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아니고...”이미숙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우리 손자가 아가씨를 한번 만나보고 싶다네?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아서 나도 잘 몰라. 며칠 후 시간 괜찮으면 우리 집에 올 수 있을까?”행여나 온채아가 이상한 걱정을 할까 봐 이미숙은 재빠르게 말을 덧붙였다.“절대 딴마음을 품는 그런 사람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냥 아가씨랑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는 거지.”사실 온채아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았다.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는 말이 있듯이 이미숙이 좋은 사람인 만큼 그녀의 손자 역시 참 괜찮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할머니, 지금은 시간이 될지 확실하지 않아요. 바쁜 일이 끝나면 연락드릴게요.”“알았어.”이미숙은 다급하게 답하고선 잠시 머뭇거리다가 또 한 번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아가씨, 혹시 무슨 어려운 일이라도 겪고 있는 거 아니지? 힘든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언제든 도와줄 수 있으니까.”온채아의 마음이 따뜻해졌다.“아니에요,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이미숙이 분명히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의 할머니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주율천의 세력은 경성에서 성유준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굳이 이미숙을 이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그럼 바쁘게 일 봐. 방해하지 않을게. 일 끝나면 언제든 우리 집에 놀러 와.”“알겠어요.”온채아가 통화를 마친 순간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고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작은 사모님, 저예요.”오경애가 말했다.온채아는 잠시 머뭇거렸다가 문을 열며 대답했다.“아주머니는 저희가 아주 오래전에 이혼했다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앞으로는 그냥 이름으로 부르세요.”온채아가 처음으로 민은하와 뜻이 같았을 때 오경애가 옆에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그럴게요.”오경애는 잠시 주저하다가 따뜻한 우유 한 잔과 딸기 케이크 한 조각을 그녀에게 건넸다.“저녁을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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