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내, 재혼에 눈물 쏟는 전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100 챕터

제11화

지설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발목을 삐었나 봐요... 근처까지라도 부축해 주실 수 있을까요?”“어디 가시는데요? 제가 모셔다드리죠.”남자는 지설이 제대로 걷지 못하는 걸 보자, 망설임 없이 다가와 팔을 내밀었다.지설은 그 손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두 사람은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간병인 하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연신 고개를 숙였다.“제가 잠깐만 자리를 비운 건데... 죄송해요, 지설 씨. 정말 죄송해요.”지설은 숨을 고르며 최대한 침착한 척했다.“일단 병원 보안팀에 부탁드려요. CCTV 먼저 확인해야 해요.”보안요원이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잠시 뒤, 모니터 화면에 잡힌 건 예연숙이 오후 6시쯤 홀로 병원을 나서는 모습이었다.‘엄마 기억력이 자꾸 흐려지는데... 집에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지설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걱정이 밀려와 눈물이 터져 나왔다.옆에 있던 남자가 조용히 휴지를 내밀었다.“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경찰서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탁드려 볼게요.”지설은 그 순간, 구명줄을 붙잡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부탁드려요.”남자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네, 저예요. 친구의 가족분이 실종됐습니다. 혹시 수색 협조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바로 사진 보내드리겠습니다.”그는 전화를 잠시 돌려 지설을 향해 차분히 물었다.“어머님 사진 있으세요?”“네, 있어요.”지설은 급히 핸드폰을 꺼내 앨범을 열었다.“잠시만요, 이쪽으로 보내드릴게요.”남자가 대답하며 카톡 QR코드를 띄웠다.“카톡 가능하시죠?”지설은 곧장 스캔하고, 사진을 전송했다.남자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사이, 지설은 우연히 그의 카톡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풍경 사진 하나, 그리고 이름 옆에 적힌 ‘법무법인 도진-기도진’.‘법무법인 도진...? K시에서 제일 큰 로펌이잖아.’ ‘뮤직앤조이 건너편에 있는...’지설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알고 보니, 같은 단지에 사는 것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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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배태호가 천천히 차에서 내려왔다.몸에 딱 맞는 맞춤 정장에 고급 시계, 느긋하고 여유 있는 걸음걸이.누가 봐도 잘나가는 재력가의 모습이었다.“심 선생님, 저랑 저녁 같이 하시죠?”지설은 순간 몸이 굳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내연녀? 절대 아니야.’“죄송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배태호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심 선생님, 이렇게 거절하시면 제가 무안하잖아요.”그는 한 걸음 다가오더니 지설의 손을 잡으려 했다.지설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순간 코끝을 스치는 강한 향수 냄새가 불쾌하게 느껴졌다.지설의 반응에 배태호의 안경 너머 눈빛이 싸늘해졌다.“선생님, 제가 일주일 동안 보낸 꽃, 받아주신 거... 제 마음을 받아주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뭐라는 거야? 명함 한 장 넣지 않고 꽃만 보냈으면서, 어떻게 돌려줄 수가 있겠어?’‘그게 왜 수락의 증거가 되는 거지?’지설은 억울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하민 아버님, 꽃값은 돌려드리겠습니다.”배태호의 얼굴에 순간 굴욕감이 스쳤다.이내 그는 윗사람의 권위를 내세우듯 고개를 들어 지설을 내려다봤다.“지금 제가 이렇게 정성껏 다가오는 건, 선생님의 체면을 봐주는 겁니다. 괜히 센 척하지 마세요. 이 K시에 제 손아귀에 들어오지 않는 여자는 없으니까.”‘역시나. 돈 좀 있다고 여자를 억지로 옭아매려는 전형적인 타입이네.’지설은 핸드폰을 꺼내 카톡을 열고, 배태호에게 50만 원을 송금했다.“꽃값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죠?”사실 그 장미들이 50만 원보다 훨씬 더 값이 나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더 이상 내고 싶지도, 낼 이유도 없었다.“당신...!”배태호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모두가 지켜보는 한복판이 아니라면, 지설을 차에 밀어 넣고 제대로 ‘길들이고’ 싶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꾹 참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심 선생님, 저는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지설은 속이 울렁거렸다.‘기분 나빠. 저런 인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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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차가 병원 지하 주차장에 멈췄을 때, 지설은 천천히 눈을 떴다.어지럼증을 참으며 조심스레 물었다.“변호사님, 도착한 거예요?”“네.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도진이 몸을 기울여 지설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맑고 시원한 향이 코끝을 스쳤고, 지설의 심장이 알 수 없이 빨라졌다.‘이 사람... 왜 이렇게 숨이 막히게 다가오는 거지.’도진의 얼굴과 분위기는 남자들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것이었다.영민의 냉정함과는 달리, 도진은 차갑지만 품위 있는 기품을 지니고 있었다.병원 1층 로비에 들어서자, 도진은 지설 대신 접수 창구에서 응급 진료를 끊어주고 함께 진료실로 들어가 검사를 받도록 했다.지설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변호사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원래는 도시락을 건네며 보답하려 했는데, 도리어 또 빚을 지게 됐다.도진은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괜찮습니다. 이웃끼리 도와주는 게 당연하죠.”의사는 검사 결과를 확인한 뒤 두통약을 처방하고, 평소 운동을 통해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조언했다.돌아오는 길, 도진이 운전하며 말했다.“우리 아파트 단지에 헬스장이랑 수영장이 있거든요. 시간 되실 때 운동 한번 해보세요.”“네, 앞으로는 운동을 좀 해야겠어요.”결혼 전까지만 해도 지설은 일주일에 세 번씩 규칙적으로 운동을 했다.하지만 영민과 결혼한 후, 돌봐야 할 것이 늘어나면서 자신을 위한 공간은 사라졌다.운동은커녕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다.“그럼 같이 가요. 제가 아는 트레이너도 소개해 드릴 수 있는데.”도진은 가볍게 던진 말이었지만, 지설은 거절하지 않았다.“좋아요.”집 앞에 도착했을 때, 도진이 불쑥 말했다.“저녁 같이 먹을래요? 제가 데워드릴게요.”그제야 지설은 도진이 저녁을 못 먹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더욱 미안해졌다.“정말 죄송해요.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뺏어서... 변호사님도 일이 많으실 텐데요.”도진은 눈가에 잔잔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오늘은 어차피 밤새워 일해야 해서요. 시간은 상관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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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은아가 슬쩍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설 쌤, 하민 아버님이랑 무슨 사이예요? 단톡방에 소문이 쫙 퍼졌던데. 직접 봐요.”곧바로 은아가 캡처 화면을 보내왔다.지설은 핸드폰을 보는 순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누가 올린 거예요?”은아는 턱으로 희영 쪽을 가리켰다.지설은 숨을 고르며 핸드폰을 움켜쥔 채 희영에게 다가갔다.커피를 마시던 희영은 지설이 성난 얼굴로 다가오는 걸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지설 쌤, 무슨 일이에요?”지설은 캡처 화면을 들이밀며 물었다.“이거, 희영 쌤이 올린 거예요?”희영은 힐끗 보더니 비웃음을 흘렸다.“제가 올렸으면 어쩔 건데? 남의 남자랑 엮이면 욕 좀 먹을 수도 있는 거죠.”‘역시... 당신 짓이었구나.’지설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곤 차갑게 말했다.“잠깐 나와요. 얘기 좀 해야겠네요.”희영은 기죽을 이유가 없다는 듯, 비죽 웃으며 따라 나왔다.둘은 곧장 사각지대인 복도로 향했다.그 순간, 지설은 희영의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쥐고 그대로 뒤로 젖혔다.따귀 소리가 연이어 두 번 울렸다.“악!”희영이 반격하려 했지만, 지설이 팔을 꺾어 제압해 버렸다.희영은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이를 갈았다.지설은 어린 시절 잠깐 배운 태권도가 떠올랐다.형식뿐인 기술이었지만, 희영을 제압하기에는 충분했다.머리채를 움켜쥔 채, 지설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다시는 헛소리하지 마요. 또 입 잘못 놀리면, 당신의 입부터 찢어버릴 거예요. 강희영 선생님, 오늘 제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기억하세요!”그 살벌한 눈빛에, 희영은 결국 기가 죽어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지설은 손을 놓고 돌아섰다.복도로 들어서는 길에 은화가 마주쳤다.은화는 지설의 어깨를 툭 치며 미소 지었다.“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네? 잘했다, 지설아.”엄지를 치켜올리는 은화에게 지설은 짧게 웃고 말없이 지나쳤다.잠시 후, 희영이 사무실로 돌아왔다.두 볼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복잡한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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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지설은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하민 아버님, 더는 얘기할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제발 그만 괴롭히셨으면 합니다.”그러고 나서 자신이 마신 커피값을 내려놓고, 곧장 자리를 떠났다.여자에게 이렇게까지 거절당한 건 처음인 배태호는 순간 얼굴이 굳었지만, 끝내 뒤쫓지는 못했다.그 장면을 지켜본 유연이 영민을 향해 속삭였다.“지설 언니가 이런 일 하고 있었네? 뭐, 언니가 직장 경험도 없잖아. 오빠가 몇 년이나 곱게만 키워놨으니 고생은 못 버티지. 결국 이렇게 돈 많은 남자한테 기대는 수밖에 없겠지.”영민의 얼굴빛이 단숨에 어두워졌다.유연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눈동자 속엔 묘한 승리감이 번졌다....아파트 단지 입구.지설은 익숙한 마이바흐 한 대를 보았다.차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영민이었다.그 발치엔 수북이 쌓인 담배꽁초가 널려 있었다.지설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지설!”영민이 성큼 다가와 지설의 손목을 붙잡았다.지설은 매달린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이 달려 벗어나지 못했다.순식간에 차 안으로 밀려들어 간 지설.문을 열려 했으나, 영민이 바로 잠금장치를 눌러버렸다.“뭐 하시는 거예요?”지설의 얼굴에 분노가 번졌다.영민은 냉소를 흘렸다.“내가 뭘 하냐고? 날 버리고 그렇게 비굴한 남자들한테 가겠다고? 나랑 헤어지면 당신이 무슨 대단한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아?”지설은 비웃듯 웃어버렸다.“착각하지 마세요. 나랑 같이 있을 때 내가 무슨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세요?”영민의 눈가가 순간 흔들렸다.그는 자신이 지설을 소홀히 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그러나 곧 스스로를 다잡았다. 자신은 다른 남자들과는 다르다고.그들은 단지 지설을 숨겨두고 싶어 하지만, 자신은 지설을 아내로 세웠다.“나랑 같이 돌아가. 당신은 여전히 내 아내니까.”영민은 확신했다. 지설은 아직 자신을 사랑한다고.지금의 이혼은 그저 자신을 붙잡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심지설이 원하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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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지설의 말은 벼락처럼 영민의 가슴을 후려쳤다.그가 지켜온 모든 자부심은 순식간에 종잇장처럼 찢겨나갔다.“그럴 리 없어...”영민의 손바닥이 가볍게 떨렸다.지설은 핸드폰을 거두어들이며 차갑게 말했다.“못 믿겠으면 당신 어머니께 물어봐. 어머니는 거짓말 안 하시겠지.”영민의 머릿속은 뒤엉켜 있었다. 아무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지설은 더는 시간을 허비할 생각이 없었다.“이제 내려줘.”영민은 굳은 표정으로 도어락을 풀었다.지설은 말없이 차에서 내려, 뒷모습만 남기고 떠났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영민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올리더니, 곧장 차를 돌려 본가로 향했다.달리는 차 안, 전화벨이 울렸다.핸드폰 화면엔 ‘유연’이라는 이름이 떴다.영민은 받지 않았다. 오직 핸들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집에 돌아오자 장경은 여사가 막 자려던 참이었다.아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눈이 커졌다.“아니, 웬일이니? 갑자기 왜 돌아왔어?”영민은 장 여사의 손을 덥석 잡았다. 목소리는 다급하고 불안했다.“어머니... 3년 전, 지설이 제 곁에 온 거... 어머니가 시킨 일이었죠?”뜻밖의 질문에 장 여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그러다 결국 긴 한숨을 내쉬었다.“맞아. 3년 전 네가... 실연에 교통사고까지 겹쳐서 스스로 무너졌잖니. 술에만 의지하고, 의사 말도 안 듣고, 재활 치료도 거부하고...”“그렇게 무너져 가는 널 보면서, 내가 무슨 수를 써야 하나 고민했어. 그래서 지설에게 부탁한 거다. 합의서를 쓰고, 네 곁을 지켜달라고.”“지설이는 정말 헌신적이었어. 지난 3년 동안 네게 해준 걸 생각하면, 나도 감탄할 정도였다.”“이제 유연이가 돌아왔고, 네가 다시 연애를 시작하려는 것도 이해해. 지설이도 알잖아? 그래서 말없이 물러난 거고. 너한테 짐이 되지 않으려고.”영민의 눈이 크게 치켜떴다.“그럼... 지설이 날 사랑한 적은... 없다는 거예요?”그토록 자신을 정성껏 챙겨준 지설이었다.그 모든 게 사랑이 아니었다니.‘아니야.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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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버려진 유연은 분노로 얼굴이 굳어졌다.운전기사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며 핸드폰을 꽉 움켜쥐었다.그날 밤, 유연은 영민에게 전화를 수십 통 걸었다.한참이 지나서야 통화 버튼이 눌렸다.“오빠, 왜 내 전화 안 받아? 설마 지설 언니한테 간 거야? 지설 언니는 이미 오빠랑 이혼했잖아. 그런데 왜 아직도 언니 생각을 하는 거야?!”지설 문제로 마음이 뒤숭숭하던 영민은 유연의 날 선 목소리에 짜증이 겹쳤다.[내가 이혼에 동의한 적 없어. 그 사람 혼자 난리 친 거지. 그리고 내가 누굴 생각하든 내 자유야. 유연 씨가 이렇게 간섭하는 건 선 넘는 거 아니야?]영민의 말투는 차가웠다.그는 분명 유연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것은 예전처럼 뜨거운 감정이 아니었다.유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귀국한 후 내내 조심스러웠다. 늘 다정하게 굴고, 첫사랑의 기억을 꺼내며 영민을 붙잡으려 했다.영민의 차가운 기류를 느낀 유연은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내가 잘못했어, 오빠. 화내지 마. 아까 오빠가 날 버려두고 가버리니까... 순간 지설 언니한테 간 줄 알고 질투가 나서 그만... 다시는 안 그럴게. 오빠, 용서해 줄 거지?”영민은 유연이 자신을 의식해서 그런 거라는 걸 알자, 금세 마음이 풀렸다.[오늘은 내가 잘못했네. 미안. 곧 새 가방 하나 사줄게. 오늘은 좀 피곤해서 네 집엔 안 가겠다.]“알겠어. 오빠도 푹 쉬어.”통화를 끊은 뒤에도 유연의 속은 끓어올랐다.‘역시 심지설 때문이야. 부영민이 흔들리는 건 다 심지설 때문이야!’유연은 바로 자기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심지설 지금 어디 살고 어디서 일하는지 당장 알아봐.”잠시 후, 비서가 보고해 왔다. 지설은 ‘뮤직앤조이’에서 일하고 있었다.그 순간, 유연의 눈빛이 번쩍였다.뮤직앤조이의 투자자는 다름 아닌 유연의 절친이었기 때문이다.유연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자기야, 뮤직앤조이에 실장 자리로 들어가고 싶어.”절친은 흔쾌히 수락했고, 인사팀에 바로 연락을 넣었다....다음 날 아침,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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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지설은 힘으로는 도저히 배태호를 이길 수 없었다.결국 그는 지설을 억지로 룸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지설은 온몸으로 버텼지만, 배태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거대한 체구가 순식간에 자신을 덮쳐왔다.‘안 돼...!’숨이 막히듯 끌어안기며 짓누르는 배태호의 팔에 지설은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핸드폰으로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배태호는 그녀가 손에 든 핸드폰을 낚아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그리고 남자의 입술이 거칠게 다가왔다.지설은 고개를 돌려 겨우 피했지만, 술 냄새가 뒤엉킨 남자의 숨결이 목덜미를 훑을 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었다.셔츠 단추가 잇달아 뜯겨나가는 소리.‘이대로 당할 순 없어...!’지설은 절박하게 손을 뻗어 테이블 위를 더듬었다.그러다 차갑게 식은 유리병이 손끝에 닿았다.망설일 틈도 없었다.“이 나쁜놈...!!”지설은 힘껏 병을 휘둘렀다.쾅!병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배태호는 눈을 뒤집고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졌다....그날 밤, 지설은 경찰서에 연행되었다.급히 연락받은 은화가 변호사 친구 우란을 데리고 달려왔다.배태호는 정신을 차린 뒤에도 합의를 거부했다.K시에선 나름 체면 있는 인물이라 경찰들도 대놓고 압박을 주진 않았지만, 분위기는 그에게 유리했다.우란이 몇 시간이나 협상을 이어간 끝에 배태호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합의금 2억... 아니면 내 여자로 살아. 둘 중 하나야.”지설의 눈앞이 캄캄해졌다.‘이 인간, 이렇게까지 치졸할 줄이야...’그녀는 결국 장경은 여사가 준 2억을 떠올렸다.‘이 돈을 내주고 끝내자. 더는 이런 놈한테 휘말리고 싶지 않아.’하지만 은행 앱에 접속하자, 계좌 화면에는 굵은 빨간 글씨로 ‘출금 정지’가 떠 있었다.지설은 손이 떨리며 믿기지 않았다.바로 끝내 차단 목록에서 영민의 번호를 해제했다.그리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를 걸었다.[여보세요.]잠결이었던 듯, 영민의 목소리는 잠시 쉰 듯 낮게 깔려 있었다.지설은 이를 악물며 내뱉었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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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오늘 밤의 충격이 너무 컸다.지설의 머릿속은 여전히 새하얗게 비어 있었다.말없이 도진의 뒤를 따라 아파트로 들어왔다.차에서 내려서도,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도진이 현관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계단 쪽으로 향했다.지설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봤다.“오늘 저녁에 전기가 나가서요. 엘리베이터가 안 됩니다.”짧은 설명에 지설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뒤따랐다.도진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서 앞길을 비추며 먼저 올라갔다.잠시 후, 도진이 뒤를 흘끗 돌아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많이 지치셨을 텐데... 필요하면 제 소매 잡으세요.”지설은 그의 시선을 마주쳤다.진심이 담긴 눈빛이었다.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도진의 셔츠 소매를 잡았다.‘왠지 안전하네.’지설은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며 계단을 올랐다....6층에 도착했을 때, 지설은 소매를 놓고 열쇠를 꺼내 들었다.그때 도진이 불렀다.“지설 씨.”지설은 돌아서며 고개를 들어 물었다.“네?”“혹시... 강아지 무서워하세요?”뜻밖의 질문에 지설은 순간 눈을 깜빡였다.‘갑자기 왜 이런 걸 묻지?’도진은 담담히 이어 말했다.“안 무섭다면, 호두를 지설 씨 곁에 두고 싶어서요.”그가 문을 열자, 안에서 황금빛 털의 래브라도 한 마리가 반갑게 뛰어나와 도진의 품에 안겼다.도진은 강아지를 안으며 부드럽게 소개했다.“호두예요. 아주 순한 녀석입니다. 침대 곁에 두면 악몽 꾸실 일 없을 거예요. 다만 추위를 많이 타니까... 바닥에 카펫을 깔고 재워주시면 좋아합니다.”그제야 지설은 도진의 세심한 배려를 깨달았다. 눈가가 서서히 붉어졌다.“고마워요.”도진이 호두에게 몇 마디 말을 건네자, 강아지는 곧장 지설 곁으로 와서 발에 몸을 비비며 앉았다.따뜻하고 믿음직스러운 체온이 전해졌다.‘예전엔... 부영민이 싫어해서 반려동물은 꿈도 못 꿨는데...’지설은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건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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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은화의 말에 지설의 볼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지설은 커피잔을 저으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선배님, 기도진 변호사님은 그냥 사람이 좋은 거예요. 저한테 그런 마음일 리가 없죠.”“왜 없겠어?”은화는 지설의 뺨을 살짝 꼬집으며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했다.“이 얼굴에, 이 몸매에, 남자가 안 좋아할 이유가 어디 있냐고.”지설의 얼굴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하지만 그녀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나는 이혼녀야. 그런 내가 마음에 들 리가...’“저는 이혼했잖아요. 누가 저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어요.”그러나 은화는 대수롭지 않게 손을 내저었다.“아휴, 그게 무슨 옛날 사고방식이야. 세상에 재혼, 삼혼한 사람 중에도 재벌가로 시집가는 경우 많아. 결혼 한 번 했다고 대수인가? 아무도 신경 안 써.”지설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지만,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오후가 되자 지설은 자리에 앉아 오래 고민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메시지 창을 열고, 짧게 글을 남겼다.[변호사님,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브인데요.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저녁 한 끼 대접하고 싶습니다.]10분쯤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좋습니다.]답장을 확인한 지설은 미묘하게 심장이 두근거렸다.핸드폰을 무음으로 전환하려던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등록되지 않은 낯선 번호였다.지설은 잠시 망설이다가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지설아.]부영민이었다.지설은 반사적으로 끊고 싶었다.그러나 영민이 먼저 말을 이어갔다.[끊지 마. 새 일자리 하나 소개해 줄까 해서.]영민은 이미 비서 오리정을 통해 어젯밤 일을 전해 들었다.지설의 계좌를 ‘출금 정지’ 한 것도, 결국 그녀가 자신에게 무릎 꿇게 만들기 위함이었다.하지만 정작 시간이 흐르자, 혼란스러운 건 지설이 아니라 자신이었다.‘나는... 왜 이렇게 불편하지?’영민은 체면상 미안하단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대신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지설을 붙잡아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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