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Chapter 11 - Chapter 20

100 Chapters

제11화 넘봐서는 안 되는 것

서지혁이 현관문 앞에 다다르자 심연정이 급히 말했다.“지혁아, 내가 배웅해줄게.”“괜찮아.”서지혁이 대답했다.“할머니 보러 왔으니까 할머니 말동무해드려.”그러고는 나가면서 하시윤을 불렀다.“하시윤, 잠깐 나와봐.”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하시윤은 멈칫하며 저도 모르게 심연정을 쳐다보았다.심연정도 놀라긴 했지만 표정 관리가 아주 훌륭했다. 여전히 상냥한 얼굴로 하시윤에게 말했다.“시윤 씨한테 할 얘기가 있나 봐요.”하시윤은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두 사람이 주차장에 도착했고 서지혁이 차 문 옆에 서서 물었다.“출근할 거야? 기사님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까?”하시윤이 대답했다.“아니, 괜찮아. 회사에... 휴가 냈어.”사실 휴가가 아니었다. 과장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당분간 출근할 필요가 없고 업무에 변동이 생겼으니 소식을 기다리라고 했다.그녀는 대충 짐작했다. 이 일자리도 결국 잃게 될 거라는 것을.자주 있는 일이라 이미 익숙해졌다. 3년 전 하씨 가문과 틀어진 뒤로 그녀는 일하는 게 늘 순탄치 않았다. 그들이 뒤에서 손을 썼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병우는 하시윤에게 악담을 퍼부으며 언젠가 그녀가 돌아와 빌게 될 거라고 했다. 그 뒤로 일자리를 구해도 하나같이 오래 하지 못했다.“그래.”서지혁은 짧게 대답한 뒤 다른 질문을 던졌다.“얼굴에 난 상처 말이야. 가족들이 그런 거야?”하시윤은 얼굴을 만지며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서지혁은 그녀를 2초간 훑어봤다.“값을 아직 정하지 못했어?”그러더니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3년 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똑같은 수법이야? 너희 집 사람들 대체 언제까지 그럴 거래?”그의 말에 하시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슨 말이야?”서지혁은 설명하기도 귀찮았다.“얼마를 원하든 달라는 대로 다 주겠다고 했어. 그런데 값을 부를 기회는 딱 한 번이니까 잘 생각하고 말해.”하시윤이 아직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서지혁은 이미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가버렸다.“사람이
Read more

제12화 아이만 낳으면 떠날 겁니다

한의사가 오전 9시에 도착했다. 먼저 한효진의 맥을 짚은 다음 위층으로 올라갔다.하시윤이 서정우와 함께 있던 그때 몇몇이 방으로 들어왔다. 서정우의 상태를 살피려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한효진이 이렇게 말했다.“우리 집안 친척인데 얘 맥도 좀 봐주실래요? 몸조리가 필요한지?”그녀가 말한 친척이 바로 하시윤이었다. 하시윤은 순간 당황했다.옆에 있던 심연정도 한마디 거들었다.“네. 시윤 씨도 좀 봐주세요.”한의사가 하시윤을 보며 말했다.“알겠어요.”그 자리에서 맥을 짚더니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젊은 아가씨가 몸이 허약하군요. 몸보신 좀 해야겠어요.”심연정이 급히 물었다.“단기간에 회복할 수 있을까요?”한의사가 대답했다.“단기간엔 무리예요. 몸이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 허약해진 게 아니라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려요.”심연정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한효진이 물었다.“얘가 최근에 임신 준비 중인데 아이 갖는 데 영향이 있을까요?”그러자 한의사가 웃으며 말했다.“임신이요? 그건 문제없어요. 요즘 젊은이들 몸이 완벽하게 좋은 사람이 별로 없어요. 다 여기저기 아프지만 아이만은 잘 낳잖아요. 그러니 너무 걱정할 거 없어요.”그 말에 심연정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이 몸 상태로 인공수정해도 괜찮을까요?”옆에 있던 한효진마저 놀란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심연정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성급하고 직설적으로 물었다는 걸 깨닫고는 황급히 표정을 관리했다.“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 다른 뜻은 없어요.”한의사가 미간을 찌푸렸다.“인공수정요?”그는 하시윤이 조급해하는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몸이 좀 약하긴 하지만 임신이 안 될 정도는 아니에요. 잘 조리하면 되니까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그런 첨단 기술은 정말 방법이 없는 사람들한테나 필요한 거예요. 그쪽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한효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알겠어요. 그럼 몸보신이 잘 되는 약 좀 부탁드릴게요.”진찰이 끝나고 한의사가 떠나려 하자 모두
Read more

제13화 시험관 해도 되잖아

점심이 가까워졌을 무렵 하시윤은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 집주인의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윤 씨,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 집이 왜 이 꼴이 됐어?”하시윤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무슨 일인데요?”집주인이 분통을 터뜨렸다.“직접 와서 봐. 문짝을 부숴놨고 안의 물건도 다 때려 부쉈어.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까 시윤 씨네 가족들이 와서 그런 거라던데? 이 손해 시윤 씨가 다 배상해야지. 와서 계산해야 하니까 빨리 와.”하시윤은 크게 놀란 척했다.“저 어제 집에 없었거든요. 그 사람들이 그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어요. 지금 밖이라 못 가요. 그럼 이렇게 하죠. 손해액을 먼저 계산해서 알려주세요. 제가 그쪽에 전화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볼게요.”책임을 회피하려는 뜻이 없는 하시윤의 태도에 집주인도 화가 조금 가라앉은 듯했고 알겠다고 대답했다.전화를 끊은 지 30분쯤 뒤 집주인이 문자로 손해액을 보냈다.하시윤은 그 집에 뭐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집주인이 얘기한 손해액은 터무니없이 부풀린 금액이었다.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하병우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하병우의 욕설이 들려왔다.“이 짐승만도 못한 년아,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전화해?”하시윤이 말했다.“어제 우리 집에 가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 안을 다 때려 부쉈어요?”하병우가 크게 화를 냈다.“그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들어와서 네 엄마랑 동생한테 사과해. 안 그러면 그 일 못 하게 막는 수가 있어.”하시윤의 목소리가 그보다 더 차가웠다.“우리 엄마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병상에 있던 엄마 앞에서 나를 잘 돌보겠다고, 약속 못 지키면 천벌 받아 죽겠다고 맹세했던 거 잊었어요?”하시윤이 싸늘하게 웃었다.“당신 귀신 같은 거 제일 잘 믿잖아요. 진짜 말처럼 될까 봐 두렵지도 않아요?”“닥쳐!”하병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졌다.그때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을 때 사실 이혼을 결심했었다. 하병우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이
Read more

제14화 형수님이라고 부를까요?

하병우는 돈을 보내지 않았다.시간을 재던 하시윤은 30분이 지나자마자 경찰에 신고했다.또 30분쯤 뒤 하병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받지 않고 끊어버렸다. 올 때마다 가차 없이 끊었다.그렇게 대여섯 번 반복하자 결국 하병우도 꼬리를 내렸다. 1분여 뒤 하시윤은 은행 계좌에 돈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하병우가 입금한 것이었는데 동시에 문자도 보냈다. 하시윤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녀가 다니는 회사의 대표에게 연락하여 오늘 안에 자르라 하겠다고 했다.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그녀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하시윤은 그냥 무시해버렸다. 먼저 경찰에 전화해 신고를 취소한 다음 집주인에게 돈을 보냈다. 그러고는 집을 빼겠으니 나중에 가서 물건을 정리하겠다고 했다.하병우가 집을 부숴놓은 바람에 남은 물건도 별로 없을 것이다.돈을 받자마자 집주인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문을 교체한 뒤 열쇠를 관리사무소에 맡겨놓겠으니 언제든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후 하시윤은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서정우를 쳐다봤다.“목말라?”그녀는 아이와 함께 후원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다. 오늘 햇살이 따스했고 후원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놨다. 그 안에 오색찬란한 잉어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헤엄치고 있었다.서정우가 물고기 먹이를 뿌리며 대답했다.“조금요.”옆에 미지근한 물이 있어 물을 떠서 아이에게 먹였다.“어디 불편하면 꼭 말해. 알았지?”서정우는 물고기 먹이를 한꺼번에 연못에 던져 넣고 물을 마신 뒤 그녀에게 몸을 기댔다.하시윤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세 살이 넘은 아이인데도 가볍기만 했다. 하시윤이 물었다.“졸려?”“네.”서정우는 대답한 후 하시윤의 품에서 편안한 자세를 찾아 눈을 감았다.하시윤은 아이를 가볍게 토닥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서지혁과 서인준이 후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 모습을 목격했다.하시윤은 편안한 홈웨어를 입고 머리를 느슨하게 묶고 있었는데 머리카락 몇 가닥이 볼에 흘러내렸다
Read more

제15화 저도 몰라요

서지혁은 서인준의 말을 더 듣기 싫은 듯 아이를 안고 본관으로 향했다.“먼저 가서 할머니께 인사드려. 네가 돌아왔다고 알려드려야지. 요 며칠 계속 네 얘기 하셨어.”그들은 나란히 거실로 들어갔다. 그 시각 한효진은 방에 누워 있었고 유민숙이 그들에게 말했다.“어르신 두통이 심하셔서 점심은 방에서 드시기로 했어요. 이따가 식사 가져다드리려고요.”그러다가 서인준을 보고 또 말했다.“둘째 도련님 돌아오셨네요. 어르신 지금 주무시니까 나중에 인사드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서인준이 대답했다.“알겠어요. 출장 갔다가 할머니께 드릴 특산물도 사 왔거든요. 저녁에 드려야겠어요.”먼저 서정우를 방에 눕힌 후 모두 식탁 앞에 모여 밥을 먹었다.하시윤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서인준은 그녀를 몇 번이나 힐끗거리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4년 전 그 일 말이에요. 서씨 가문에서 누가 꾸민 일이에요?”말을 마치고는 뭔가 떠오른 듯 서지혁의 눈치를 봤다.“형, 화내지 마. 그냥 궁금해서 그래. 형은 안 궁금해?”서지혁이 말했다.“오 부장이 맡은 프로젝트 네가 가서 감시해. 오늘 안에 네가 맡은 일 다 넘기고 앞으로는 그 프로젝트만 전담해.”“형, 진심이야?”서인준은 서지혁을 쳐다봤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바로 태도를 바꿨다.“아, 제발!”그러고는 밥도 먹지 않고 두 손을 모아 빌었다.“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절대 함부로 묻지 않을게. 오 부장 그 인간 형 말고 누구 말도 안 듣잖아. 내가 가면 화병 걸려 죽어. 안 갈 거야. 제발 봐줘. 뭐라고 해도 안 가.”“저도 몰라요.”하시윤이 입을 열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그날 제가 술에 취했는데 어떤 웨이터가 저를 쉬게 해주겠다고 해서 따라갔을 뿐이에요.”서인준은 다시 흥미가 생겼다가 서지혁의 차가운 얼굴을 보고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헛기침했다.“그렇군요.”뭔가 더 묻고 싶었지만 서지혁이 무표정으로 노려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하시윤
Read more

제16화 서지혁의 지시

하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을 서지혁의 가슴에 댔다. 하지만 그다음 뭘 해야 할지 몰랐다.서지혁이 술을 마셔 몸에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 그는 그녀의 허리를 잡고 살짝 힘을 주었다.갑작스러운 통증에 하시윤은 신음을 내뱉으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서지혁 씨.”서지혁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는 하시윤은 긴장한 나머지 몸이 떨렸다. 4년 전 그날 밤은 술에 취한 데다가 약까지 먹어 과정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다만 깨어난 후 온몸이 쑤셔 그 밤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짐작하게 했다.두 사람은 그 자세로 한참 있었다. 잠시 후 서지혁이 다시 고개를 들었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볼을 스쳤다가 입술 끝에 닿았다.하시윤은 손에 살짝 힘을 주며 밀어냈다.“잠깐, 잠깐만. 나도 술 좀 마시면 안 될까?”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서지혁은 그녀 위에서 내려와 옆으로 누웠다.하시윤은 옷을 여미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이 집에 와인 저장고가 있었다. 가정부에게 부탁하기 민망해 직접 가지러 갔다.한쪽 벽을 가득 채운 와인 캐비닛 앞에 선 그녀는 와인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아무거나 한 병 골랐다. 옆에 있는 전동 오프너로 병을 딴 다음 와인잔이 보이지 않아 그냥 병째 마셨다.단숨에 반병을 비웠는데 맛이 나쁘지 않았다. 떫지 않고 목에 자극도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또 한 모금을 크게 들이켰다.입을 닦고 남은 반병을 든 채 방으로 돌아갔다.방 안의 불이 꺼져 있었고 옅은 담배 냄새가 났다. 침대 머리맡에 붉은 불빛이 깜빡였다 꺼졌다.하시윤은 와인병을 옆에 내려놓고 몇 번 심호흡하고서야 침대에 올라갔다.누운 후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지혁이 옆에 앉아 담배를 절반 정도 피웠는데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연기를 내뱉었다.그가 담배를 다 피울 때쯤 하시윤은 거의 잠들 지경이었다.술기운이 빠르게 올라와 온몸이 나른하게 떠도는 느낌이었다.4년 전 그날 밤 이후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지금 이 몽롱
Read more

제17화 장난기

하시윤은 식사를 마친 후 평소처럼 서정우를 보러 위층으로 올라갔다.그런데 아직 자고 있었다. 가정부는 서정우가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 잠깐 놀다가 방금 잠들었다면서 한동안은 깨지 않을 거라 했다.이 가정부는 서정우 전담 가정부였다. 하시윤에게 친절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에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그녀가 말했다.“작은 도련님 요 며칠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아마 하시윤 씨가 오셔서 기분이 좋은 것 같아요.”하시윤이 대답했다.“네. 깨어나면 저한테 알려주세요.”그러고는 거실로 내려갔다.한효진이 아직 내려오지 않은 걸 보면 몸이 계속 불편한 모양이었다.거실은 이미 청소가 끝난 상태라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거실에 서 있던 그녀는 문득 막막함이 밀려왔다.지난 3년 동안 하시윤은 생계 때문에 단 하루도 한가한 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 일이 없으니 낯설기만 했다.잠시 후 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렸다.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는데 하병우였다.받지 않고 그냥 끊어버리자 30초도 안 되어 문자가 도착했다.처음엔 직장을 그만뒀냐고 물었다가 또 이사했냐고 물었다.하시윤은 계속 답장하지 않았다. 2분여 뒤 하병우가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번엔 서정우가 아파서 서지혁이 찾아온 건 아닌지 직설적으로 물었다.문자만 봐도 지금 어떤 태도인지 알 수 있었다.이전의 오만함과 협박은 사라지고 떠보는 기색이 다분했으며 심지어 약간의 불안함까지 느껴졌다.저번에 하시윤이 집에 가서 한바탕 난리를 피운 뒤 하병우는 처음엔 화가 나 상황 파악이 안 됐지만 진정하고 나니 서정우를 판 일을 그녀가 알게 된 게 서씨 가문에서 나온 정보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병우의 인맥이 넓어 조금만 알아봐도 서정우의 병세를 알 수 있었다. 게다가 하시윤이 집까지 뺀 걸 보면 서씨 가문과 다시 연락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하시윤은 서씨 가문 본가 사진을 찍어 하병우에게 보내고 한 줄 덧붙였다.[이미 들어와서 살고 있어요.]
Read more

제18화 너무 가식적이에요

하시윤은 서정우를 안고 서지혁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젯밤의 일이 자꾸 떠올라 서지혁의 눈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그녀가 머뭇거리며 꽃밭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 마침 서인준의 차가 빠르게 들어와 주차장에 멈췄다. 서인준이 차 문을 열고 내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형, 퇴근하고 바로 가버리는 게 어디 있어? 나 기다리지도 않고.”다가오던 그는 하시윤과 서정우를 보고 약간 놀란 듯했다.“정우 나왔네?”서인준이 손을 내밀며 안으려 하자 서정우가 몸을 홱 돌렸다.“싫어요.”서인준은 웃으면서 아이의 볼을 꼬집으려다 결국 꼬집지는 못하고 살짝 어루만지기만 했다.“양심도 없는 녀석. 전에 네가 아플 때 삼촌이 밤낮으로 간호해줬는데. 그땐 삼촌이 제일 좋다면서. 이 거짓말쟁이야.”서정우는 그를 무시하고 서지혁에게 말했다.“아빠가 안아줘요.”서인준이 툴툴거렸다.“나도 빨리 애 낳아야지, 원. 형만 아빠가 되는 줄 아나.”서지혁은 아이를 받아 안고 본관으로 걸어가며 물었다.“오늘 어디 아픈 데 없었어?”“없었어요.”서정우는 손에 든 꽃과 머리에 쓴 화관을 자랑했다.“엄마가 만들어줬어요.”그 순간 서지혁과 하시윤이 발걸음을 멈췄다.“내가 말해준 거 아니야.”서인준이 껄껄 웃었다.“알았으면 알았지, 뭐. 그게 뭐 어때? 모자지간인데.”서지혁은 덤덤한 표정으로 하시윤을 돌아봤고 하시윤도 더 설명하지 않았다. 어떤 말은 한 번 설명하면 충분했다. 믿든 안 믿든 그건 그들의 몫이었다.거실에 들어갔을 때 한효진이 아직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을 보자마자 환히 웃었다.서지혁은 서정우를 한효진의 품에 내려놓았다.한효진은 아이를 끌어안고 볼에 입맞춤하며 아주 예뻐했다.“우리 강아지.”하시윤은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봤다. 이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좋아하진 않아도 서정우를 아끼는 건 진심이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였다.서인준이 하시윤의 옆에 서서 낮게 물었다.“오늘 심씨 그 여자 왔어요?”하시윤이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Read more

제19화 우리가 그런 게 아니야

서정우의 상태가 평소보다 훨씬 좋아 아래층에서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위층으로 돌아갈 때 하시윤에게 손을 뻗었다.“엄마가 안아줘요.”한효진이 멈칫하더니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하시윤은 그녀를 보지 않고 서정우를 받아 안았다.서인준이 입을 열었다.“정우야, 이 사람이 네 엄마인 걸 어떻게 알았어?”서정우가 하시윤의 품에 안긴 채 대답했다.“이모들이 말해줬어요.”아이가 말한 이모들이 바로 집안의 가정부들이었다.한효진의 표정이 계속 어둡기만 했다. 그녀의 시선이 거실에 있던 유민숙에게로 향했다.유민숙은 황급히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제가 사람들 단속을 제대로 못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 따로 회의를 열겠습니다.”한효진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요즘 집안에 일이 많아서 단속하지 않았더니 아무 말이나 떠들고 다니는구나.”할머니의 뜻을 알아들을 리 없었던 서정우는 졸리고 불편한지 살짝 투정을 부렸다.하시윤은 재빨리 아이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 몇 번 토닥이자 이내 잠이 들었다.아이의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하시윤은 손가락으로 볼을 살짝 어루만지다가 참지 못하고 입을 맞췄다.몸을 일으키고서야 문 쪽에 서지혁이 서 있다는 걸 알았다. 하시윤이 쳐다본 그때 서지혁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아이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서지혁이 침대 옆에 서서 갑자기 물었다.“3년 전에 하씨 가문에서 왜 쫓겨났어?”하시윤이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서지혁이 솔직하게 말했다.“널 조사해봤어. 4년 전 일이 너랑 상관없다는 거 알아. 그런데 3년 전에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 하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어.”그가 알아내지 못한 건 당연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일이 터지기도 전에 쫓겨났다.하병우는 당시 손철민 대표와 연락하여 전처럼 또다시 그녀를 팔아넘기려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녀가 더 이상 처녀가 아니고 아이까지 낳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병우는 포기하지 않고
Read more

제20화 몸의 흔적

서인준의 말에 심연정뿐만 아니라 한효진의 표정까지 눈에 띄게 굳어졌다. 한효진이 젓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인준아, 말조심해.”서인준이 평소엔 능글맞고 실실거려도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한효진이 진심으로 화난 걸 보고는 더는 깐족거리지 않았다.“농담한 거예요. 왜들 이렇게 진지해요?”한효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앞으로는 그런 농담 하지 마. 자꾸 그러면 진짜로 믿을 수도 있어.”이 말은 하시윤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녀가 품어서는 안 될 마음을 품을까 봐 경고하는 것이었다.하시윤은 못 들은 척하며 계속 밥을 먹었다.식탁의 분위기가 다소 무거워졌다. 나중에 서인준이 회사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화를 꺼내 분위기를 풀어보려 했는데도 별 효과가 없었다.식사를 마친 후 한효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지혁과 서인준을 불러 함께 나갔다.하시윤은 어젯밤 잠을 제대로 못 잔 터라 방으로 돌아가 쉬려 했다. 방 문 앞에 다다랐을 때 뒤를 돌아봤는데 심연정이 따라오고 있었다.심연정은 하시윤이 돌아본 걸 보고 자연스럽게 물었다.“방에 잠깐 들어가도 되나요?”이미 문을 연 하시윤은 잠시 생각하다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한 것도, 막은 것도 아니었다. 심연정은 개의치 않고 따라 들어갔다.심연정이 문 앞에 서서 방 안을 훑어봤다.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해졌다.하시윤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방에 서지혁의 물건이 없다는 건 두 사람이 한방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으니까.잠시 기다리다 하시윤이 물었다.“다 봤어요?”심연정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방금 할머니 반응 봤죠? 할머니가 마음은 여리셔도 만만한 분이 아니에요. 앞으로 꼭 말조심해요. 하면 안 되는 건 절대 하지 말고 말하면 안 되는 것도 입 밖에 내지 말아요. 할머니 심기를 건드리면 아무도 시윤 씨를 지켜주지 못해요.”하시윤이 침대 옆에 앉으며 말했다.“연정 씨 대단한데요?”그녀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심연정은 잠깐 멈칫했다.하시윤이 말을 이었다.
Read more
PREV
123456
...
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