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아는 잠시 멍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자 변도영이 아무렇지 않게 귤의 흰 막을 뜯어내더니 태연하게 입에 넣는 모습이 보였다.이나은과 변하늘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정작 변도영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신지아는 조금 놀랐을 뿐, 곧 담담하게 표정을 가라앉혔다.예전 같았으면 혹시나 그가 자신에게 아직 마음이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 작은 행동 하나에도 흔들렸을지 모른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수년간 변도영이 보여준 ‘증거’들이 쌓여 있는데 이제 와서 이런 사소한 행동 하나로 의미를 부여할 이유는 없었다.신지아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고 시계를 흘끗 보았다.이제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박수미에게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박수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지아야, 날 좀 데려다주겠니?”신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도 눈치챘다.박수미 역시 자신과 단둘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걸.식당을 벗어나 복도를 걷는 사이, 신지아가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자 박수미가 먼저 물었다.“지아야, 정말 마음을 정한 거니?”신지아가 잠시 멈칫하자 박수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원래라면 내가 붙잡아야겠지. 아직 끝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조금만 더 버텨보라고. 하지만 그런 말은 결국 너만 더 힘들게 만들 뿐일 거야.”박수미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서려 있었다.“그동안 네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 다 지켜봤다. 그런데도 미안하다, 지아야. 이 늙은이가 해줄 수 있는 게 참 없더구나.”신지아는 그제야 깨달았다.박수미는 이미 자신이 이혼을 결심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것을.사실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신지아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조금만 어긋나면 제일 먼저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박수미였으니까.그녀의 기억은 문득 몇 해 전으로 흘러갔다.당시 변씨 가문은 급성장 중이었고 변도영의 이름은 업계에서 날이 갈수록 유명해졌다.그러니 자연히 시기와 견제도 거세졌다.어느 날, 집에 혼자 있던 신지아 앞에 낯선 남자 넷, 다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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