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훈의 다정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눈빛이 갈라지듯 얼어붙더니, 이내 서릿발 같은 냉기가 번져나갔다.그 시선이 정지욱에게 닿자, 정지욱은 본능적으로 허연수의 손을 움켜쥔 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목소리는 사시나무잎처럼 떨렸고 끝맺음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형수님... 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품으려 한 게 아니었습니다. 연수가 먼저... 절 유혹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모르게 감정이 생겨버렸습니다.”고영훈을 지키려는 듯,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려는 연기처럼 보였다.그러나 송서윤은 비웃음만 새어 나왔다.그 웃음은 조롱이었고 정지욱이 지어낸 핑계들은 오히려 허연수에게 날아드는 칼날이 되었다.“그 어미에 그 딸이네.”송서윤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네 엄마는 유부남 송지철을 유혹해 남의 가정을 무너뜨렸지. 그런데 넌 내 남자를 탐냈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그녀는 숨을 고르며 냉소를 삼켰다.“어미는 유부남한테 매달려 화목한 집을 깨뜨렸고, 그 딸은 똑같이 남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법을 배웠지.요망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어. 그런 추악함까지 유전됐나 보네.”허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너.”송서윤의 시선이 고영훈에게 옮겨갔다.“가증스럽게 사랑을 맹세하더니, 돌아서서 다른 여자에게 눈이 팔려? 양심은 어디에다 두고 온 거야? 개나 줘버렸어?”송서윤은 고영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담담한 얼굴 아래, 늘어져 있던 손이 천천히 말려 들어가며 주먹으로 굳어졌다.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끝내 평정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정지욱이 허연수의 어깨를 거칠게 찍어 눌렀다.허연수가 그대로 송서윤 앞에 무릎을 꿇자, 정지욱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눌러 억지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연수가 하준이를 잘못 가르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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