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를 마치고 나니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아 있었다.갑자기 모든 게 한가해지자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누워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다시 눈을 뜬 건, 이미 다음 날 점심쯤이었다.침대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발끝에 찌릿한 통증이 몰려왔다.어제 부딪혔던 새끼발가락이 밤새 더 붓고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곧 변씨 가문에 가야 하는데 병원에 들를 시간은 없었다.신지아는 대충 약을 발라 처리한 뒤 준비해 둔 선물을 챙겨 나섰다.먼저 수리부에 들러 교통사고로 망가졌다가 이제 막 수리 끝난 차를 찾았다.그 차는 엄마가 생전에 선물해 준 신지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차였다.차창을 내리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천천히 교외로 향하자 가슴에 쌓여 있던 복잡한 감정들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변씨 가문 저택 앞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막 들어가려는 순간,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아야, 정말 너구나?”뒤돌아본 신지아는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변도영, 그리고 그의 팔짱을 꼭 끼고 있는 이나은.이나은의 다른 손에는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싸인 선물이 잔뜩 들려 있었다.둘이 꼭 부부처럼 나란히 걸어오는 모습은 이 자리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아직 이혼은 법적 효력이 생기지 않았는데도 변도영은 거리낌 없이 이나은을 데리고 온 것이다.신지아는 그 의도가 뻔히 보였다.가문에 미리 눈치를 주고 분위기를 익숙하게 만들려는 것.심장이 서늘해졌지만 끝내 체면을 지키며 담담히 인사했다.“정말 우연이네요.”억지로 지은 미소였으나 표정은 무척 자연스러웠다.변도영은 스쳐 가듯 그녀를 바라보고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나?’늘은 아니지만 예전 같으면 신지아가 먼저 사과하며 분위기를 풀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괜히 마음이 더 뒤틀렸다.그래서 발걸음이 무의식적으로 빨라졌다.이나은은 그의 보폭을 따라잡기 벅차 다소 애교 섞인 말투로 변도영을 붙잡았다.“도영아, 좀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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