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21 - Chapter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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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어이가 없어서 원

하시윤은 별로 길게 자지 못했다. 흐리멍덩 잠들었다가 비몽사몽 깨어났다.눈을 떴을 때 꿈속 장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남자와 여자가 위아래로 격렬하게 뒤엉키던 모습이었다.그건 4년 전 혼란스러운 밤의 일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그날 밤의 기억이 전혀 없었다.하병우가 하시윤에게 술을 먹였고 그 술에 약을 탔기에 필름이 완전히 끊겼다.어젯밤의 일 때문인지 그 장면이 갑자기 꿈속에서 구체적인 화면으로 떠올랐다.그때 그녀는 호텔 직원의 부축을 받아 룸으로 들어갔다. 어지럽고 더워 옷을 잡아당기며 물을 달라고 했다.직원이 물을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직원 대신 다가온 건 더 뜨거운 또 다른 몸이었다.그 밤도 무척이나 아팠다. 고통에 잠깐 정신이 들었을 때 상대의 팔을 세게 꼬집으며 물었었다.“누구야?”서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주 급해 보였고 어젯밤처럼 매우 격렬했다.하시윤은 한참 진정하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방을 나섰다.서정우에게 가보려 했는데 거실로 나와 보니 소파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서씨 가문의 한효진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있었다.하시윤이 발걸음을 멈췄다. 소파에 앉은 사람들은 얘기를 나누다가 그녀가 나타나자 하던 말을 멈췄다.한효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쟤가 바로 하씨 가문의 그 애예요.”그러고는 한마디 덧붙였다.“연정이의 부모님이셔.”하시윤은 그들을 만난 적은 없었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들어본 적은 있었다. 심씨 가문의 회사 규모가 작지 않았기에 부부는 인터뷰에 자주 등장했다.그녀의 시선이 정경란에게 머물렀다. 심연정이 어머니를 많이 닮아 있었다. 정장 차림만 아니면 온화하고 우아하며 지적인 분위기가 돋보였다.하지만 지금 하시윤을 쳐다보는 정경란의 눈빛이 썩 좋지 않았다. 정경란이 덤덤하게 말했다.“이 아가씨가 4년 전에 지혁이 앞길을 막은 그 아가씨군요.”그러고는 가볍게 웃었다.“겉보기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제법 재간이 있네요.”한효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하시윤은 상대를 똑바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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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적당히 해

하시윤은 서지혁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서정우는 오후에 오래 잔 덕에 지금은 정신이 맑아 보였다.침대에 내려놓자마자 아이는 하시윤을 향해 손을 뻗었다.“엄마, 안아줘요.”서지혁이 말했다.“계속 안아 줬잖아. 이젠 좀 혼자 놀아.”서정우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없이 하시윤을 쳐다봤다.아이의 눈빛에 마음이 녹아내린 하시윤은 급히 다가가 아이를 안아 들고 코를 비볐다.“깼을 때 왜 안 불렀어?”서정우가 말했다.“엄마가 푹 자고 있어서 안 불렀어요.”그러고는 서지혁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아빠가 깨우지 말라고 했어요.”서지혁이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오늘 오후에 심씨 가문 사람들이 왔다면서?”하시윤은 그가 오늘 일을 따지려는 줄 알았다. 어쨌거나 심씨 가문 사람들에게 썩 좋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한효진의 체면까지 깎았으니 말이다.하시윤이 말했다.“그쪽에서 먼저 비아냥거렸어. 한마디 받아친 게 뭐 잘못됐어?”그러자 서지혁이 약간 놀란 표정으로 하시윤을 쳐다봤다. 그는 그 주제를 이어가지 않았다.“성격이 나약한 줄로만 알았는데.”하시윤은 잠깐 멈칫했다가 그제야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두 사람은 함께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최근을 제외하면 4년 전 그때뿐이었다.그날 밤 황당한 일을 겪은 후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멍하기만 했다. 우는 것 말고는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하병우는 그녀가 방에 잘못 들어간 걸 알고 서씨 가문이 책임을 물을까 봐 먼저 선수 쳤다. 방으로 쳐들어와 하시윤의 뺨을 후려갈기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다고 했고 평생 성실히 살아온 그가 어쩌다 이렇게 뻔뻔한 딸을 낳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그때 하시윤은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었다. 뺨을 맞고 그저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누가 봐도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하시윤이 말했다.“예전에 나약하긴 했지.”어릴 때는 순진해서 말을 잘 들으면 하병우가 잘 대해줄 거고 또 귀찮은 일도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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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저 여자가 무슨 엄마야?

서인준이 놀란 눈으로 하시윤을 쳐다봤다.“저한테 이러기예요? 순한 토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매운 고추였네요?”그러더니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마침 우리 형도 매운 걸 좋아하거든요. 형 입맛에 딱 맞겠어요.”두 사람이 계속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걸 보고는 피식 웃었다가 하시윤에게 말했다.“형수님도 참. 어쩜 농담 하나 못 받아요? 재미없게.”그때 가정부가 노크하고 들어오더니 심연정이 왔다고 전했다.그 말에 서인준은 즉시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또 왔어? 왜 만날 우리 집만 들락거리는 거야? 자기 집이 없대? 그리고 오면 왔지, 왜 꼭 우리한테 알리는 건데? 내려가서 환영이라도 하란 소리야 뭐야?”가정부는 난감한 나머지 뭐라 대답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서지혁이 느릿느릿 일어나더니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말했다.“내가 내려가 볼게. 아마 할머니가 나 부르라고 했겠지.”그의 말이 맞았다. 그가 나가자 가정부도 따라 나갔고 정말로 그를 부르려고 올라온 것이었다.문이 닫힌 후 서인준이 말했다.“저 여자 정말 짜증 나 죽겠네요.”그러고는 품에 안긴 서정우를 보며 물었다.“너도 심씨 그 여자 짜증 나지?”서정우는 멍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인준은 문득 뭔가 생각나 서정우에게 말했다.“앞으로 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지 마. 저 여자가 무슨 엄마야? 우리 집안에 시집온 것도 아닌데.”서지혁의 앞에선 말하기 어려운 말들이었지만 서인준은 생각나는 대로 전부 말해버리는 성격이었다. 하시윤이 물었다.“정우가 연정 씨를 엄마라고 부르는 건 연정 씨랑 지혁 씨가 곧 결혼할 거라는 뜻일 텐데 이렇게 대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서인준이 싸늘하게 웃었다.“결혼요? 그 소리 4년 전부터 나왔어요. 대체 언제 결혼하는데요? 원래 정우가 저 여자를 엄마라고 부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이가 어려도 바보는 아니잖아요. 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 다른 애들은 부모가 옆에 있으니까 정우가 자기 엄마는 어디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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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착한 사람 좋아하거든요

식탁 분위기가 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평소 쉬지 않고 떠들던 서인준마저 갑자기 점잖은 척하며 말없이 밥만 먹었다.심연정은 하시윤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중간에 그녀를 몇 번 힐끗 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퇴근해서야 알았어요. 오늘 오후에 우리 부모님이 오셨는데 시윤 씨랑 약간 충돌이 있었다면서요?”하시윤이 고개를 들고 덤덤하게 말했다.“충돌요? 그랬나요?”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 잠시 멈칫하더니 한효진의 눈치를 살폈다.한효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하시윤을 쳐다봤다. 하시윤은 그녀에게 시선 한번 주지 않고 계속 밥을 먹었다.잠깐 생각에 잠겼던 심연정이 다시 말했다.“엄마가 좀 다급하셨나 봐요. 말을 좀 심하게 하긴 했지만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에요. 4년 전 일을 아직 잊지 못하셨고 또 지혁이를 아끼는 마음에 시윤 씨한테 화를 낸 거예요.”서지혁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소리가 꽤 커서 옆에 있던 한효진마저 깜짝 놀랐다.그가 심연정을 보며 물었다.“다 먹었어?”심연정의 그릇에 아직 밥이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누가 봐도 채 먹지 못한 상태였다.서지혁의 이 태도는 그녀의 체면 따위 세워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한효진이 급히 나섰다.“지혁아, 지금 이게 무슨 태도야? 연정이가 없는 말을 꾸며낸 것도 아니고.”하시윤이 입을 열었다.“그럼 제가 점심때 한 말은 꾸며낸 거란 말씀이세요?”그 말에 한효진은 다시 하시윤을 쳐다봤다.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박할 수가 없었다.엄밀히 말해 하시윤은 점심 때 딱 한마디만 했다. 비꼰 건 정경란이었다.서인준은 심씨 가문 사람이 오늘 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고 바로 하시윤에게 물었다.“정 여사님이 오늘 왔었어요? 와서 뭐라 했는데요?”하시윤이 대답하지 않고 계속 밥만 먹자 서인준의 시선이 서지혁에게 향했다.“형도 알고 있었어?”서인준이 툴툴거렸다.“아니, 뭐예요? 이 집에 어른이 넷이 있는데 셋만 알고 저만 모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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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형수님을 아끼는 건 형밖에 없네요

심연정은 식사 후반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한효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자 밥을 채 먹지 못했는데도 따라서 젓가락을 놓았다.밖에서 대기하던 유민숙이 재빨리 다가와 한효진을 부축했고 심연정도 자리에서 일어나 따라갔다.하시윤은 생선 한 조각을 다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막 일어나려는데 가정부가 약그릇을 들고 왔다.“시윤 씨, 저녁 약이에요.”하루 세 번, 이러다 정말 사람 잡겠다.그녀가 약을 먹는 걸 몰랐던 서인준이 가까이 다가와 그릇을 들여다보았다.“이게 뭐예요? 한약이에요?”하시윤은 약그릇을 받아 숨을 깊게 들이쉬고 단숨에 들이켰다.“네.”서지혁은 나가려다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돌아봤다. 약이 얼마나 썼는지 그녀의 표정이 다 일그러졌다.그의 시선이 가정부에게 향하자 가정부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사... 사탕 있어요.”그러고는 황급히 나가더니 잠시 후 사탕 한 개를 들고 뛰어왔다.하시윤은 이미 물을 마셔 입안의 약 맛을 달랜 터라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사탕을 받았다.“고마워요.”주방과 거실이 이어져 있어 소파에 앉아 있던 한효진과 심연정은 그들의 움직임을 다 지켜봤다.심연정이 시선을 늘어뜨렸다. 한효진의 팔을 잡은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한효진은 그걸 느끼고 그녀를 돌아보면서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토닥이며 낮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야.”사탕은 사실 서정우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아이가 약을 먹기 힘들어할 때 달달한 걸로 달래곤 했다.하지만 사탕이 별로 달지 않아 약 맛을 완전히 덮지는 못했다.서지혁이 쳐다보자 하시윤이 예의상 말했다.“달달하네.”옆에 있던 서인준이 바로 끼어들었다.“역시 형수님을 아끼는 건 형밖에 없네요. 저였더라면 이런 거 생각도 못 했을 거예요.”그러고는 이내 껄껄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농담이에요, 농담. 형수님 어디 아파요? 왜 할머니처럼 한약을 드세요?”하시윤은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빨리 아이를 낳도록 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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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임무만 완수하면

하시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서지혁의 뒷모습을 쳐다봤다.“왜 여기 있어?”서지혁은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불을 끈 다음 창문 밖으로 던졌다.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그럼 어디 있어야 하는데?”‘어디 있어야 하냐고?’하시윤은 그의 방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둘에게는 임무가 있었다. 어쩌면 그도 오기 싫었을지 모른다. 어쩔 수가 없어서 들어왔을 뿐.그녀는 더 말하지 않고 갈아입을 옷을 챙기러 갔다.동작이 약간 느렸다. 왜냐하면 오늘 밤 무슨 일이 있을지 알고 있었으니까. 거부감까지는 아니었지만 자꾸만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샤워도 일부러 천천히 했다. 느릿느릿 나왔을 때 서지혁은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재빨리 몸을 정리한 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어제 남은 와인 반병을 마저 마셨다.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문이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서지혁이 들어온 것이었다.그녀가 샤워를 너무 오래 한 바람에 자기 방에 가서 샤워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침대 옆에 몇 초 서 있다가 이불을 걷고 올라왔다.잠옷 너머로 그의 몸의 습기가 느껴졌다.침대에 눕자마자 그가 갑자기 물었다.“술 마셨어?”하시윤이 민망해하며 더듬거렸다.“반병 남아서... 버리긴 아깝잖아.”“그래.”서지혁은 짧게 대답한 후 더는 말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 누워 있었다. 어젯밤엔 그가 담배를 피웠지만 오늘은 피우지 않았다. 하시윤은 그가 사실 이 일을 내키지 않아 해서 마음을 다잡고 있는 중이라고 짐작했다.2분 남짓 지나자 서지혁이 돌아누우며 그녀 쪽으로 다가갔다.방이 매우 어두웠는데도 정확히 그녀의 입술을 찾아 키스했다.술을 적게 마신 탓인지 하시윤은 약간 몽롱하기만 할 뿐 어제보다 정신이 훨씬 또렷했다.그래서 감각이 더 선명했다. 서지혁의 입술이 아주 부드러웠고 샤워를 마친 터라 담배 냄새도 나지 않았다. 키스도 거칠지 않았고 부드럽다기보다는 온화했다.하시윤은 잠시 생각할 여유도 있었다. 아무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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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자는 걸 깨우고 싶지 않았어

하시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커튼이 완전히 쳐지지 않아 햇빛이 들어오자마자 눈이 저절로 떠졌다.시계를 보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침대에서 잠시 뒹굴다 일어났다.이를 닦으면서 거울을 봤는데 쇄골에 선명한 흔적이 생겼다.이젠 전처럼 부끄럽지 않아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너무 깊은 흔적이 아니라서 파운데이션으로 가릴 수 있을 것 같았다.잠시 생각하다 잠옷을 들어 올렸다. 허리의 멍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어젯밤에 또 세게 잡혀 멍이 새로 생겼다.이건 대체 무슨 습관인 건지, 매번 참 손이 매웠다.정리를 마치고 방을 나와 거실로 갔는데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서지혁이 소파에 앉아 있었고 이미 깬 서정우도 데리고 내려왔다. 소파 위에 장난감이 잔뜩 널브러져 있었다. 서정우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서지혁은 옆에서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어른과 아이는 서로 방해하지 않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다. 서정우의 병약한 몸을 제외하면 꽤 보기 좋은 화면이었다.잠시 후 서인준도 나왔다. 위층 방에서 느릿느릿 내려오다 하시윤을 보고 물었다.“거기 서서 뭐 해요?”그 말을 듣고서야 소파에 있던 부자도 하시윤을 발견했다.서정우는 손에 든 장난감을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엄마.”하시윤이 급히 다가갔다.“아침 먹었어?”서지혁이 대답했다.“두 시간 전에 먹었어. 이따가 정우 먹을 거 또 해줄 거야.”하시윤이 약간 떨어진 곳에 앉자 서정우가 그녀에게 기어갔다. 소파 위에 장난감이 널려 있어 아이가 긁힐까 봐 얼른 다가갔다.서정우가 서지혁의 옆에서 맴돌았기에 그녀도 자연스레 서지혁의 옆에 앉았다.서지혁은 여전히 서류를 확인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하시윤은 아이를 품에 안고 어디 불편한 데 없는지 물었다. 그러자 서정우가 배를 만지며 말했다.“어제저녁에 토했어요. 빨리 먹어서 토한 건 아니니까 엄마 탓이 아니에요.”하시윤은 몇 초 생각하고서야 아이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어제 아이가 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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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아이를 낳아줄 사람

잠시 후 유민숙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말했다.“어르신께서 어젯밤 제대로 못 주무셔서 아침은 안 드신대요. 알아서들 드시라고 하셨어요.”서지혁은 서류를 정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그럼 우리 먼저 먹자. 할머니도 어제 늦게까지 정우를 지키시느라 많이 피곤하셨나 봐.”하시윤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 한효진마저 어젯밤에 일어났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품에 안긴 서정우를 내려다봤다. 어제 꽤 심하게 아팠던 모양이었다.식탁 옆에 어린이용 의자가 있었다. 그녀는 서정우를 그 위에 앉히고 유심히 살폈다.아이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으나 정신은 꽤 괜찮아 보였다.아침 식사는 아주 담백했다. 하시윤은 서정우에게 젖병을 쥐여줬다. 마시기를 기대한 건 아니고 그냥 뭔가를 하게 하고 싶었다.다른 사람들은 말없이 조용히 밥을 먹었다. 서지혁이 밥을 다 먹고 휴지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나 요 며칠 많이 바쁠 거야.”하시윤은 서인준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인준은 못 들은 것처럼 가만히 있기만 했다.서지혁이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저녁에 늦게 들어올 거야. 너 방해 안 할게.”하시윤은 그제야 그녀에게 한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아, 응. 알았어.”서인준은 재빨리 밥을 먹어치우고 일어섰다.“저도 바빠요. 요 며칠 늦게 들어올 거예요.”하시윤이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자 서인준이 히죽 웃었다.“그냥 한 말이에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그러고는 등받이에 걸어놓은 외투를 챙기고 서지혁을 따라 나갔다.서정우는 아직 어린이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유는 몇 모금만 마신 채 히죽 웃으면서 밖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빠, 바이바이. 삼촌, 바이바이.”서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갔고 서인준은 그들에게 몇 번 손을 흔든 후 형을 쫓아갔다.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시윤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그녀는 서정우를 안고 밖으로 나가 한 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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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하시윤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정경란의 영양가 없는 형식적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여사님, 할 얘기 있으면 그냥 하세요.”정경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스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시윤 씨 시원시원한 성격이 꽤 마음에 드네.”더는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가방을 열어 뭔가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하시윤의 앞으로 밀었다.하시윤은 받지 않고 그냥 내려다보기만 했다.수표였는데 이미 금액이 적혀 있었다. 하시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그녀가 아무 말 없이 쳐다보자 정경란이 입을 열었다.“시윤 씨를 조사해봐서 지금 형편이 어렵다는 것도 알아. 서씨 가문 본가에서 지내서 먹고 입는 건 해결됐겠지만 그래도 돈이 있어야지 않겠어? 그래서 준비했어.”하시윤이 말했다.“네. 제 형편이 좋지 않은 건 맞아요. 하지만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여사님이 나서서 도울 일은 아닙니다.”정경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당연히 아니지. 다들 솔직한 사람들이니 나도 숨기지 않을게. 시윤 씨도 내 목적을 알 거야. 난 사업가라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해. 이 돈은 일종의 계약금이야. 시윤 씨가 아이를 낳으면 돈을 더 줄게. 물론 이 돈보다 적지 않을 거야. 아이를 낳아주는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할 수 있고 일종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어.”그녀는 하시윤을 보며 계속 말했다.“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바로 떠나야 해. 서씨 가문을 떠나는 건 물론이고 청림시를 떠나야 할 거야. 그리고 다신 돌아오지 마. 나중에 그 돈까지 받으면 시윤 씨가 어느 도시로 가든 남은 인생을 걱정 없이 살 수 있어. 어때?”하시윤은 수표를 내려다보면서 말없이 웃기만 했다.정경란은 그녀가 금액에 만족하지 않는 줄 알고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아니면 시윤 씨가 원하는 금액을 말해봐. 얼마면 되겠어?”하시윤은 찻잔의 차를 다 마신 다음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여기서 서씨 가문 본가까지 돌아가는 데 30분 넘게 걸려요. 정우가 어젯밤에 좀 아파서 자다 깰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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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못 미더워한다는 증거

하시윤은 서씨 가문 본가로 돌아왔다. 거실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안에서 소리가 들렸는데 남자의 묵직한 웃음소리와 부드럽게 당부하는 여자의 목소리였다.얼굴을 보지 않았는데도 누군지 바로 알았다.서정우가 말했었다. 며칠 전에 출장 간 서지혁의 부모님이 오늘 돌아올 거라고 말이다.하시윤은 두 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당시 호텔에서 잡혔을 때 두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다.그때 두 사람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특히 서지혁의 어머니 성문영은 하병우가 먼저 달려들어 하시윤의 뺨을 때리지 않았다면 절대 하시윤을 가만두지 않을 기세였다.하시윤은 순간 망설였다. 안에 있는 두 사람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서로 불편해질까 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몸을 돌리기도 전에 서정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는요? 엄마 왜 안 보여요?”웃음소리와 대화 소리가 뚝 멈추더니 몇 초 뒤 한효진이 말했다.“시윤이 어디 갔어? 정우가 깬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왜 아직 안 보여?”하시윤은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거실, 한효진이 한쪽에 혼자 앉아 있었고 옆에 유민숙이 대기하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서지혁의 부모님인 서경민과 성문영이 앉아 있었다.서정우는 서경민의 품에 안겨 있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손을 뻗었다.“엄마, 안아줘요.”하시윤이 말했다.“방금 정원에 있어서 정우가 깼는지 몰랐어요.”부부의 시선이 하시윤에게 향했다. 서경민의 표정은 그나마 괜찮았지만 성문영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하시윤은 두 사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아이를 받아 안고는 배를 만지며 물었다.“밥 먹었어?”서정우가 대답했다.“먹었어요. 아주 배부르게요.”하시윤은 그제야 안심하고 한효진을 돌아봤다.“별일 없으면 정우 데리고 올라갈게요.”그들은 그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녀 역시 그들과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한효진이 말했다.“그래. 올라가 봐.”하시윤은 서정우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아이가 깨어난 지 오래되어 잠깐 놀다가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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