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인은 연지훈을 만나고 온 뒤로 서현주의 기분이 엉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괜히 건드렸다가 불똥이 튈까 봐 그녀는 조심스레 물었다.“밥은 먹었어?”“아니. 지훈 씨의 얼굴을 보고 나니까 입맛이 싹 사라지더라.”서현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그 말을 듣자마자 강혜인은 옆에 있는 남학생의 등을 ‘탁’ 하고 한 대 쳤다.“야, 너 뭐 하냐. 먹을 거 있으면 얼른 꺼내. 현주가 밥도 못 먹었대.”“아! 혜인아, 왜 때려!”남학생이 비명을 질렀지만 주변의 학생들이 그 말에 호응하듯 우르르 움직였다. 각자 서랍에서 과자며 빵, 젤리, 초콜릿 같은 걸 꺼내서 죄다 서현주의 책상 위로 던졌다.“야야, 다들 잠깐만!”하지만 서현주는 미처 피하지도 못한 채 빵 한 봉지를 정통으로 맞았다. 그녀는 이마를 문지르며 피식 웃었다.“됐어, 됐어. 이제 그만 줘. 이 정도면 가게도 차리겠어.”강혜인은 빵 포장을 쓱 찢고 우유에 빨대를 꽂아 서현주에게 내밀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 또 무슨 일 있었어?”“지훈 씨 때문에 속이 뒤집혀서 그래.”서현주는 기운 없이 대답했다.강혜인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그 인간은 그냥 멍청이라고 생각하고 신경 꺼.”‘그 멍청이가 매일 눈앞에서 왔다갔다하니까 문제지.’서현주는 힘없이 빵을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였다.‘연지훈은 안 되겠어. 그쪽에 기대도 콩쿠르 출전권은 못 얻어.’이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날 밤, 자율학습이 끝난 뒤 서현주와 강혜인은 장사를 접고 병원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를 보기 위해서였다.요즘 외할머니는 건강이 훨씬 좋아져서 두 사람의 손을 꼭 잡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며 웃었다.서현주는 가만히 듣기만 했지만 마음이 따뜻하고도 아릿했다.돌아오는 길에 강혜인이 서현주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너 요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거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서현주는 고개를 들었다.지난번에 멀리서 봤던 그 대형 스크린이 이번엔 바로 앞에 있었고 화면 속에 여전히 ‘루체 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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