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주율천은 심서정을 피하며 빈 조수석에 케이크를 내려놓았다.“채아는 어려서 달달한 거 좋아해. 넌 요즘 설탕 끊었다며?”심서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율천을 바라봤다.부드럽고 잘생긴 얼굴은 아무리 봐도 변한 게 없었다.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심서정은 문득 깨달았다. 마음이 변했구나.언제나 온채아를 동생이라 말했지만 결국엔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당사자인 주율천은 모르고 있었다.손톱이 손바닥에 박힌 정도로 주먹을 불끈 쥔 심서정은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주율천을 바라봤다.그러나 이번에는 온채아에게 마음이 있는지 다시 묻지 않았다.“너는 다른 친구 동생에게도 항상 이렇게 잘해주는 편이지?”“채아는 나랑 결혼하려고 유준 형이랑 싸운 애야.”주율천은 쓸데없는 그 질문이 귀찮게 느껴졌다.“당연히 잘해줘야지.”...집에 돌아온 온채아는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정다슬이 체리 한 접시를 들고 나타갔고 입에 하나 넣어주며 말했다.“말해봐. 무슨 일인데?”“응?”“그닥 속상해 보이지는 않는데...”정다슬은 체리씨를 뱉으라며 자연스레 티슈 한 장을 뽑아줬다.“그래도 나의 예리한 눈초리를 피할 순 없지. 너 지금 기분 안 좋잖아.”온채아는 웃음을 터뜨렸다.자식처럼 챙겨주는 여승운과 손정원, 늘 곁에 있어 주는 정다슬이라는 좋은 친구를 보니 자신의 삶이 최악은 아닌 것 같았다.온채아는 드라이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 선생님 집에서 나오면서 누구 만났는지 알아?”“누구?”“주율천이랑 심서정.”온채아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을 이었다.“선생님한테 심서정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부탁하려고 찾아간 모양이야. 앞날이 걱정됐나 보지.”그녀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에 휩싸였다.주율천이 여승운과 친해지게 된 것도, 바로 그녀가 중간에서 이어줬기 때문이다.온채아는 주율천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이 관계를 이용해 다리를 놓아줄 줄은 생각도 못 했다.슬프다기보다는 마치 누군가에게 뺨 맞은 더러운 기분이었다.“도대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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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그래?”주율천은 잠시 망설이다가 답했다.“내일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늦게 끝날지도 몰라.”온채아의 마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알겠어요.”“말 아직 안 끝났는데 뭘 알겠어요야.”주율천은 부드럽고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널 데리러 갈 시간이 안 될 것 같다는 얘기였어. 성씨 가문 본가 앞에서 만나도 되겠지?”그제야 긴장이 풀린 온채아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당연히 되죠.”혼자 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게 아니라면 뭐든지 괜찮았다.“집 언제 들어올 거야?”온채아는 바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곧 들어갈 거예요.”그러자 주율천이 상냥하게 답했다.“너 주려고 케이크 샀어. 냉장고에 넣어놨으니까 까먹지 말고 꼭 먹어.”온채아는 어리둥절했다.명품을 사줬다면 오히려 놀랍지 않았겠지만 케이크를 사다 준 건 오늘이 처음이어서 다소 의외였다.“오빠, 고마워요.”놀란 것도 잠깐일 뿐 기분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심서정이 올린 SNS를 보게 되었다.[아침에 빈말로 케이크 먹고 싶다고 했는데 이렇게 바로 사왔네.]그건 주율천이 산 케이크가 틀림없었다.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두고 위에 누운 온채아는 성씨 가문 가족 모임을 생각하기만 해도 또다시 마음이 착잡해졌다.솔직히 말하면 소원희에게 감사한 마음도 있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고아원에서 보낸 두 달은 다섯 살의 어린 온채아에게 정말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그곳에서 온채아는 한 살 많은 언니를 만났는데 고아원 아이들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였다.들어가자마자 찍힌 온채아는 온갖 아이들의 미움을 샀다.아무도 온채아와 놀아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엄마가 사준 치마를 찢어버리거나 공주 신발에 못을 숨겨두며 괴롭혔다. 심지어 가끔은 색연필로 얼굴에 거북이를 그려놓고 놀렸고 온채아가 태어나면서부터 목에 걸고 있던 옥 펜던트마저 빼앗았다.고아원 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말했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온채아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했고 선생님은 당연히 그녀를 믿지 않았다.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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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일 년에 두 번 씩 건강 검진을 예약해 주는 성유준은 누구보다 이미숙의 몸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다.이미숙은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돌팔이라니. 그 의사 아가씨가 얼마나 괜찮은지도 모르면서. 실력도 좋고, 성격도 좋고...”말을 이어가던 이미숙은 갑자기 두 눈이 반짝 빛났다.“내 손녀 며느리로 딱이야.”성유준은 머리가 아픈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이제 보니 여자만 보면 다 손녀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하시네.”“왜? 이 할머니 안목을 못 믿겠어?”“모든 만남에 인연이라는 게 있는 거예요.”“인연? 일단 얼굴이라도 봐야 인연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거지.”이미숙은 결코 넘어가지 않았다.“기다려봐. 내가 한의원을 자주 가서 그 의사 아가씨랑 친해지면 데려와서 소개해 줄게. 정말 착하고 예뻐.”“할머니.”끊임없는 잔소리에 머리가 어질해진 성유준은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배고파요.”“배고파?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밥을 안 먹었어? 기다려봐.”이미숙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팡이도 짚지 않은 채 부엌으로 달려가 성유준에게 줄 국수를 끓였다.옆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성일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의사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요? 어르신이 혹시나 사기당하실까 봐...”“그럴 필요 없어.”성유준은 그릇에 담긴 한약의 냄새를 맡아보더니 무덤덤하게 말했다.“할머니의 기분이 제일 중요해.”“그럼 이 약은...”“기력 회복에 좋은 건강 차야. 할머니의 돈을 노린 거지.”성유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기대고선 긴 다리를 꼬며 싸늘하게 말했다.“괜찮아. 그 여자를 집에 데려오지만 않으면 돼.”“알겠습니다.”답을 한 후 휴대폰을 확인한 성일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말했다.“내일 성씨 가문의 가족 모임에 아가씨가 참석한다고 합니다.”성유준은 곧바로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언제 뭐 빠졌던 적 있어?”“하지만 이번에는 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안 가실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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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괜찮아요.”온채아는 백미러에 비친 기사의 어두운 얼굴을 살펴보며 말했다.“저는 괜찮은데 기사님이 걱정이네요. 심장이 안 좋은 편이시죠? 되도록 추위를 피하시는 게 좋아요.”운전기사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어떻게 아셨어요?”온채아가 답하기 전에 기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병이 딸한테도 유전됐어요. 그래서 지금 딸 수술비 모으는 중이거든요.”온채아는 아까 우연히 휴대폰 배경 화면으로 설정해 둔 그의 딸 사진을 봤었다.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눈이 큰 여자아이였는데 아픈지 많이 야위었다.온채아는 마음이 불편했다.“얼마나 더 모아야 하는데요?”운전기사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거의 다 됐어요. 이제 6,700만 원만 더 모으면 바로 수술 일정 잡을 수 있어요.”솔직히 딸의 병세로 봐서든 그 돈을 모을 때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온채아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온채아는 주율천과 함께 들어가기 위해 성씨 가문 본가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결재한 후 내렸다.거위털 같은 눈이 펑펑 쏟아졌다.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자 온채아는 휴대폰을 꺼내 주율천에게 전화를 걸었다.“오빠, 얼마나 더 걸려요? 본가 근처 정자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채아야...”주율천은 잠시 망설인 듯 보였다.“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일단 먼저 들어가. 일 끝내고 바로 갈게. 괜찮지?”온채아는 안 된다고 대답할 권리가 없었다.밖에서 너무 오래 기다린 탓에 얼굴이 얼어붙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대충 몇 시쯤 올 거예요?”“음... 7시 반 전에는 꼭 갈게.”“알겠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전화를 끊은 온채아의 얼굴엔 실망이 스쳤지만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혼자 본가로 걸어갔다.온채아는 확신했다. 오늘 밤, 주율천은 오지 않을 것이다.순간 그녀는 주율천의 작은 죄책감을 이용해 성씨 가문에서 위기를 넘기려 했던 자신이 우스웠다.예전에 주석현이 살아 있었을 때 주율천은 성씨 가문과의 공식적인 석상에서만 온채아를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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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온채아는 두 걸음 물러서며 거리를 두더니 성윤혁의 손에서 옷깃을 잡아당겼다.식사를 준비하던 도우미들은 부엌으로 들어가 바쁘게 일에 몰두했고 레스토랑에는 온채아와 성윤혁만 남았다.온채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비웃으며 말했다.“뭐야? 또 해외로 도망가려고?”“온채아!”성윤혁은 갑자기 온채아의 목을 움켜잡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X발. 좋은 말로 할 때 알아들어야지. 너 같은 것 때문에 도망갈 것 같아?”“그렇게 대단하면 날 한번 죽여보던가.”온채아는 숨이 막혔지만 고개를 들고 성윤혁을 똑바로 노려보며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무섭지? 그럼 손 떼. 개처럼 짖지 말고.”그러자 성윤혁은 피식 웃고선 만족스럽다는 듯 온채아를 바라봤다.“몇 년 만에 보니까 더 흥분되네. 해외로 떠나기 전에 내가 널 한번 맛봤어야 하는 건데. 주율천 그 자식만 땡잡았어.”성윤혁은 손을 풀고 온채아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도 뭐 괜찮아. 유부녀는 또 다른 맛이...”찰싹.온채아는 뺨 한 대를 후려갈기며 그의 말을 끊었다.선명하고 우렁찬 소리가 울려 퍼지자 홀에 있는 사람들도 의아해했지만 파티션 너머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이때 성희진이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성윤혁은 분노에 가득 찬 눈빛으로 온채아를 노려보더니 한 대 칠 기세를 보였다.명색에 성씨 가문 둘째 아들인데 여자를 상대로 이런 굴욕을 당하는건 참을 수 없었다.온채아도 물러서지 않고 그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어디 한번 쳐봐. 내가 얘기를 안 했나? 너 벌거벗은 사진 몇 장을 갖고 있거든.”표정이 돌변한 성윤혁을 보자 온채아는 그저 웃음이 나왔다.“널 죽이고 싶어 하는 원수들은 그 사진들을 원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윤혁이랑 채아니?”아무리 불러도 답이 없자 성희진이 걸어오며 물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성윤혁은 죽일 듯한 표정으로 온채아를 바라봤으나 결국에는 말을 돌렸다.“벌레에 앉은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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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소원희는 명성을 위해 성윤혁을 6년간 해외에 보내기로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비록 그 일이 일어난 후 하루하루 더 괴로웠지만 적어도 온채아는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느끼지 않았다.잠을 자는 순간에도 변태에게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던 때와 비교하면 다른 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X발...”분노로 이성을 잃은 성윤혁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는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온채아에게 다가갔다.“설마 잠이 안 올 때마다 그 사진을 보는 거야? 왜? 주율천이 만족 못 시켜줘?”성윤혁의 뻔뻔스러움을 과소평가했던 온채아는 역겨워서 토나올 지경이었다.그녀는 보란 듯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신체 발육이 부족한 남자애한테 관심이 생기겠냐?”그 말을 끝으로 온채아는 돌아서서 떠났다.성윤혁은 전형적인 약자에게만 강한 스타일이다. 무서워할수록 끝까지 집착하기에 이런 타입은 차라리 대놓고 맞서 싸우는 게 답이다.특히 6년 전의 그 일 이후로 성윤혁은 가슴 깊이 온채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얻을 수 없는 것을 정복하려는 본능이 있다.온채아의 부드러운 손을 통해 느껴졌던 감촉에 성윤혁은 마음이 흔들린 듯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더 보고 싶지 않아? 내가 다 보여줄게.”누가 봐도 온채아에게 욕먹고 짜릿함을 느낀 변태처럼 보였다.온몸에 소름이 돋은 온채아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며 소리를 질렀다.“이거 놔.”“도련님 오셨습니다.”거실에서 갑자기 성탁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얘기를 들은 온채아는 그대로 얼어붙었다.“X발. 도대체 여긴 온 거야.”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성윤혁은 손을 풀더니 잔뜩 화난 목소리로 경고했다.“아무 말도 하지 마.”“그건 내 기분 봐서.”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긴 온채아는 알콜 솜으로 손을 닦으며 얼굴에 억지웃음을 짓고 밖으로 나갔다.뜨겁게 달아오른 거실의 분위기는 온채아가 왔을 때와는 매우 상반됐다.성유준은 늘 남다른 아우라를 뿜어내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훤칠한 키와 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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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본능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온채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요즘 계속 바빠요. 일이 빨리 끝나면 온다고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참...”소원희는 온채아를 바라보며 비웃었다.“일 때문에 바쁜 거야, 아니면 다른 것 때문에 바쁜 거야?”온채아는 고개를 숙이고 답했다.“할머니...”“남자 마음 하나 잡지 못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소원희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망설임 없이 온채아의 체면을 깎아내렸고 말투에는 경멸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네티즌들이 심서정을 옹호하고 있는 건 알고 있지? 사람들이 널 어떻게 욕하면서 수군거리는지 알긴 하니?”온채아는 알지 못했다.그러나 선을 그은 성유준조차 그날 밤에 귀띔을 준 걸 보면 듣기 거북한 얘기가 떠돌고 있는 게 분명했다.“사람들이 성씨 가문에서 너를 학대해서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사는 거래.”소원희는 손가락질하며 호통쳤다.“직접 얘기해 봐. 성씨 가문에서 널 괴롭힌 사람이 있니? 왜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지 못해서 안달이니. 좀 조용히 살면 안 되는 거야?”온채아는 고개를 숙인 채 바닥을 쳐다보며 모든 쓴소리를 달게 받았고 소원희의 화가 풀릴 때까지 벌을 받기로 결심했다.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한 마디 명령이 떨어졌다.“나가서 무릎 꿇어.”밖은 여전히 폭설이 펑펑 쏟아졌지만 성씨 가문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누군가는 성유준이 막을 것이라고 생각해 자연스레 시선을 돌렸다.결국 온채아는 성유준 손에서 자란 사람이나 다름없기에 그가 약간의 연민이라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하지만 성유준은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개조차 들지 않았고 온채아를 모르는 사람 취급을 했다.“할머니...”모두의 예상과 달리 입을 연 사람은 성윤혁이었다.“밖에 눈도 오고 있는데 무릎 꿇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동상이라도 걸리면 어떡해요.”‘다리가 잘못되면 내가 가지고 놀 수가 없잖아.’소원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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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성씨 가문에서 별일 없었지?]메시지를 확인하고 표정이 얼어붙은 온채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답장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았다.본가에 들어오기 전 주율천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가 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메시지를 받으니 여전히 실망스러웠다.주율천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가 오지 않으면 온채아가 성씨 가문에서 온갖 구박과 괴롭힘을 당하는 걸.그럼에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차가운 밤바람과 함께 불어온 추위는 살을 에듯 숨 쉬는 것조차 아플 정도였다.마음을 가라앉히고 휴대폰을 주우려던 그때 한 그림자가 드리웠다.그 그림자는 온채아보다 더 빠르게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번쩍 안아 올리고선 어깨에 지고 걸어 나갔다.“성유준!”너무나 익숙한 숨소리에 온채아는 확인할 필요도 없이 그의 정체를 알아봤다.“이거 놔요.”성유준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여전히 따뜻함이라곤 전혀 없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왜 이번엔 대표님이 아니야?”온채아는 잠시 멈칫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대표님, 제발 내려주세요.”성유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왜? 무릎 더 꿇고 싶어서 그래?”그건 아니지만 소원희의 구박과 괴롭힘이 두려워 섣불리 물러날 수 없었다.이때 성탁수가 다급하게 뛰어나와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도련님은 가셔도 되지만 채아 씨는 안 됩니다.”“온채아가 누구랑 같은 호적에 있는지 확인하고 다시 찾아오세요.”성유준은 전혀 흔들림 없이 제 갈 길을 갔고 내딛는 걸음마다 단호함이 묻어났다.“건드리지 마요. 안 그러면 다음에 상어 먹이가 될 사람은 성윤혁이니까.”호적 얘기가 나오자 온채아는 문득 뭔가가 떠올랐다.몇 년 전 성유준이 그녀를 데려와 키울 때 자연스레 호적을 옮겼다.주율천과 결혼하면서 호적 얘기가 나왔었는데 성유준은 귀찮은 듯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도와주겠다는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결국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졌고 시간이 흐린 지금에야 온채아는 아직 성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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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온채아는 당황한 듯 잠시 멈칫했다.그러나 이내 마음속의 모든 의문을 눌러두고 고개를 돌려 성유준을 바라보더니 차갑고 단호하게 인사했다.“대표님,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아가씨...”성일이가 입을 열어 말하려던 순간 성유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됐어. 자존심 상하게 그러지 마.”온채아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지만 떠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검은색 마이바흐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성일이 중얼거렸다.“중간에서 가로채는 건 너무 치사한데...”“혼자서 뭐라는 거야.”성유준은 한마디 툭 던지고선 담배를 꺼내며 몸을 구부려 차에 올라탔다. 그의 모습은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유난히 외롭게 느껴졌다.성일은 조수석에 앉으며 답했다.“별말 안 했어요. 전 그냥 아가씨가 주율천 씨에게 유난히 관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솔직히 아가씨는 대표님을 만날 때마다 화가 난 사람처럼 날이 선 모습을 보였잖아요.”“그런데 왜 주율천 씨에겐 화를 안 내는 거죠? 큰 상처를 준 것도 모자라 비겁하게 가족 모임에 동행하지도 않고... 이런 취급을 받는 게 따지고 보면 다 주율천 씨 때문이잖아요.”차 안은 순식간에 쥐 죽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등에 꽂힌 싸늘한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 성일과 달리 운전석의 성이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말했다.“그건 당연히 좋아해서 그런 거죠. 스스로의 한계치를 낮추더라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관대해지는 게 당연하잖아요.”성일은 온채아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난 그런 거 안 믿어.”“믿든지 말든지. 어차피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성이는 백미러로 성유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대표님 생각은 어때요?”“언제부터 말이 이렇게 많았지?”성유준의 단호한 얼굴은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비쳐 더욱 차갑게 느껴졌고 목소리는 묵직하고 날카로웠다.성일과 성이는 동시에 할 말을 잃었다.‘갑자기 왜 화를 내시는 거지?’성씨 가문 본가에서 청연원까지 향하는 길은 막히지 않았지만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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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자던 온채아는 휴대폰의 진동 소리에 깨어났다.눈부신 조명에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며 바로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들고선 비몽사몽한 채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채아야, 왜 아직도 안 들어와?”정다슬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새벽 3시에 일을 끝내고 돌아왔는데 온채아가 집에 없으니 행여나 본가에서 무슨 일을 겪은 건 아닌지 걱정되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기세였다.온채아는 멈칫하며 눈을 비비더니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소파에서 일어났다.“별일 없어. 은성 그룹에서 주율천을 기다리고 있어. 지금 회의 중이거든.”“무슨 회의를 새벽 3시까지 해?”“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시간이 늦어서인지 난방마저 꺼졌고 온채아는 추워서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회의실에 한번 가봐야겠다. 금방 들어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씻고 자.”온채아는 전화를 끊은 후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더니 소파에 걸쳐놓은 패딩을 입으며 밖으로 나갔다.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서 마주한 회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다.“다들 어디 갔지?”온채아는 어리둥절했다.때마침 엘리베이터 근처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20대 초반의 한 여자가 회의실에 뭔가 놔두고 간 듯 급히 달려갔다.회의실에서 나온 그 직원은 대표 사무실에 불이 켜진 걸 보고서야 온채아를 발견했다.“왜 아직도 안 가셨어요?”직원은 흠칫하더니 부랴부랴 설명을 이어갔다.“죄송해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제가 불을 다 꺼버렸어요.”“내려가실 거죠? 그럼 같이 가요.”온채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회의는 다 끝났어요?”“네, 방금 끝났어요.”직원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대표님은 9시쯤에 전화를 받고 급히 나가셨어요. 아마 급한 일이라 말씀을 못 드린 것 같네요.”온채아는 넋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뜬금없이 케이크를 사오는 거나 걱정되어서 데리러 왔다는 등등 이런 행동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그러나 회사에 혼자 남겨두고 먼저 떠난 건 주율천이 충분히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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