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281 - Chapter 290

390 Chapters

제281화

주영도가 말했다.“아정이 질투할 필요 없어. 난 그냥 식구라 생각하고 챙겨준 것뿐이야. 사랑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아.”강루인이 코웃음을 쳤다.“알아. 영도 씨가 모든 사랑을 구아정의 언니한테 쏟아부었다는 거.”‘식구끼리 정말 공평하게 나눠 가졌네.’주영도가 그녀를 힐끗 쳐다봤다.“나랑 결혼하기 전에 나한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을 텐데.”그 말에 강루인은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고 표정도 어두워졌다.그렇다. 그녀는 주영도의 과거를 알고 있었고 그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그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결국 욕심이라는 것에 무너져버렸다.주영도가 계속 이어 말했다.“그건 내 과거야. 부정할 수 없는 과거. 넌 그걸 받아들여야 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강루인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비아냥거릴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사실 그들의 관계에서 초심을 잃어버린 건 그녀였다.주영도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었다. 단지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양동운이 룸을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고 잠시 망설였지만 차마 무시할 수 없어 받았다.전화를 받자마자 구아정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흘러나왔다.“오빠.”“거기 지금 밤 아니야? 왜 아직도 안 자?”구아정은 그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본론을 얘기했다.“오빠, 영도 오빠 뭐래? 내가 돌아가는 걸 허락한대?”양동운이 동문서답했다.“아정아, 섬 날씨가 아주 좋던데 거기서 좀 더 지내고 있어. 안북이 요즘 엄청 춥고 날씨도 안 좋아. 여기 따뜻해지면 다시 데려올게.”구아정이 울먹거렸다.“영도 오빠가 나 못 돌아가게 하는 거 맞지?”그가 구아정을 달랬다.“울지 마. 영도도 네 몸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구아정은 양동운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영도 오빠가 날 위해서 이런다는 거 다 알아. 난 그저 여기 생활이 익숙지 않아서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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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강루인은 마음을 정리했다. 문득 그들의 결혼 생활이 딱 섭씨 36도의 미지근한 물 같았다. 데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온도였다.출근하지 않아도 강루인은 무척 바빴다.사랑에서 정신을 차리면 다른 것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는 법이었다.그녀는 차성열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하지만 이 바닥의 인맥이 얽히고설켜 완전히 마주치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강루인이 그와 거리를 두려던 그때 차성열이 입을 열었다.“넌 친구도 일부러 안 만나?”그 말에 강루인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냥 가버리면 너무 무정해 보일 것 같았다.강루인이 말했다.“그러진 않아요.”차성열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묻어났다.“난 또 네가 나랑 친구도 그만하려는 줄 알았어.”그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모를 뿐이었다. 우정이 아무리 깊어도 혈연을 이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의 가정에 훼방 놓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하여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느니 차라리 연락하지 않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강루인이 솔직하게 말했다.“선배는 영원히 나의 좋은 친구예요.”차성열도 더 이상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효정이가 만항으로 돌아간 이유가 뭔지 알아?”원효정의 이름을 들은 순간 강루인의 얼굴에 나타났던 부드러움이 싹 가셨다. 그녀가 여승현과 손을 잡고 저질렀던 끔찍한 짓들을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녀의 표정이 변하는 걸 본 차성열이 말을 이었다.“혹시 너 때문이야? 효정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원효정이 회사를 그만두자 차성열은 속이 다 시원했다. 그녀가 호감을 보일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나 부담스러웠다.골칫덩어리 원효정이 사라졌으니 어머니 설은희에게 말해야 했다. 그가 사람을 일부러 내쫓았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설은희는 그 소식을 듣고 원효정이 제 발로 나갔다는 걸 믿지 않았다. 아들이 뒤에서 내쫓았다고 확신하면서 원씨 가문에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원씨 가문 사람들이 얼버무리며 개인적인 사정으로 퇴사했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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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차성열과 헤어진 후 강루인은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은 주영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그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조용한 카페를 찾아 일하다가 밥때가 되어 대충 챙겨먹었다. 해가 저물어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향할 때쯤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덮고 느릿느릿 선샤인 빌리지로 돌아갔다.가는 길에 풍선을 파는 장사꾼이 보였다. 갑자기 동심이 발동하여 풍선 하나를 샀다.선샤인 빌리지.진경자가 휴가 중이라 집 안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강루인은 별로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바로 그때 갑자기 거실에서 주영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강루인은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를 뻔했다.‘미쳤나? 한밤중에 귀신 놀이라도 하는 거야?’그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난 이제 자유도 없어?”주영도가 방금 하던 말을 이어갔다.“밖에서 뭘 하다가 이제 들어왔어?”강루인이 대꾸하지 않고 돌아서자 주영도가 확 잡았다.“지금 묻고 있잖아.”그녀는 그의 손을 가차 없이 뿌리쳤다.“내 일에 간섭하지 마. 난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강아지도 밖에 나가 산책시키는데 하물며 살아있는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다니.주영도의 시선이 강루인이 들고 있는 풍선에 향하더니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예전에는 이런 유치한 물건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그는 사진 뭉치를 꺼내 강루인에게 내밀었다.“내가 차성열이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지?”사진 속 그녀와 차성열의 모습을 본 순간 강루인의 안색이 변하더니 주영도를 노려봤다.“나한테 사람 붙였어?”‘휴대폰 위치 추적만으로도 부족해서 사람까지 붙였단 말이야?’주영도가 말했다.“넌 내 아내야. 너의 언행과 행동은 너 자신뿐만 아니라 나, 그리고 주씨 가문을 대표해. 저번에 할머니 생신 잔치에 있었던 일도 겨우 마무리 지었어. 주씨 가문의 명예가 손상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아.”강루인이 피식 웃었다.“그 말은 영도 씨 본인한테나 해. 난 부끄러운 점 없이 떳떳해. 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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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마음이 극도로 차가워지면 사람은 반격할 힘을 잃는 법이다.강루인이 말했다.“미안, 내가 잘못했어. 이미 떠난 사람 얘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과할게. 내가 너무 경솔했어.”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자 주영도는 분노가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비꼬는 것 같아 더욱 불쾌해졌다.강루인이 갑자기 로봇처럼 자신의 일과를 보고하기 시작했다.“오전에 스승님을 만나고 나오는 길에 성열 선배를 만나 몇 마디 나눴어. 헤어지고 나서는 혼자 카페에서 일했고 날이 어두워지니까 집으로 왔어.”말을 마친 그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내가 할 얘기는 끝났어. 더 물어볼 거 있어? 있으면 대답해줄게.”두 사람 사이에 숨 막히는 분위기가 흘렀다.주영도는 짜증이 밀려왔는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전달 사항을 끝낸 강루인이 먼저 대화를 끝냈다.“더 물어볼 거 없으면 이만 잘 거야, 난.”그러고는 주영도가 물어볼 게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던 주영도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침실로 돌아온 강루인은 들고 있던 풍선을 내려다봤다. 역시 이런 순수한 물건은 그녀 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창가로 다가가 풍선을 놓아버리자 둥둥 날아가 버렸다.샤워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워 꿈나라로 빠져들었다.주영도가 언제 침대에 누웠는지 강루인은 알지 못했다. 몸을 더듬거리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주영도가 그 짓을 하고 있었다.그는 자고 있던 사람을 깨웠다는 미안함 같은 건 전혀 없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태도로 말했다.“아기를 가져야지.”반항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즐기긴 개뿔. 이건 그냥 성폭행이야. 아무리 자기기만을 해도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즐거울 수 없다고.’강루인은 반항하지도, 즐기지도 않았다. 도마 위의 생선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정상적인 남자라면 반응해주지 않는 걸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강루인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자 주영도는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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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어젯밤에 주영도가 못살게 군 바람에 강루인은 다음 날 늦잠을 자고 말았다. 하지만 출근하지 않았기에 늦게 일어나도 상관없었다.그녀는 일어나자마자 바로 피임약을 챙겨 먹었다. 주영도의 아이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뭐 먹어?”바로 그때 뒤에서 주영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루인은 흠칫 놀랐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주영도는 이미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시선이 그녀의 몸을 지나 들고 있는 약통에 머물렀다.“무슨 약이야?”강루인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지난번에 말했잖아. 비타민이라고.”주영도는 그녀가 들고 있던 약통을 가져갔다. 영어로 적힌 성분표를 보니 정말로 비타민 D 보충제였다.그가 물었다.“이거 얼마나 먹어야 돼?”강루인이 꽉 쥐었던 손을 풀었다.“이 한 통만 다 먹으면 돼.”“그냥 먹지 마. 무슨 약이든 계속 먹으면 몸에 안 좋아. 차라리 아주머니한테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달라고 해.”강루인은 반항하지 않았다. 주영도가 약통을 내려놓고 강루인의 손을 잡았다.“내려가서 아침 먹자.”그녀의 시선이 그가 잡고 있는 손에 향했다. 뿌리치고 싶었으나 충동을 참고 내버려 두었다.주방.주영도는 진경자더러 몸에 좋은 음식을 강루인에게 해주라고 했다.그 말에 진경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대표님 지금 사모님을 걱정하고 계셔.’두 사람의 사이가 좋아 보여 기분이 매우 좋았다.그때 오용주가 한약을 상에 내려놓았다.“사모님, 약 드실 시간입니다.”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강루인은 냄새만 맡아도 속이 울렁거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가져가세요.”오용주가 오만한 태도를 보이면서 강루인에게 압박을 가했다.“이건 큰 사모님의 지시입니다.”강루인이 오용주를 힐끗 쳐다봤다.“가져가라고 했어요.”오용주가 계속 말을 듣지 않자 강루인이 그릇을 그대로 엎어버렸다.약이 다 쏟아졌고 쨍그랑 소리와 함께 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화들짝 놀란 오용주가 소리를 질렀다.“이건 큰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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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강루인은 공항 라운지에 앉아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는 걸 지켜보았다. 주영도의 등장을 간절히 기다렸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그가 약속을 어기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녀가 원치 않는 여행을 억지로 가지 않아도 되니까.하지만 강루인의 바람은 언제나 쉽게 빗나갔다. 주영도가 나타난 것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나 안 늦었어.”강루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씁쓸한 아쉬움이 밀려왔다.주영도가 강루인의 손을 잡았다.“체크인하러 가자.”8, 9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강루인은 대부분 잠만 잤다.탈라시아에 도착했을 때 현지 시간은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막 동이 트기 시작했다.강루인이 비행기에서 자는 동안 주영도는 계속 업무를 처리했다. 하여 정신이 맑은 그녀와 달리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그와 함께 자기 싫었던 강루인은 밖으로 나가 구경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재벌 총수 자리에 오랫동안 앉은 사람이라 그런지 늘 타인의 의견을 듣지 못했다. 주영도는 강루인을 안아 침대에 눕힌 다음 움직이지 못하게 꽉 끌어안았다.“나랑 잠깐 눈 좀 붙이자.”“난 충분히 자서 잠이 안 와. 자려면 영도 씨 혼자 자.”강루인이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자 주영도가 품 안의 그녀를 내려다봤다.“정말 안 피곤해?”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안 피곤해.”바로 그 순간 주영도가 몸을 뒤집더니 그녀 위로 올라탔다.“피곤하지 않다면 피곤하게 만들어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이 강루인의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방 안에 곧 야릇한 교향곡이 울려 퍼졌다...한바탕 격렬한 시간이 지난 후 강루인은 정말로 지쳐버렸다. 주영도는 그녀를 껴안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강루인의 귓가에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파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이 바다 표면에 비쳐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드디어 깼구나.”주영도는 옆으로 누워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매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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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여자는 모두 감성적인 동물이다.강루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예전에는 주영도가 이런 걸 해주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고 감히 바라지도 못했다.한때는 미소 한 번, 포옹 한 번, 혹은 단순한 아침 인사만 해줘도 강루인은 그날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여겼었다. 주영도가 오늘처럼 그녀에게만 향하는 열정을 보여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식당 조명이 너무 밝아 눈이 부신 탓일까, 강루인은 갑자기 눈이 따끔거리더니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당신의 사랑이 필요해요. 신이시여, 나에게 사랑을 내려주소서.”음악과 노래가 함께 멎었다.주변에서 손님들의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강루인을 쳐다보는 시선에 부러움이 가득했다. 겉으로 보기엔 행복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씁쓸한 마음을 그녀만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분위기에 맞춰 주영도에게 박수를 보냈다.주영도가 무대에서 내려오더니 웃으며 말했다.“마음에 들어?”강루인은 그를 쳐다보며 과거의 그녀를 대신해 대답했다.“응. 마음에 들어.”그 말에 주영도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은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라 아주 낭만적이었다. 밤이 되자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주영도는 뒤에서 그녀를 감싸 안고 그녀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여보, 내가 앞으로는 잘할게.”‘여보’라는 호칭에 강루인도 마음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려고 눈을 감아버렸다.그때 주영도의 부드러운 입술이 강루인에게 닿았다. 그녀는 눈을 뜨지 않고 이 기분을 느끼면서 그에게 응했다.낯선 곳, 낯선 환경, 사랑이 가득한 이곳에서 강루인은 이번 한 번은 자신을 놓아주기로 했다.모래사장, 바다, 그리고 환한 달빛, 모든 게 낭만적이었다.실내, 벽에 서로 뒤엉켜 있는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실내의 온도가 현지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어느덧 밤이 지나고 강루인은 주영도의 품에서 눈을 떴다.주영도가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굿모닝.”강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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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열기구를 타는 건 강루인의 오랜 소원이었다.주영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와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싣고 크로노스로 향했다.목적지에 도착한 후 강루인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진정하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열기구를 바로 탈 수는 없었고 다음 날 새벽 네 시쯤부터 가능했다.손을 잡고 거리를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영락없는 커플이었다.주영도가 입가에 미소를 띤 강루인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렇게 좋아?”강루인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 다음 답했다.“응, 좋아.”그의 시선이 그녀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에 향했다.“달아?”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달아.”“나도 한번 먹어볼래.”그 말에 강루인이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주영도가 맛본 건 아이스크림이 아니었다.강루인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입술을 탐하면서 깊숙이 파고들었다. 구석구석 헤집어 놓고 나서야 강루인을 놓아주었다.그러고는 촉촉하게 젖은 그녀의 입술을 닦아주며 입꼬리를 올렸다.“음. 아주 달달해.”갑작스러운 키스에 강루인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그의 손을 툭 쳐냈다. 뻔뻔한 주영도와 달리 강루인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그가 웃으며 따라갔다.“부끄러워?”강루인이 대꾸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가자 주영도는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어딜 이리 급하게 가? 길 잃을까 봐 무섭지도 않아?”그녀는 행인들이 그들을 보며 킥킥거리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구경거리가 되는 게 싫어 주영도를 잡아끌고 발걸음을 재촉했다.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강루인이 어떻게 잡아끌든 가만히 내버려 뒀다.여행을 간 며칠 동안 두 사람은 매일 밤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사랑을 밖에서 다 하려는 듯했다.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강루인은 그의 말을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들기 전 주영도에게 잊지 않고 귀띔했다.“알람 꼭 맞춰 놔.”그러고는 바로 잠들어버렸다.주영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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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주영도!”강루인은 멀어지는 주영도의 뒷모습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주영도의 단호한 뒷모습이 그녀의 머릿속에, 마음속에 생생하게 박혔다.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전처럼 부러움 섞인 시선이 아니라 안쓰러움과 동정의 시선이었다.그녀는 그저 소원 하나 이루고 싶었다. 5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제대로 된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그녀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렸다.시선을 늘어뜨리자 눈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가 이내 흙먼지에 섞여 사라졌다. 눈빛에 자신을 향한 비웃음을 가득 담고 힘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한 시간 동안의 열기구 비행은 긴 것 같으면서도 짧았다.아쉬움과 실망 속에서 이번 여행이 끝이 났고 동시에 그들의 짧았던 결혼 생활도 끝났음을 직감했다.호텔로 돌아온 강루인은 주영도가 두고 간 짐들을 쳐다봤다. 정말 급하게 떠난 듯했다. 그녀는 자신의 짐을 챙겨 방을 나왔다.호텔 아래, 동양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강루인의 앞에 나타났다.“강루인 씨, 주 대표님이 저더러 강루인 씨를 공항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어요.”‘그 바쁜 와중에도 날 공항까지 데려다줄 사람을 구했다니. 정성이 지극하네, 아주.’강루인은 차에 올라타 공항에 도착한 후 가장 빠른 비행기 표를 끊었다.안북시에 도착했을 땐 새벽 네 시였다.공항 밖으로 나와 보니 노윤환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다가와 그녀의 짐을 받아 들었다.“대표님께서 저한테 사모님을 집으로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어요.”강루인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노윤환을 보며 물었다.“비서님은 피곤하지 않아요?”그 말에 노윤환은 잠시 멈칫했다가 웃으며 말했다.“이건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혹시 구아정 씨 곧 죽어요?”노윤환은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 했지만 목숨이 달린 일이라 솔직하게 대답하기로 했다.“구아정 씨가 손목을 그었어요. 대표님께서 일부러 먼저 떠나신 건 아닙니다.”그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했던 터라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방관자로서 강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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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담뱃재를 털던 주영도의 눈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사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했다.그는 창가에 서서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들인 뒤 하얀 연기를 내뿜고 담배꽁초를 비벼 끈 다음 몸을 돌려 안방으로 들어갔다.구아정이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손목에 두툼한 붕대가 감겨 있었고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와 붕대가 조금 물들었다.주영도를 본 구아정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목소리가 갈라졌고 힘이 하나도 없었다.“오빠...”주영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구아정을 빤히 쳐다봤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입을 열었다.“돌아가는 항공편 알아놨어. 나랑 같이 가자.”그 말에 구아정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정말? 드디어 안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야?”주영도가 차분하게 말했다.“먼저 쉬고 있어.”그러고는 방을 나섰다.구아정은 신이 난 나머지 주영도의 싸늘한 태도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곳을 벗어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 그녀의 시선이 붕대를 감은 손목으로 향했다.‘이 피 헛되지 않았어.’비행기는 저녁에 이륙하여 다음 날 아침에 안북시에 도착했다.비행기에서 내린 주영도와 구아정은 같은 차를 탔다. 차 안에서 구아정은 대화를 나누고 싶었으나 주영도는 대화할 생각이 없는 듯 계속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그 모습을 본 구아정도 포기했다. 일단 돌아왔으니 앞으로 그와 얘기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집에 도착한 후 구아정은 주영도에게 잠시 들어가 쉬라고 했다. 주영도가 입을 열기 전에 대문이 안쪽에서 열렸다.“아정아.”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구아정의 어머니 채정화였다. 그녀를 본 구아정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여긴 어떻게 왔어요?”그녀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와 있었다.채정화가 딸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바보 같은 녀석아, 왜 그런 짓을 했어? 아프지? 엄마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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