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71 - Chapter 80

104 Chapters

제71화

강루인은 조용한 하룻밤을 보냈다.만항시에 온 동안 이홍섭은 업무 외에도 오랜 친구들을 만나야 했고 친구의 생일잔치도 겹쳤다. 그녀는 차성열과 함께 참석했다.생일잔치에서 며칠 만에 주영도를 다시 만났다.만항시가 큰 도시가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우연이 잦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생일의 주인공도 주영도와 아는 사이였다.마침 가까운 곳에 있던 강루인은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생일 주인공이 웃으며 말했다.“결혼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이제야 만나는군. 이분이 자네 아내인가?”물론 당연히 주영도의 옆에 있는 구아정을 가리켰다.구아정이 인사하는 소리는 들었지만 주영도가 부정하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강루인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밖에서 항상 저렇게 소개하고 다녔던 거야?’더는 스스로 치욕을 당하고 싶지 않아 몇 걸음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웨이터가 지나가자 강루인은 샴페인 한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너무 급하게 마신 탓에 사레들려 기침했다.“왜 그렇게 급하게 마셔?”차성열이 손수건을 건넸다. 강루인은 사양하지 않고 손수건을 받아 입가를 닦았다.“고마워요.”한참이 지나서야 목 안의 간지러움이 겨우 멎었다. 더러워진 손수건을 보며 강루인이 말했다.“깨끗하게 빨아서 돌려줄게요.”차성열이 대답했다.“그래.”누군가 그에게 인사하러 오자 강루인은 슬쩍 자리를 비켜주었다.“일 봐요. 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볼일을 본 후 강루인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쳤다. 그때 경쾌한 하이힐 소리가 문 앞에서 들려오더니 구아정의 얼굴이 거울에 비쳤다.구아정이 목에 건 목걸이를 쓰다듬으면서 거울 속 강루인과 눈을 마주쳤다.“예쁘지? 영도 오빠가 어제 경매에서 낙찰받은 거야.”그러고는 손가락을 펴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이거 40억짜리야.”강루인은 립스틱 뚜껑을 닫고 가방에 넣은 다음 몸을 돌렸다.“영도 씨랑 언제 결혼해?”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구아정이 흠칫 놀랐다. 강루인이 태연하게 말했다.“주씨 가문 사모님이 가진 것에 비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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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강루인이 눈을 떴을 때 입안이 다 말라붙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드디어 깼구나.”눈앞에 들어온 건 차성열의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강루인이 눈을 깜빡이며 몇 초간 멍하니 있었다.“선배가 날 구해줬어요?”차성열이 대답했다.“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너 죽을 뻔했어.”그 말에 그녀의 얼굴에 남은 마지막 핏기마저 다 사라졌다.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품고 있었는데 결국 실망만 안겨줬다. 눈을 감기 전 환상으로 그려냈던 그 사람은 주영도가 아니었다.강루인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살려줘서 고마워요, 선배.”차성열이 물었다.“몸은 좀 어때?”강루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머리가 아파요.”“머리를 다쳐서 몇 바늘 꿰맸어.”문득 머리를 때렸던 유리병이 떠올랐다. 혼란스러운 상황이라 누군가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고였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화재 자체는 사고였다.어느 집 아이인지 불장난하다가 실수로 집에 불이 달렸는데 겁이 나서 어른들에게 말도 못 하고 방 문까지 닫아버린 채 도망친 바람에 방이 잿더미로 되고 말았다.깨어난 후 강루인은 병원에 머물지 않았다.차성열이 퇴원 절차를 마무리해줬고 강루인을 부축하여 병원을 나섰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이 강루인과 구아정을 두고 하는 말인 듯했다.병원이 화재가 난 호텔과 가까워 부상자들 모두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다.주영도는 구아정을 앞으로 안고 있었고 그들 넷은 예상치 못하게 마주치고 말았다.멀쩡하지만 주영도의 걱정을 한몸에 받는 구아정을 보자 강루인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강루인을 본 순간 주영도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너 왜 그래?”그의 표정을 모두 읽은 그녀는 비웃을 기력조차 없었다. 정말 몰랐던 걸까,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걸까?시선을 거두고 나지막하게 말했다.“가요, 선배.”차성열이 그녀를 부축한 채 계속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런데 몇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는데 주영도가 막아서며 손목을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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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사람들이 말하길 남편이 켕기는 구석이 있으면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더 잘해준다고 했다.강루인은 주영도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도 그렇게 행동했다.할머니를 위해 명의를 데려왔는데 국제적으로 이름난 의사로 의술계의 거물이라 불리며 각종 난치병을 치료한다고 했다.강루인은 그 의사와 직접 만났다. 50대 남자였고 이름은 곽정수였다.진찰을 마친 뒤 곽정수가 강루인에게 말했다.“아무래도 고칠 수 없을 것 같네요.”이미 예상했던 답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할머니가 병에 걸린 후로 강루인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명하다는 의사는 모두 찾아다녔으나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한 명도 없었다. 지금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하지만 돈으로 영생을 살 수는 없었다. 의사들은 할머니에게 많아야 4년이 남았다고 했다.그 선고를 받은 날로부터 벌써 1년이 지났다.할머니가 하루를 더 살면 강루인도 그만큼 기뻤지만 동시에 걱정도 늘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은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고통이었다.그런데 그때 곽정수가 절망에 빠진 강루인에게 희망을 줬다.“완치는 불가능하지만 수명을 연장할 수는 있어요.”그 말에 강루인의 눈이 반짝였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정말입니까?”곽정수가 고개를 끄덕였다.“7, 8년 정도는 문제없을 거예요.”강루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강루인은 곽정수를 배웅했다. 가슴을 짓누르던 긴장이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쭉 빠지더니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주영도가 그녀를 붙잡아주자 강루인은 그의 품에 쓰러지다시피 안겼다. 이마가 어깨에 닿았고 두 손으로 그의 옷을 꽉 쥐었다.그는 부들부들 떠는 그녀를 내려다보면서 등을 토닥였다.“교수님이 저렇게 말씀하셨다는 건 자신이 있다는 뜻이야.”강루인은 입술을 깨물고 이 기쁨을 천천히 받아들였다.지금 그녀의 기분은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산소를 가득 들이마신 듯 넘치는 생명력에 잠시 적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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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주영도는 완벽한 손녀사위의 모습을 보여줬다.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세심히 살피는 건 물론이고 영양사까지 따로 마련해줬다.강루인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심리적인 효과인지, 아니면 치료가 정말 효과를 본 것인지 할머니의 안색이 점점 좋아졌다.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분명했다....주영도가 대표 자리에 앉아 있긴 하지만 실권은 여전히 주세웅이 쥐고 있었다.주세웅이 물러나지 않는 한 후계자는 정해지지 않을 것이다.지금 주씨 가문의 삼 형제네 가족들끼리 권력을 두고 암투를 벌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서로를 물어뜯고 있었다.주영도는 지금 둘째네와 셋째네와 홀로 싸우는 셈이었다. 주세웅의 인정을 받기 위해 그는 일에서 한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그의 업무 능력만큼은 강루인은 진심으로 높이 샀다.밤이 깊어지자 도시에 화려한 불빛이 넘실댔다.한밤중, 강루인은 노윤환의 전화를 받았다. 차가 길에서 고장 났으니 주영도를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이었다.강루인은 차고에서 차를 꺼내 목적지로 향했다.그들의 차가 추돌 사고를 당했고 노윤환이 사고 처리를 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른 것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강루인과 구아정이 거의 동시에 나타났다.노윤환은 강루인의 시선에 당황해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정말로 그가 부른 게 아니었다.구아정이 우연히 그 길을 지나다 그들을 발견한 것뿐이었다.이건 정말 기막힌 우연이었다.강루인은 자리에 가만히 서서 구아정이 주영도를 부축하는 모습을 지켜봤다.“오빠, 무슨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주영도는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밤바람이 스치자 강루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주영도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거기 서서 뭐 해? 와서 부축하지 않고.”강루인은 걸음을 멈추고 구아정을 힐끗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얼굴이 굳어있었다.구아정이 말했다.“내가 부축하면 돼. 언니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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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강루인은 주영도를 씻기고 나서 욕실까지 정리한 뒤에야 샤워했다.모든 걸 마무리했을 때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이럴수록 그녀는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주영도는 구아정을 아껴서 그녀가 힘들까 봐 일부러 이 고생을 떠넘긴 것이었다.이불을 들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주영도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자기 품으로 끌어당겼다.강루인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귓가에 그의 힘찬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렸다.주영도는 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대고 부드럽게 문질렀다.“작은아버지들이 노리던 큰 건 내가 따냈어.”그녀는 벗어나려다가 멈칫했다. 그의 나른한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있었다.“석 달 동안 공들여서 빈손으로 돌아가게 만들었어.”주영도는 강루인의 얼굴을 감싸고 고개를 숙였다. 코끝이 맞닿은 순간 좌우로 비볐다.“오늘 저녁 기분이 정말 좋아.”서로의 피부가 닿고 숨결이 얽혔다. 이제껏 한 번도 나누지 않았던 스킨십이었다. 심지어 온몸이 흥분으로 달아올랐을 때조차 이런 적이 없었다.주영도의 눈이 검고 맑았다. 그 안에 오직 그녀만 비쳤는데 그의 세상이 그녀 하나로 가득 찬 기분이 들었다.누군가 말하길 따뜻한 포옹이 때론 사랑을 나누는 것보다 사람의 마음을 더 설레게 한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 강루인은 그 말에 공감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를 안았다.얽힌 숨결이 점점 뜨거워졌고 침실의 온도도 치솟았다. 방 안의 열기에 창밖의 달마저 부끄러웠는지 숨어버렸다.그렇게 격렬한 밤을 보냈다. 다음 날 강루인뿐만 아니라 주영도도 늦게 일어났다. 주영도가 아직도 옆에서 자고 있는 모습을 본 강루인은 깜짝 놀랐다.“내가 귀신이야? 왜 그렇게 놀라?”막 잠에서 깬 주영도는 평소의 냉정한 모습이 아닌 나른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강루인은 쓸데없는 감정을 추스르고 물었다.“시간이 몇 시인데 회사 안 나가?”주영도가 졸린 목소리로 대꾸했다.“너 때문에 밤새 혹사당했는데 좀 쉬면 안 돼?”“...”강루인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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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강루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초대장을 집어 들었다. 대충 훑어보던 그녀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스승님, 이건...”이홍섭이 그녀를 흘겨봤다.“눈이 멀었어? 안 보여?”강루인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스티븐이 왜 저를 건축 세미나에 초대하는 거죠?”스티븐은 건축계의 거물 중 한 명이었다. 3년마다 개인 세미나를 열었고 참가자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하지만 참가하려면 적어도 약간의 명성을 얻은 사람이나 떠오르는 신예 정도는 돼야 했다. 그들마저도 스티븐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야 가능했다.그녀처럼 아무것도 아닌 초짜는 이런 행사를 꿈도 꿀 수 없었다.이홍섭이 말했다.“스티븐이 너의 설계에 관심이 있대.”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결코 적지 않았다.스티븐이 그녀의 설계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경로는 단 하나뿐이었다. 바로 이홍섭.“스승님이 저를 추천해주셨네요.”의문이 아니라 확신이었다.이홍섭은 좋은 일을 하고 이름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었다.“가서 내 얼굴에 먹칠하면 절대 가만 안 둬.”강루인은 가슴이 뭉클해져 눈시울이 붉어졌다.하지만 이홍섭은 감성적인 분위기를 싫어했다.“어쩜 쩍하면 울어? 울지 마.”강루인은 어이가 없었다. 채 감동하기도 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세미나는 프하국에서 열렸고 행사가 사흘 뒤라 준비할 시간은 충분했다.강루인은 자료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주초원과 구아정이 와 있다는 걸 알았다.들어가 보니 주영도가 그녀에게 선물했던 값비싼 보석들이 모조리 꺼내져 있었다.구아정은 강루인을 보고는 주초원의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하지만 주초원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이거 다 마음에 드니까 나한테 줘.”이보다 더 당당할 수가 없었다.강루인이 덤덤하게 말했다.“이건 내 개인 재산이야.”그 말에 주초원이 코웃음을 쳤다.“빈손으로 우리 오빠한테 시집왔으면서 개인 재산은 무슨. 오빠가 너한테 사 준 거니까 우리 주씨 가문 거지. 넌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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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프하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사흘 뒤 오전 8시에 출발이었다.강루인은 출발 전날 밤 차성열의 전화를 받았다. 그도 프하국으로 가는데 세미나가 아니라 출장차 간다고 했다.같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강루인은 그와 다음 날 만날 시간을 정했다.공항.두 사람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 우연인지 두 사람의 좌석이 나란히 붙어있었다.강루인이 농담을 건넸다.“혹시 내 정보를 미리 알고 일부러 옆자리 예약한 거 아니에요?”차성열이 씩 웃으면서 맞장구쳤다.“들켰네.”강루인이 웃으며 말했다.“선배 인맥이 대단한가 봐요.”차성열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지만 눈빛은 어딘가 복잡해 보였다.“나랑 같이 있으면 주선 그룹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나을 거야.”강루인이 계속 웃었다.“그럼 선배랑 같이 부자가 될 날만을 기다려야겠네요.”열 몇 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강루인은 대부분 잠을 잤다. 충분히 자고 눈을 떴는데 차성열은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강루인은 속으로 감탄했다.‘직원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대표가 있어서 참 좋아.’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볼일을 보고 나서는 바로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승무원에게 물 한 잔을 부탁했다.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던 중 승무원이 말을 걸어왔다.“남자친구랑 정말 사이좋으시네요.”강루인은 순간 멈칫했다.‘남자친구?’승무원이 부러워하며 말했다.“손님이 주무실 때 담요를 자꾸 떨어뜨리셨는데 남자친구분이 계속 챙겨주시더라고요. 엄청 다정하시던데요?”강루인은 그제야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챘다.“저분은 우리 회사 대표님이세요. 그리고 저 결혼했어요.”승무원이 당황해하며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거듭 사과를 건넸다. 강루인은 괜찮다고 말하며 빈 잔을 돌려주고는 고맙다고 인사했다.자리로 돌아가려던 그때 비행기가 기류를 만나 기체가 흔들렸다. 강루인이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조심해.”차성열이 재빨리 그녀의 허리를 잡아줬고 중심을 잃은 강루인은 그의 무릎 위에 앉아버렸다.흔들림이 멈춘 건 30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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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원효정이 사회 초년생 같진 않았지만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강루인은 그녀가 왜 다가와 인사를 건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스티븐이 그녀와 몇 마디 더 나눈 것이 원효정의 질투를 부른 것이었다.원효정이 뭐라 더 말하려던 찰나 원기성에게 불려갔다.강루인도 이홍섭 덕에 이 자리에 온 터라 스승의 체면을 깎지 않으려 조용히 듣기만 했다.세미나 일정이 꽤 자유로웠다. 여유 시간에 밖으로 나가 거리를 돌아다니며 이홍섭과 주변 사람들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차성열과도 연락을 주고받았고 시간이 맞아 함께 밥을 먹기로 했다.차성열이 물었다.“세미나 어땠어?”강루인이 답했다.“수확이 꽤 있었어요.”“스승님이 헛수고하신 건 아니네.”강루인도 미소를 지었다.이홍섭의 까칠한 성격만 생각하면 참으로 귀여웠다.차성열이 물었다.“이후 스케줄은 어떻게 돼?”매일 두세 시간의 교류 시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자유 시간이었다. 그럴 때면 강루인은 현지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돌아다니곤 했다.차성열이 말했다.“내일 참석해야 하는 연회가 있는데 여자 파트너가 필요해. 같이 가줄 수 있어?”강루인이 되물었다.“내가 가도 되는 자리예요?”“그냥 일로 생각해.”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덜했다.연회용 드레스는 차성열이 준비해주었는데 누드색 롱드레스였다. 반짝이는 원단이 걸음을 뗄 때마다 그녀를 빛나게 했다.차성열이 손뼉을 치며 칭찬했다.“엄청 예뻐.”강루인이 미소로 답했다.“고마워요.”오늘 저녁 연회는 사적인 분위기였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차성열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강루인은 프하국 언어를 몰라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시선이 그녀에게 향할 때면 미소로 응대했다.그 사람이 떠난 뒤 강루인이 물었다.“방금 무슨 얘기 했어요? 왜 계속 날 쳐다봤죠?”차성열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예쁘게 생겼대.”강루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놀리는 것 같았지만 딱히 속일 이유도 없어 보였다.뜻밖에도 그곳에서 원효정을 만났다. 원효정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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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상의가 아니라 통보였다. 주영도는 망설임 없이 그녀를 호텔로 데려갔다.방 문이 열리자마자 강루인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뜨겁고 촉촉한 그의 입술이 그녀의 귀 뒤로 쏟아졌다.주영도는 그녀를 돌려세워 엉덩이를 받치면서 번쩍 들어 올렸다. 강루인은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양팔로 감았다.희미한 조명이 방 안을 더욱 야릇한 분위기로 물들였다.주영도는 강루인을 침대에 던진 후 다소 급하게 옷을 벗었다.그들이 함께할 때마다 강루인은 그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느꼈다. 설령 그녀 자체가 아니라 해도 적어도 그녀의 몸은 사랑하는 것 같았다.며칠 하지 못한 바람에 주영도는 더 맹수 같았고 그녀를 삼키려는 듯했다.낯선 타지, 낯선 환경 속에서 강루인도 마음을 풀고 자신을 놓아버렸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휴대폰이 울리는 것도 무시했다.모든 게 끝난 뒤 강루인은 침대에 축 늘어졌고 손가락 하나 까딱일 기운도 없었다. 반면 주영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침대 머리맡에 기대 담배를 피웠다.잠자리가 최고의 운동이라는 말이 맞았다. 지칠 대로 지친 강루인은 그대로 잠들어버렸다.담배를 다 피운 후 주영도는 잠든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시선이 붉게 부풀어 오른 입술에 머물렀다. 그가 남긴 흔적이었다.욕망이 다시 일었지만 잠든 그녀를 더는 건드리지 않았다.주영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샤워하러 갔다. 그때 강루인의 휴대폰이 울려 꺼내 확인했는데 차성열이었다.그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차성열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어디야? 계속 전화했는데 왜 안 받았어? 괜찮아?”주영도가 낮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루인이 지금 지쳐서 자고 있어요.”2초 정도 정적이 흐른 뒤 차성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주영도 씨?”주영도가 물었다.“우리 와이프는 무슨 일로 찾는 거죠?”걱정을 던 차성열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사히 돌아갔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만 끊고 내일 다시 연락할게요.”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통화 종료음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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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강루인도 모르는 사이에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누가 봐도 기분이 좋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원효정은 그녀의 웃는 얼굴이 유난히 거슬렸다.“성열 오빠랑 무슨 사이예요?”강루인은 상대의 적대심을 느꼈다. 하지만 세미나에서 문제를 일으켜 스승의 얼굴에 먹칠할 수는 없었다.“대학교 선배예요.”원효정의 시선이 갑자기 강루인의 쇄골에 남은 붉은 자국으로 향했다. 눈이 가늘어지더니 표정이 무거워졌다.“어젯밤에 어디서 묵었어요?”어제 차성열이 그녀를 두고 먼저 떠난 일을 떠올렸다.‘설마 두 사람 어젯밤에...”강루인이 무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이런 걸 물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 아닌 것 같은데요?”속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인 원효정이 계속 캐물었다.“어젯밤에 성열 오빠랑 같이 있었어요?”강루인은 그녀가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말을 섞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렸다.늘 기고만장하던 원효정이 언제 이런 무시를 받아본 적이 있었겠는가? 다짜고짜 강루인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내가 얘기하고 있잖아요!”강루인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거 놔요.”원효정이 반항하듯 더 세게 잡자 강루인은 더 힘껏 팔을 빼냈다.예상치 못한 힘에 원효정이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누군가의 품에 부딪혔다.차성열이었다. 그녀의 눈에 담겼던 분노가 순식간에 억울함으로 바뀌었다.“성열 오빠...”원효정이 여우 짓을 시작했다.“루인 씨랑은 상관없어요. 내가 중심을 잃은 거예요.”차성열은 그녀를 부축해 일으킨 뒤 거리를 뒀다.“알아. 루인이랑 상관없다는 거.”“...”원효정은 더는 나약한 척할 수가 없었다.차성열은 그녀를 지나쳐 강루인에게로 다가갔다.“내일 고객 만나러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데 오늘 밤에 같이 가자.”강루인이 망설이며 물었다.“꼭 가야 하나요?”“가기 싫어?”차성열이 농담을 건넸다.“왜 갑자기 일에 소극적이 됐지?”강루인이 솔직하게 말했다.“내일이 내 생일이라 영도 씨랑 같이 보내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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