 사랑 한 조각조차 나눠줄 시간이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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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박순옥에게 성하린은 이미 친손녀나 다름없었다.오랜 세월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는데 어떻게 그녀가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있었겠는가.유일한 아쉬움이 있다면 건우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이었다.진씨 집안에서 건우를 기다렸지만 결국 만나지 못했다.그래도 성하린이 건우를 잘 돌봐줄 거라 믿었다.성하린은 거의 실신하듯 울었다.문강찬은 옆에서 그녀를 붙잡고 서 있으며 박순옥의 마음 씀씀이를 깊이 느꼈다.사실 그도 준비해 둔 게 있었지만 이제는 그가 나설 필요가 없어졌다.변호사는 문강찬을 힐끗 보더니 성하린을 위로했다.“어르신의 요청에 따라 이 영상은 온라인에도 동시에 공개될 거예요. 성하린 씨, 힘내세요.”그 말은 순식간에 파장을 일으켰다.진성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달려들어 변호사의 멱살을 잡았다.“헛소리하지 마! 우리 엄마가 그럴 리 없어!”영상이 온라인에 올라가면 그는 끝장이었다.어머니가 아들을 망칠 리 없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혹시 네가...”진성국은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문강찬을 가리키며 말했다.“너희가 짜고 친 거지? 진작부터 우리 집안 망치려고 계획한 거잖아!”그는 절망과 분노에 차 소리쳤다.“우리 딸 신분 훔쳐서 3년 동안 호화롭게 살더니, 이제 할머니 돌아가시자마자 외부 사람이랑 손잡고 우리를 공격해? 은혜도 모르는 년!”하지만 그의 외침은 모두에게 그저 무능한 분노로 인한 발작처럼 보일 뿐이었다.영상의 진위는 이미 공증되었다.박순옥은 진심으로 손녀를 아끼고, 아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했다.성하린은 슬픔 속에서도 할머니가 안쓰러웠다.“당신들이 하루라도 할머니를 챙기고, 하루라도 딸을 사랑했더라면 할머니가 이런 선택까지 하진 않았을 거예요.”그녀는 고개를 돌렸다.더는 진성국을 보고 싶지 않았다.이성을 잃은 진성국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제사상 위의 향로를 집어 들고 성하린을 향해 내던졌다.“이 배은망덕한 년, 죽여버릴 거야!”완전히 미쳐 버린 그는 성하린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잊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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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그때, 성예빈, 체격이 큰 남자 한 명, 그리고 진태호 등 성씨 가문 사람들이 왔다.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진태호도 당당하게 돌아올 이유가 생긴 셈이었다.그는 많이 야위어 있었다.할머니께 절을 한 뒤 주아란과 진세린을 안아주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성하린을 바라봤다.그 눈빛에는 짙은 악의가 서려 있었다.성하린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성예빈이 발을 쿵 굴렀다.“진짜 뻔뻔해. 남 신분 훔쳐놓고 이렇게 떳떳하게 나타나다니.”그녀의 음침한 시선이 성하린의 배 쪽으로 떨어졌다.‘솔직히 성하린은 운이 좋았어. 이미 길거리 쥐 취급을 받는 처지였는데 임신 덕분에 문강찬의 눈에 들었잖아. 아이가 정말 그렇게 중요한 걸까?’그때 성예빈의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성예빈, 뒤에서 남 얘기 좀 그만해.”성하린은 그 말을 듣고 놀라며 그를 바라보다가 남자의 무심한 눈빛과 시선이 마주쳤다.그리고 그녀는 알아챘다.진세린의 시선이 계속 그 남자를 향해 있다는 걸.눈물 어린 눈빛 속에는 사랑이 담겨 있었다.남자의 정체는 뻔했다.“성동민이야.”임청아가 성하린 옆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성예빈의 오빠.”‘그랬구나.’성하린은 시선을 거두었다.조금 의외이긴 했다.‘성예빈 같은 성격에도 예의 있는 오빠가 있다니.’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성동민이 이쪽으로 걸어왔다.임청아는 고개를 더 숙이며 서둘러 말했다.“하린아, 나 급한 일 있어서 먼저 갈게.”성하린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성하린의 뒤쪽으로 돌아 나가며 성동민과 딱 엇갈렸다.성동민은 성하린의 앞에 멈춰 서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강찬의 아내죠?”그가 물었다.성하린은 상대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차갑게 대답했다.“저희는 이미 이혼했어요.”그건 사실이었다.성동민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그때 문강찬이 전화를 마치고 돌아왔다.“강찬아, 오랜만이네.”두 사람은 한때 절친이었지만 진세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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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문강찬은 자신이 성하린을 좋아하니 돌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진세린은 여동생이니 그녀 역시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성동민, 난 그냥 세린이 대신 네 입장을 듣고 싶을 뿐이야.”성동민은 눈을 내리깐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문강찬은 마음이 가라앉았다.“성동민, 대체 무슨 생각이야?”성동민은 미소를 거두며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말을 하지 않으니 문강찬도 그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결국 문강찬이 말했다.“어차피 두 집안이 혼인으로 엮여야 한다면 너랑 세린이도 나쁘지 않아.”협력 관계는 대부분 혼인으로 이어졌다.그가 성예빈과 불가능하니 성동민과 진세린이 이어지길 바랐다.성동민은 입을 꾹 다물었다.‘문강찬은 여전해. 뭐든 자기 뜻대로 정리하려 드는 성격 그대로야.’“나중에 보자.”거절은 하지 않았다.문강찬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감정 문제는 억지로 밀어붙일수록 더 어긋난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성동민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언제 완전히 돌아올 거야?”이번 귀국은 임시 일정이었고 며칠 뒤 다시 떠날 예정이었다.두 집안이 혼인으로 이어지면 성동민의 업무 중심도 국내로 옮겨와야 했다.성동민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최대한 빨리 올게.”“다음에 돌아오면 환영식 제대로 해주지.”“좋아.”한때 틀어졌던 관계는 이렇게 서로 한 발씩 물러나며 조용히 회복되고 있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왔다.성하린은 많이 지쳐 있었지만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그때 앞쪽에서 온기찬이 아주 어린 아이에게 박순옥의 영정 앞에 절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었다.아이는 무척 어렸지만 자세를 반듯하게 하고 절을 했다.“증조할머니, 건우 왔어요.”아이는 목소리가 사랑스러웠지만 얼굴빛은 창백했고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온기찬?”성동민이 그 사람을 알아보고 말했다.그의 시선이 아이에게 향했다.“건우?”온건우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아저씨, 안녕하세요.”아이는 돌아서서 성하린의 품에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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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역시 오빠는 아이를 좋아하는 거야.’성동민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성예빈을 불렀다.“가자.”진세린은 입술을 깨물고 용기를 냈다.“오빠, 내가 데려다줄게.”둘은 이별하며 체면이 구길 대로 구긴 상태였지만 그래도 지금 그녀는 기꺼이 고개를 숙일 생각이었다.성예빈은 진세린의 팔짱을 끼고 성동민 앞으로 밀었다.“오빠, 세린이가 할 말 있대.”진세린은 얼굴이 붉어진 채 눈빛이 흔들리며 뭔가 말을 꺼내려다 멈췄다.성동민은 담배를 문 채 말했다.“오늘은 할머니 장례식이야. 다음에 하자.”진세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성동민은 성예빈을 홱 끌어당겨 그대로 데리고 가버렸다.진세린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성동민은 아직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는 걸.해오름으로 돌아가는 길, 온건우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문강찬은 인내심 있게 아이가 넘어질 듯하면 붙잡아 주었다.그리고 엄마 배 속에 아기가 있으니 부딪히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온건우는 얌전히 앉더니 성하린의 배를 빤히 바라보다가 아주 진지하게 선언했다.“전 여동생을 좋아해요. 여동생 갖고 싶어요. 엄마, 나 여동생 낳아 줘요.”놀 친구가 필요했던 아이였다.성하린은 가슴이 시큰해져 온건우의 볼을 꼬집듯 만졌다.“건우는 왜 여동생이 좋을까?”온건우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전 여동생이 좋아요. 나중에 지켜줄 거예요.”늘 보호받는 아이가 아니라 작은 남자가 되어 모두를 지키고 싶었다.문강찬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 꼬마가 그렇게까지 싫지만은 않게 느껴졌다.성하린은 아이 볼에 입을 맞췄다.‘이런 아이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해오름에 도착했다.비서는 미리 가정부들에게 지시해 장난감과 간식도 준비해 두었다.하지만 온건우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아이는 성하린의 옆에 딱 붙어 소파에 앉아 일부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제가 엄마도 지켜줄 거예요.”성하린은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뭉클했다.문강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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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거실 공기가 얼어붙은 듯 굳어 가정부들은 멀리 피해 있었다.문강찬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빛과 그림자 사이에 선 그의 모습은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하린아, 그 아이도 네가 열 달 품어 낳아야 할 아이야.”‘어떻게 그렇게 쉽게 안 낳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성하린은 손가락에 힘을 주어 움켜쥐었다.그녀도 엄마가 되고 싶었다.처음에는 약도 성실히 챙겨 먹었다.하지만 어느 순간, 아이는 둘 사이의 거래 조건이 되어버렸다.그게 너무 잔인했다.그리고 아이 때문에 평생 문강찬과 얽혀 지내는 것도 원치 않았다.그건 아이에게도 불공평했다.“강찬 씨, 진세린이 할머니를 자극해서... 그래서 돌아간 거야.”말하다가 결국 목이 메었다.“증인도 있어. 그래도 진세린을 감쌀 거야?”그 간병인도 사실 처음엔 문강찬이 붙여준 사람이었다.나중에 성하린이 그와 관계를 끊으려 하면서 월급을 직접 주기 시작했을 뿐이었다.그러니 그 간병인의 말이 가장 확실한 증거였다.할머니는 진세린 때문에 돌아가셨다.문강찬의 잘생긴 얼굴이 순간 굳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성하린이 지금 자기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사람은 죽으면 되돌릴 수 없어.”문강찬의 마음도 괴로웠다.“그리고 세린이도 갑자기 누군가 자기 언니 신분을 대신하고 있다는 걸 듣고, 진실을 확인하려고 할머니를 찾아간 거야.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그는 성하린을 달래려 했다.“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네 가족한테 무슨 일 생겼다고 들으면 너도 흥분하지 않겠어?”성하린은 웃었다.눈물이 고인 채 지독하게 비웃는 듯한 웃음이었다.“그러니까 내가 진윤슬 신분 대신 살아서 할머니가 죽은 거라는 거야? 결국 내가 죽인 거란 말이네?”고통이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문강찬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뜻 아니라는 걸 알잖아.”“강찬 씨 눈엔 진세린은 늘 순수하고 착하고 흠 하나 없는 사람이지.”성하린은 잘 알고 있었다.그가 진세린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그저 아주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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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그녀는 깜짝 놀라 급히 찾으러 나갔다.거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온건우는 바닥에 앉아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조금 떨어진 소파에서는 문강찬이 여현식과 이야기 중이었고, 가끔 건우가 블록 쌓는 걸 도와주기도 했다.꽤 평화로운 풍경이었다.성하린은 한참 서서 보다가 들어갔다.“어르신.”문강찬이 다가와 그녀를 부축해 앉혔다.“어르신 모셔서 진맥 좀 보려고.”여현식은 이미 맥진 도구를 꺼내 놓고 손목을 내밀라고 했다.성하린은 그대로 했다.잠시 후 여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맥은 괜찮은데 마음이 너무 억눌렸어. 기운을 풀어줘야 해.”그가 처방전을 써주자 문강찬은 사람을 보내 약을 지으라고 했다.여현식은 물건을 정리하며 성하린을 위로했다.“슬픔은 접어. 할머니도 저세상에서 아가씨를 걱정하고 계실 거야. 아가씨가 힘들면 편히 못 쉬셔.”성하린은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아요.”“아이를 위해서라도 몸 잘 챙겨야지.”여현식이 당부했다“네.”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다.식사 후 그들은 여현식과 함께 빈소로 조문을 하러 갔다.장례식장은 한산했다.진태호와 진세린이 자리를 지키며 효자, 효손처럼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었다.주아란은 옆에서 졸고 있었다.여현식이 먼저 돌아간 뒤, 온기찬이 온건우를 데리러 왔다.그리고 성하린을 한참 위로했다.두 사람은 조용히 한동안 이야기를 나눴다.그때 진태호가 동생에게 물었다.“진윤슬이 가짜였으면 저 아이는 뭐지?”진세린이 목소리를 낮췄다.“난 언니 아이 같아.”아이는 성하린과 혈연이 없지만, 성하린이 진윤슬로 살던 시절 자신이 친모라고 했었다.그럼 아이 친엄마는 아마 3년 전에 죽은 진윤슬일 가능성이 컸다.진태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두 눈에 혐오가 가득 차올랐다.“그럼 혼전임신이네. 행실도 더러워.”진세린도 창피하다고 느꼈다.“아마 성하린한테 배운 거겠지. 내가 알아봤는데 저 여자 보육원 있을 때도 그다지 얌전하지 않았대. 물건 훔치고, 먹을 거 뺏고, 심지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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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문강찬은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선택권을 성하린에게 넘겼다.성하린은 별말 없이 조건을 내걸었다.진태호가 남으려면 자신이 할머니 유골을 가져가게 해달라고 했다.쓸모도 없는 유골 대신 아들이 돌아오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생각한 진성국은 이내 동의했다.장례식이 끝난 뒤, 문강찬은 성하린을 해오름으로 데려왔다.일을 정리한 뒤 할머니를 팔리읍으로 모실 계획이었지만 성하린은 단 하루도 기다릴 수 없었다.그녀는 온기찬에게 연락해 당일 차로 바로 팔리읍으로 떠났다.온기찬은 건우도 함께 데려갔다.문강찬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성하린이 떠난 지 이미 30분이 지난 뒤였다.문강찬은 통유리창 앞에 오래 서 있었다.그는 알고 있었다.성하린의 마음속에서 자신은 이미 사라졌다는 걸.그래도 놓을 수 없었다.“사람 붙여. 들키지 않게.”그의 지시에 오창윤이 급히 답했다.“이미 배치했습니다.”“됐어. 차 준비해. 내가 직접 갈 거야.”그는 그녀를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팔리읍의 집은 그대로 남아 있었고,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성하린에게 돌아왔다.익숙한 집 안 풍경을 보는 순간, 성하린의 가슴은 심하게 저렸다. 불과 몇 달 사이에 모든 것이 이렇게 변해 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바탕 목놓아 울어 버렸다.그 후, 할머니의 유골을 마을 밖 묘원에 모셔 정식으로 안장했다. 묫자리는 이미 할머니가 생전에 정해 둔 곳이었다. 그곳은 진윤슬의 묘 옆자리였다.온기찬은 묘비에 새겨진 젊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가슴이 답답하게 막혀 왔다. 기억은 사라졌지만 감각만은 틀리지 않았다.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 속에 이렇게 깊이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는 온건우에게 절을 하라고 했다.진윤슬의 묘비 옆에는 꽃집의 ‘온 사장’ 묘가 있었다. 묘비에는 사진이 없고, 그저 ‘스승 온 사장’이라는 글자만 적혀 있어 쓸쓸해 보였다.성하린은 그 앞에 데이지 한 다발을 놓았다.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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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윤슬이는 정말 똑똑했어요. 배우는 것도 빨랐고 하나를 알면 열을 아는 아이였죠. 저는 달랐어요. 뭐든 서너 번은 배워야 겨우 익혔어요. 그래도 스승님은 늘 절 격려해 주시고 싫은 내색 한번 없이 몇 번이고 가르쳐 주셨어요.”그 시절의 기억에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너무 따뜻해서,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윤슬이는 늘 말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우리만의 향수 신앙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나중에 ‘24절기’ 향을 만들어 냈죠.”“우리는 약속했어요. 24절기를 널리 알리고, 동양 향수를 전 세계로 알리자고. 그래서 윤슬이는 진씨 가문에 버림받았던 상처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고, 모든 마음을 향수에 쏟아부었어요.”말을 하면서 그녀는 웃었다.하지만 그 웃음은 더 슬퍼 보였다.“그러다 온기찬 씨를 만났죠. 윤슬이는 온기찬 씨를 좋아했어요. 온기찬 씨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임신했을 때도 그 아이의 출생을 기대했어요.”성하린은 눈물 어린 눈으로 온기찬을 바라봤다.하지만 이후 온기찬은 실종됐고 꽃집에는 불이 났다.마치 운명처럼 모든 것이 무너졌다.온기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올 때, 온건우가 그의 손을 잡았다.“아빠...”아이는 예민했다.부모 사이에 무언가 좋지 않은 기류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다시 떨어지는 건 싫었다.하지만 성하린은 진윤슬의 묘 앞에서 이 이야기를 분명히 해야 했다.그녀는 온건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먼저 가서 놀라고 했다.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온기찬 씨, 건우를 저한테 주세요. 아이 성을 진씨로 바꿀 거예요.”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이번에는 진윤슬의 앞에서 다시 꺼냈다.“온기찬 씨는 변호사고 집안 형편도 좋잖아요. 다시 결혼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건우는 달라요. 몸이 약해서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해요. 온건우 씨가 결혼하면 그런 마음을 쏟기 어려워질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는 윤슬이가 목숨 걸고 낳은 아이예요. 윤슬이에게 남은 유일한 흔적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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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식사 후, 성하린과 온건우는 소파에 기대 앨범을 넘겼다.대부분은 그녀와 진윤슬의 사진이었고, 박순옥과 온은설은 가끔 배경처럼만 등장했다.“이분은 증조할머니, 이분은 고모할머니... 그럼 이 사람은 누구예요?”온건우가 물었다.“엄마랑 닮았고, 건우랑도 닮았어요.”“엄마의 언니야.”성하린은 진실을 말해 주고 싶었지만 온건우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참았다.곧 수술을 앞두고 있었기에 혹시라도 충격이 될까 두려웠다.온건우는 어렴풋이 고개를 끄덕였다.앨범은 온기찬이 가져갔다.그는 사진 속 사람들을 그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성하린은 속이 답답해 발코니로 나갔다.밤바람이 부드럽게 불자 가슴속 답답함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그때 가로등 아래 서 있는 키 큰 남자를 발견했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성하린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문강찬이 한 걸음 다가서며 입을 열어 그녀를 부르려 했다.하지만 말이 나오기도 전에 성하린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하린...”그 두 글자는 목에 걸린 채 나오지 못하고 숨이 막힐 듯 답답했다.안으로 들어온 성하린을 보고 온기찬이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성하린은 숨기지 않았다.“문강찬이 밖에 있어요.”온기찬은 눈썹을 실룩이며 예상보다 빨리 왔다고 생각했다.그때 노크 소리가 울렸다.문강찬인 걸 알고 있는 성하린은 차가운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왜 왔어?”“데리러 왔어. 집에 가자.”온건우가 신이 나 달려왔다.“강찬 아저씨!”아이는 문강찬의 품에 안겼다.문강찬은 아이를 안아 들며 검은 눈에 부드러움을 띠었다.온기찬은 방을 정리하러 가다가 물었다.“여기서 잘 거야?”“그래.”문강찬이 답했다.“아니요.”성하린의 담담한 목소리가 겹쳤다.그녀는 문강찬을 바라봤다.“나 데리러 왔다면서? 그럼 지금 가면 되겠네.”원래는 하루 묵고 모레 다람시로 돌아갈 계획이었지만 성하린은 마음을 바꿨다.온기찬은 아무 말 없이 온건우를 문강찬의 품에서 받아 안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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