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의 모든 챕터: 챕터 191 - 챕터 200

205 챕터

제191화

“강 마님의 오라버니신 강세오가 과거를 보기 위해 상경하신다 하니 이 달 내에는 경성에 도착하실 것이옵니다. 그러면 혹여나 강 마님의 소식도 들려올지 모르지요.”주종현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경성으로 올라오는 생원들을 모두 감시하거라. 새장에서 날아나간 새인들 본세자는 반드시 다시 잡아올 것이다!”위심은 문득 설강을 떠올렸다. 강 마님은 송하윤 때문에 도망칠 계획을 세운 거라면 설강은 왜 같이 도망간 걸까? 그녀는 다시 돌아오려고 할까? 제일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무슨 입장으로 그걸 물어본단 말인가?그의 입가에는 저절로 쓸쓸한 웃음이 번졌다.주종현은 내실로 걸음을 옮겼다. 술항아리들로 가득찬 외실과 달리 안에는 이미 수많은 서책과 장계가 쌓여 있었다. 밖에서의 취한 모습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내실로 들어서자 그의 두 눈은 금세 맑아졌다.“닷새 뒤 여 각로가 하장될 무렵, 진 각로 역시 풀려날 것이다. 그때까지도 죄증을 찾지 못한다면 진 각로는 반드시 큰 피바람을 일으키겠지.”“연위영이 경성 안을 발칵 뒤집었지만 진 각로를 가리키던 증거는 모두 끊겼사옵니다.”“진 각로 일당의 절반은 모두 지방관에서 올라온 자들이지. 지방 관료들부터 파고드는 것이 좋겠구나. 폐하께서 내게 빌려주신 집영위도 한 번은 써먹어 보아야겠다.”“듣자 하니 집영위는 오고 가는 모습이 없고 하루에 천리를 달려 멀리 떨어진 곳의 수급도 얻어온다던데요.”주종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그렇게나 신묘한지는 네가 가서 직접 시험해보거라.”“제가요?”위심은 놀랐다.연위영은 한낱 산관에 불과하지만 집영위는 달랐다. 직급이 있을 뿐만아니라 경사아문의 지휘와 동급이기도 하다.“그럼 만천은요?”둘은 세자 곁을 일곱 해 넘게 함께 따라온 사이였다.주종현은 고개를 저었다.“집영위가 되는 것에 있어 무공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것은 오래 버틸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만천은 지나치게 급하고 이기려는 마음이 앞서며 너무 모험적이다. 그러니 집영위하고는 맞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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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조금 돌아가기는 해야 하지만 그래도 안전하잖아요!”웃음이 가득한 아설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람 역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했을 때 그녀의 눈빛은 어두워지고 말았다.우주는 소휘의 세력 범위로 그곳에 도착하면 더욱 도망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우주에 닿기 전에 어떻게든 도망칠 방도를 찾아야 했다.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승냥이의 굴이건 호랑이의 입안이건 다시 한번 도망치는 것일 뿐이다.다시 한번 얻은 인생, 이 정도 고생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내린 은혜를 그저 받기에도 미안할 따름이었다.다음 날 새벽.행관 안은 이미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수행 인원 백 여명에 성왕이 경성에서의 모든 짐들까지 싣는다면 무려 서른여 량의 수레가 꽉 찰 정도였다.아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레 행렬을 바라보며 감탄했다.“이건 아무리 해도 하루는 꼬박 걸려야 할것 같네요.”문희는 허리춤에서 비녀 하나를 꺼내 몰래 아설의 뒤로 다가가 그녀의 쪽진 머리에 꽂아주었다.“네?”돌아보니 문희가 서 있었고 머리를 만져보니 낯선 비녀가 하나 더 꽂혀 있었다.“문희 언니가 제게 주는 겁니까?”문희가 부드럽게 웃었다.“어젯밤에 만든 거예요. 아람 아가씨 것도 하나 만들었습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건 변변치 않아도 이 정도 손재주는 있답니다.”아설은 금세 환하게 웃으며 비녀를 자랑하려고 아람을 찾으러 달려나갔다.그때 소휘가 옆의 마차에서 내려오며 문득 문희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이런 가벼운 은혜로도 사람의 마음이 쉽게 얻어질려나?”문희는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전하, 저는 아설을 동생처럼 여길 뿐입니다. 이건 은혜가 아니라 진심입니다.”소휘는 다시 그녀를 보지 않고 뒤돌아 행관으로 들어갔다.그제야 문희는 빼곡히 실린 마차 안을 보게 되었다.“이건 다 무엇이냐?”마부가 답했다.“문 아가씨, 이건 모두 전하께서 자사부에서 실어오신 것입니다.”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이어 또 일곱, 여덟 량의 마차가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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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아람이 일곱 번째로 마차를 길가로 몰아붙였을 때 그 모습을 지켜만 보던 아설이 드디어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차라리 제가 몰게요.”연아는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웃었다.“어머니는 마차를 몰 줄 몰라요.”아설과 자리를 바꾼 후 아람은 마차의 문발을 꼭대기로 휙 올려버렸다. 이러는 편이 아설과 말하기도 더욱 수월했다.아설은 고삐를 붙잡고 채찍을 한 번 휘둘러 말이 길 웅덩이에 박힌 바퀴를 힘껏 끌어내도록 했다.그 능숙한 손놀림을 보며 아람은 감탄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이 말은 어쩐지 너의 말을 잘 듣는구나.”아설이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어렸을 적에는 아버지를 따라 장원에서 지냈거든요. 경성에서도 짐마차를 몰아 저택에 곡식을 날랐고요.”그녀는 말을 하다 문득 멈추었다.“한데 우리가 이렇게 인사도 없이 떠나버려도 괜찮을까요?”문희 언니가 자기에게 잘해줬는데 말 한마디 없이 떠났다는 걸 알게 되면 화내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멀리 지나온 것이 아닌지라 혹여나 아설이 되돌아갈까 두려워 아람은 얼른 말했다.“걱정 말거라. 편지는 남겼다. 완전히 인사도 없이 떠난 건 아니란다.”아설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이 산은 정말 크네요. 벌써 한 시진은 달린것 같은데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걸 보면 말입니다.”아람은 예전에 산하지에서 본 것을 떠올리며 말했다.“여기가 반의산이겠지. 여기서는 다리 짧은 말이 많이 난다는데 산림을 넘는 데는 그 말만큼 좋은 말이 없단다. 그리고 홍버섯도 있다더라. 그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고.”연아가 눈을 번쩍 뜨며 옆에서 머리를 내밀었다.“어디에 있습니까?”아람은 재빨리 아이의 뒷깃을 잡아당겼다.“떨어지면 어찌려고 그러느냐!”아설이 웃으며 말했다.“연아는 음식거리라면 쉬이 홀려간다니깐요. 눈 깜박할 사이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 한눈이라도 팔면 안되겠어요.”반의산은 매우 넓은지라 녕주와 화주가 각각 절반씩 차지하고 있었다.산적들은 여기 오래전부터 터를 잡고 있는 데 두 도시는 서로 자신의 책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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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거 좋은 게 걸려들었구만! 천오백 냥은 너무 적다! 만오천 냥은 받아야겠구나!”졸개의 눈에는 욕심이 가득 찼다.돈만 생기면 그는 산적질을 그만두고 고향 마을로 돌아가 몇 뙈기의 땅을 사고 아내를 맞이할 생각이었다.삼당가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입술을 핥았다.“일단 묶어 데려가거라!”“감히!”아람이 호통쳤다.“너희들,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것이냐?”손바닥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녀는 정신을 억지로 다잡아 눈앞의 산적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하하하, 네가 누군데?”“네가 하늘 위 서왕모라도 된다는 거냐!”산적들은 이런 허풍을 쳐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는지 그녀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기세였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는 성왕의 첩실이다! 지금 성왕의 가마가 행관에 머물러 있다. 믿기지 않으면 사람이라도 보내서 확인해보던가!”삼당가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는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데려가거라!”반의산은 사실 그렇게 험한 곳이 아니었다. 지방 관리들이 조금만 힘을 썼더라면 진작에 토벌되어 산적들이 산을 차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말이 산이지 사실은 예전에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도망쳤고 도망치지 못한 열댓 명만 산적들에게 붙잡혀 자잘한 허드렛일을 하는 신세가 되어 있었다.세 사람이 묶여 끌려왔을 때 마을 입구에 있던 한 노인은 그들을 보며 안쓰러움이 어린 눈빛을 띄었다.또다시 잡혀온 몇 명의 불쌍한 사람들이구나.마을은 넓었고 산적들도 많았다.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은 지금 대당가의 거처였다.세 사람은 짐짝처럼 그 안으로 내던져졌다.“대당가는 어디 있느냐?”집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사람 그림자 한 명 없었다.삼당가는 돌아서며 외쳤다.“잘 지켜라! 내 허락 없인 누구도 건드리지 말거라. 건드리면 내가 직접 한 칼로 베어버릴 테다!”“예!”아래 졸개들은 군침을 삼키면서도 감히 삐딱한 짓은 하지 못했다.그제야 아람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방은 누군가가 매일 청소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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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대당가는 그녀의 소리에 고개를 돌렸으나 마치 벼락을 맞은 듯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기억 깊은 곳에 있던 사람과 눈앞의 사람이 천천히 겹쳐지기 시작했다.그녀 역시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이었다.‘정모 오라버니, 미안합니다. 전… 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어요.’아정모는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때 그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그 작은 소녀가 다시 눈앞에 돌아온 것만 같았다.그는 무의식중에 중얼거렸다.“청련…”아람은 순간 그 자리에 얼어붙더니 곧바로 크게 외쳤다.“조심하세요!”연아가 그의 손에 들린 채 기둥에 부딪칠 뻔했던 것이다.그녀는 눈앞의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그 애는 겨우 세 살짜리 아이입니다!”아정모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와 맹청련은 여섯 할쯤 닮았을 뿐, 그녀에게는 청련의 눈 속에 있던 그 천진난만함이 전혀 없었다.그는 연아를 내려놓았다.“풀어주거라.”“대당가?”삼당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아정모는 다시 주좌로 걸어가 앉았다.“내가 직접 심문한다.”삼당가는 곧 깨달았다. 가치 있는 사람은 늘 대당가가 직접 심문했고 대부분은 산채에 큰 이익을 가져왔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대당가를 따르는 이유였다.“네 이름은 무엇이고, 어디 사람이냐?”아람이 만든 위조문서에는 우주 출신이라 씌여있었다.“제 이름은 아람이고 우주 사람입니다. 이 아이는 제 여동생 아설, 이쪽은 제 딸입니다.”“아 씨에 우주 사람이라... 어찌 보니 같은 종파 사람이군.”아정모는 손가락을 가볍게 비볐다.아람은 아무렇게나 지은 이름이 하필 산적의 성과 같다는 사실에 속이 철렁했다.“저희는 그저 길을 지나던 중이었습니다. 원하시면 노자를 드릴 테니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하지만 아정모는 아직 더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너, 맹청련을 아느냐?”그는 말끝에서조차 손끝을 떨고 있었다.맹청련?아람은 이름이 어딘가 익숙하다고 느꼈지만 정확한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흘려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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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아람은 딸을 끌어안고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산에 들어 도둑질을 한다는 건 결국 돈을 위해서잖아요. 저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노잣돈은 드리겠다고.”아정모는 이미 산적의 본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손에는 반쯤 긴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삼당가는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이 반의산에서 사람을 살릴지 죽일지, 돈을 받을지 말지는 우리 형님께서 정하시는 것이다!”녕주와 화주에서도 토벌군을 보낸 적은 있었지만 아정모의 지휘만 있으면 단 한 번도 산채를 돌파한적이 없었다. 관군 역시 모두 허울뿐인 술주정뱅이들이었다.삼당가는 이 남장을 한 여인이 어디선가 본 듯 낯익었다. 그러다 갑자기 대당가의 방에 걸린 그 그림이 떠오르고는 소리를 질렀다.“대당가! 이 여자는...!”아정모는 그를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시끄럽다. 가두거라.”삼당가는 볼수록 더 닮았다고 생각했다.그는 대당가의 침실 쪽을 흘끗 보다가는 손가락으로 아람을 가리키며 말이 꼬여버렸다.“이건… 하늘이 대당가에게 보내준...”쿵!삼당가는 발길질 한 번에 문 밖으로 통째로 날아갔다. 밖에서는 산적들의 웃음이 폭소처럼 터져 나왔다. 그는 곧바로 일어나 가까이 있던 두 졸개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뭘 웃어대냐! 대당가가 뭐라고 했는지 못 들었느냐! 어서 가두거라!”아람과 아설은 두 개의 방에 따로 갇혔다. 마을 가장 안쪽에는 그나마 집의 형태를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집 한채가 있었다.한쪽 구석에는 배가 불룩하게 오른 젊은 여인이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그 곁에는 두 아이가 겁먹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사나운 얼굴의 구레나룻을 기른 중년 사내가 구운 닭 한 마리를 뜯고 있었다.“여자 둘을 잡아왔다고?”“예,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소식을 전하러 온 졸개는 산 아래까지 내려간 적이 없었다.그는 중간 길목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요즘 산에서 내려가 사람을 잡든 물건을 털든 전부 대당가의 사람이었고 이당가는 이미 반의산에서의 실권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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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각자 따로 움직인다. 행관, 자사부, 주목부 모두 오늘 밤 탐문해야 한다. 비밀리에 진행하되 누구도 놀리켜서는 안된다.”밤이 깊어지자 몇 줄기 어둠의 그림자가 아무 소리 없이 스쳐 지나갔다. 성문 위에서 교대하던 관군은 그 존재조차 깨닫지 못했다.위심은 몸을 낮춰 순찰 중인 호위를 피했다.성왕은 결코 겉보기처럼 온화하고 무해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방으로 가는 그의 가마에 붙어 다니는 호위는 모두 주종현이 배치한 것이었지만 지금 이 호위들은 분명 연위영에서 뽑힌 인물들이 아니었다. 출경하자마자 성왕이 자신의 사람으로 교체한 것이었다.행관 밖에는 가지런한 수레 행렬이 서 있었고 그 한복판에는 호화롭고 넓은 마차가 자리하고 있었다.위심은 눈으로 훑어본 뒤 함께 온 또 다른 집영위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재빠르게 행관 안으로 몸을 숨겼다.행관에 들어서고 나서야 성왕의 경계가 얼마나 삼엄한지 알 수 있었다. 지붕에는 일정 간격마다 수비가 자리하고 있었고 땅 위에서도 끝없이 순찰병이 지나다녔다. 그들은 벽면에 바짝 붙은 채 어둠 속의 그늘을 이용해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행관 안은 마치 모든 이가 깊은 잠에 빠진 듯이 고요했다.두 사람이 성왕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옅은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여기서 사람이 죽었다.두 사람은 바로 눈빛을 교환했다.당기봉의 죽음은 역시 성왕과 무관할 수 없었다.구석에 놓여진 상자에 위심이 손을 대려 하자 다른 집영위가 그를 막아서고는 천천히비수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열었다.그 안은 온통 밀신으로 가득했다.한 통을 집어 펼쳐보니 진 각로와 당기봉의 왕래 서신이었다.둘은 곧바로 모든 서신을 쓸어 담아 몸에 단단히 묶었다.큰 수확을 거둔 두 사람은 즉시 행관을 빠져나갔고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문희가 어둠속에서 걸어 나왔다.“전하의 예측이 역시 틀리지 않았사옵니다. 이 정도의 큰 인정을 주 세자에게 넘기다니… 앞으로 세자가 무엇으로 갚을지 모르겠군요.”성왕은 두 손을 뒤로 한 채 그녀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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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연아는 볏단 위에 조심스레 눕혀져 잠들어 있었다.아람은 손을 뻗어 딸의 머리칼을 살며시 쓸어내렸다.그 산적 두목은 그녀를 죽이지도,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한 줄기 희망은 남아 있을 터였다. 그 돌파구는 어쩌면 맹청련에게 있을지도 모른다.닮았다면 맹청련이 그녀의 어머니일수도 있지 않겠는가?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문밖에서 갑자기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아람은 즉각 경계했다.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달빛이 방 안에 쏟아져 들어왔다.덥수룩한 구레나룻을 한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이당가는 남장 차림이지만 매끄러운 피부와 그림처럼 고운 눈매를 가진 아람을 보고는 입가에 흡족한 웃음을 올렸다.“내가 뭐랬어. 아정모 그 개 같은 놈이 여자를 마다할 리가 없지. 좋은 것만 골라 챙기고 싶었던 거야.”아람은 딸을 등 뒤로 감추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당신… 당신은 누구입니까!”이당가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벗어던졌다.“내가 누구냐고? 오늘 밤 네년의 남자가 될 작자다!”그는 두 팔을 벌리고 달려들었다.아람은 머리를 고정한 비녀를 단번에 뽑아 이당가의 배를 찔렀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이 한꺼번에 흩어지며 죽음을 각오한 사나운 결기가 눈 속 가득 번뜩였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굴려 일어나 다시 그의 목을 향해 비녀를 찌를 준비를 했다.이당가는 방심한 탓에 배를 찔리고는 통증에 욕을 내뱉으며 두 걸음 물러났다.“이 젠장할!”그는 배를 짚으며 고개를 들었고 그녀가 또다시 찌르려는 걸 보자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거칠게 틀고는 손목을 그대로 분질러버렸다.“아악!”그녀의 비명이 울리자 마을의 다른 산적들도 깜짝 놀라 몰려왔다.가장 먼저 달려온 이는 모준이였다.“돌쇠! 미친 겐가? 이 여자는 아 형님의 사람이란 말이다!”돌쇠는 고개를 돌려 문가에 선 모준을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모준, 예전엔 날 돌쇠 형님이라고 불렀으면서 이제는 그 아무개를 따라다닌다고 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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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아람의 턱은 물론 오른손 또한 뼈 속을 파고드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 땀으로 가득했다.“우리 어머니를 놔줘!”언제 깨어났는지 연아가 돌쇠의 다리에 달라붙어서는 그대로 한 입 콱 물어버렸다.“이 개 같은!”돌쇠가 즉시 폭발하듯 분노하며 발을 들어 연아를 걷어차려 한 순간, 작은 칼 한 자루가 산적들의 머리 위를 가로질러 날아오더니 정확히 돌쇠의 이마에 꽂혔다.칼날은 깊숙이 파고들 손잡이만 밖에 간간히 남았다.모든 일은 돌쇠가 표정 하나 변하지도 못할 사이에 일어났다.아람은 턱을 누르던 힘이 풀린 틈을 타 오른손의 고통을 참아가며 딸을 끌어안고 한쪽으로 몸을 뺐다.돌쇠는 막 그녀를 붙잡던 그 자세 그대로 눈을 크게 치켜뜨고 있었다.쿵.그는 그 상태로 바닥에 쓰러졌다.이 돌발 상황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모두가 고개를 돌려보니 문밖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달빛이 그의 온몸에 쏟아졌다.그의 키는 곧게 뻗었고 짙은 듯 옅은 듯한 눈매를 가졌는데 마치 속세와 한 걸음 떨어진 온화한 공자 같았다.방금 그 칼이 정녕 그가 던진 것이란 말인가?하지만 그는 누구인가?호위도 없이 어떻게 이곳을 찾아온 것인가?소휘?아람은 멍하니 굳어졌다.그가… 어떻게 여기에?모준이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넌 누구냐! 감히 반의산채에 들어와?”담이 큰 산적 한 명이 뛰어들었으나 소휘의 호위가 단칼에 베어 쓰러뜨렸다.모준은 나머지 형제들이 달려들 기세를 보이자 재빨리 가로막으며 물었다.“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냐, 깽판을 치러 온 것이냐?”그는 귀티가 흘렀고 곁에 선 호위의 실력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소휘는 흙투성이가 된 아람을 가볍게 훑어보고 나서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정모를 찾으러 왔다.”산적들은 모두 흩어져 나갔다.문희가 아람의 손목을 맞추며 말했다.“조금 아플 겁니다. 참으세요.”손목이 제자리를 찾는 순간 아람은 거의 기절할 뻔했다.문희는 그녀의 손목을 잡다가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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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아정모는 원래 맹 노장군 휘하의 한 작은 장수일 뿐이었다. 그러나 맹 가의 아가씨인 맹청련과 서로 마음을 품고 있었다.맹 노장군은 경중의 명문세가의 아들을 사윗감으로 정했기에 맹 아가씨와 아 장군 두 사람은 사랑을 위해 혼례를 버리고 도망쳤었던 것이다.아정모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단단히 움켜쥐었다.그의 얼굴빛 역시 점점 더 험악해졌다. 그의 머릿속에 오래전 지나간 장면들이 잔상처럼 스쳐갔다.소휘는 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씩 웃었다.“본왕이 하나 알려주지. 그 아이… 아직 살아 있다. 그래서 맹 노장군도 지금껏 찾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이야.”아정모의 동공이 떨렸다.“살아… 있다고요?”소휘의 얼굴에 온화한 미소가 떠올랐다.“아 장군이 이 깊은 산에 숨어 지내면 그 아들은 결국 맹 노장군 손에 들어가고 말 것이지.”그 순간 아정모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탁자 위의 장계를 황급히 펼쳤다.“강세오....”그의 눈가가 붉어지며 흔들렸다.“세오…!”“그 애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소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본왕의 사람도 이어진 흔적을 놓쳤다. 전해지길 그는 올해 과거에 응시한다 하더군. 과거까지 두어 달 남았으니 그때면 경성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아정모는 이제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지금 당장 경성으로 가겠습니다!”소휘가 그를 가로막았다.“아 장군, 급히 나서면 안 된다. 지금 경성으로 달려가는 것은 곧 맹 노장군에게자신이 살아있다 고하는 것이 아니겠느냐?”“허! 저는 그를 무서워한 적이 없습니다!”“장군께서는 이렇게 오랫동안 참고 살아오셨건만 이 잠시를 참지 못할리는 없겠지요.”아정모는 어금니를 악물었다.“성왕 전하께선 어떤 계책이 있기에 그러는 것입니까?”소휘는 가볍게 웃었다.“장군, 조급해 하지 말거라. 장군이 본왕을 따라 우주로 들어와 장군이 되어 준다면 본왕 역시 장군의 아들을 상처 하나 없이 돌려주겠다.”아정모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전하의 봉지가 우주인가 보군요. 거 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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