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결혼을 지지해요: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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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중간쯤 왔을 때, 밴 한 대가 서현주가 탄 택시를 막아버렸다.그녀는 눈앞의 차를 보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주변은 조용했고, 사람도 차도 거의 없었다. 이 밴은 꽤 오랫동안 그녀를 뒤따라오고 있었다.택시 기사는 원래 거칠게 욕설을 퍼부으려 했다.“어떤 놈이 운전 이따위로 하는 거야?”하지만 곧 밴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 세 명이 내렸다.택시 기사의 욕설은 순식간에 멈췄다.서현주는 김빠진 공처럼 좌석에 기대앉았다.세 명의 경호원 중,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그건 바로 연동욱의 곁을 지키는 경호원이었다.그 순간, 그녀는 이번 일을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다.적어도 지금은 멈춰야 한다.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한편 그녀는 안전벨트를 풀고 중앙 콘솔에 현금을 놓고는 차분하게 설명했다.“기사님과는 상관없는 일이니 저 이만 내릴게요.”서현주가 차에서 내리자 경호원들이 즉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다들 고개를 숙인 자세였지만 목소리는 여지없이 단호했다.“서현주 씨, 어르신께서 모셔오라고 하십니다.”서현주는 그들을 훑어보고는 차에 올라탔다.연씨 저택.“채린이가 한 짓은 알고 있다. 많이 억울했겠구나.”연동욱은 말은 이렇게 해도 얼굴에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차분하게 지시하는 것만 같았다.“좀 다쳤다며? 아픈 데 있으면 내 명의하에 있는 병원에 가서 진찰받아라. 전문가 붙여줄게. 필요한 거 있으면 뭐든지 말해. 최대한 만족시켜주마.”연동욱의 눈은 흐릿했지만 그 안에 담긴 압박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어찌 됐든 다 한 가족이잖니. 너도 채린이 좀 이해해다오. 우리가 너무 귀하게 키워서 버릇없이 군 것뿐이야. 그러니 네가 좀 참아. 경찰 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가 다 처리해두었어.”서현주는 조용히 그의 말을 들으며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고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처리?어떻게 처리했다는 말인가?자신을 피해자로 만들어 놓고 단지 자신에게 침묵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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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연지훈은 침착한 표정으로 알겠다며 대답했다.할아버지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없었다.이에 연동욱은 그가 동의했다고 생각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손자들 중에 너를 가장 눈여겨보고 있어. 그러니까 잘 해내렴, 지훈아.”연지훈의 눈빛은 매우 담담했다.“알겠습니다.”서현주는 저택을 나온 후, 이사 생각을 더욱 굳혔다.그렇게 머릿속에 온통 이사로 가득 찼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부동산 문 앞에 떡하니 서 있었다.그녀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부동산 직원이 한창 매물을 소개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녀의 휴대폰이 울려대고 메시지가 와르르 쏟아졌다.주머니에서 꺼내 보자 죄다 같은 반 친구들이 보낸 문자였다.[현주야, 학교 커뮤니티 좀 봐봐!][그거 진짜야?][네가 남자애랑 호텔 갔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빨리 가서 봐봐. 지금 온 학교가 다 알걸. 선생님들도 알아.]서현주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학교 커뮤니티에 들어가 보니 맨 위에 자신의 가십거리에 관한 글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충격! 모 재벌가 양녀, 어젯밤 남자애와 함께 호텔에... 너무 무리한 탓인지 오늘 하루 병가? 남주는 이미 전학 감!]서현주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게시글을 클릭하자 몰래 찍힌 사진이 몇 장 나왔다.사진 속 그녀는 박민우에게 부축을 받으며 호텔로 들어가는 뒷모습과 옆모습이 찍혔다. 고화질에 각도가 상당히 애매했다.이 게시글에 댓글이 이미 천 개가 넘게 달렸다.[다들 몰랐어? 얘 원래 이런 애잖아. 연씨 일가 연 대표님 침대까지 기어오르려고 한 애야. 대표님 약혼녀 있는 거 뻔히 알면서도 좋아했대. 진짜 너무 뻔뻔한 거 아님?][엥? 나 걔 같은 반 친구인데 오늘 아프다고 진짜 안 나옴. 설마 그 남자애랑 밤새 놀다가 힘들어 병난 거 아님?][나 그 남자애 알아. 오늘 아침 일찍 가족이 와서 전학 수속 밟았어. 아마 가족들이 알게 된 모양이야.]서현주는 휴대폰을 거둬들이고 서서히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부동산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서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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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서현주는 마치 손가락에 바늘이 찔린 것처럼 따끔하고 저렸다.“사실이라니요? 전부 다 거짓말이에요...”그녀는 별안간 무기력함을 느끼고 휴대폰을 쥔 손까지 파르르 떨렸다.연지훈은 안 믿어줄 게 뻔하다. 전생처럼 유이영이 그녀를 어떻게 모함하든 연지훈은 언제나 유이영의 편이었다.서현주가 대답했다.“됐어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전화를 끊기 직전, 연지훈이 뜬금없는 말을 툭 내뱉었다.“현주야, 네가 끓여주는 죽을 마신 지 오래됐네.”순간 서현주의 눈동자가 떨렸다.죽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것들이 있었다.연지훈은 늘 유이영을 위해 요리했지만 이 남자가 요리를 싫어한다는 것을 서현주는 너무 잘 안다.결국 서현주가 열심히 요리를 배워서 연지훈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시절, 그와 함께 지냈던 시절에 끊임없이 이 남자를 위해 요리했고 거의 요리사를 자처할 지경이었다.환생한 이후, 그녀는 연지훈을 위해 요리한 적이 아예 없었다.지금 이 남자의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서현주는 쓴웃음을 지었다.“왜요? 사랑하는 사람이 요리하는 게 아까워서 날 가정부 취급하려고요?”그녀는 연지훈이 더 말하기 전에 전화를 끊었다.전생에 그녀는 연지훈에게 충분히 공짜 가정부 노릇을 해왔었다.이번 생에는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이 남자를 위해 밥 한 끼 차려주지 않을 것이다.확실치는 않지만 연채린이 입원한 병원은 연씨 가문의 개인 병원일 가능성이 컸다.병원이 멀지 않아 택시로 10분도 걸리지 않았다.서현주는 곧게 VIP 병동으로 향했다.연채린의 병실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평소 공부보다는 게임에 푹 빠져있었고, 게임할 때 큰소리로 중얼대거나 상대편을 욕하기도 했다.굳이 귀 기울이지 않아도 연채린의 병실을 찾을 수 있었다. 저 정도로 소란을 피운다면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민원을 제기할 게 뻔했다.서현주는 곧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병실 안에서 연채린이 멀쩡하게 양반다리를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 주야장천 화면을 두드리며 심한 욕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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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서현주는 뒤로 물러나 연채린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접속했다.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연채린이 올린 게시물을 발견했다. 댓글은 이미 3천 개를 넘어섰고, 거의 전교생이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서현주는 망설임 없이 게시물을 삭제했다.연채린이 달려들자 그녀는 순순히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이제 막 욕설을 퍼붓고 싶었으나 미처 입밖에 내뱉지도 못했다.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으니까.찰싹.서현주가 그녀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 순간 새하얀 피부에 붉은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떠올랐다.유이영이 다가와 연채린을 부축하며 눈썹을 찌푸렸다.“현주 씨, 왜 이러는 거예요?”서현주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유이영 씨도 다 알면서 왜 이렇게 위선적이에요?”유이영은 그녀를 보며 실소를 터트렸다.“내가 뭘 알아요? 고등학생이 학교도 안 가고 남자애랑 호텔에 갔다는 거요?”연채린이 고개를 확 들고 그녀를 노려보았다.“네가 자존심도 없이 그런 짓을 했으니 단지 그걸 퍼뜨렸을 뿐인데 뭐가 문제야? 너 스스로 천박하게 굴어서 걸린 거잖아. 대체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미쳐 발광하는 건데?”서현주가 피식 웃었다.“잘 들어, 채린아. 네가 올린 게시물의 조회수랑 ‘좋아요’ 수를 봐봐. 이 정도면 난 충분히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어. 사리 분별도 못 하고 예의도 없는 년, 너 같은 건 왜 사냐?”서현주는 망설임 없이 다시 손을 들어 연채린에게 두 번째 타격을 날렸다.짝.하지만 이번 타격은 연채린의 뺨이 아닌, 유이영의 팔에 맞았다.유이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낮게 신음했다. 머리를 들자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가득 고여 실로 처량해 보였다.“현주 씨, 왜 자꾸 채린 씨 때려요?”연채린의 눈가에 희미한 웃음기가 스치더니 곧장 분노했다.“서현주, 날 때리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이영 언니한텐 손대지 말았어야지. 언니가 뭘 잘못했는데?”서현주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아니라...”“서현주.”별안간 연지훈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노 조로 말했다.서현주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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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연채린이 참지 못하고 웃었다.“현주야, 이영 언니 때리는 건 우리 오빠 무시하는 거야. 넌 이제 끝났어. 아무도 널 구해줄 수 없어.”서현주는 성큼성큼 다가오는 연지훈을 바라보았다.피할 수 없는 이 남자, 서현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연지훈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곧이어 연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잡더니 병실 밖으로 거칠게 끌어냈다.연지훈은 보폭을 크게 내디뎠고 이에 서현주는 그의 발걸음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그녀는 연지훈의 손등을 내리쳤다.“놔요, 이거 놓으라고!”연지훈은 그녀를 끌고 병원 구석으로 가서 벽에 확 밀어붙였다.이 남자가 힘 조절을 못 한 바람에 서현주가 재빨리 손을 뒤통수에 대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벽에 부딪혔을 것이다.눈을 뜨자 연지훈이 그녀의 턱을 움켜잡고 얼굴을 들어 올렸다.날카로운 눈빛과 분노를 억누르는 말투...“서현주, 대체 언제까지 말썽 피울래? 이제 하다 하다 사람을 쳐?”“연채린이 맞을 짓을 한 거잖아요!”서현주가 미간을 구기고 피식 웃었다.“왜 난 가만히 있어야만 해요? 다들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서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못 본 척해야 해요? 그게 맞는 거예요? 지훈 씨가 유이영 좋아하는 거 알아요. 연채린은 또 사촌 동생이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사사건건 다 참아주고 걔네 멋대로 하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예요?”“연채린이 사람 불러서 날 때리고 심지어는 날 해치려고 했어요. 학교 커뮤니티에 악의적인 게시글을 올려서 날 비방했고요. 알아요, 걔는 멍청해서 이런 짓까지 꾸밀 능력이 못 되죠. 그럼 과연 누가 뒤에서 조종했을까요?”“당신들도 그래. 뻔히 다 알고 있으면서! 연채린이 가해자고 난 피해자인데 할아버지랑 지훈 씨는 죄다 나더러 입 다물고 있으라네요. 박민우는 이 도시에서 쫓아내기까지 했고요. 난 지금까지도 연채린한테 사과 한마디 듣지 못했어요. 단 한마디도요! 그리고 지훈 씨도!”서현주의 눈동자에 야유가 잔뜩 담겼다.“연채린이 사람 시켜서 날 해친 걸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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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서현주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연승재가 대문에서 그녀를 막아섰다.연승재는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입을 굳게 다물고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듯했다.“병원에서 채린이랑 이영 누나 때렸다고?”그는 팔을 뻗어 서현주를 막아섰다. 주먹을 불끈 쥐어서 손등에 실핏줄이 튀어 올랐다. 마치 언제라도 주먹을 날릴 준비가 된 듯했다.서현주는 옥고리를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면서 차분하게 물었다.“그럼 또 어쩔 건데요?”순간 연승재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퍽!명쾌한 타격음이 병원에서 서현주가 연채린을 때렸던 소리보다 더 컸다.서현주는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고 머리카락 몇 가닥이 얼굴을 스쳤다. 뜨겁게 타오르는 볼에서 서서히 고통이 전해지고 귀에는 윙윙 소리만 울려댔다.한편 연승재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분노가 담겨 있었다.“현주 넌 여전히 노답이구나. 이런 것도 동생이라고 여긴 내가 한심하지, 쯧쯧.”‘동생?’서현주는 한심해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연승재는 항상 온화하고 차분한 태도에 비주얼도 나름 봐줄 만 해서 좋은 평판을 유지해왔다. 동생 연채린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오빠였다.서현주는 연씨 가문에 오기 전, 연승재에게 기대를 걸었었다. 자신도 여동생처럼 대해주기를, 연채린의 1%만큼이라도 말이다.처음에는 연승재도 그녀에게 다정했고 많이 챙겨줬었다.서현주는 그의 따뜻함에 취해 매일 오빠라고 부르면서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오빠도 여동생을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겨 세우지는 않는다.또한 어떤 오빠도 자신의 여동생을 중년 남자와 은밀한 방에 남겨두지 않는다.연승재는 달랐다.전생에 서현주의 생일날, 그는 신비로운 표정으로 드레스를 한 벌 건넸는데 아주 아름답고 몽환적인 드레스였다. 그는 서현주를 위해 성대한 생일 파티를 직접 기획했다고 말했다.서현주는 들뜬 마음으로 드레스를 갈아입고 사람들 가운데 서서 기다렸다.이때 연승재가 그녀의 등 뒤에 서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드레스 뒤쪽 끈을 잡아당겼다.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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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서현주는 한 손으로 드레스를 꽉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연승재를 밀치며 외쳤다.“내려갈래요. 내려가게 해줘요!”이때 연승재가 갑자기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그녀의 시선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연지훈과 유이영을 향했다.연지훈은 와인잔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유이영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유이영은 그의 품에 기댄 채 서현주를 바라보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연지훈의 시선은 무심하게 그녀에게 머물렀다가 곧장 더러운 물건이라도 본 것처럼 고개를 홱 돌렸다.유이영은 그가 마시던 와인잔을 받아들고 붉고 도톰한 입술을 망설임 없이 연지훈이 입을 댔던 부분에 갖다 댔다.서현주는 온몸이 굳어버렸다.“다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그녀는 연지훈에게 도움을 구하고 싶었지만 연승재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그녀의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현주야, 지훈 형은 이 일을 알고 있었을까 몰랐을까?”순간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뼛속까지 차가워졌다.연승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난 너 안 속여. 지훈 형은 처음부터 우리 계획을 알고 있었어.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행동을 묵인하고 있었던 거야.”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형은 대체 왜 안 말렸을까?”서현주가 씁쓸하게 물었다.“왜죠?”“네가 자꾸 이영 누나 괴롭히니까...”아니, 그녀는 전혀 그런 적이 없다.“누나는 우리 형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당연히 누나를 위해 나선 거지.”묵인하고 나서주기까지?서현주는 연지훈한테 줄곧 이토록 보잘것없는 존재였다니.그 후의 일은 서현주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뭇사람들 앞에서 기절했고 병원에 실려 갔으며 바로 그날 뭇사람들과 함께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그녀는 연지훈의 아이를 가졌다.또 그 뒤론 연승재에게 끌려가 강제로 연회에 참석했고 중년 남자에게 담보로 넘겨졌다.갑자기 멈춘 기억,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지만 서현주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 등을 파고들던 차가운 바람을.다행히 이 모든 일은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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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서현주는 연승재에게 목이 졸려 숨쉬기 힘들었지만 여전히 웃어 보였다.“네 꼴 좀 봐. 진짜 무능하다 너. 병X 같이 뒤에서 아양 떨고 있냐? 미친! 몇 년씩이나 유이영 꽁무니 쫓아다녔는데 네가 얻은 게 뭐야? 연지훈이랑 유이영 백년해로할 때까지 지켜볼 셈이니?”연승재는 그녀를 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말 함부로 하지 마!”그녀는 연민하는 척하는 눈길로 연승재를 바라봤다.이 남자는 애석하게도 다가올 처참한 미래를 전혀 모른다. 나중에 그는 유이영과 연지훈의 아이를 위해 죽게 될 것이다.결국 그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이런 전개라면 꼭 마치 유이영이 여주인공이 된 스토리 같았다.모든 사람이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를 위해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심지어 늘 거만했던 연지훈과 연승재까지도 한결같이 그녀에게 마음을 주고 일편단심에 헌신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영락없는 여주인공이겠지.반면에 서현주는 유이영이라는 여주인공 스토리 속 조연에 불과했다. 버려지고 짓밟히도록 주어진 운명이랄까?서현주는 절대 여기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설령 연하나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이 사람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 것이다!별안간 연승재가 침착해지더니 차갑게 웃었다.“서현주, 넌 더 이상 연씨 가문에 살 수 없어.”서현주가 야유를 날렸다.“내 소원대로 됐네.”연승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손에 힘을 가했다.이에 서현주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연승재를 노려보았다. 그녀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연동욱의 격노한 외침에 연승재가 돌연 손을 놓았다.마침내 숨통이 트인 그녀는 벽을 짚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구석에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엄진경이 달려 나와 서현주를 부축하며 뒤로 물렸다. 그녀는 연승재를 경계하며 말했다.“승재야, 아무리 그래도 현주한테 이러면 안 되지.”연동욱이 가까이 다가와 혼탁한 눈길로 묵묵히 연승재를 쳐다봤다.“승재 넌 서재로 가서 반성하고 있어.”연승재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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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런데 이번 일은 오죽할까?결국 그들이야말로 한통속이고 서현주와 엄진경은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서현주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알았어요. 오늘 당장 짐 싸서 나갈게요.”연동욱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떴다.엄진경은 그녀의 등 뒤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현주야, 대체 이게 무슨 짓이야! 듣기 좋은 말이라도 좀 해보지 그랬어. 어르신 마음 약해서 우릴 남겨주셨을지도 모르잖아. 쫓겨나다니, 이게 말이 돼?”별장의 가정부들은 측은해하면서도 깨고소하다는 눈빛으로 그들 모녀를 쳐다봤다.“그래서 엄마도 요즘 일어난 일을 다 알고 있었던 거예요?”엄진경이 돌연 입을 다물었다.서현주는 몸을 돌려 싸늘한 눈길로 엄마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왜 날 위해서 나서주지 않았어요? 어떻게 위로 한 마디 없냐고요?”엄진경은 입을 달싹였지만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서현주는 문득 웃음을 터뜨렸다.“괜찮아요, 이해해요. 엄마도 연씨 가문의 권세에 짓눌려 감히 날 위해 나서지 못했을 뿐이잖아요. 다 이해해요.”엄진경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볍게 웃었다.“네가 이해해준다니 다행이다. 어차피 넌 조금 다친 것뿐이니 어르신 말씀대로 하는 건 아무 문제 없잖아.”서현주가 물었다.“그럼 만약 다음에 이 사람들이 내 목숨을 노린다면요? 엄마가 막을 능력이라도 있어요? 아니면 내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나요?”엄진경은 순간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서현주는 몸을 돌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말했다.“그러니 엄마도 내가 죽길 바라는 게 아니라면 함께 여기서 나가야 해요.”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이곳을 벗어나고픈 마음에 아주 빨리 짐 정리를 마쳤다.엄진경 역시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아니면 해탈인지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이곳을 떠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저택의 가정부들은 이들 모녀가 떠난다는 소식을 거의 다 알게 됐고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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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서현주는 덤덤하게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의 야경을 바라보았다.연씨 저택은 도심의 별장 구역이라 꽤 넓고 조용한 편이었다. 또한 멀리서 간간이 사람 몇몇이 보일 뿐이었다.차가 별장 입구에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차분해졌다.전생에 연씨 저택은 그녀에게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겨운 기억들로 가득했다.그녀가 연하나를 낳았을 때, 병원이 아닌 연씨 저택에서 출산했다.터무니없고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연씨 가문 사람들은 연지훈까지 포함해서 그녀가 이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 자체가 창피하고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이라고 여겼다.결국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모든 산부인과 검진과 출산까지 연지훈은 전문가들을 연씨 저택에 불러와서 진행했고 배가 나온 뒤로 그녀를 단 한 발짝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당시 그녀는 성인이었지만 여전히 학생이었고 임신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연씨 가문 사람들은 그런 그녀에게 과외 선생님도 붙여주지 않아서 모든 것을 독학해야 했다.겨우 수능을 치를 수 있게 됐고 연지훈에게 수능을 보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싶었다.하지만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같은 임산부인 유이영이었다.유이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수능 당일 그녀의 수험표와 신분증을 빼앗고 방문과 창문까지 싹 다 잠가버렸다.서현주는 도망칠 수 없어서 끝내 수능의 기회를 놓쳐버렸다.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눈앞엔 차가운 빛만 가득 남았다.시간을 계산해보자 이번 달이 유이영이 연지훈의 아들을 임신할 시기인 듯했다.약 10개월 후, 유이영의 아이가 태어날 것이다.서현주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의 손톱이 부드러운 손바닥을 파고들 지경이었다.안타깝게 죽은 연하나를 그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이 대가는 반드시 유이영이 치러야 한다.한편 엄진경은 연지훈의 차량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기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현주야, 지훈이한테 한번 말해봐 봐. 어쩌면 우릴 이곳에 남겨두도록 허락해줄지도 모르잖아.”서현주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야유를 날렸다.“연채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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