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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가장 가까운 배신: Kabanata 121 - Kabanata 130

224 Kabanata

제121화

고영훈은 계속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서지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히 말을 이었다.“서윤이는 이미 네가 허연수랑 바람피운 거 알고 있었어.”그 한마디에 고영훈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무표정한 얼굴에 서린 냉기가 일렁였다.“지금...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서지원이 피식 웃었다.“서윤이 반응이 네 예상이랑 다르지 않았어? 넌 서윤이가 화내고 상처받고 널 떠나겠다고 소란을 피울 거로 생각했겠지.”그녀의 입꼬리가 옅게 올라갔다.“하지만 현실은 어땠어? 서윤이는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사라질 생각이었어. 나한테 그렇게 털어놨었거든.”서지원은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이번에 서윤이가 납치됐을 때, 네가 아진시를 봉쇄까지 해가며 그 조직이 서윤이를 데리고 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고 이모한테서 들었어. 카메라에는 서윤이가 빠져나가는 장면이 없었지만, 확실한 건 그때 서윤이는 2층 안방에 혼자 있었다는 거야. 직접 침대 시트를 엮어서 창문으로 내려가 고씨 가문 본가를 빠져나갔던 거라고.”고영훈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그러나 서지원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또렷하게 말했다.“서윤이는 스스로 도망친 거야. 아무도 모르게 널 떠나려 했어. 두 번 다시는 찾지 못하게 만들려는 했던 거지.”그녀의 입가에 비웃음이 스쳤다.‘나만 무너질 순 없지. 죽으려면 다 같이 죽자고!’그 순간 고영훈의 머릿속에 기억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며칠 전, 고하준과 소도윤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던 날, 그가 늦게 도착했을 때 송서윤은 소주원에게 며칠 뒤면 떠날 거라고 말했었다.그 장면이 뇌리를 스치자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듯, 혼란스러운 기억들이 하나로 이어졌다.고영훈은 숨을 가다듬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주방으로 들어서더니 송서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그의 거친 숨결이 그녀의 얕은 숨결과 뒤섞였다. 고영훈은 가슴속이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요동쳤다.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송서윤을 불렀다.“여보.”“뽀뽀해! 뽀뽀해!”주변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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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송서윤이 먼저 입을 맞추자 고영훈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그러나 그는 끝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의 키스를 피했다.‘막 수술을 마친 서윤이한테 무리일지도 몰라. 심장을 요동치게 할 순 없어.’그는 송서윤을 품에 꼭 안았다. 귓가로 스쳐오는 숨결은 뜨겁고 거칠어 마치 그녀를 품 안에서 녹여버리려는 듯했다.그 품은 뜨거웠지만 송서윤의 눈빛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볼이 붉게 상기된 채로,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서재 쪽으로 향했다.그때, 문이 열리며 허연수가 걸어 나왔고 그 옆에는 서지원이 서 있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서 있었지만 그 순간 송서윤은 그들이 다시 손을 잡았다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한 번 더! 키스해!”누군가의 장난스러운 외침에 웃음이 터졌다.그때 고영훈이 송서윤의 턱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그의 눈빛은 한없이 부드러웠고 사랑이 고여있는 듯 보였지만 송서윤은 아무런 온기도 느끼지 못했다.“여보, 약 먹을 시간이야.”“알았어.”그녀는 담담히 대답하고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고영훈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주방을 빠져나왔다.“이제 그만. 너희 형수님은 이제 좀 쉬어야 해.”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형님이 형수님 그렇게 챙기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감히 장난치겠어요?”“서윤 언니, 진짜 부러워요. 저도 언제쯤 영훈 오빠 같은 사람 만나려나 싶네요...”송서윤은 고영훈의 품에 기대어 조용히 웃었다.그때 고영훈은 손님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난 아내를 챙겨야 해서 이만 올라가 볼게. 이따가 다시 내려올 테니 먼저 마시고 있어.”“오늘은 형님 댁이니까요, 마음 놓고 마시겠습니다. 취하기 전에는 절대 못 갑니다! 형수님, 언짢아하지 마세요!”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따랐다.송서윤은 부드럽게 웃으며 고영훈과 함께 계단을 올랐다.2층 복도에서 서지원과 허연수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왔다.허연수의 시선이 송서윤과 고영훈의 다정한 모습에 꽂혔다.까르띠에 팔찌 사건으로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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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어서 꺼져! 형수님이 수술하신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자극을 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형님이 서씨 가문을 가만두겠냐고!”누군가의 격앙된 외침이 복도에 메아리쳤다.그 말이 불씨가 된 듯, 주변에서 일제히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리며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얼어붙었다.서지원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그녀는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공주처럼 떠받들리며 살아왔다.서씨 가문이 예전만 못해도 고영훈이 곁에 있는 한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모두가 그녀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서지원은 모멸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눈가가 뜨겁게 물들었다.입술을 세게 깨문 채 송서윤을 노려보던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내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려 복도 끝을 향해 뛰어갔다.남은 건 바닥에 주저앉은 허연수뿐이었다.송서윤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를 향했다.그 순간, 그날 밤 고영훈과 주희영이 나눴던 대화가 번쩍 떠올랐다.억지로 잊으려 해도 허연수를 보는 순간 그 기억은 다시 가시처럼 되살아났다.‘고영훈은 허연수에게 감정이 생겼다고 했었지. 이제는 다른 여자는 안 된다고까지...’그 생각이 스치는 찰나 송서윤의 가슴이 싸늘하게 굳었다.허연수는 온몸에 고가의 드레스와 보석을 휘감고 있었고 심지어 구두까지 송서윤과 같은 브랜드였다.이제는 옷도, 보석도 모자라 고영훈의 사랑마저 그녀가 차지한 듯했다.그 현실이 송서윤의 속을 뒤틀리게 했다.문득, 그녀의 어머니와 허미연이 떠올랐다.그때 모든 걸 빼앗기고도 아무 말 못 했던 기억이 서늘한 역겨움으로 치밀어 올랐다.“그리고 너.”송서윤의 목소리가 낮고 냉정하게 울렸다.“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얼마 전에는 내 아들이 널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이제는 내 남편이 너 때문에 불효자가 될 지경이야.”그 날 선 말에 사람들은 다시 술렁였다.“형님이 큰 사모님과... 고작 허연수라는 여자 때문에 싸우셨다고?”“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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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고영훈의 다정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눈빛이 갈라지듯 얼어붙더니, 이내 서릿발 같은 냉기가 번져나갔다.그 시선이 정지욱에게 닿자, 정지욱은 본능적으로 허연수의 손을 움켜쥔 채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목소리는 사시나무잎처럼 떨렸고 끝맺음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형수님... 저,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품으려 한 게 아니었습니다. 연수가 먼저... 절 유혹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도 모르게 감정이 생겨버렸습니다.”고영훈을 지키려는 듯,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떠넘기는 그의 모습은 연민을 자아내려는 연기처럼 보였다.그러나 송서윤은 비웃음만 새어 나왔다.그 웃음은 조롱이었고 정지욱이 지어낸 핑계들은 오히려 허연수에게 날아드는 칼날이 되었다.“그 어미에 그 딸이네.”송서윤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네 엄마는 유부남 송지철을 유혹해 남의 가정을 무너뜨렸지. 그런데 넌 내 남자를 탐냈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그녀는 숨을 고르며 냉소를 삼켰다.“어미는 유부남한테 매달려 화목한 집을 깨뜨렸고, 그 딸은 똑같이 남의 가정을 무너뜨리는 법을 배웠지.요망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어. 그런 추악함까지 유전됐나 보네.”허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분노가 치밀어올랐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너.”송서윤의 시선이 고영훈에게 옮겨갔다.“가증스럽게 사랑을 맹세하더니, 돌아서서 다른 여자에게 눈이 팔려? 양심은 어디에다 두고 온 거야? 개나 줘버렸어?”송서윤은 고영훈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담담한 얼굴 아래, 늘어져 있던 손이 천천히 말려 들어가며 주먹으로 굳어졌다.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끝내 평정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보였다.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정지욱이 허연수의 어깨를 거칠게 찍어 눌렀다.허연수가 그대로 송서윤 앞에 무릎을 꿇자, 정지욱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눌러 억지로 머리를 숙이게 했다.“형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연수가 하준이를 잘못 가르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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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허연수의 말에 여전히 믿기 어려운 구석이 남아 있었지만, 신빙성이 있는 부분도 있었다.그러나 그 순간, 고영훈의 손끝이 송서윤의 허벅지를 따라 미끄러지며 그녀의 생각이 흩어졌다.차가운 손마디가 실크 원피스의 트임 아래로 스치자, 얇은 천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이 묘하게 달아올랐다.그의 숨결은 낮고 뜨거웠으며, 방 안의 공기마저 눅눅하게 흔들렸다.“그 팔찌를... 소 교수가 어떻게 주웠다는 거야?”그의 눈빛엔 의심보다 욕망이 먼저 피어올랐다.송서윤은 그 시선을 알아채고 손을 들어 그의 손끝을 멈춰 세웠다.그리고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낮게 말했다.“밴댕이 소갈딱지처럼 직접 가서 말하라고 부추긴 사람이 누군데?”그 말에 고영훈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랐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부드럽게 몸을 끌어당겼다.“여보, 언제부터 이렇게 내 말을 잘 들었어?”송서윤은 그 품 안에서 순간 몸을 움츠렸다가, 이내 조심스레 숨을 내쉬었다.‘그래... 확실히 믿은 거야.’살짝 안도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연기를 이어갔다.“말 잘 들어도 싫어?”그녀의 말끝에 담긴 가벼운 도발에, 고영훈은 피식 웃었다.“내가 잘못했어. 다시는 쓸데없이 질투하지 않을게.”그는 그녀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눕히고, 손을 꼭 잡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아래층엔 조용히 하라 할게. 오늘은 푹 쉬어.”고영훈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소 교수님 쪽에는 내가 직접 사과하러 갈게.”“그래.”송서윤은 눈을 감으며 짧게 대답하고 등을 돌렸다.고영훈은 그녀에게 어깨까지 이불을 덮어주고는 한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그의 시선에는 무언가 지우지 못한 미련이 드리워져 있었다.한참 뒤, 친구가 도우미를 통해 그를 부르자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이 닫히자, 송서윤은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주방 한쪽에 두고 온 노트북이 떠올랐다.급히 박다은에게 전화를 걸며 동시에 소주원과의 연락도 준비했다. 혹시라도 말이 엇갈리면 모든 게 들통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소주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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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송서윤은 고영훈이 허연수를 안은 채 아무렇지 않게 별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문이 닫히는 순간, 두 사람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 사라졌다.그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의 세상도 함께 닫혀버린 것 같았다.송서윤은 비틀거리며 대문을 두드렸다.심장이 미친 듯이 옥죄어 오고 숨이 가빠졌다.“고영훈... 나와. 진실이 뭔지 말해줘!”목소리는 떨렸고 눈앞은 아득하게 흐려졌다.눈을 감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나를 구해줬던 것조차... 그 모든 순간이 거짓이었을까? 그 손길, 그 눈빛, 그 다정한 말들... 전부 계산된 연극이었나?’문득 거칠게 문이 열리며 싸늘한 기류가 밀려왔다.허미연이었다. 그녀는 미간을 찡그리며 송서윤을 훑었다.“한밤중에 이게 무슨 난리야?”허미연의 목소리에는 짜증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송서윤은 숨을 고르며 나직하게 말했다.“비켜요.”“비켜? 여기가 어딘 줄 알아?”허미연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이 별장은 내 딸 이름으로 된 거라고. 네가 뭔데 함부로 들어오겠다는 거야?”허미연은 딸의 일을 망칠 리 없었다.송서윤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가슴을 움켜쥐고 휘청이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눈빛에 서늘한 악의가 번졌다.‘그래, 이혜정이 우리 가족을 무너뜨렸던 것도 결국 저 계집애 때문이었지. 저 계집애가 그날 지철 씨랑 붙어 있는 걸 보고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바람에 이혜정이 눈이 돌았던 거였었지... 그런데 며칠 전에도 또 쓰러졌다지? 이번엔 얼마 버티지 못할 거야. 저년이 죽기만 하면... 고영훈도, 고씨 가문도, 전부 우리 연수의 것이 되겠지.’허미연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병약한 주제에 남자 하나 붙잡지도 못하면서 매번 찾아와 행패를 부려? 우리 연수가 불쌍한 널 도와준 거야. 고마워하긴커녕, 네 엄마처럼 남 탓만 하네? 남편 하나 지키지 못한 게 도대체 누구 탓인데?”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비웃었다.“지금 들어가 봐야 별 수 있어? 안에서 얼마나 뜨거운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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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서윤아!”소주원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단했다.“사랑은 행복해야 해. 절망 속에 머무르는 게 아니야. 넌 이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저 사랑하던 ‘습관’ 속에 머물러 있을 뿐이야. 두려운 거지 바뀌는 게, 혼자가 되는 게.”송서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물이 고였다가 턱 끝을 따라 흘러내렸다.소주원이 조심스레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의 품은 따뜻했지만, 그보다 더 뜨거운 건 안타까움이었다.“서윤아, 이제 그 사람... 사랑하지 마.”소주원은 송서윤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를 다시 웃게 하고 싶었다. 세상 누구도 다시는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그는 마음속으로 수백 번 다짐했다.그러나 송서윤은 천천히 그의 품에서 몸을 떼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했다.그의 눈에 깃든 진심을 보았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나...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사람이야. 선배를 잃는 것만이 아니라, 이 모든 것과도 작별해야 해.’“선배, 어쨌든... 고영훈은 내 남편이야.”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제발 더는 그 사람 욕하지 말아줘. 이제 데려다줬으면 좋겠어. 그 사람 앞으로.”“서윤아...”“보안 체계 구축은 이미 다 끝냈어. 남은 건 다은 씨가 마무리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우리... 앞으로는 연락하지 말았으면 좋겠어.”그녀의 말에 소주원의 눈빛이 힘없이 가라앉았다. 그는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집까지 데려다줄게.”별장에 돌아왔을 때 홀 안에는 술기운과 웃음소리만 남아 있었다.사람들은 흩어졌고 경호원들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마치 그녀가 사라졌던 시간 따위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았다.송서윤은 조용히 2층으로 올라갔다.고하준의 방문을 열자, 이원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사모님, 하준이는 곤히 자고 있습니다.”그녀는 작은 침대 옆에 앉아 아이의 손을 꼭 잡았다.작은 손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소도윤보다 고집이 세고 장난도 심한 고하준 때문에 매일 화를 냈지만, 또 그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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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고영훈은 놀란 듯 송서윤의 팔을 놓았다.“여보, 왜 그래?”“역겨워.”짧은 단어 하나가 공기를 가르며 떨어졌다.송서윤의 시선이 천천히 그의 셔츠 깃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선명한 립스틱 자국이 남아 있었다.고영훈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며 셔츠 깃을 만졌다.손끝에 닿은 감촉과 함께 불현듯 허연수가 자신에게 입을 맞추려다 입술이 옷깃에 스쳤던 순간이 떠올랐다.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좁혀지며 싸늘한 냉기가 번졌다.“여보, 아까 사람들하고 얘기하다가 묻은 거야.”늘 그래왔듯 익숙하게 변명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꺼냈다. 또다시 누군가를 시켜 상황을 수습할 작정이었다.송서윤은 더 이상 그 연극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고영훈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뒤따랐다.이원주는 고개를 숙인 채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3층, 침실.“여보, 잠시만 기다려줘. 지금 바로 씻고 올게.”고영훈은 깨끗이 씻고 오면 송서윤이 자신을 덜 혐오할 것 같았다.송서윤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어둑한 조명 아래, 그녀의 표정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엄마 돌아가신 뒤, 유품은 당신이 관리해 왔지? 뭐가 남았는지 알고 싶어.”고영훈은 잔잔하게 미소를 지었다.“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야, 여보?”“하준이의 생일이 곧이잖아. 의미 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서 그래.”“어머님 보석이나 예금증서 같은 건 전부 은행 금고에 있어. 내일 같이 가.”고영훈은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폰을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욕실 안에서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내일 일정 좀 잡아. 아내랑 은행에 다녀올 거야. 내 명의 금고로 안내하라고 해. 장모님, 이혜정 여사님 유품이라고 하면 돼.”그 한마디에 송서윤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생전에 여러 보석과 예금을 소유하고 계셨다.부원시를 떠날 때도 수백억 원대 예금을 가지고 나왔고, 새 아파트를 사고도 16억 가까이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회사와 부동산도 여러 채 있었다.그녀의 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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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당신, 정말 좋은 며느리를 들였더군요. 케이원 그룹 지분 전부가 송서윤 명의라니...”전화기 너머로 낮고 묵직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집착하고 사랑에 눈이 먼 건 나를 똑 닮았네. 하지만 영훈이는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 하나에 목을 맸을 뿐이야. 게다가 너처럼 현명한 여자는 아닌가 봐. 이름을 바꾸고 주희영 곁에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그 말에 강이안의 입꼬리가 서서히 휘어 올랐다.한편, 송서윤이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대기 중이던 경호원이 곧장 보고 전화를 걸었다.“대표님, 방금 사모님이 금해 법무법인의 에이스 변호사 강이안 씨를 만나고 나왔습니다. 무슨 일로 법무법인에 들렀는지 조사해 볼까요?”“아니, 됐어.”고영훈은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느릿하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하준이의 생일이 곧이라, 부동산 하나쯤 선물로 넘기려는 거겠지.”그는 창가로 걸어가, 아진시의 가장 높은 빌딩에서 도시 전경을 내려다보았다.“하준이의 생일 파티는 이번에 홍보팀이랑 제대로 협업해서 성대하게 준비해. 서윤이가 웃을 수 있도록 말이야. 다른 건 보고할 필요 없어.”그는 잠시 멈추더니 낮게 덧붙였다.“단, 소주원은 절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해. 서윤이의 곁은 반드시 잘 살피도록 하란 말이야.”전화를 끊은 고영훈은 천천히 몸을 돌려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바라봤다.“계속해 봐.”그 말이 떨어지자, 탐정이 두 손을 짚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대표님... 죄송합니다.”목소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뮤베른 지진 사건을 추적하던 중, 다크웹 조직이 저를 찾아냈습니다. 그들은 저를 협박하며 배후 인물과 목적을 캐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전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제 휴대폰과 노트북이 해킹당하는 바람에 결국 대표님이 연루됐다는 걸 상대도 알아챈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사모님이 그들의 표적이 된 겁니다. 정말 죄송합니다!”탐정은 울부짖으며 머리를 조아렸다.“대표님, 저 정말... 절대 배신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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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소 교수님, 고 대표님께서 직접 AI 기반 신약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지금 저와 함께 꼭대기 층으로 가주시죠.”사무총장이 직접 찾아와 정중히 말했다. 회의실 안의 공기가 단숨에 얼어붙었다.성준영의 눈빛이 흔들렸다.“교수님,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AI 기반 신약 프로젝트는 연구소와 케이원 그룹이 오랜 기간 조율해 온 대형 협업이었다.애초에 고영훈이 중간에 태도를 바꾸지만 않았더라면 이미 계약은 체결됐을 것이었다.며칠 전 재협상을 시작하며 세부 조건까지 정리했고 오늘은 단지 서명만 남은 날이었다.하지만 지금 고영훈이 굳이 ‘직접’ 부른다는 건 단순히 프로젝트 때문만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사무총장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고 대표님께서는 소 교수님 한 분만 뵙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투에서 분명한 압박이 느껴졌다.회의실이 고요해졌고 연구원들은 긴장된 얼굴로 소주원을 바라봤다.이번 계약이 성사되면 연구소의 명성과 자금난이 모두 해결될 터였다.그러나 영업팀 쪽 사람들의 눈빛은 달랐다.‘고 대표님이 직접 나설 정도라면... 단순한 면담이 아니겠군.’그들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주원은 모든 시선을 담담히 받아내며 옆자리의 성준영에게 손을 얹었다.“뮤베른 쪽 일은 정리됐나?”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성준영이 귀를 가까이 대며 속삭였다.“교수님, 걱정하지 마세요. 다크웹에 접속해 탐정을 위협하는 쪽으로 위장했습니다. 탐정은 자신이 서윤 씨 납치 사건을 건드려 조직의 분노를 샀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조사하지 않을 겁니다.”소주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서윤이의 신분만 노출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상관없어.”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총장을 따라 회의실을 나섰다.그러나 성준영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어딘가 불길했다.‘만약 고영훈 대표가 교수에게 의심이라도 품고 있다면 지금 그 꼭대기 층은 절대 안전하지 않아.’소주원은 절대 송서윤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했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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